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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뭐하시노?’ 흙수저 가리는 기업 입사지원서

기업이력서 300개 분석, ‘차별 요소 없는 이력서’ 아예 없어…

절반은 ‘가족 정보’ 요구, 재산·주거·출산·사생활 묻기도
등록 2017-04-07 11:10 수정 2020-05-03 04:28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취업준비생이 많이 찾는 취업정보 제공 블로그와 포털 사이트 취업 카페에 오른 2016년 하반기 기업 이력서(입사지원서) 300개를 조사(‘조사 대상 기업 분류’ 표 참조)했다. 조사 기준이 된 항목 17개 가운데 14개는 고용정책기본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고용 차별 관련 법제에 나온 차별 금지 사유를 준용했다. 나머지 3개 항목(주민등록번호, SNS 계정, 취미·특기)은 관련 법제에 근거가 없지만 직무 능력 파악과 무관한 ‘사생활 정보’로 판단해 조사에 포함시켰다. 취업 준비 기간이 2년 이상 된 취준생 7명을 전화 인터뷰해 차별적 이력서로 인한 피해 사례를 수집했다.
기업이 요구하는 이력서조차 ‘금수저’ ‘흙수저’를 차별한다. 채용박람회에 몰린 취업준비생들. 류우종 기자

기업이 요구하는 이력서조차 ‘금수저’ ‘흙수저’를 차별한다. 채용박람회에 몰린 취업준비생들. 류우종 기자

최은진(30·가명)씨는 취업 준비 기간에 인턴 대신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집에서 금전적 지원을 하나도 못 받았어요. 인턴을 하면 당장 생계가 힘들어져요. 서울에서 살려면 한 달에 최소 120만원은 쥐어야 하는데 인턴에게 급여를 안 주는 데도 많고 기껏해야 60만~70만원, 택시비로 돈을 더 써야 하니까요.”

화상과외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수강생이 몰리고 강의 수가 늘어나 성대결절이 올 정도로 성과가 좋았다. 인턴은 못했지만, 취업 희망 분야를 경험하기 위해 급여가 보장되는 비정규직으로 관련 기업에서 일했고 업무 능력도 인정받았다. “저녁 6시에 퇴근하고 취업 준비를 했어요. 스터디를 3개 했는데, 스터디까지 하고 집에 와서 공부하다 자는 일상을 반복했죠. 나중에 내 몸이 녹는다 싶어서 체력을 기르려 새벽 운동도 했어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채용 시즌에 기업이 요구하는 이력서에는 아르바이트 경험이나 생계를 책임진 경험을 기재할 항목이 없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2년 동안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의 항암치료를 책임진 일도 기업이 요구하는 이력서 항목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았다.

최씨는 오히려 기업 이력서 항목이 ‘흙수저’인 자신을 배제하는 것처럼 느낀 적이 많았다. 가족의 이름, 직업, 나이, 동거 여부까지 확인하는 이력서가 지원자의 ‘수저 색깔’을 확인하는 장치라는 심증이 면접에서 굳어졌다. “제가 한번은 작정하고 (가족사항 등을) 안 썼어요. 면접에서 대놓고 ‘왜 안 썼냐’고 질문을 받았어요. ‘가족이 누구인지는 나를 평가하는 데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는데, 결국 떨어졌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저로서는 가족사항 때문에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궁금한 게 내 능력? 부모 능력?

고용정책기본법(제7조 ‘취업 기회의 균등한 보장’)은 채용 과정에서 ①성별 ②신앙 ③연령 ④신체조건 ⑤사회적 신분 ⑥출신지역 ⑦학력 ⑧출신학교 ⑨혼인·임신 또는 병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1993년 법이 처음 제정될 때는 차별을 금지한 영역이 5개(성별, 신앙,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학교)에 그쳤으나, 이후 하나씩 늘어나 현재 적용되는 법률은 모두 9개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법이 정한 차별 금지 규정이 명백하지만 취업준비생(취준생)에게 법은 멀고 차별은 가깝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노동부가 외모와 나이를 중시하는 채용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한 표준이력서에는 대표적 차별 요소 5가지(사진·나이·성별·출신학교·가족관계)를 기재하는 항목이 없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6년 하반기 기업 이력서 300개를 분석한 결과, 법이 금지한 차별 요소가 없어 ‘표준이력서’에 부합하는 이력서는 300건 가운데 단 하나도 없었다.

취준생을 위축시키는 대표적 차별 요소는 ‘가족사항’이다. 조사 대상 300개 기업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148곳(49.3%)에서 지원자 가족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기재하라고 요구했다. 가족 이름과 나이, 생년월일 같은 개인정보는 물론 최종학력 및 출신학교, 직업과 직장명·근무처·직위 정보도 필수 기재 사항이었다.

‘가족의 직업을 구체적으로 쓰라’는 지시 사항이 별도로 있거나, ‘빈칸으로 둘 수 있지만 면접시 질문할 수 있다’고 공지한 경우도 있었다. 부양 여부, 부모 생존 여부를 적으라는 곳도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고서(2016년 8월 ‘고용 영역 채용 과정에서의 차별 실태 모니터링’)는 “가족관계 정보는 지원자에 대한 좋든 나쁘든 편견을 가지게 하거나 이를 근거로 채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차별로 연결되기 쉽다”고 밝혔다.

지원자가 아닌 지원자의 부모에 대한 기업의 관심은 ‘금수저’가 아닌 대다수 취준생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취준생 이수빈(31·가명)씨가 말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면접에서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집이 잘살았나?’ ‘아버지가 안 계시는데 어떻게 31살이 되도록 취업 준비를 하냐?’는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는다. 아무 생각 없이 이력서에 적어놓고도 면접 가서 이런 질문 받으면 결국 부모 보고 뽑는 건가 싶어 허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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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묻고 불법적 주민번호 수집까지

조사 결과, 더 노골적으로 ‘사회적 신분’을 확인하는 기업도 있었다. 11개 기업(MPK그룹, 서한그룹, 삼천리자전거, 대명코퍼레이션, 대명레저산업, 고양문화재단, 신한은행, 대명리조트, 벽산엔지니어링, 목포MBC, JTV 전주방송)은 ‘주거사항’ 항목을 별도로 두고 사는 집의 소유 여부나 전·월세 여부를 묻기도 했다. 신한은행은 가족 동거, 자취 여부를 물었다.

벽산엔지니어링 이력서에는 아예 ‘재산’ 항목이 있어 동산과 부동산의 구체적인 가액을 쓰도록 했다. 특정 기업의 돌출 행동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지난해 7월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구직자 1681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16년 상반기 입사지원서에 자산·재산을 기재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10.5%나 됐다.

최은진씨는 “내 가족을 채용하는 게 아닌데 가족 학력이랑 직업, 직위, 거기에 재산 정도까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불법인 것도 모르는지, 주민번호를 쓰라는 데가 아직도 있다. 채용 절차가 후진적이고 업데이트가 안 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의 이력서가 직무 능력이나 역량을 파악하기보다 배우자를 고르는 결혼정보회사 가입 신청서에 걸맞은 개인적 취향이나 신상을 시시콜콜 캐묻는 것도 문제다. 취미·특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 등 개인 생활이 노출될 수 있는 정보를 묻는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 7월 잡코리아가 구직자 1681명을 조사한 결과에서, 응답자의 86.9%는 ‘지원서를 작성·제출할 때 개인정보 유출이 우려된다’고 했다.

특히 2007년 노동부가 표준이력서를 제정할 때부터 직무 능력을 증명하는 것과 무관하다는 이유로 삭제된 ‘사진’ 항목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2016년 하반기 이력서 300개를 분석한 결과, 대다수(267곳·89%)가 사진을 요구했다.

사진 항목에 ‘반드시 정장복장 사진 첨부’ ‘무배경 정면 사진’ ‘2차 수정 금지’ 등 여권 사진만큼이나 까다로운 주의 사항을 둔 곳도 있었다. 고용정책기본법, 남녀고용평등법,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은 용모 같은 신체 조건으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IMAGE5%%]SNS 계정도 요구 ‘사생활 검열 공포’

지원자에 대한 단순 정보 수집 차원이라고 하기에는 취준생들이 이력서 작성 과정에서 치르는 비용이 너무 크다.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정장 대여를 포함한 ‘증명사진 패키지’ 비용은 10만원이 넘는다. ‘최적의’ 증명사진이 나올 때까지 여러 번 찍는 일도 다반사다.

포털 사이트의 취업 카페에는 아예 ‘이력서 사진 평가’ 게시판이 있다. 취준생들은 합격 가능성이 더 높은 증명사진을 찾기 위해 이곳에 여러 버전의 증명사진을 올린 뒤 평가를 받는다. ‘머리를 푼 것보다 묶은 게 단정해 보인다’ ‘안경을 쓴 것보다 안 쓴 게 낫다’는 등 조언 하나에 취준생들의 희비가 갈린다.

잡코리아가 사진 부착 의견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외모로 인한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29.6%), ‘직무와 무관한 개인정보 요구는 부당하다고 생각한다’(27.8%), ‘규격대로 사진을 찍기 위한 여러 비용이 부담된다’(12.5%) 등 부정적 의견이 대다수였다.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별 거리낌이 없다’는 응답자는 24.2%였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 계정을 기재하라는 항목도 취준생에게는 골칫거리다. 300개 기업 이력서 조사 결과, 14개 기업(현대엔지비, 현대그린푸드, 이랜드, 오리온, 넥슨, 대학내일, 아모레퍼시픽, 넥슨네트웍스, 모두투어네트워크, 한국투자신탁운용, 한국투자증권, 로엔엔터테인먼트, 현대홈쇼핑, SPOTV)이 이력서에 SNS 계정 기재 항목을 두고 있었다.

김훈(30·가명)씨는 “SNS 계정을 공개하면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된다. 평소 자유롭게 쓰는 계정과 입사용 계정을 따로 만드는 친구도 많다”고 했다. 그는 또 “솔직히 검열당할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아예 눈팅(다른 사람들이 써놓은 글만 읽는 행위)만 하고 댓글, 좋아요, 공유 기능은 안 썼다”고 털어놨다.

해태제과는 ‘독서’ 항목을 별도로 두고 독서 경향이나 애독서를 기재하도록 요구한다. 존경하는 인물을 적으라, 최근 일어난 사회문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한 가지를 제시하고 본인의 생각을 서술하라는 항목도 있다. 일본은 ‘직업안정법’에서 사상 및 신조(인생관, 생활신조, 지지 정당, 구독 신문 및 잡지, 애독서)에 대한 개인정보 수집을 금지한다.

300개 기업 중 문제 항목 없는 곳 ‘0’

해태제과는 이력서에 임신·출산 여부를 넘어 자녀 유무를 확인하는 ‘본인 자녀 여부’ 항목도 두고 있었다. 본인 자녀 수를 기재하도록 한 항목을 둔 기업은 300곳 가운데 해태제과와 고양문화재단 2곳이었다. 고용노동부 여성고용정책과 관계자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소지가 있다. 고용노동부에 민원을 제기할 수 있다. 내용과 방식에 따라 시정조치, 사법처리 등의 절차가 시행되거나 고소·고발이 있을 경우 처벌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2011년과 2015년 두 차례 이력서의 차별적 요소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한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무 능력과 관련이 적고 헌법상 보호되는 개인의 사생활, 인격권을 침해할 위험이 높다”고 밝혔다.

2016년 하반기에 채용을 실시한 기업 300곳의 이력서가 차별 우려(14개)가 있거나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3개)에 해당되는 17개 항목을 얼마나 포함하고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 문제 항목을 하나도 포함하지 않은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300개 기업은 평균 7개의 문제 항목을 포함하고 있었다. 가장 많은 문제 항목을 포함한 곳은 삼천리자전거였다. 삼천리자전거 이력서에는 17개 문제 항목 가운데 13개 항목(출신지·임신·출산 여부, 주민등록번호, SNS 계정 항목 제외)이 있었다. 가족사항에서는 각 구성원의 이름은 물론 나이, 최종학력, 직업, 직장명, 직위, 동거 여부까지 기입하도록 했다. 삼천리자전거 관계자는 “이력서 항목을 수정하려고 했는데 급하게 하다보니 반영을 못했다”며 “양식을 수정할 계획이다. 정기채용이 2017년 하반기에 있기 때문에 그 전에 준비해서 진행하겠다”고 답했다.

대한항공 자회사인 한국공항은 12개 문제 항목이 이력서에 포함돼 있었다. 문제 항목은 아니지만 사내 지인 유무를 묻는 것(‘지인관계’)이 특이했다. 한국공항은 과거 병력과 관련해 △병명(자세하게 기재) △발병 원인 △완치 여부 △완치 시기까지 세세하게 적도록 했다. 한국공항 채용 공고에는 과거 병력 여부가 모집 분야 직무 능력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설명한 부분이 없다. 한국공항 관계자는 “표준이력서 내용에 맞추려 시스템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 다 없어지거나 수정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공항을 포함해 서한그룹, 우미건설, 대우조선해양건설, 고양문화재단, 현대오일터미널, 한국투자신탁운용, 한국투자증권, 현대케피코, 글로벌이코노믹, G1 11곳은 문제 항목 포함 수(12개)가 두 번째로 많았다.

표준이력서 ‘권장’ 대신 법제화해야

기업들의 차별적 채용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표준이력서 사용이 ‘권장’ 수준에 그치는 등 기업 자율에 맡겨졌기 때문이다.

박귀천 교수는 “한국의 채용 차별 금지 법제는 독일, 영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견줘 부족하지 않다. 다만 현실에서 차별 여부가 문제됐을 때 법원이나 행정기관 등이 평등권 실현에 적극적 의지를 가지고 법을 해석하는 데서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취업 전쟁의 한복판에 선 취준생들은 권장보다 ‘강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민이 제안하면 국회의원과 매칭해 입법화되도록 지원하는 사이트 ‘국회톡톡’(toktok.io)에는 부산의 한 대학생이 기업의 표준이력서 사용을 의무화하자는 ‘표준이력서 법제화’ 제안을 ‘발의’했다.

정치권도 취준생들의 요구에 반응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선 더불어민주당의 신경민·한정애 의원, 국민의당 김삼화 의원 등이 이력서에 사진 부착, 용모·키·체중 등 신체 조건, 출신지역, 부모의 직업과 재산 상황 등을 기재하는 것을 아예 금지하는 내용의 ‘채용 절차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황금빛 교육연수생 hgb1987@nate.com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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