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씨 표류기>. 반짝반짝영화사 제공
*얼떨결에: 뜻밖의 일을 갑자기 당하거나, 여러 가지 일이 너무 복잡하여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는 판.
책 은 제목처럼 김재주 작가가 어쩌다보니 은둔형 외톨이가 됐고, 얼떨결에 10년이 흘러 있었다고 한다. 책엔 “오늘이 어제고, 오늘이고, 내일이었던” 10년의 과정이 유쾌하게 적혀 있다.
김 작가는 2년 전 ‘어쩌다’ 방을 탈출해, 현재 담배를 끊고 아버지와 운동하는 등 소소한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김 작가가 어떻게 집돌이가 됐는지, 그리고 방을 탈출하게 됐는지 글을 보내왔다. 은둔형 외톨이들에게 “괜찮아”라는 위로를, 색안경 낀 세상엔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을 준다. 글은 제3자가 김 작가를 인터뷰하는 형식이다. 지난호(제1263호) 표지이야기 ‘고독 속에 산다’ 후속 성격의 글이다. _편집자
이것은 ‘방 탈출’ 게임 이야기지만 여러분이 흔히 알고 있는, 추리를 통해 방을 탈출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게임처럼 10년이란 시간을 방 안에서 갇혀 지내야만 했던 한 청년의 탈출기를 기록한 이야기다.
아무리 봐도 특별할 게 없었던 청년사람들은 그를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라 했는데 10년이란 세월을 그렇게 지냈다고 한다. 10년 전의 그를 만나러 가기 전까지 나는 한 가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부스스한 머리, 피부는 보기만 해도 가려움이 밀려들고, 얼굴에는 각종 여드름과 번들거리는 개기름으로 지저분해 보이고 먹고 자는 행위만을 반복해서인지 고도비만의 몸이 떠올려지는 이미지. 거기다 시대에 맞지도 않는 커다란 뿔테안경까지 착용할 때면 어딘가 모자라 보이면서도 음흉한 외모 탄생! 왠지 집에서 거울을 보며,
요~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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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10년간 히키코모리
나를 비웃는 한 무리
너도 그중 한 마리
네가 아는 그 머리로 이해 못해 돌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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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요약해줄게 받아적어 써머리(summary)!!
이런 랩이나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청년은 그냥 평범했다. 어쩌면 준수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 청년의 10년 전은 아무리 봐도 특별할 게 없는 누군가의 아들이자 옆집 오빠, 대학 선배였다. 길거리에 나가면 어디서나 마주칠 것만 같은 20대 중반의 보통 사람이었다. 그는 나였고 옆집 여동생이었으며 대학 후배이며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될 수도 있었다.
“20대 중반, 멘토라고 부르며 저를 친형처럼 따르던 동생이 있었습니다. 또 미래를 약속한 애인도 있었고요. 둘 모두 사랑스러운 후배였어요. 이듬해에 대학을 졸업했지만, 생각보다 취업 활동이 쉽지 않았습니다. 졸업한 지 반년이 지나자 스스로 무능하다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당시에는 자존감이라는 말은 없었지만 분명 많이 낮아지고 있었을 겁니다. 저는 대학 시절 후배들에게 항상 인생을 살면서 번듯한 직장, 믿을 만한 친구, 사랑하는 연인 중 하나만 제대로 얻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습니다. 다행히 의형제 같은 동생과 사랑하는 애인이 있으니 나름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했지요.”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취직만 하면 그 두 사람에게도 당당해질 거라 생각했죠. 다행히 직장에 들어갔지만 조직 생활에 적응 못하는데다, 계속되는 이직으로 제가 그리 잘나지 않았음을 금방 인정하게 됐습니다. 문득 정신차려 사랑하는 사람을 챙기려 했을 때 동생과 연인은 서로를 아끼며 챙기는 관계가 되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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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내가 잘못 들었나 했다.
“마치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아주 몹쓸 공간에서 가장 믿었던 동생과 가장 사랑하는 연인의 부적절한 관계를 목격하게 되었답니다.”
마음에 벽을 쌓기 시작하다민망함에 재빠르게 들이켜던 커피를 하마터면 코로 내뿜을 뻔했다. 난 몸을 좀 앞으로 내밀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가슴이 아리고 수치심으로 온몸을 난도질당한 느낌이었습니다. 며칠 뒤 만난 두 사람은 뻔뻔하게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저를 대하더군요. 치욕스럽고 사람이 무서워지는 경험이었습니다.”
나는 어느덧 자세를 고쳐 그의 얘기를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다.
“그 후 누굴 만나든지 벽을 쌓는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제 공간에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하게 막은 겁니다. 어느 날 깨닫게 됐습니다. 방이야말로 안전한 공간이란 것을 말입니다.”
내가 알아낸 것은 히키코모리는 대다수 사람보다 마음이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존재들이란 거다. 똑같이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도 어떤 사람은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도전하지만, 그들은 주저앉아 다친 다리를 부여잡고 자전거 타기를 포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것은 방 탈출 게임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뿐, 은둔 생활이 길어진 직접 원인은 아니라고 했다.
청년은 그 사건 직후 방으로 들어가 모든 대인 관계를 정리했다고 한다. ‘그 경험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10년이나 쯧쯧….’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사실은 고통에 시달린 것은 2년 정도였습니다. 그 후엔 마음도 정리되더 군요.”
“그럼 8년간은 왜 나오지 못한 거죠?” 의아해서 물었다.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이네요.”
청년은 나를 아래로 훑어보곤 말을 이었다.
“실례지만 언제부터 배가 나오게 되 었나요?”
“최근에 갑자기 살이 찌는 바람에….”
“아닐 겁니다.”
“그럼 제 배가 언제부터 나왔다고 생각하는데요?” 궁금함을 참지 못해 바로 되물었다.
“아마도 8년 전부터일 겁니다. 그때부터 몸 관리 안 하시고 간편식이나 군것질을 꾸준히 하셨을 겁니다. 샤워하다 살짝 나온 배를 보며 ‘뭐 이 정도야’라고 안도하셨겠지요. 어느 날 발톱을 깎다 예전보다 힘들어졌음을 느끼면서도 ‘발톱이 깎인다는 건 아직 뚱뚱한 수준은 아니야’라고 위로했을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양치질을 하다 칫솔에 묻어 있던 치약이 떨어진 곳이 하필 배 위인 것을 눈치챘을 때 비로소 헛웃음을 치셨겠지요. ‘뭐 이렇게 갑자기 살이 쪘냐~’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갑자기인 걸까요? 마치 야금야금 군것질하던 습관이 나중에야 비만으로 발견되듯이 조금씩 놀 땐 예상치 못했습니다. 게임, 만화, 텔레비전, 낮잠, 빈둥거림의 관성은 결국 저 자신을 더욱더 방 안에서 탈출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일등공신이었다는 불편한 진실을 말이죠.”
‘부정부정 열매’를 먹은 것처럼청년은 내가 나도 모르게 살이 찐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나태함과 게으름이 일상이 되어버린 탓에 그야말로 어쩌다보니 얼떨결에 120개월의 달력이 무기력하게 넘어간 거라 했다.
“방 안에 있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 나요?”
“이번 생은 틀렸다고 생각했지요. 그런 인생 따위에 노력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부정부정 열매’를 먹은 것처럼 하루 종일 천장을 보며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남들이 그 모습을 본다면 세상 편해 보이지만, 세상 편한 자세로 티브이를 시청하고 있어도 그 모든 것을 즐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해되고 또 어떻게 보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을 극복했는데 계기가 있었습니까?” 청년은 잠깐 생각하다 대답한다.
“어느 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라고 깨닫게 되었거든요.”
“그렇게 말하면 같은 처지의 분들에게 도움이 안 되잖아요. 방을 탈출하게 된 비결 같은 건 없나요?”
청년은 다시 뜸 들이다 말을 이었다.
“네. 이건 저의 지난 10여 년의 세월이 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생각, 망상과 공부, 그 전부의 총합입니다. 그리고 나가고 싶다는 의지입니다. 그런 비결을 알았다면 벌써 베스트셀러를 썼겠죠. 하하하. 다만 시간이 흘러 제가 청년에서 장년이 되고 부모님이 노년을 맞이했을 때, 두 분의 모습을 보며 심경이 복잡해진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피해를 준 것인지 부모님 심정이 눈에 보이더군요. 또 고통은 마음으로 전달되었습니다. 그때 처음 양심과 하늘에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어요.” 청년의 눈시울은 빠르게 붉어지고 있었다.
“어느덧 부모님의 이마는 더 이상 매끈하지 않았습니다. 꼿꼿하던 허리는 더 이상 펴지지 않았어요.” 그러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가 울먹거리며 덧붙이기를 부모의 얼굴 이곳저곳에 애태움이라는 검버섯이, 눈가에는 근심이라는 잔주름이 파여 있었다고 했다. 청년의 눈에서 슬픔과 죄송함이 볼을 따라 흘러내려 턱 끝에 맺혔을 때, 그동안 묵묵히 응원하셨던 어머니가 거칠어진 손으로 아들 손을 말없이 잡아주셨다 한다. 그때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아무 말씀이 없었지만, ‘난 네가 탈출하리라 믿고 있었다’는 마음의 소리가 전해졌다고 한다.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전 ‘아직 인생이 실패했다고 결정 난 것은 아니야’라고 자신을 세뇌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밤마다 울면서 기도하며 희망을 가지려 했습니다. 살아 있는 한 분명 다음 인생이 반드시 찾아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고 전부를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방을 탈출한 뒤 삶에서 어떤 점들이 바뀐 것 같아요?”
“이제는 나왔다는 게 가장 큰 변화 아닐까요?” 순간 나도 모르게 실망한 표정이 나오자 청년은 재빨리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큰 변화는 없습니다. 금연을 하고, 다시는 방이 저를 붙잡지 못하도록 마음을 다잡기 위해 방을 도배했습니다. 날마다 예전 생활로 돌아가지 않게 방과 마음가짐을 정리한답니다. 아침이면 부모님과 함께 아침밥을 먹고 저녁이면 대화를 나눕니다. 누구에게는 일상이지만 저에겐 돌고 돌아 인제야 가능해진 일이지요.”
“그리고 책도 냈잖아요?”
“네. 그 시절에 느꼈던 감정을 책으로 엮어냈습니다. 덕분에 여러 단체에 초빙도 되고, 방송 출연과 이렇게 잡지에 글도 실어보네요. 다음주엔 저와 같은 선택을 한 자녀를 둔 어머니들 앞에서 강연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점점 방이 편해진다는 분들을 위해 청년이 쓴 편지가 있다.
인생의 다음 단계 찾기를전 이제 마흔 살이 되었습니다. 마흔 살 입장에선 앞으로 2년이란 시간도 그리 큰 의미가 없는 세월일지도 모릅니다. 고작해야 머리카락 몇 가닥이 더 하얘지거나 팔뚝 살에 탄력이 없어지고, 계단 위를 오를 때 숨이 더 찰 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2년이란 시간은 삶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데 충분한 시간입니다. 부디 방이 유혹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저와 동일한 선택을 하기보단 극복과 성장이라는 인생의 다음 단계를 찾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잠시나마 그 시절의 이 청년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재주 작가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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