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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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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개혁의 첫걸음 ‘철저한 진상 조사’

‘알파팀’부터 시작한 국정원 흑역사 9년…

“강도 높은 개혁 위해 독립적 조사기관 설치해야”
등록 2017-05-17 14:50 수정 2020-05-03 04:28
서훈 국가정보원장 내정자가 5월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서훈 국가정보원장 내정자가 5월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의 일이 일어났다. 국가정보원 이야기다. 국가기관이 온라인에서 정부·여당 편향적인 정치 게시글을 조직적으로 올리는 공작을 했고, 오프라인에선 보수단체에 자금을 지원했으며, 신문광고 홍보문구 작성과 유인물 배포 작업까지 개입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여론 조작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내용이다.

국정원의 온·오프라인 공작

이 최근 연속 보도한 국정원 민간 여론 조작 조직 ‘알파팀’은 바로 이 국정원 ‘흑역사’의 시작점이었다. 알파팀이 활발하게 활동한 것은 2008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였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그 직후인 2009년 3월 독립부서가 된 뒤 온라인 공간에 마수를 뻗쳤다. 국정원이 우파 청년들에게 외주를 줬던 일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국정원 오프라인 공작의 시초도 알파팀에서 엿볼 수 있다. 2008년 12월30일 알파팀의 리더인 김성욱 한국자유연합 대표가 팀원들에게 보낸 전자우편에는 국정원이 ‘(우파) 청년대학생 육성’ 사업을 제안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사업은 실제 이뤄졌다.

의 2013년 3월 단독 보도로 확인된 2010년 7월19일 원 전 원장의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에는 “‘젊은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 방안’(강화 방안)은 내용 자체가 바로 우리 원이 해야 할 일이라는 점을 명심할 것”이라고 돼 있다. 검찰은 이 보도를 실마리로 원 전 원장이 ‘대학생 등 젊은층이 우파적 입장을 가질 수 있게 지원하라’고 국정원 고위직들이 모이는 ‘전(全) 부서장 회의’에서 지시한 녹취록을 확보해 ‘강화 방안’의 실체를 밝혀냈다. 청년 우파를 조직하는 일을 국정원 차원에서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 사업에는 보수단체에 직접 돈을 주는 일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연속 보도를 통해 국정원 직원이 알파팀 김성욱 대표에게 2천여만원을 지원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2013년 당시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팀장을 맡은 검찰 특별수사팀의 수사 과정에서도 국정원 직원이 보수단체 관계자에게 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일부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불거진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조사는 지금껏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13년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의 전폭적 지원 아래 꾸려진 검찰 특별수사팀은 정권에 밉보여 제대로 수사를 하지 못했다. 유탄은 엉뚱한 곳으로 튀어 채 전 총장은 석연치 않은 시기에 제기된 의 혼외자 보도로 사임했다. 이 과정에서도 국정원의 공작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혼외자 의혹이 불거지기 전 국정원 직원이 채 전 총장의 뒷조사를 한 사실이 검찰 수사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는 2016년 1월 국정원의 채 전 총장 뒷조사 이유가 “검찰로 하여금 (원세훈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고) 국정원법 위반만으로 기소하도록 압박을 가할 방편의 하나”라고 판결문에 밝혔다.

진상 규명은 없었다

‘유우성씨 간첩 조작 사건’도 제대로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국정원은 2012년부터 서울시 공무원이던 유씨를 북한에 북한이탈주민 정보를 넘긴 혐의로 수사해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2013년 2월 유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유씨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국정원은 중국 허룽시 공안국 명의로 된 유씨의 출입경기록 등 각종 공문서를 위조해 검찰을 통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국가기관이 사법부를 농락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하지만 국정원 대공수사국 처장과 몇몇 사건에 관련된 직원만 벌금형과 집행유예형 등을 받는 데 그쳤다. 2015년 불거진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활용’ 의혹과 관련해서는 2년째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떠안은 시대적 과제 중 하나인 국정원 개혁을 위해 먼저 국정원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우성씨 변호를 맡았던 김용민 변호사는 “국정원을 개혁하려면 일단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유우성씨 간첩 조작 사건을 비롯해 국정원이 저지른 일을 전면 조사하고 이를 개혁을 위한 참고 자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 “진상 조사와 국정원 개혁 작업을 국정원에서 자발적으로 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외부에 국정원 개혁 추진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규명위)에서 민간위원 간사를 맡은 안병욱 가톨릭대학 명예교수는 훨씬 더 근본적인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안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의 국내 파트를 없애고 ‘해외안보정보국’으로 바꾸는 개혁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정원 개혁을 국내 파트를 단순히 없애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국정원이 국내 공작정치의 하수인으로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밝혀내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진실규명위의 경우 사전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고 국정원의 국내 파트를 어떤 형태로든 유지한다는 전제가 있어 철저한 조사를 하지 못했다. 국정원의 모든 악행을 공개하는 것은 당시 대통령에게도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 정부는 국정원의 국내 파트를 없앤다는 입장이라 그런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참고가 되는 것은 동독의 사례다. 통일 뒤 독일 정부는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의 문서고를 완전히 열어 공작정치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는 성과를 거뒀다. 안 교수는 “국정원 국내 파트를 없앤다면 국정원이 아니라 별도의 위원회를 만들어 관련 자료를 모두 확보해야 한다. 진실규명위는 대통령의 요청에 의해 국정원에 내규를 두고 활동했다. 법률적으로 보장된 기구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활동에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제도적 기구를 만들어 진상 조사와 개혁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개혁 위한 독립기구 설치 필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이 모여 만든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국정원의 정치 개입과 인권침해 사건의 진상 조사를 위해 민관합동 조사기구(가칭 ‘진상조사특위’)를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대선 전인 4월 각 후보에게 진상조사특위 설치 관련 견해를 물었다.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는 “진상조사특위 설치는 사회 각계의 다양한 여론을 수렴하고 또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검토해나갈 것”이라며 유보적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국정원의 경우 감사원의 감사 대상도 아니고 검찰 수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에 진상조사특위 같은 강력한 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으로 임명하면서 검찰 개혁 의지를 보인 문재인 정부가 국정원 개혁을 위해서는 어떤 수를 둘지 주목된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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