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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난민 아동의 기본권 보장하라

노충래 이화여대 교수 인터뷰… 한국은 유엔아동권리협약 가입국으로서

건강, 의료, 교육, 정보 접근 등 보장할 의무 있다
등록 2019-05-30 19:00 수정 2020-05-03 04:29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난민 아동·청소년의 기본권을 보장할 제도를 마련할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다.”

아동복지 전문가인 노충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사진)는 2천 명에 이르는 국내 난민 아동에 대해 정부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방관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더 늦기 전에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교수는 사각지대에 놓인 북한이탈주민, 부모 없이 입국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아동의 복지 문제에 관심 갖고 여러 연구를 하고 있다.

노 교수는 아동복지 전문기관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국내 난민아동 한국사회 적응 실태조사’(이하 ‘난민아동 조사’)에서 책임연구원을 맡아 국내 최초로 난민 아동의 삶을 연구했다. 연구 결과는 2018년 보고서로 발간됐다. 노 교수 연구팀은 2017년 7월부터 10월 말까지 4개월에 걸쳐 국내 체류 중인 난민 총 114가구의 부모(114명)와 아동(72개월 미만 영유아 101명, 72개월 이상 18살 미만 아동·청소년 73명, 모두 합해 174명)을 설문조사해 그 결과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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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아동은 다문화가정 아동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러 연구 결과를 들여다보면 둘은 확연하게 달랐다.

먼저 난민 아동이 다문화가정 아동보다 한국어 사용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72개월 미만 난민 영유아도 언어능력 발달이 더딘 것으로 파악됐다. 노 교수는 “다문화가정에서 부모 중 한 명은 한국인인 경우가 많지만, 난민가정은 대부분 부모 모두 한국인이 아니라서 언어 습득 능력에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낮은 한국어 사용 능력과 더불어 난민 아동은 다문화가정에서 자란 아동보다 문화 적응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았다. 난민 아동의 문화 적응 정도는 부모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난민 아동 중에서도 ‘부모가 일하지 않는 경우’ ‘부모의 고용 형태가 임시직인 경우’ ‘한국에 오기 전 부모와 떨어진 경험이 있는 경우’ ‘부모의 체류 자격이 난민 신청자인 경우(난민 인정, 인도적 체류 지위를 받지 못한 경우)’에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다문화가정 아동과는 확연히 다르다

노 교수는 “난민 아동은 아빠가 먼저 한국에 와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 가족결합으로 초청하는 경우가 많아, 성인 난민보다 난민인정률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법적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인도적 체류 지위를 받지 못하면 문화 적응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고 사회 적응도도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문화가정 자녀는 수가 많아 이미 한국 사회에서 잘 드러난다. 이들은 아시아 문화권에서 많이 오고, 부모 중 한 명은 한국인인 경우가 많아서 차이도 크지 않다. 차별도 적게 받는 편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온 난민 아동은 외모에서도 차이가 커 더 큰 차별을 받는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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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교수는 유엔아동권리협약국인 한국이 국내에 있는 난민 아동의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었다.

연구 결과를 보면 최근 1년(2017년) 동안 “자녀가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난민 부모의 비율이 42.1%였고, 그것의 가장 큰 이유로 ‘치료비가 부담스러워서’(66.7%)를 꼽았다. 직장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난민은 재난적인 의료비가 부담돼 제때 보건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노 교수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명시한 ‘아동 이익 최우선 원칙’을 고려해 부모의 체류 자격과 관계없이 난민 아동의 기본적인 건강과 의료, 교육, 정보 접근 등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한 국가는 난민 아동 같은 취약계층에 예방접종 등 기본적인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난민 아동의 한국어 습득 도와야

연구자들은 보고서를 통해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온 ‘중도입국’ 난민 아동의 한국어 습득을 도와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이 만난 세주파(17)처럼 학구열이 있어도 계속 공부하지 못하는 학생이 없게 하려면 ‘이중언어’ 수업 등 보완책이 꼭 필요하다. “중도입국 난민 아동을 위한 이중언어 수업을 학교 안에 마련하고, 지역사회 민간단체가 이들을 위한 방과 후 교실,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 기관들은 의사소통이 어려운 난민 부모들을 위해 학교로부터 학습 정보를 받아 전해주고 설명해줄 수 있다. 정부는 난민 아동 복지 증진을 위해 이중언어 사회복지사나 전문가를 양성하는 등 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난민아동 조사’ 보고서에선 한국어가 익숙지 않아 인터넷 번역기로 자녀의 학교 선생님과 소통하는 난민 부모 사례도 소개했다.

노 교수는 “난민협약국이자 유엔아동권리협약국인 한국 정부가 의무를 이행하려면 이미 들어온 난민 아동의 삶을 더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면서 “현재 법무부에 집중된 난민 문제를 확장해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 여러 부처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법무부는 현재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난민 신청자의 난민 심사를 원활하게 진행하는 것에 몰두해왔기 때문에 난민 아동 복지까지 담당하기엔 역부족일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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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에선 이미 중요한 화두

지난해 예멘 난민 500여 명이 제주도에 들어온 것을 계기로 ‘난민 문제’가 불거진 한국에서 난민 아동은 더욱 낯선 주제이지만, 국제사회에선 이미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노 교수가 한국 밖의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사회복지학회(SSWR) 학술대회에 다녀왔는데 난민 아동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미국에선 특히 부모 없이 들어오는 ‘미동반 난민 아동’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에서 강조하는 게 임신 후 첫 1천 일(태아 10개월부터 생후 2년까지)이다. 이 기간에 기본 보건의료 서비스를 잘 제공받아 건강하면 남은 생도 건강할 수 있다. 언어 교육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제대로 받으면 더 빠른 속도로 익히고 한국 사회에도 잘 적응할 수 있다.” 난민 아동 복지 서비스의 정비를 ‘예방접종’에 비유한 노 교수는 난민 아동의 기본권 보장이 늦어질수록 미래에 한국 사회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출생신고 못해 사각지대 놓이는 난민 아동


한국인도 가나인도 될 수 없었다


“소가 태어나도 딱지를 붙이고, 이력을 관리하는 한국에서 사람이 태어나도 국적 등록도 하지 않고 아무런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노충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난민 아동 중 상당수가 본국에서 국적을 받지 못하거나, 대한민국 국적을 얻지 못하면서 사실상 무국적자로 살아가는 현실을 비판했다.
국적을 얻지 못한 아동도 외국인등록증에는 부모 국적이 쓰여 있지만 본국에서 박해당해 망명한 난민은 본국 대사관에 자녀의 출생신고를 하기 어렵다(제1228호 ‘우리 곁의 그림자 아이들’ 참조).
‘국내 난민아동 한국사회 적응 실태조사’(이하 ‘난민아동 조사’)에서 조사한 174명 난민 아동 중 96명(55.2%)이 이처럼 무국적 난민 아동이었다. 외국인등록과 별도로 국적을 얻지 않으면 보건의료 서비스나 교육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심각한 기본권 침해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난민 아동 연구를 보면 국적 취득이나 확인 절차를 거치지 못한 난민 아동은 학교 생활 적응력이 떨어졌고, 지역사회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았다.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가나 음식을 먹지도 못한다. 가나말과 영어를 쓸 줄 모르고 한국어밖에 못한다. 하지만 아이는 한국인이 될 수도 가나인이 될 수도 없다.” ‘난민아동 조사’에서 연구진이 만난 가나 출신 난민 아콰시(32·가명)는 2009년 난민 신청을 했지만 10년 가까이 법적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서 자녀도 무국적 난민 아동이 됐다. 난민 신청자 중 장기적으로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 인정이나 인도적 체류 지위를 받지 못하고 ‘행정소송’ 등을 거듭하면, 그들의 자녀는 더욱 취약한 상태에 놓인다. 이들 중에는 아예 ‘취업 불가’ 낙인이 찍히면서 몰래 불법 노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은 난민 인정 비율이 워낙 낮기 때문에 조사 현장에서 만난 난민 중에 ‘신청자’ 신분이 많았다. 난민 신청자의 자녀는 출생 등록이 안 된 경우가 많았다. 출생 등록이 안 되면 학령기에 접어들어도 교육부가 파악할 수 없다.” ‘난민아동 조사’에 참가한 윤수경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원은 교육 사각지대에 놓이는 무국적 난민 아동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는 ‘보편적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는 한국의 출생신고 체계와 한국에서 태어나더라도 부모가 모두 외국인이면 국적을 주지 않는 속인주의 법체계가 맞물리면서 빚어진다. 전문가들은 국적 없이 복지 사각지대에 빠지는 난민 아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난민 아동을 위한 별도의 등록 체계 마련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노 교수는 “난민 아동에 대해서는 한국 국적을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난민 아동을 위한 별도의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명시한 아동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난민 아동을 사회안전망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관리 체계를 정비하지 않고 난민 아동을 돌보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더 큰 문제에 부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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