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뭔 줄 알아?” 머리카락 길이가 1~2㎝밖에 안 될 정도로 짧게 자른 별이(44·별명)씨가 구름이 반쯤 가린 하늘을 찍은 휴대전화 속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강아지인가요?” 별이씨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만히 살피니 구름이 그린 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하트요?” 별이씨가 송곳니만 남은 윗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지난가을 서울 용산구에 있는 ‘홈리스행동’ 앞에서 본 하늘은 별이씨를 간만에 들뜨게 했다. 사진이 몇 장 저장되지 않는 2G(2세대) 휴대전화로 연신 찍었다. “하늘을 봤는데 하트가 둥둥 떠다니잖아.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근데 사람들은 몰라봐. 메말랐나봐.”
<font size="4"><font color="#008ABD">‘한번 하자’ 추행 탓에 머리 짧게 잘라</font></font>‘사랑’을 사랑하는 별이씨는 그놈의 사랑 때문에 집을 나왔다. 얼굴만 떠올려도 억장이 무너지는 아들이 있지만 자신부터 살아야 했다. 남편과 살다간 ‘술에 취한 남편에게 맞아 사망’이라는 제목의 기사 속 주인공이 될 것만 같았다. 남편은 술에 취해 걸핏하면 때렸다. 2019년이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아들의 교육을 어떻게 시켰느냐 때리고, 이유 없이 그냥 때리기도 했다. 어느 날은 별이씨 머리에 액자를 내리찍었다. 또 어떤 날은 누워 있는 별이씨의 명치를 발로 찼다. “무식하게 때렸어. 손으로 퍽퍽퍽. 액자로 맞아봤어? 피를 철철 흘려서 병원에 갔어. 발로 가슴을 찬 날은 숨이 턱턱 막혔어. 숨을 못 쉬고 바닥을 굴렀지.”
남편은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을 때려 코뼈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별이씨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2018년 6월 결혼생활 10여 년을 뒤로하고 가방 하나를 챙겨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이유다. 아들은 그룹홈에 들어갔다.
집을 잃은 뒤, 삶은 녹록지 않았다. 서울 사는 이모 집에서 잠시 있었지만 잔소리를 견디기 어려워 거리로 나섰다. 그렇게 서울역, 거리에서 생활이 시작됐다. 남편에게 맞아 별이씨의 이는 28개 중 절반가량밖에 남지 않았다. 아랫니는 앞 4개가 없고 윗니는 어금니와 송곳니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남편에게 이를 빼앗긴 별이씨는 지난해 여름 머리카락도 짧게 잘랐다. “남자처럼 보이려고 잘랐지. 안 그럼 ‘한번 하자’고 건드리니까. 자고 있으면 몸을 만져.” 별이씨는 머리를 짧게 자른 것도 모자라 몸보다 큰 패딩점퍼와 모자가 달린 윗옷을 뒤집어쓰고 다녔다. 가정폭력으로 떠밀리듯 나온 별이씨는 거리에서 또 다른 폭력에 노출됐다.
별이씨 이야기는 여성홈리스를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감독 김수목)에 실렸다. 영화에는 별이씨처럼 남편이나 부모 등에 의한 가정폭력에 시달린 또 다른 ‘별이씨들’이 거리에 나와 겪는 이야기가 담겼다. 영화는 거리, 쪽방, 시설 등에서 사는 여성홈리스 12명을 인터뷰해 제작했다. 김수목 감독은 2018년 12월17일 서울극장에서 열린 ‘여성홈리스 영화 특별전’ 관객과의 대화에서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여성홈리스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여성 홈리스</font></font>‘홈리스’는 법률상 용어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숙인 복지서비스는 응급보호 사업으로 지원되다가 2011년 법으로 제정됐다. 이때 제정된 ‘노숙인 등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노숙인 등 복지법)을 보면 ‘노숙인 등’은 “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 노숙인시설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노숙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홈리스 지원 단체들은 ‘노숙인’ 대신 ‘홈리스’라는 단어를 써줄 것을 권한다. 강민수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간사는 “홈리스라는 단어는 집이 없는 사람, 즉 쪽방과 고시원 같은 비적정 주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까지도 확장하는 개념이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이라는 단어로 한정하게 되면 지원 대상이 축소된다”며 “쪽방과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은 거리생활과 비적정 주거생활을 반복해 분명한 경계를 나눌 수 없기도 하다”고 말했다.
‘노숙인 등 복지법’에 따라 2016년 실시된 보건복지부의 거리와 시설을 중심으로 한 노숙인 실태조사를 보면 전국의 노숙인은 약 1만1340명이다. 그중 여성은 2929명으로, 전체의 25.8%가량이다. 남성보다 절대적 수는 적지만, 홈리스 시민단체들은 복지부의 실태조사가 여성홈리스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본다. 해마다 동지를 기해 홈리스추모제를 지내는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조사 결과) 거리에서 노숙하는 여성홈리스라고 하더라도 ‘돈 내고 생활하는 곳’에서 주로 지낸다. 이들이 머무는 장소는 찜질방, PC방, 만화방이 가장 많다”며 “여성홈리스 수가 적은 것이 아니라 소극적인 실태 파악이 여성홈리스의 존재를 가린다”고 밝혔다. 거리노숙과 시설, 쪽방에 국한된 실태조사로는 여성홈리스들이 처한 기초 상황부터 파악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부족, 부족, 부족</font></font>여성홈리스들이 거리에 나오는 이유는 남성과 조금 다르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2010년 발간한 ‘서울시 노숙인 지원정책 성별 영향 평가’를 보면 남성은 60% 이상이 실직과 사업 실패 등 경제적 어려움을 들었으나, 여성은 ‘경제적 어려움’이 46.7%, 바로 뒤이어 ‘가족 관계의 어려움’이 43.3%였다. 노숙인 자활·재활 시설에 입소한 여성의 경우 약 60%가 비경제적 어려움인 가족 관계의 어려움을 들었다.
여성홈리스들은 별이씨처럼 일상에서 상시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 지난해 12월21일 홈리스추모제에서 발언한 여성홈리스 로즈마리(별명)의 짧은 이야기는 여성홈리스들이 겪는 위험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로즈마리는 “밤 12시께 어느 교회에 들어가 잔 적이 있는데 ‘여자는 나가’라고 남자가 고함을 질렀다. 여자가 있으면 잡음이 나고, 시끄럽다고 내쫓았다”며 “(무료 급식소에서) 아침을 먹으려고 줄을 서는데,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줄을 서는데, 옆에 있던 남자가 ‘하고 싶다’고 한다. 나는 무서워서 그다음날부터 아침을 먹으러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야학에서 홈리스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이은기(23) 교사가 여성홈리스의 상황을 들려줬다. “여성홈리스들은 성희롱이나 추행, 시선 폭력 등에 노출된다. 위험을 피하려고 밤에는 계속 걸어다니거나 좀더 안전한 낮에 자기도 한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타거나 대형 서점에서 자는 식이다.” 로즈마리도 역 주변에서 잘 때 “우산으로 가린다”고 말했다. 자신이 여성임을 감추기 위한 나름의 방책이었다.
이런 폭력을 피해 여성홈리스들이 갈 곳은 거의 없다. 현재 여성홈리스 자활·재활 시설은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경북 6개 광역지자체만 운영하고 있다. 그마저도 서울만 7곳이고 부산·대구·광주·경북은 각각 1곳, 인천은 2곳이다(2017년 6월 기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자활·재활 시설과 노숙인 요양시설을 홈리스의 건강과 장애 상태 등에 따라 나눠서 지원하는데 대부분 남성 위주의 시설이다. 여성홈리스들은 남성이 다수인 시설의 한 부분에 여성 공간이 마련된 곳에 머물기를 꺼린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1~2개월 일시적인 잠자리를 구할 수 있는 일시보호시설의 경우, 남성홈리스가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서울역 주변에만 3곳이 있지만, 여성홈리스가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서대문구 연희동에 1곳 있다. 여성 일시보호시설은 전국적으로 서울과 대전에 2곳 있을 뿐이다. 강민수 간사는 “남성홈리스는 일시보호시설이 여러 곳 있어 몇 개월씩 머물며 버티는데, 여성홈리스 일시보호시설은 1곳밖에 없다. 여성은 정신질환 등을 앓는 경우가 많아 접근성이 떨어진 곳까지 찾아가기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알코올·약물 중독,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여성홈리스는 47.6%로 남성(22.9%)보다 많다. 장애 진단을 받은 남성은 27.3%, 여성은 55.4%였다.
여성홈리스 자활시설인 열린여성센터의 서정화 센터장은 자활시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빈곤화 과정에서 누구나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 우울증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자활시설에 들어와 치료 관계를 형성한 뒤 여성홈리스들이 취업하기도 한다.”
여성홈리스는 정신질환뿐만 아니라 자녀를 동반한 경우가 있어 남성홈리스와 다른 서비스 제공이 필요하지만 이런 특성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중학생 이상 남자아이나 생후 7개월 이전 아이를 동반한 경우 시설에 입소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강 간사는 “가정폭력 때문에 임신한 상태로 집을 나온 여성을 임신을 이유로 홈리스 시설에서 받아주지 않았고, 미혼모 시설에서도 미혼모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결국 쪽방에서 임시 거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탈시설화’ ‘주거 안정’ 등 독립된 주거의 필요성에 성인지적 관점이 필요한 이유다. 강 간사는 “현재 요양·재활 시설은 중앙정부에서, 거리노숙이나 자활시설은 지자체로 이원화돼 있다. 홈리스가 정책에서 소외받으니 정부나 지자체 예산도 적을 수밖에 없어 성별 특성을 반영하기는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집 같은 집에서 살고 싶어”</font></font>“사람들이 또 길거리를 헤매지 않으려면 이런 집이 있어야 안정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의 폭력으로 경기도 수원역 등 거리를 수년간 떠돈 다큐멘터리영화 속 조아무개씨는 서울시에서 노숙인에게 시범 운영 중인 지원주택에 입소했다. 월세가 10여만원으로 저렴하다. 조씨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별이씨는 홈리스행동의 도움을 받아 서울 동자동 쪽방에 머물게 됐다. 한 평(3.3㎡) 정도 되는 조그만 방 하나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공용이다. 별이씨는 “화장실이 2층에 있는데 잘 안 간다. 푸세식인데다 공용화장실이라 남자가 들락날락해서 근처 노숙인지원센터로 간다”고 말했다. 씻는 요일도 정해져 있다. “화, 목, 금, 토.” 불완전한 주거지이지만, 별이씨는 거리보다는 낫다는 마음으로 아들과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한 달에 5만원씩 적금도 넣는다. “집 같은 집에서 살고 싶어.”
‘별이’라는 별명은 홈리스 야학에서 직접 지었다. “하늘을 보면 별이 있잖아. 별을 보면 돌아가신 엄마도 생각나서.” 하트와 별을 사랑하는 별이씨의 휴대전화 속 친구 70명의 이름 앞뒤에 빨간 하트가 붙어 있었다.
<font color="#008ABD">글·사진</font>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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