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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죠 그래야 정치죠”

2013년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망 문제 제기해온 장하나 전 더민주 의원… 국회 밖에서 피해자 지원·재발 방지 위한 활동 계획
등록 2016-06-09 16:17 수정 2020-05-03 04:28

그는 생후 15개월 된 딸, 남편과 함께 4박5일 일정으로 강원도에 머물고 있었다. 제19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난 다음날인 5월30일부터 시작된 모처럼의 가족 휴가였다. 평온한 시간을 깰 수 없어 인터뷰 요청을 미루려고 했더니, 그는 오히려 “강원도로 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딸이 아빠와 노는 사이 기자를 만나러 나왔다. “이렇게라도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언론에 한 번 더 나가면 좋지 않겠느냐”는 이유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수백 명이 죽었는데도 덤덤하다니”</font></font>

장하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19대 국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망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했다. 그는 앞으로 피해자들이 정치권과 소통하는 다리 역할을 할 계획이다. 김진수 기자

장하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19대 국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망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했다. 그는 앞으로 피해자들이 정치권과 소통하는 다리 역할을 할 계획이다. 김진수 기자

장하나(40)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19대 국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망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했다. 2013년 4월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독성 화학물질에 의한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문제는 늦게나마 지난해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요지부동하던 업체 대표는 최근 사과했다. 부족한 수준이지만 정부가 피해자 지원 방안도 내놓았다. 야당은 ‘진상규명·보상을 위한 특위 구성 및 청문회 실시’를 위해 공조하기로 했다.

장하나 전 의원은 “얽힌 실타래가 조금 풀려 (나의) 책임감을 좀 덜었지만, 정부가 더 빨리 조치를 취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다. 정부가 이 문제를 오래 방치해 피해자가 더 생겼다”고 했다. 그는 특별법을 발의할 당시 이 사건을 “단일 환경 사건으로 유례가 없는 생활화학가정용품의 대규모 치사 사건”이라 부르면서 “(피해자) 가정을 붕괴시켰다”고 평가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 수가 266명에 이른다. 그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연관성을) 최소한으로 인정한 것이 이 정도다. 현재 피해자 4차 신청을 받고 있어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19대 임기 초기에 이 사건과 만났다. 의전용 자동차를 타고 국회 정문을 무심히 통과하는 대개의 의원과 달리, 가방을 메고 정문 앞을 걸어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 때문에 아내를 잃고 국회 정문에서 1인시위를 하던 남편에게 그가 다가갔다. “아직 이 문제가 해결 안 됐나요?”

질병관리본부가 2011년 가습기 살균제가 중증 폐질환의 원인이라고 발표하고, 이명박 정부에서 태스크포스(TF)팀도 구성됐다. 그래서 그는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피해자 가족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가습기 살균제의) 리콜(회수)만 있었을 뿐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됐어요.”

업체들이 질병관리본부의 발표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거액의 치료·수술비 등도 지원받을 수 없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업체, 대형마트, 정부를 상대로 소송에 들어갔다. 장 전 의원은 “한 명의 다윗이 10명의 골리앗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그냥 다윗이 아니라 건강을 잃은 다윗, 가족을 잃은 다윗들”의 처절한 싸움이었다.

그는 2013년부터 이 문제를 본격 제기한 뒤 우리 사회의 반응에 놀랐다고 했다.

“이상했어요. 사회가 이렇게 덤덤하다니. 가습기 살균제가 샴푸나 비누 옆에서 팔려 사람이 죽었잖아요. 5명, 10명이 죽어도 충격인데 수백 명이 죽었는데도 사회가 이렇게 덤덤하다니.”

언론의 반응은 “지금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라고 했다. 그 언론엔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지 못한 도 포함돼 있다. “기자들은 어떤 사안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지 잘 알 텐데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은 게 이상했다”고 그는 얘기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특별법 대신 환경보건법, 왜?</font></font>

“보도자료, 브리핑을 옮기는 게 기자의 역할은 아니잖아요.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대한) 시시비비를 언론이 가려줘야죠. ‘야당 의원(장하나)이 이렇게 주장하고 새누리당과 환경부는 이렇게 말했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이 많았던 거죠.”

정부의 태도는 피해자들에게 “절망과 분노의 수준”이었다고 했다. 그는 애초 환경보건법을 통한 피해자 즉각 지원을 요구했다. 이 법은 환경성 질환일 경우 국가가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화학제품이어서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피해자 지원을 위한 관련 법을 국회에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그는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4월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환경부 산하에 피해구제특별위원회를 두고, 치료비·수술비·요양급여·요양수당 등을 지원해주자는 것이다.

“경제적 약자인 피해자들에겐 하루하루의 삶이 투쟁”이기 때문에 그는 조속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정부는 기업과 이 제품을 산 피해자 간의 문제라며 특별법에 부정적이었다. 그는 “말도 안 되는 토건사업에 막대한 돈을 쓰면서, 이런 지원은 예산 낭비라고 생각하며 묵살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왜 정부의 책임을 거론하는 걸까.

“정부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 등을 위반하지 않아 정부의 책임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 화학물질에 대한 유해성 검사를 하지 못했다. 법 제도의 미비함 탓에 해당 물질에 대한 검사를 하지 않았으니 정부가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로서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그 한마디를 원하는 것이다.”

야당은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2013년 8월 국회에서 해당 상임위(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해 통과시킬 계획이었다. 당시 환노위원장은 야당 의원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정부는 8월 국회 이전에,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을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보건법에 근거한 지원에 반대하던 정부의 태도가 바뀐 것이다.

그는 “특별법이 제정되면 돈이 더 드니, 안정적으로 지원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갑자기 그렇게 결정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쉽게 말해 싸게 먹히는 지원 방법을 택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런 게 누적되면서 정부에 대한 피해자들의 불신이 쌓여갔다”고 그는 말했다.

특별법이 제정됐다면 받았을 지원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정부가 일부 지원에 나서면서 수술하고 산소통을 뗀 피해자들이 장 전 의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피해 정도 심사(총 1~4등급)에서 1·2등급을 받지 못하면 지원받을 수 없다. 다른 질환이 있다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병이 깊어졌거나 사망한 경우도 제외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정부도 기업도 책임 회피 </font></font>
지난 5월2일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옥시레킷벤키저 한국법인 대표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해 사과를 했다. 피해자들은 진정성 없는 사과라며 비난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지난 5월2일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옥시레킷벤키저 한국법인 대표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해 사과를 했다. 피해자들은 진정성 없는 사과라며 비난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가습기 살균제를 대규모로 판 업체(옥시) 대표의 사과에서 피해자들이 “진정성이 없다”고 느낀 이유도 설명했다.

“피해자들이 1인시위를 하거나 책임자를 만나러 가면 (옥시가) 용역을 동원해 막고 피해자들을 진상처럼 취급했다. 의원이던 내가 피해자들과 같이 갔을 땐 회사 안에 들어가게 해주긴 했다. 하지만 구내식당 같은 공간에 앉혀놓고, 책임이 높지 않은 사람이 나오더라. 그날 산소통을 매달고 있는 어린 성준이도 같이 갔다. 성준이 엄마는 성준이의 상의를 들어 수술 자국도 보여줬다. 그런데 옥시의 태도는 내가 보기에도 모멸감을 느낄 정도였다. ‘내가 괜히 이들을 모시고 와서 안 좋은 꼴을 당하게 했나’란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사과할 시간이 많았는데도 그렇게 문전박대를 해놓고 검찰 수사와 여론의 뭇매가 이어지자 옥시 대표가 사과하니 그 사과를 피해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나. 불특정 소비자에게 잘 보이려는 쇼처럼 느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그는 전직 의원이 됐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서울 노원갑에 출마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의 완벽한 마무리를 다른 의원들이 해줘야 한다.

그는 정부의 책임 인정과 사과를 우선적으로 기대했다. 영국 정부가 기형아 출산을 초래하는 입덧 완화제 ‘탈리도마이드’의 유해성이 밝혀지자, 이 약품의 판매가 중단된 지 50년 만인 2010년에 사과한 것을 예로 들었다. 근원적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발생한 국민의 죽음과 질환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로서 책임감을 보여달라는 게 그의 바람이다.

검찰 수사가 2015년에야 뒤늦게 착수한 배경도 밝혀야 한다고 그는 보았다. 유해성 화학물질에 대한 엄격한 검사와 규제를 위한 법의 보완도 20대 국회의 과제라고 했다. 진상 규명을 위한 특위와 청문회도 필요하지만, 더 충분한 피해자 지원을 위해 특별법을 먼저 발의해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이미 늦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자신도 이 문제를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피해자분들과 소통해왔으니 이분들이 정치권과 소통할 수 있도록 중간 역할을 할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은 최근 이 단체 안에 피해자 지원과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적 해결을 위해 특위를 만들기로 하면서 장 전 의원에게 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당연히 하겠다”고 응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아픈 아이 대하는 가족의 마음으로 </font></font>

그는 의원 시절, 살균제 피해자들이 국회 정문에서 1인시위를 할 때 사용한 피켓을 저녁에 의원실에 보관했다가 다음날 1인시위 장소에 갖다주곤 했다. 고통스러운 피해자들이 크고 무거운 피켓까지 들고 집과 국회를 오가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는 “작든 크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돕고 싶었다”고 했다.

“같이 울고,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의원이라고 여기는 게 싫었어요. 그것만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거든요. 손에 잡히는 작은 성과라도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픈 아이를 대하는 가족 또는 엄마의 마음처럼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낭떠러지에 몰린 위기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정치인은 이들에게 ‘안 돼’ ‘노’(No)라고 쉽게 말하면 안 됩니다. ‘노’라는 대답을 너무 많이 들었던 사람들이거든요. 아픈 아이를 대하는 엄마는 완치 성공 확률이 3%이든 5%이든 포기하지 않아요.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하죠. 정치도 그래야 합니다.”

그가 지난 4년간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집중한 것도, 피해자 가족에게 건넨 “아직 이 문제 해결 안 됐어요?”란 짧은 물음 때문이었다.

속초=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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