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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부의 역사 농단 10년사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손댄 역사 교과서 3종 분석…

반공과 국가주의 주입하고 재벌에는 우호적
등록 2017-02-07 13:45 수정 2020-05-03 04:28
지난 1월31일 공개된 국정 역사 교과서 최종본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시도된 역사 농단의 결정판이다. 국정교과서 최종본(오른쪽)과 공개 당일 브리핑을 하는 이영 교육부 차관. 한겨레 신소영 기자

지난 1월31일 공개된 국정 역사 교과서 최종본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시도된 역사 농단의 결정판이다. 국정교과서 최종본(오른쪽)과 공개 당일 브리핑을 하는 이영 교육부 차관. 한겨레 신소영 기자

“행정부나 경찰 곳곳의 주요 자리에 친일 행위를 한 인물들을 등용하고 있던 이승만 정부는 친일파 처벌에 소극적이었다. 더 나아가 반민특위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이를 비난하는 한편, 노골적인 방해에 나섰다.”(2009년판 금성출판사 교과서)

“반민특위가 일본 경찰 출신 노덕술을 검거하자, 대통령 이승만은 좌익 반란 분자 색출이 풍부한 경찰관을 마구 잡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특별 담화를 발표하였다. 이어 공산당과 내통했다는 구실로 반민특위 소속 국회의원들을 구속하였다.”(2014년판 미래엔출판사 교과서)

“이승만 정부 또한 반민특위 활동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며 공산화 위협에 대처해야 할 시급성 등을 들어 반공 경험이 풍부한 경찰을 잡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1949년 일부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는 등 반민특위 활동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2017년 1월31일 공개 국정교과서 최종본)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9월 친일파 청산을 위해 설치된 국가기구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대해 당시 국가수반인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에 대한 역사 교과서 서술의 변천사다.

한국의 친일파 청산이 좌절된 이유를 알 수 있는 역사의 한 대목인데, 앞선 검정교과서들이 이승만을 그 원인으로 기술한 것과 달리 국정교과서에 이르러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 박근혜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한 이유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시작은 이명박, 끝은 박근혜</font></font>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국면에서 촛불 시민들은 역사 서술 변경으로 이익을 보는 집단의 실체를 목격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은 국정 농단의 아류인 ‘역사 농단’(농단: 높이 솟은 언덕.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이익이나 권력을 독점한다)으로 회자됐다.

교육부가 검정교과서 혼용을 결정하면서 결국 국정화 정책은 폐기됐지만 폐해는 여전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잘못이 누적됐기 때문이다. 농단의 끝은 박근혜 정부이지만, 그 시작은 교육부를 동원해 역사 교과서 서술 수정에 개입한 2008년 이명박 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은 보수정부 10년 동안 수정을 거듭해온 역사 교과서를 비교 분석해봤다. 분석 대상은 총 3종으로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처음 명령을 받고 수정된 금성출판사의 교과서(편의상 금성교과서)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수정 명령한 8종의 교과서 가운데 학교 현장의 채택률이 가장 높았던(30.6%) 미래엔의 교과서(검정교과서) △지난 1월31일 교육부가 공개한 국정교과서 최종본(국정교과서)이다.

분석 결과, 수정·변경된 역사 서술의 상당수는 특정 인물의 역사적 책임을 면제하고 한국의 현재적 과제를 인식하는 데 필요한 역사적 사실을 누락·편집·은폐한 것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 사례는 매우 많지만,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역사 인식과 밀접하게 연관된 대표적 쟁점 세 가지를 소개한다.

<font color="#00847C">① 미국 </font>

박근혜 대통령이 “촛불집회의 2배”라고 말한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 이른바 애국시민들은 왜 태극기와 함께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를 들까?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파악하려면 해방 직후 38선을 경계로 이북과 이남에서 실시된 미소 군정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미군정에 대해 변경된 서술 내용을 살펴보면 뚜렷한 의도가 엿보인다.

애초 금성교과서는 교과서 본문은 아니지만 탐구활동에서 당시 미 육군 총사령관 맥아더의 포고령 1호와 함께 ‘한국인의 자치를 인정하지 않고 친일 관리를 계속 채용한 미군정의 정책을 엿볼 수 있는 조항을 찾아보자’는 활동을 제시했다.

그런데 검정교과서에선 미군정이 ‘총독부 관료와 경찰을 그대로 활용했다’는 서술이 있지만 ‘친일’이라는 표현은 사라졌다. 국정교과서에 이르러서는 총독부라는 용어가 빠지고 ‘기존의 관료 및 경찰 조직을 그대로 존속시켰다’고 수정됐다.

해방 직후 미군정에 적극 협력한 한국민주당의 성격에 대한 서술도 미묘하게 수정되거나 소략됐다. 한국민주당의 창당 인사들에 대해 금성교과서(‘일제하의 지주와 기업가들을 중심으로 한 일단의 인사’)와 검정교과서(‘반민족 친일 경력자들과 보수적인 민족주의 계열의 인사’)는 설명을 했지만, 국정교과서(‘송진우·김성수 등은 한국민주당을 결성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하였다’)는 대표 인물만 거론할 뿐 정당 성격을 알 수 있는 역사적 정보는 밝히지 않았다. 국정교과서에선 한국민주당이 미군정에 협력했다는 서술도 사라졌다.

<font color="#00847C">② 북한</font>

북한에 대한 서술 역시 보수정부 출범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다르다. 1990년대 초반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사건에 대한 서술이 대표적이다.

금성교과서는 당시 사건에 대해 북한이 핵무기 개발 포기를 명확히 하는 대신 한국 정부가 경수로 건설을 약속한 점, 북한이 미국에 휴전협정을 국제사회로부터 군사적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평화협정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한 점, 이후 2000년대 북한이 핵개발 재개를 선언하면서 내세운 명분이 경수로 건설 지연이었다는 점 등을 상세히 밝혔다.

반면 검정교과서는 북한의 핵개발로 남북관계가 경색됐다는 식으로 간단히 언급하는 데 그쳤다. 국정교과서는 한발 더 나아가 ‘북핵 위기와 북한의 대남 도발’이라는 별도의 소단원을 만들고, 북한 핵개발과 북방한계선(NLL) 침범,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2011년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 등 사례만 나열할 뿐 도발 이유나 배경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역사적 사건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정보가 교과서에 없는 것이다.

<font color="#00847C">③ 재벌</font>

한국 사회의 대표적 병폐로 꼽히는 재벌에 대한 역사 서술도 보수정부 10년 동안 수정돼왔다.

금성교과서는 ‘재벌의 성장’이라는 별도의 탐구활동을 통해 △대규모 기업 집단 계열사 수와 자산 총액 △정부의 정책과 재벌의 성장 과정 △재벌 성장의 배경이 된 박정희 정권의 종합무역상사 제도 등의 자료를 제시하고 재벌의 성장 배경,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살피도록 했다.

그런데 검정교과서는 재벌을 ‘한국만의 독특한 기업 문화’라고만 표현했으며, ‘정경유착’을 언급하면서도 재벌과 연관지어 설명하지 않았다.

국정교과서는 ‘유신체제의 등장과 중화학공업의 육성’이라는 단락에서 재벌에만 한 단락을 별도로 할애했다.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으로 재벌이 생겼고, 이들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내용이 주요 맥락이다. 검정교과서에 견줘 현대사 서술 분량이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국정교과서가 재벌에 할애한 지면의 파격성이 분명해진다. 정경유착 문제는 언급돼 있지만 사족으로 읽힌다.

보수정부는 왜 역사 교과서 수정에 나섰을까.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장(독산고 교사)은 2015년 학술지 에 실은 논문 ‘국가주의와 역사교육, 그 너머를 향하여’에서 “최근 10여 년 동안 이어진 우파의 역사교육론이 하나의 경향성을 갖는다”며 이를 ‘국가주의’라는 열쇳말로 설명했다.

김 소장은 과의 통화에서 “역사 교과서 파동은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이 관철되는 과정이었다”며 “반공 국가 정체성을 통한 애국적 국민 만들기, 즉 반공을 핵심적인 국가 정체성으로 삼고, 경제개발을 주도하는 국가를 위해 개인이 헌신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역사 인식”이라고 말했다.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수정 명령을 받은 금성출판사 교과서의 집필진이던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교과서 좌편향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온 계기였다. 학생들이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이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을 인정하지 못한 채 ‘좌편향된 교육을 받아서 정부를 비판한다’며 학교 교육을 통해 역사 인식을 주입하려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역사 서술을 정치적 문제로 접근하는 일이 본격화했다. 정부가 문제 삼은 역사 서술은 집필진의 정치적 견해와 무관하게 역사 해석의 차이, 새로운 연구 성과 등이 반영됐는데 ‘역사학자 90%가 좌파’라며 국정화를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분단의 책임 소재 가리는 데만 몰두</font></font>

역사과 교육과정과 집필기준 개발 경험이 많고 교과서 집필진으로도 참여한 최병택 공주교대 교수는 “ 교과서는 1990년대 신진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역사학계의 발전을 반영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검정교과서를 집필할 때도 그동안 역사학계가 축적한 실증적 연구 성과를 많이 반영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역사학을 잘 모르는 이들이 이를 이념적 잣대로 평가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새로운 역사교육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복지, 민주화 등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가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의 내러티브를 창조해야 하는데, 국정교과서는 분단과 전쟁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몰두하고 있다. 미래 세대의 역사교육에 분단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일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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