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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한테 대물림될까 두렵다”

간이식 수술로 노동능력 상실하고 건강보험료 체납하자, 전처와 초등생 딸에게 납부 독촉 고지서가 날아왔다
등록 2016-08-18 14:14 수정 2022-08-24 11:33



연재 순서


① 건강은 압류할 수 없다
② 초등생한테 19번 독촉장

③ “딸한테 대물림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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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가명)씨는 일할 수 있는 건강을 되찾으면 체납 건강보험료를 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행 제도에는 문제가 많다고 했다. 정용일 기자

민수(가명)씨는 일할 수 있는 건강을 되찾으면 체납 건강보험료를 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행 제도에는 문제가 많다고 했다. 정용일 기자

8월9일 인천의 한 주택가. 민수(44·가명)씨는 말을 쏟아냈다. 그는 2년 전 간이식 수술을 받았고 후유증으로 만성신부전증(3기)을 앓고 있다. 근로능력 자체가 없어 건강보험료 부과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인대 다치고 병원 가기 주저하는 딸

민수씨는 젊어 택시 운전을 했다. 유통업체에서 화물차 운전과 납품일도 해봤다. ‘삶의 엔진’은 쉽사리 달아오르지 못했다. 간 때문이었다. 결혼 전부터 간수치가 좋지 않았다. 여느 노동자 서민처럼 먹고사느라 건강을 살뜰히 챙기기 어려웠다. 건강보험료가 한 달, 두 달 밀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15년 전 결혼을 했고 딸아이를 두었다. 2013년 사달이 났다. 급격하게 건강이 추락했다. 생계의 버팀목이던 운전대를 놓아야 했다. 결국 2013년 부인과도 이혼했다. “어떡하든 벌어서 체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분할납부도 했다. 그러나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져서….”

2014년 2월 끝내 수술대에 누웠다. 위험하다는 개복수술을 두 차례 받았다. 지금도 그의 배에는 가로로 길게 수술 자국이 뚜렷하다. 넉 달 만에 퇴원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를 맞은 건 건강보험료 체납분 독촉 고지서. 130만원 넘는 돈이었다. 건강보험공단에 전화했다. 간이식 수술로 근로능력이 없는 사정을 호소했다.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달 민수씨는 전처한테 전화를 받았다. 건강보험료 독촉 고지서가 온다는 것이었다. 금액은 80여만원. “나는 건강보험료가 내 앞으로만 부과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근로능력이 없어 돈을 낼 수 없으니 전처와 딸아이 앞으로 독촉 고지서가 갈 줄은 몰랐다.” 국민건강보험법의 연대납부 의무조항(제77조 2항) 때문이다. 민수씨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문제는 더 심각했다. 지난달 새벽 그는 전화를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가 학교에서 운동하다 팔 인대를 다쳤는데 병원 가는 걸 주저한다는 것. 딸아이 또한 병원에 가면 돈이 많이 나오는 걸 알고 있었다. 건강보험 급여가 정지된 탓이다. 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료 체납을 이유로 전처 명의의 상가를 압류한 상태다. 이럴 때 억장이 무너진다. 딸아이는 학교 농구부에서 선수로 뛴다. 크고 작은 부상이 이어지는 게 다반사. 민수씨는 가슴을 쳤다.

문제는 곪을 대로 곪았다. 정상적 노동이 불가능한 민수씨는 기초생활수급권자다. 장애수당과 생계·주거 급여를 더해 한 달에 50만원가량 정부 지원을 받는다. 혼자 지내는 방의 월세 29만원을 내면 그의 한 달 생활비는 2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식수술을 한 간의 상태는 물론 만성신부전증 치료를 위해 다달이 병원에도 가야 한다. 영양 챙겨 먹을 겨를 따위는 없다. 무엇으로 끼니를 때우는지 그는 기자에게 끝내 말하지 않았다. 기자도 더는 묻지 못했다.

20살 이하 건강보험 독촉 대상, 5만 세대

무엇보다 민수씨가 염려하는 것은 ‘체납 보험료 대물림’이다. 자신과 전처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결국 독촉의 화살이 딸아이를 겨냥할 것임을 그는 걱정했다. 실제 현행 법규상 미성년자일지라도 단독 세대를 구성하면 보험료가 부과된다. 에서 건강보험공단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7월 기준으로 건강보험료 납부 독촉에 시달리는 10살 이하 미성년자가 1만2686세대에 이른다. 11~20살의 경우도 3만8407세대다. 20살 이하 5만세대 정도가 건강보험료 독촉을 당하는 것이다.

주빌리은행과 함께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상담센터’( healthforall.or.kr)를 운영하는 건강세상네트워크는 8월1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미성년자인 초등학생에게 2년 동안 지속적으로 건강보험료 납부 독촉을 한 사례(제1122호 ‘초등생한테 19번 독촉장’ )가 직접적 계기였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진정서에서 건강보험공단·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가 “건강보험 체납으로 인해 미성년자 체납 보험료 연대납부 부과 및 독촉으로 인한 차별을 당하고 있는 아동과 청소년의 존엄성과 인격권 침해, 보건의료 서비스에 대한 기본권 및 자기결정권 침해 등의 반인권적 행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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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세상네트워크가 인용한 인권침해 근거는 크게 5가지다.

1. 대한민국 헌법.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제10조)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35조 1항)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제36조 3항)

2.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당사국은 모든 아동이 사회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을 권리를 가짐을 인정하며, 자국의 국내법에 따라 이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제26조 1항)

3. 유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이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이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향유할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제12조 1항)

4. 보건의료기본법. “이 법은 보건의료를 통하여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고 국민 개개인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며, 보건의료의 형평과 효율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제2조) “모든 국민은 성별, 나이, 종교, 사회적 신분 또는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관한 권리를 침해받지 아니한다.”(제10조 2항)

5. 국민건강증진법.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이 건강생활을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제6조 1항)

은행보다 무서운 국민건강보험공단

그러나 법은 멀고 몸은 아프다. 민수씨는 말했다. “연좌제 아닌가. 은행보다 더 무섭다. 이건 말이 안 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보험료 징수, 체납 독촉을 위한 조직 같다. 공단에 찾아갈 때면 죄인이 된 것 같다.”

7월13일 건강세상네트워크·주빌리은행과 생계형 체납 당사자들은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면담을 요청했다. 한 달이 지나도록 공단은 묵묵부답이다.

인천=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스토리펀딩’에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 제도 개선을 위한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스토리펀딩을 통해 모인 독자 여러분의 후원금 대부분은 건강보험료 지원사업을 펴는 아름다운재단에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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