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6일 오후 4시30분께 서울 목동 인근. 김옥배씨는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해 나왔다. 메뉴는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땅에서 75m 위에 있는 친구 둘에게 저녁 식사를 올려보내야 하는 오후 5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옥배씨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벌써 이렇게 식사를 올려 보낸 지 421일째(1월6일 기준)였다. 식사를 전달하러 가는 도중, 단체대화방에 ‘홍기탁, 박준호가 단식한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떴다.
“에이, 그렇게 말렸는데….” 옥배씨는 가슴을 쳤다. 곧장 75m 위로 전화했다. “뭐 하는 거냐”고 따지듯 물었다. 박준호씨가 “괜찮다”고 했다. 뭐가 괜찮은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옥배씨는 “진짜 할 거냐”고 되물었다. “이미 성명서를 냈다”는 짧은 답이 돌아왔다. “400일 넘는 굴뚝 농성으로 체중이 빠져 50㎏도 안 된다는데, 그 몸으로 단식하면 어쩌자는 건지.” 주인 잃은 음식을 든 옥배씨의 손이 떨렸다.
2005년부터 이어진 투쟁“고공농성자 무기한 단식 돌입에 임하며. (중략) 우리는 지난 25여 년간의 세월 속에 많은 투쟁을 넘어왔다. 그 투쟁 속에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좌절, 위선과 절망 앞에서 언제나 선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어줄 수 없고 타협할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청춘과 함께해온 민주노조이다. ‘청춘을 다 바쳤다 민주노조 사수하자’는 그냥 구호만이 아니다. 그래서 또다시 굴뚝농성이었고, 그 굴뚝농성은 또 한 번의 408일을 훌쩍 넘어 421일이 되었다. (중략) 목숨을 건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땅 아래 동지들. 전국에서 함께해주는 동지들의 힘으로 민주노조의 깃발을 움켜쥐고 당당히 땅을 밟을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다. 단결. 2019년 01월06일.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인텍지회 굴뚝 고공농성자 박준호 홍기탁”
파인텍 해고노동자 홍기탁씨와 박준호씨는 1월6일 오후 4시43분, 자신의 페이스북에 각각 이 글을 올리고 이날 오전 10시 아침 식사를 마지막으로 올려보냈던 ‘생명줄’을 더 이상 땅으로 내려보내지 않았다.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5시에 굴뚝 위로 물과 식사를 올리던 옥배씨는 착잡했다. 굴뚝 위에서 몇 차례 단식 뜻을 내비쳤지만 “그런 소리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막았던 터다. 이미 28일 전 옥배씨와 함께 굴뚝 아래를 지키던 차광호씨가 단식을 시작했다. 옥배씨는 “굴뚝 위마저 단식을 하면 어쩌나,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든다”고 말했다. 더구나 지금은 영하 10도를 내려가는 추운 겨울. 굴뚝 위는 더 춥다. 생명줄을 내리지 않으면 추위를 버틸 핫팩과 버너에 쓸 가스도, 보조 배터리도 올려보낼 수 없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꺼지면 굴뚝 위와 아래는 아예 단절된다. 옥배씨는 속이 탔다.
옥배씨는 해고노동자다. 경북 구미 출신 옥배씨는 25살이던 2002년 12월 구미에 있는 한국합섬에 취직했다. 폴리에스테르를 만드는 제조업체였다. 문어발 경영, 공금 횡령 등을 반복하던 회사는 옥배씨가 입사한 지 3년 만인 2005년 말 대규모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그리고 2007년 4월 파산했다. 파산한 지 3년 만에 공장을 인수하겠다는 회사가 나타났다. 스타플렉스였다. 스타플렉스는 한국합섬의 남은 노조원 104명과 노동조합, 단체협약을 승계하는 조건으로 인수했다. 평가액이던 870억원의 절반도 안 되는 399억원이었다. 하지만 공장이 돌아가는 소리는 얼마 가지 못했다. 2011년 3월 첫 제품이 나오고 1년9개월 만인 2013년 1월3일, 시무식 날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는 적자를 이유로 폐업 청산을 선언했다.
끼니는 거르지 않던 이들의 단식회사는 희망퇴직을 거부한 29명을 해고했다. 함께 해고당한 광호씨가 2014년 5월27일 45m 높이 굴뚝에 올랐다. 광호씨는 여섯 계절을 지나 2015년 7월8일에야 ‘고용 보장’ ‘노동조합 및 단체협약 보장’ ‘생계 보장’을 약속받고 땅을 밟았다. 스타플렉스는 자회사인 파인텍을 충남 아산에 설립했다. 한 달 안에 한다는 단체교섭은 10개월 동안 미뤄졌고, 월급은 세금을 떼면 100여만원 남짓이었다. 3년 투쟁으로 11명으로 줄었던 파인텍 직원은 이제 옥배씨와 광호씨, 기탁씨, 준호씨, 조정기씨 다섯뿐이었다. 5명이 파업을 시작하자 회사는 공장에서 기계를 뺐다. 굴뚝 위 광호씨에게 옥배씨와 함께 408일 동안 도시락을 올려주던 기탁씨와 준호씨가 2017년 11월12일 굴뚝에 오른 이유다.
굴뚝 위, 아래에서 ‘스타플렉스 김세권은 노사합의 이행하라’ ‘노동악법 철폐하라’ ‘헬조선 악의 축을 해체하라’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사 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2017년 겨울에 시작된 굴뚝 농성은 봄, 여름, 가을을 지나 다시 겨울을 맞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광호씨가 자신의 굴뚝 농성 기록인 408일을 2주 앞둔 2018년 12월10일, 408일까지 기탁씨와 준호씨를 굴뚝 위에 둘 수 없다는 마음으로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의 사무실이 있는 목동의 한 방송사 앞에서 천막을 치고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송경동 시인,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등이 함께 곡기를 끊었다.
사 쪽이 움직이나 싶었다. 하지만 2018년 12월26일, 29일, 31일 그리고 지난 1월3일, 9일 다섯 차례 사 쪽과 있었던 교섭은 무산됐다. 지난한 시간이었다. 사 쪽은 “고용할 여력은 있지만 고용하지 않겠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만 남겼다. 네 번째 교섭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결국 굴뚝 위 기탁씨와 준호씨가 단식을 선언했다. 옥배씨는 “차광호 지회장이 단식하는 몸으로 사 쪽과 교섭에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아서 내가 대신 단식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차 지회장이 단식하게 됐다. 더 강경하게 말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굴뚝 위와 아래에서 단식하는 동지들을 보니 마음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삼시 세끼는 꼭 챙겨먹어야 하는 이들이었다. 2014년 408일 고공농성 때도 단식은 하지 않던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밥을 끊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다. 굴뚝 위 두 사람의 체중은 50㎏으로 줄었다. 단식 32일(1월10일 기준) 광호씨는 체중이 10여㎏이나 빠졌다. 80㎏은 66㎏이 됐다. 광호씨는 단식 31일째인 1월9일 단식농성장에서 앙상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단식 27일째부터 조금 힘드네요.” 목소리에 힘이 넘쳤던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고개를 그의 몸 쪽으로 갖다 대야 했다. 10여 분 이야기를 나누던 광호씨가 어지럼증과 두통을 호소하며 자리에 누웠다.
매일 오전 10시, 오후 5시 일정이 빠졌지만 옥배씨는 더 바빠졌다. 1월8일에도 아침에 라면 하나 먹고 밤 10시에 밥을 목구멍으로 밀어넣었다. 사람들이 얼굴만 보면 물었다. “밥은 먹고 다니냐”고. 옥배씨는 “잘 먹고 다닌다”고 말한다. 옥배씨는 기탁씨와 준호씨에게 올려보낸 식사들이 기억난다. 동태탕을 20여 일간 올려보내자 “동태 뼈 쌓인다”고 농을 했던 일, 준호씨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보냈던 일, 더운 여름에 올려보낸 볶음밥까지.
의료진이 내려보낸 빨간 도시락 바구니하루 네 번, 1680여 차례, 굴뚝 위와 아래를 오갔던 빨간 도시락 바구니가 꼬박 이틀 만인 1월8일 땅으로 내려왔다. 굴뚝 위에서 단식을 시작하기 전 마친 ‘마지막 식사’는 3분의 2가 남은 채로 땅에 닿았다. 기탁씨는 9일 〈한겨레21〉과 전화 인터뷰에서 “단식 3일 전부터 단식하기로 결정하고 음식량을 줄여갔다”고 말했다. 생명줄이 땅에 닿은 건 두 농성자의 건강을 걱정해 의료진과 종교인들이 긴급하게 굴뚝 위로 올라간 덕이다. 이들은 기탁씨와 준호씨를 대신해 물과 소금, 효소, 핫팩 등이 실린 도시락 바구니를 당겼다.
이날 진료를 마친 의료진은 “두 농성자의 몸은 메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고 혈압과 혈당이 매우 낮은 응급 상태”라며 “저 몸으로 단식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기탁씨는 “차광호 지회장이 단식에 들어간 지 28일이 넘어가는데 이 와중에 굴뚝 위에서 뭐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단식 40일이 넘어가면 장기가 망가진다는데 굴뚝 아래서 단식하는 사람들이 걱정이다”라며 “나는 괜찮다. 의료진들이 소금과 효소를 올려보내 먹고 있다. 날마다 2시간씩 하던 운동은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의료진이 굴뚝에 오르자 파인텍 사 쪽은 기자회견을 열어 노조를 비난했다. 강민표 파인텍 대표는 “직접고용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은 2013년부터 회사가 지속적으로 강조했던 부분이다. 단협을 마무리하지 못한 것은 상여금 800%를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기탁씨는 “강민표 대표의 기자회견 기사를 몇 줄 읽지 못하고 그냥 덮어버렸다”며 혀를 찼다. 노조 쪽은 즉각 반박문을 내어 “협상이 결렬된 이유는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가 고용을 책임지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426일째 아침에 들려온 소식 ‘협상 타결’지리한 합의 과정은 6차 교섭에서야 합의점을 찾았다. 10일 오전 11시 양천구 사회적기업경제지원센터에서 6차 교섭은 사실상 ‘끝장 협상’이었다. 김세권 대표는 두바이 국제 전시 참가로 13일 출국을 앞뒀고, 노동자들은 단식으로 건강이 염려되는 상황이었다. 더이상 단식이 길어지면 안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20여시간동안 정회와 속개를 반복, 11일 오전 7시20분 극적으로 협상을 타결했다. 노조가 원하는 파인텍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에서 직접고용하는 방안은 아니지만, 스타플렉스의 대표 김세권씨가 파인텍의 대표직을 맡기로했다. 또 오는 7월부터 공장을 정상 가동하고, 노동자들의 고용은 최소 3년간 보장한다. 교섭타결로 공동행동쪽은 굴뚝 위 단식농성중인 기탁씨와 준호씨가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는 복귀 방식을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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