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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하게 사형당한 그의 누명, 검찰이 직접 벗겨라” 아직 끝나지 않은 1969년 이수근 ‘이중간첩’ 조작 사건
등록 2016-06-15 15:21 수정 2020-05-03 04:28
배경옥씨가 ‘이중간첩’ 조작 사건으로 사형당한 막내이모부 이수근의 묘에 절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벽제동 서울구치소 공동묘지의 같은 묘에는 276구의 제소자 유골이 뒤섞여 있다. 배경옥 제공

배경옥씨가 ‘이중간첩’ 조작 사건으로 사형당한 막내이모부 이수근의 묘에 절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벽제동 서울구치소 공동묘지의 같은 묘에는 276구의 제소자 유골이 뒤섞여 있다. 배경옥 제공

그의 시계는 1969년에 멈췄다. 그해 서른한 살 나이로 감옥에 갔다. ‘이중간첩’으로 몰린 막내이모부를 도운 혐의였다.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최종적으론 징역 20년형을 살았다. 쉰한 살 나이로 경북 안동교도소를 출소했다. 누명을 벗고자 백방으로 뛰었다. 재심 무죄판결을 받아내기까지 19년이 더 흘렀다. 일흔 살이 되어 있었다. 아직 숙제가 남았다. 1969년 사형이 집행된 ‘주범’ 이모부의 누명을 벗기는 일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누명과의 싸움, 48년째</font></font>

2016년 6월8일 오후 2시 서울 대검찰청 정문 앞,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배경옥(78)씨가 정면을 응시한 채 서 있었다. 그의 키만 한 높이의 피켓 두 장이 옆 철제 받침대에 걸려 있었다.

“저는 지금도 원혼이 되어 구천을 헤매고 있습니다. 40년 만의 재심에서 사건이 조작된 것임이 밝혀져서 종범이 무죄를 받았는데도 검사가 사망자에 대한 재심 청구를 기피하여 국가 책임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무고하게 죽음을 당한 이모부의 심정을 대신 표현했다.

배경옥씨는 6월 초부터 매일 대검찰청, 국회의사당, 서울 광화문광장 등에서 1인시위를 한다. 검찰이 직접 이모부의 재심을 청구해 누명을 벗기라고 요구한다. 검찰은 3년 전 그가 낸, 같은 취지의 진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지난 2월2일 통지했다. 그는 진정사건 담당검사를 5월23일 직무유기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48년째 그는 이 사건에 갇혀 있다.

배씨의 이모부는 고 이수근이다. 1969년 2월 중앙정보부(중정·현 국가정보원) 발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중간첩’ 사건의 주범이다. 이수근은 1967년 3월 귀순한 ‘반공영웅’이었다. 그는 북한에서 조선중앙통신 부사장에 재직 중이던 언론인이었다. 당시까지 탈북자 중 북 최고위층(국내 차관급) 인사였다.

극적인 귀순 과정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판문점 취재 도중 유엔 협조를 구해 유엔 차량에 기습적으로 올라타 북한 경비병의 총격을 뚫고 공동경비구역을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는 “기사에서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충분히 강조하지 않아 당 간부의 꾸지람을 듣고 숙청 위협을 느꼈다”고 귀순 동기를 밝혔다. 중정은 그를 1년간 관찰한 뒤 위장 귀순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1969년 1월 해외로 ‘탈출’을 감행했다. 처조카인 배경옥씨 도움으로 위조 여권을 구했고, 가발과 콧수염으로 변장했다. 둘은 동행했다. 중정은 가족들을 연행해 상황 파악에 나섰다. 당시 그의 목적지는 중립국 스위스였다고 배씨가 전했다.

하지만 경유지인 베트남 공항 기내에서 그들은 주월 한국대사관 직원들에게 체포됐다. 지난 6월8일 서울 중곡동 자택에서 만난 배씨는 “이모부는 중립국에 가서 북한 가족들을 데려오고 나중에 다시 남한에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난 당시 정치적 문제 같은 건 잘 몰랐고 막내이모를 생각해 이모부가 가족을 데려오는 걸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위장간첩으로 조작·처형한 사건”</font></font>
배경옥씨가 지난 6월8일 서울 대검찰청 앞에서 1인시위를 마치고 피켓을 정리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배경옥씨가 지난 6월8일 서울 대검찰청 앞에서 1인시위를 마치고 피켓을 정리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국내로 압송되자마자 중정 직원들이 그들을 연행했다. 영장 없이 10여 일간 불법 구금된 채 고문과 구타, 협박을 당했다. 배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물고문, 전기고문, 몽둥이(구타)까지 다 당했다. 몇 번 까무러쳐도 죽지 않았다. 잠을 못 자게 하는 게 제일 고통스러웠다. 빨리 죽으면 좋겠다, 사는 게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태로 중정 사람들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기’ 진술서를 썼다.”

검찰은 그들을 구속했다. 법원은 공판 시작 한 달 만에 둘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선고 두 달 만에 이수근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그가 항소를 포기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사형 집행 소식을 구치소에서 들은 배씨는 중정의 항소포기 조작임을 직감했다. 배씨는 항소했다. 결국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1988년 징역 20년형으로 감형돼 이듬해 12월 만기 출소했다.

자유를 얻은 몸은 곪아 있었다. 고문당한 몸으로 21년간 감옥살이를 한 탓이다. 수감 중 복부 종양 제거 수술과 어깨뼈 절단 수술도 했다.

2001년 건강을 겨우 회복한 그가 거리로 나섰다.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대검찰청, 서울구치소, 법무부, 청와대, 국정원, 국가기록원 등을 찾아다녔다. 1969년 사건 당시 수사기록 열람을 요청하고 진실 규명을 요구했다. 2005년 7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고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다.

이듬해 12월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수근 ‘이중간첩’ 사건을 중정에 의한 조작 사건으로 판명했다. “이 사건은… 이수근이 중정의 지나친 감시 및 재북 가족의 안위에 대한 염려 등으로 한국을 출국하자, 중정이 당혹한 나머지 이수근을 위장간첩으로 조작, 처형하여 귀순자의 생명권이 박탈된 비인도적, 반민주적 인권유린 사건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국가에 권고했다. “수사 과정에서의 불법 감금, 자백에 의존한 무리한 기소 및 증거재판주의 위반 등에 대해 피해자들과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로부터 2년 뒤, 2008년 12월 드디어 배씨가 법적으로 누명을 벗었다. 재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배씨의 국가보안법·옛 반공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결했다. 우선 당시 수사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피고인들은 중앙정보부에서 불법 구금과 고문, 폭행 등 가혹행위로 인하여 임의성 없는 자백을 하였고 그 후 검사의 피의자 신문 단계에서도 그런 심리 상태가 계속되어 동일한 내용의 자백을 한 것이라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어 이수근이 위장 귀순 간첩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 없고, 그를 도운 배씨의 혐의도 무죄라고 판단했다.




이중간첩  조작  사건  1967~2016년


1967년 3월  이수근 당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 귀순
<font color="#991900">1969년 1월  이수근, 처조카 배경옥과 위조여권으로 출국 및 체포</font>
1969년 2월  이수근·배경옥 중앙정보부 불법구금·고문 조사 및 검찰 구속
1969년 5월  1심 법원, 이수근·배경옥 사형 선고
<font color="#991900">1969년 7월  이수근 사형 집행</font>
1969년 10월  2심 법원, 배경옥 무기징역 선고
<font color="#991900">1969년 12월  대법원, 배경옥 무기징역 확정</font>
1989년 3월  ,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 보도
<font color="#991900">1989년 12월  배경옥, 출소(징역 20년형으로 감형)</font>
2006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진실 규명(간첩 조작 사건)
<font color="#991900">2008년 12월  법원, 배경옥 재심 국가보안법 위반 무죄판결</font>
2011년 11월  법원, 배경옥의 이수근 재심 청구 기각
<font color="#991900">2016년 2월  검찰, 배경옥의 이수근 재심 청구 진정 사건(검찰이 직접 재심 청구하라는 취지) 3년 만에 공람종결 처분</font>
2016년 5월  배경옥, 위 공람종결 처분한 담당검사 직무유기 형사고소


<font size="4"><font color="#008ABD">검사가 ‘희망’이다</font></font>
정용일 기자

정용일 기자

이때부터 배씨는 죽은 이모부의 누명을 벗기는 일에 나섰다. 이모부의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2011년 11월 배씨에게 재심 청구권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 결정했다. 형사소송법을 보면, 사망한 자의 재심은 검사, 배우자, 직계친족 또는 형제자매만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모부는 홀로 귀순해 국내에 가족이 없었다. 단 하나의 가능성만 남았다. 검사가 재심을 청구하는 것.

그는 2013년 대검찰청에 진정을 접수했다. 검사가 직접 이모부의 재심을 청구해 누명을 벗겨달라는 것이었다. 3년 동안 담당검사가 3차례나 바뀌었지만 검찰은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결국 검찰은 지난 2월2일 재심을 청구할 수 없다고 배씨에게 통보했다.

“배경옥의 진술, 배경옥에 대한 재심 판결문과 기타 제출 자료 등만으로는 형사소송법 제420조에 따른 재심 청구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본건 진정은 완결된 재판에 불복하는 내용의 진정”이라는 이유를 달았다.

서울중앙지검 이정회 2차장은 6월9일 “이수근은 법정에서 자백했고 당시 증거가 갖춰져 있어서 재심을 청구할 만한 객관적 증거가 없다. 배경옥은 항소하면서 자백을 번복했고 그 바뀐 진술을 토대로 증거관계를 다시 본 것이다. 배경옥의 재심 판결만 가지고 이수근의 재심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수근에 대한 고문 등 불법 수사 사실에 대해선 “배경옥에 대한 재판에서 한 고등법원의 일부 판단이 확정적인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수근 ‘이중간첩’ 사건을 20년간 취재해온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검찰이 직접 이수근 재심을 청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6월10일 “검사가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데도 무고한 죽음에 대해 재심 절차를 고의로 밟지 않는 것은 국가의 법익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종범과 주범을 둘러싼 사실관계가 하나로 연관돼 있다는 건 판결문만 읽어도 누구나 알 수 있다”며 “이 사건은 중정이 조작한 것으로 확인됐고 종범인 배경옥씨가 무죄를 받은 사건으로서 법적으로 주범의 명예도 회복시켜주는 건 국가의 책임이자 당연한 의무”라고 덧붙였다. 조갑제 대표는 배씨가 출소하기 전인 1989년 3월 당시 중정 핵심 간부 등을 취재해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는 보도를 에 실어 진실 규명에 중요한 단초를 제공했다.

앞서 과거사정리위원회도 2006년 12월 이수근 사건 진실 규명 결정문에서 같은 취지로 권고한 바 있다. “국가는 확정판결에 대하여 피해자들과 유가족의 피해를 구제하고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검찰은 당시 이수근에 대한 간첩 조작을 최소한 방조, 묵인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배씨의 재심 판결에서 법원은 당시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검사가 서대문구치소로 출장을 나와 구치소장실 옆에 있는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조사하였는데, 피고인들이 조사받는 동안 중앙정보부 수사관이 입회하거나, 간첩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고 하면 검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리고 그 즉시 중앙정보부 수사관이 들어와 겁을 주는 등으로 중앙정보부에서 진술한 대로 진술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276구 뒤섞인 무덤 속 이수근 </font></font>

‘이중간첩’ 이수근은 현재 경기도 고양시 벽제동 서울구치소 공동묘지에 합장돼 있다. 배씨는 2010년 9월 서울구치소로부터 받은 민원 회신문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서울구치소를 찾아간 자리에선 같은 무덤에 이수근을 포함한 사망 수용자 276구의 유골을 합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때는 내가 얼마나 살겠다고 이런 일을 하나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모부의 주검도 못 찾는 상황에서 내가 저 세상에 가면 이모부를 뵙지 못할 것 같다. 이모부의 누명을 완전히 벗기는 것이 죽기 전 꼭 풀어야 할 숙제이자 소원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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