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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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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책임질 수 없는 가난을 보여드립니다

<한겨레21> 부양의무제 폐지해야 하는 이유 다룬 만화 연재

소셜펀치에서 후원금 모금도
등록 2017-04-19 17:05 수정 2020-05-03 04:28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행동 제공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행동 제공

한국에서 생계 위협을 느끼는 이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으려면,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어도 부양받을 수 없는 상황이어야만 한다. 부양의무자는 수급자의 부모와 자녀, 그들의 배우자다. 이는 시민의 생계 책임을 ‘국가’가 아닌 ‘가족’에게 떠넘기는 강력한 법적 장벽이다. 사위가 취업했다는 이유로 수급에서 탈락한 할머니가 정부기관 앞에서 항의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에서 보듯 현재 한국 사회는 직계가족이라 해도 서로가 서로를 사적으로 책임질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놓여 있다.

은 이번호(1158호)를 시작으로 빈곤 문제 해결과 복지 확대를 위해 모인 42개 사회·시민단체와 수급권자들이 만든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행동’(이하 폐지행동)과 함께 부양의무제 폐지 필요성을 알리는 만화 를 총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서로를 책임질 수 없는 가족

폐지행동은 2017년 대선 기간 동안 후보들에게 부양의무제 폐지 공약을 요구하는 활동을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이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이에 견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폐지행동이 보낸 질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지만 한꺼번에 없앨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부양의무자의 범위 축소 및 실질적 부양 능력을 감안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폐지행동은 “안 후보의 의견은 부양의무자기준을 남겨놓겠다는 의미로 사실상 부분적 폐지다. 지난 17년 동안 부양의무자기준 완화는 꾸준히 이뤄져왔지만 기초생활보장 수급률은 변화한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부분적 폐지가 아닌 완전한 폐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폐지행동은 차기 정부에서 부양의무제 폐지는 물론 폐지 이후 그 시행을 둘러싼 감시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폐지행동은 이 제도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기 위해 후원 캠페인도 벌인다. 사회운동을 위한 온라인 후원 플랫폼 ‘소셜펀치’를 통해 목표액 500만원에 도전한다. 후원금은 활동에 필요한 유인물·소책자 등의 인쇄비용과 부양의무제 폐지 입법 요구 활동 기금으로 사용된다. 이 제도로 인해 수급에서 탈락한 가구의 이의신청을 지원하는 데도 쓰일 예정이다. (후원함 주소 https://socialfunch.org/nobuyang)

윤애숙 빈곤사회연대 조직국장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제도인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는 것은 ‘복지는 국가 책임’임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책임을 사적 부양으로 넘기는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면 국민의 삶이 위험에 빠졌을 때 이용해야 할 다른 사회제도의 장벽들도 덩달아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페지행동과 함께 기획하는 만화 첫 회에선 시설에서 독립해 새 삶을 꾸리려는 한 장애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실제 주인공 하상윤(45·뇌병변 1급)씨는 10살 때 가족에 의해 장애인 거주 시설로 보내진 뒤 27년 동안 오로지 ‘먹고 자는 것’밖에 허용되지 않는 삶을 살았다. 가족은 그 긴 시간 동안 하씨에게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2009년 37살의 하씨는 독립을 결심하고 기초생활보장수급을 신청하려 했지만 곧 장벽에 부딪혔다. 부양의무자로 지정된 아버지 때문이었다. 하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계속 시설에 거주하면 시설 사용료는 내줄 수 있지만, 시설에서 나오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아내겠다고 했다. 가족조차 ‘장애인은 시설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편견을 가진 탓이다.

27년 동안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하씨는 정부에 이런 상황을 밝히며 ‘가족관계 단절’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2009년 6월 기초생활보장수급도, 아버지의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시설에서 나와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노숙했다. 지독하게 가난한 생활이 시작됐지만 그에겐 ‘감옥’ 같은 시설보다 차라리 노숙이 나았다. 이후 하씨는 장애인 임시주거 주택인 평원재와 서울시 장애인자립생활주택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3월17일 시설에서 나온 지 8년 만에 ‘가족관계 단절’을 인정받아 기초생활보장수급으로 ‘진정한 독립’을 하게 됐다.

기초생활보장법 제5조 1항에 따르면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받을 수 없는 사람’은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제도 운영 과정에서 이 기준을 매우 보수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가족의 부양을 받을 수 없다고 소명해도 제도 보장을 받기가 어렵다. 마땅한 권리로서 수급권을 보장받기 위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시급한 이유다.

 연재  시작하는  이재임  작가


국민으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몫’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가끔은 만화가, 가끔은 다큐멘터리 감독, 대부분은 백수죠.”
4월1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얼굴을 마주한 이재임 작가가 규정한 자신의 대표 정체성은 ‘백수’였다. 스물 다섯. 긴장한 듯한 젊은 작가의 얼굴에서 해맑은 미소가 잠시 번졌다, 사라졌다.
이재임 작가가 만화가로서 첫 작품을 그려낸 것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재학 시절이었다. 사회운동과 예술의 결합을 추구하는 학내 동아리 ‘돌곶이 포럼’에서 활동하며 독립잡지 에 학교 청소노동자 이야기를 그려냈다. 이후 강원도 태백에서 오래된 여인숙을 꾸려온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2015년 학교를 졸업한 뒤 이 다큐를 영화제에 출품하러 다녔다. 미술학원 강사, 일러스트 그리기 등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올해 초부터 서울 구로공단 노동자의 삶을 그린 만화를 ‘서울남부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페이스북에 연재하고 있다.
사회성이 짙은 예술활동을 해온 이재임 작가가 제1158호부터 부양의무제 폐지의 필요성을 알리는 만화 를 연재한다. 이 작가는 “‘들어봐, 나의 몫소리’란 제목은 국민으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몫, 권리에 대한 이야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작가도 이번 작품을 그리기 전까지 부양의무제의 문제점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부양의무제로 많은 사람이 힘들어한다는 것,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오랫동안 농성해왔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몰랐어요. 최근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행동으로부터 부양의무제 폐지 만화를 연재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나서 구체적인 조사를 시작했죠. 만화를 연재하기로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저처럼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모르는 이들에게 ‘부양의무제’란 뜻을 풀어 설명하는 점이었습니다.”
2015년 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 신청자 가운데 무려 67.6%가 부양의무제기준에 막혀 심사에서 탈락했다. 이 작가는 기초생활보장이 꼭 필요한 117만 명(2010년 기준)이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을 받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을 소개할 예정이다.
“부양의무제로 인한 피해 사례는 수없이 많아요. 부양의무자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부양의무자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지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거꾸로 자신이 부양의무자 위치에 있어서 힘든 사람도 있죠. 부양의무제가 사람들의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야기에 담으려고 해요.”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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