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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고통 없애고 ‘대학의 문’ 활짝 열고

2021학년도부터 일정한 내신·수능 등급 확보한 학생들 입학 가능케 하는 ‘대학입학보장제’ 시행 제안
등록 2016-11-26 16:50 수정 2020-05-03 04:28
지난 11월17일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험장인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 교실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이 시작되기 기다리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지난 11월17일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험장인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 교실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이 시작되기 기다리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필자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2002년부터 7년 동안 고3 학생을 지도했다. 당시 한 명이라도 더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부담으로 아침 7시20분 0교시 수업, 밤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 감독, 대학입시 정보 수집, 학생 상담 등으로 고3보다 더 바쁜 고3 담임의 삶을 살았다. 1∼2년 정도는 대학 합격에 기뻐하는 아이들 모습이 좋았고 내가 맡은 반 아이들이 다른 반에 비해 이른바 ‘SKY’ ‘인서울’로 많이 진학하면 내가 ‘유능한 교사’라는 착각에 도취돼 열심히 지도했던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대학에 보낸 제자들이 찾아와 MT, 미팅, 동아리 활동 같은 대학생활의 즐거움에 대한 것보다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 ‘대학 레벨이 낮은 것에 열등감이 든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털어놓곤 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반수나 재수를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고 아이들에게 연민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민 끝에 수험생 지도를 그만두고 중학교로 옮겨 몇 년이 흘렀다. 그때 생활을 돌이켜보면 교사로서 보람보다는 후회가 많이 된다. 가장 큰 후회는 아이들에게 ‘적성’보다는 ‘성적’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도록 종용했고, 다른 의미 있는 교육보다 ‘SKY-서성한-중경외시’ 같은 대학 서열을 열심히 가르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네가 간 대학은 저 친구가 간 대학보다 좋으니 우월감을 가져도 되고 이 친구가 간 대학보다는 안 좋은 대학이니 좀 열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식이 아니었나 싶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죽기 살기로 대학에 가지만… </font></font>

교사, 학부모, 학생이 똘똘 뭉쳐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고 오직 ‘좋은 대학’만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이 죽기 살기로 대학에 가지만, 대학 입학 이후는 매우 실망스러운 상황이다. 희망제작소 ‘불안한 청춘, 대학을 말하다’ 연구의 인터뷰에 참여한 대학생들의 이야기다.

“사실상 관계 측면이나 배우는 내용의 측면이나 고등학교 연장선.”

“교수가 수업에 대해 고민하는 게 아니라 수업에서 학생에게 팀플만 맡겨놓고 자기는 논문 쓰기에 바쁜….”

“한 달 간격으로 자격증 시험이 기다리고 있어요. 이제 전공 공부는 중요하지 않은 거죠. 자격증이나 토익 같은 어학시험을 봐야 하는데, 전공 공부가 중요하지 않으니까 수업시간에 (토익이나 자격증 관련) 책을 늘어놓고 고등학교 때 수능 공부하듯이….”

“한 학기 동안 배웠던 필기랑 교과서를 다 해서 정리했는데 A4용지 4장밖에 안 나오는 교육.”

책 를 보면, 대학 교육에 오랜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은 한국 대학 교육이 질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것에 한목소리를 낸다.

“가공 능력이 떨어져 원재료라도 좋은 것을 확보해서 살아온 것이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명문대이다.”(김신일 전 교육부 장관)

“우리의 대학은 엄격히 뽑고 아무렇게나 가르치자는 식의 지대를 지녔다. 이것은 지대를 받아먹는 자세다. 대학이 간판으로 계급을 만들고 불로소득을 취한 형국이다.”(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

“대학이 경쟁력이 없는 이유는 가르치는 경쟁이 아니라 뽑는 경쟁으로 대학 서열 구조를 유지하기 때문이다.”(서남표 전 카이스트 총장)

외국과 비교해도 한국 대학 교육의 문제는 심각하다. 2016년 스위스 경영대학원(IMD)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개발도상국 국가 61곳의 대학 교육 경쟁력을 조사 분석한 결과, 한국은 꼴찌에서 일곱 번째인 55위를 차지했다. 1등급 학생을 뽑고 싶어 하고 그것을 대학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우수한 학생에게 제공하는 교육의 질은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것이다. 55위라니.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등급을 매기는 기준으로 따지면 9등급 가운데 8등급 수준이다.

‘SKY-서성한-중경외시-건동홍-…-지거국-지잡대’라는 대학 서열 이데올로기가 깨지지 않는 한 대학은 좋은 교육을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입학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뽑아놓기만 하면 어떤 교육을 하는지와 상관없이 ‘좋은 대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한번 좋은 대학으로 인정받으면 학생들이 몰려온다.

대학의 87%가 사립대학인 한국에서 ‘대학 운영’ 원리는 ‘기업 운영’ 원리와 같아서, 입학 정원 미달 우려가 없는 이상 이윤 창출을 위해 별도의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된다. 좋은 교육을 고민하고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사립대학뿐 아니라 국립대학 역시 교육 경쟁이 아닌 선발 경쟁에 몰두해 ‘국민에게 폭넓은 고등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국립대 설립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대학 교육 경쟁력 55위 ‘세계 최하위권’ </font></font>
지난 11월7일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학입학보장제’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김성수 정책위원.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지난 11월7일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학입학보장제’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김성수 정책위원.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수능 100%든, 학생부종합전형(학종) 100%든 대학입시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대학은 상관없다. 어떤 입시든 점수가 높은 학생,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 학생을 뽑으면 그만이다. 최근 ‘학종 비율 축소, 수능 비율 확대 논란’ 역시 엄밀히 말하면 학종이 촘촘한 서열을 매기는 데 공정하지 못하다, 서열의 상위를 ‘금수저’가 차지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주장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학이 입시 성적으로 촘촘히 서열화돼 있는 한 다른 입시제도가 등장해도 불공정성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지난 8년간 사교육 문제 해결을 마중물로 우리나라 교육 문제를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특히 대입제도와 대학 체제가 우리나라 교육 문제의 핵심 원인이라 판단하고 이와 관련해 46차례 정도 토론회를 진행했다.

오랜 고민과 숙의 끝에 2016년 11월7일 대입제도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대학입학보장제’를 발표했다. 대학입학보장제는 간단하게 말하면 ‘일정한 내신 수능 등급이면 더 이상의 자격 기준을 요구하지 말고 아이들의 대학 입학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지금처럼 대학 수학 능력이 됨에도 대학의 과도한 선발 경쟁으로 한 문제 더 맞히기 위한 ‘출혈 경쟁’의 고통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대학입학보장제는 대학 정원의 70%를 뽑는 수시 전형에선 일정한 내신 성적을 갖춘 학생들에게 무조건 대학 입학 보장 기회를 주고, 30%를 뽑는 수능 정시 전형에선 일정한 수능 등급을 갖춘 학생들에게 대학 입학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지금 고등학교 평준화 지역에서 배정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일정 내신 등급, 수능 등급 이상의 학생들이 가려는 대학을 1∼6지망(현재 수시 모집 지원 가능 횟수) 정도 선택하면 대학입시지원센터(가칭)에서 배정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선발 효과가 아닌 교육 효과를 추구하는</font></font>

물론 사립대학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모든 대학에 이런 입시 방식을 적용하는 것에 반감과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고등교육의 고른 기회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국립대학과 이에 동의하는 일부 사립대학에서 시작해 참여 범위를 단계적으로 늘려나가는 방법을 제안했다.

상위권 대학들이 참여하지 않고 지방 국립대학 위주로 진행하면 효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제도의 시행을 목표로 삼은 2021학년도는 대학 입학 자원이 현재 50만 명에서 30만 명대로 급감하는 때다. 입학 정원 미달 위기가 일부 부실 대학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때 선발 효과가 아닌 교육 효과를 추구하는 사립대학 20곳(입학 정원으로는 3만여 명)과 국립대학 45곳(입학 정원 7만여 명)을 합해 모두 10만여 명을 대학입학보장제로 뽑으면 전체 수험생의 30% 정도가 이 제도의 혜택을 볼 수 있다. 파급력을 무시할 수 없다.

대학입학보장제의 성패는 참여하는 대학에 갔더니 “좋은 교육 받고 취업도 잘되더라” 하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즉 대학 교육 혁신을 어떻게 이루냐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두 가지가 충족돼야 한다. 첫째는 내부 구성원들의 노력, 둘째는 충분하고 적절한 정부의 지원이다.

특히 정부 지원이 중요하다. 정부는 대학입학보장제 참여 대학 소속 학생들의 등록금을 실질적인 반값으로 낮춰 등록금 부담 없이 우수한 학생들이 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교수 1인당 학생 수를 현재 27명에서 OECD 평균인 15명으로 낮추도록 교수 확충을 지원해 실질적으로 교육 질이 개선되도록 해야 한다. 현 정부는 대학 재정 지원사업으로 매년 수조원을 쏟아붓지만, 대학 교육의 질과 만족도는 계속 떨어질 뿐이다.

대학입학보장제는 학생들에게 입시를 위한 공부가 아닌, 하고 싶은 공부나 독서, 다양한 활동 등을 하는 여유를 줄 수 있다. 대학은 더 이상 좋은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타 대학과 경쟁할 필요 없이 학문과 연구에 전념할 수 있고 그 대학만의 특성화에 노력할 수 있다. 단지 사교육 감소로 인해 사교육 시장이 큰 타격을 받을 것 같아 걱정은 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2021학년도, 낡은 대입 전형 바꿀 골든타임</font></font>

왜 당장이 아닌 4년 뒤, 2021학년도여야 할까. 대학입학보장제를 처음 시행하려는 2021학년도는 현재 중2 학생이 대학 입시를 치르는 해로, 낡은 대입 전형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이유는 네 가지다.

우선 문·이과 통합 과정인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된 학생들이 처음 대입을 치르는 시기이기 때문에, 교육과정 변화에 발맞춰 입시제도 변경이 불가피하다. 둘째,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적용받은 학생들은 ‘자유학기제’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중등교육 경험을 반영하는 새로운 입시가 필요하다. 셋째, 3년 전에 새 입시제도를 예고해야 하는 ‘3년 예고제’에 따라 차기 정부가 ‘대입제도 개선안’을 만든다면 개선안이 처음 적용되는 때가 2021학년도다. 넷째, ‘인구 절벽’으로 대학 입학 정원이 반토막 나는 때로 대학들 역시 변화하지 않으면 존속할 수 없는 시기로 접어드는 관문이 2021학년도다.

대학입학보장제는 하나의 방안으로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12월14일부터 4회 연속 ‘대학입학보장제 토론회’를 연다. 여러 비판과 부정적 여론이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고통 없는 입시제도가 완성되기 희망한다.

김성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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