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새 공동사무처장으로 선임된 박근용(왼쪽)·안진걸씨가 참여연대 건물(서울 종로구 통인동) 옥상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뒤편으로 청와대가 보인다. 류우종 기자
안진걸과 박근용.
두 사람이 지난 2월25일 참여연대 새 공동사무처장으로 선임(임기 2년)됐다. 이태호 전임 처장은 상근 집행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은 1972년생 동갑내기다. 학번(91)도 같다. 둘 다 27살(1999년)에 참여연대 활동을 시작(안진걸 1월·박근용 12월)했다. 안진걸은 시민권리국 간사→시민참여팀장→민생팀장→사회경제국장을 거쳐 사회경제 분야를 담당하는 협동사무처장을 지냈다. 박근용은 경제민주화위원회 간사→경제개혁팀장→사법감시팀장→시민감시국장을 거쳐 권력감시 분야 협동사무처장으로 일했다. 공동사무처장의 역할도 활동 이력대로 나눠 맡았다.
참여연대는 ‘진보적 시민운동’을 표방하며 1994년 창립했다. 한국의 대표적 시민단체로 자리하며 시민운동의 발흥과 성장, 안정과 정체, 위기와 기로의 분기점마다 역할을 해왔다. 안진걸과 박근용은 참여연대의 ‘제3세대 리더십’이다. 변호사·교수 등 명망가들(1세대)이 단체를 창립해 당대의 의제 속으로 뛰어들고, 창립 멤버인 활동가들(2세대)이 자리를 이어받아 단체를 안착시켰다. 두 사람은 창립 멤버가 아닌 평간사로 시작해 사무처장에 이른 첫 세대다. 현재 한국 시민사회운동 전반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박근혜 집권 후반기에 책임을 맡은 그들은 시민운동의 방향과 지속가능성을 두고 부심하고 있다.
안진걸 “총선시민네트워크가 제시한 공천 부적격 사유(‘인턴 취업 청탁’)가 명예훼손이라며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했다. 선관위로부터 전화조사를 받았다. 취업 청탁 건은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로 확인된 사실이다. 봐주기 수사였지만 청탁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언제든 근거를 보여줄 수 있다.”
33개 연대기구와 1천여 개 시민단체들이 결합한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총선넷)가 인터뷰(3월8일) 닷새 전인 3월3일 공천 부적격자 9명을 발표했다. 최경환(새누리당 국회의원·전 경제부총리), 황우여(새누리당 국회의원·전 사회부총리), 김진태(새누리당 국회의원), 이노근(새누리당 국회의원), 김석기(새누리당·전 서울지방경찰청장), 김용판(새누리당·전 서울지방경찰청장), 김현종(더불어민주당·전 통상교섭본부 본부장), 박기준(새누리당·전 부산지검장), 한상률(새누리당·전 국세청장) 후보가 선정됐다. 참여연대는 총선넷의 사무국을 맡았다. 안진걸 처장(공동운영위원장) 등 10여 명의 활동가들이 상근·반상근으로 파견돼 있다.
전국적 총선연대기구를 통한 시민사회단체의 낙천운동은 2004년 이후 12년 만이다. 2008년엔 총선연대가 꾸려지지 않았고, 2012년엔 총선유권자네트워크가 있었지만 낙천운동보다 느슨한 형태의 ‘심판운동’을 했다.
안진걸 “발표 뒤 김용판 예비후보는 ‘총선넷을 해체하라’고 했고 는 사설에서 ‘선동적인 단체’라고 비난했다. 동의할 수 없는 그들의 반응이 우리 활동을 다시 주목받게 만들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만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폭정과 대선 공약 이행은 F학점이다. 야당도 부적격자를 영입하고 있다. 부적격자들이 공천될 경우 선거법 불복종을 각오하고 낙선운동에 나설 수도 있다. 총선넷 차원에서 논의 중이다.”
선임 전 시민사회에선 참여연대 새 사무처장이 누가 될 것인지를 놓고 여러 이야기가 돌았다. 활동 경력은 닮았으나 활동 방식은 다른 두 사람을 두고 참여연대 안팎의 지지가 나뉜다는 말도 들렸다.
박근용 “그렇지 않다. (웃음) 참여연대 조직이 커지면서 감당해야 할 일이 크게 늘었다. 한국의 정치사회 현실이 악화되면서 외부로부터 요청받는 역할도 많아졌다. 사무처장 한 명이 모든 업무를 감당하기엔 벅찬 상황이다. 공동처장제는 단독처장제의 부담을 줄이고 역량은 배가할 수 있다.”
두 사람의 문제의식은 시민운동의 향후 방향 설정과도 무관치 않다. 박근용은 사법감시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에서 주로 일해왔다. 전문성과 조직 운영에서 ‘내적 실력’이 탄탄해야 권력과 대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진걸은 시민사회 및 ‘당사자들’과의 연대를 중시하는 ‘네트워커’다. 근래엔 ‘을’들의 목소리를 조직해 갑의 횡포에 맞서는 운동에 진력해왔다. 전문성 강화와 연대의 확장은 참여연대를 넘어 시민운동 전반의 고민과도 닿아 있다.
안진걸 “‘혼용무도’한 시대에 더 큰 연대를 위한 진용을 갖춰야 하지만 내부도 잘 챙겨야 한다. 박근용 처장이 정기총회(3월5일) 준비를 맡아줬기 때문에 나는 총선 대응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이 할 경우 둘 중 하나는 소홀할 수밖에 없다. 선임 과정에서야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을 수 있지만 공동처장제여서 나는 너무 안심이 된다.”
3세대로의 리더십 전환은 1~2세대 시민운동가들의 정치권 진입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시민운동의 정치 참여 여부는 시민사회 안팎의 오랜 논쟁거리였다. 참여연대의 경우 조희연 초대 사무처장(현 서울시교육감)부터 박원순(전 사무처장·현 서울시장), 김기식(전 사무처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원석(전 협동사무처장·현 정의당 의원), 김민영(전 사무처장·더불어민주당) 등 역대 처장 다수가 정치권으로 옮겨가거나 교육행정 수장이 됐다. 원튼 원치 않든 참여연대는 정치권의 ‘시민운동 출신 영입 통로’의 한 축이 됐다. 출신 인사가 정치로 나갈 경우 일정 기간 유예를 두거나 직함을 내놓게 하는 방식으로 참여연대는 대응해왔다.
박근용 “임기 중이나 임기를 마치자마자 정치권으로 옮긴 사람은 거의 없다. 박원순 전 처장은 참여연대를 그만두고 10여 년이 지난 뒤였고, 김기식 전 처장은 미국 연수 등을 거친 뒤였다. 조희연 초대 처장은 오랜 기간 학계(성공회대 교수)에 있었다. 시민운동에서 공익적·정책적 역량을 쌓은 사람들의 정치권 진입이 나쁘지 않다는 공감대까진 형성돼 있다. 다만 정치권 진출자가 나올 때마다 참여연대는 긴장한다. 단체를 떠난 사람들의 정치권 입문으로 뒤에 남은 참여연대가 의구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 있다. 권력감시가 주된 역할인 참여연대는 어떤 그룹으로부터도 독립적이어야 한다. 참여연대의 숙명이다.”
안진걸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정권에 맞서 시민사회 출신들이 선거 국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사실 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땐 권력감시 비정부기구(NGO)가 아니라 정치행동 단체로 성격이 바뀌고 만다. 참여연대 출신이 정치인이 되면 그들도 당연히 감시 대상이 된다.”
박근용 “참여연대가 포함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이름으로 성명을 냈다. 비판을 자제했다기보다 성소수자 문제는 참여연대가 전부터 다뤄온 사업 과제가 아니었다.”
안진걸 “참여연대가 인권헌장 문제로 박 시장을 비판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 등 박 시장의 민생 정책이 뜨뜻미지근하다고 자주 지적해왔다. 보좌관들을 만나면 격려는 안 하고 비판만 한다고 섭섭함을 표한다.”
1~2세대 활동가들에게 창립 멤버라는 책임감은 열악한 환경을 견디며 단체를 이끌어가는 동력이었다. 창립 멤버는 조직을 장악하는 ‘카리스마’의 근원이기도 했다. 선배들에게 짐이자 무기였던 ‘창업 리더십’이 3세대 활동가들에겐 없다.
박근용 “나는 선배들에 비해 편하게 성장해왔다고 생각한다. 선배들이 알려주는 정보를 흡수하고 노하우를 빨아들이며 배울 수 있었다. 선배들과 우리 사이엔 학생운동이란 공통의 경험이 있었다. 우리 같은 90년대 초반 학번들은 이미 마흔 살이 넘었다. 참여연대의 허리를 받치는 5년차 전후 활동가들과도 갭이 크다. 그 차이를 극복하면서 서로의 지향점을 일치시켜나가는 것이 큰 과제다.”
안진걸 “카리스마 넘치는 창립자들은 일사불란한 조직 운영이 가능했다. 지금 시민운동 활동가들은 일사불란과는 거리가 멀다. 친구처럼 소통하고 민주적 의사결정을 이끄는 친화적 리더십을 요구한다. 독보적 리더십은 이제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시대적으로는 8년간 비민주적 집권 세력을 거치며 시민운동 전체가 활력을 잃었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과제는 시민사회운동의 돌파구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다.”
‘시민운동 위기론’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대두됐다. 노무현 정부 땐 ‘의제의 위기’가 거론됐다. 참여정부가 시민단체의 정책 다수를 흡수하면서 운동의 차별성이 희석됐다. ‘의제의 급진화’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이명박 정부 땐 촛불시위에서 목격된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기성 단체들의 성찰을 불렀다. 시민을 계몽하고 참여를 조직하던 기존 방식에서 시민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운동의 전환’이 논의됐다.
박근혜 정권에서의 위기론은 근본적이고 존재론적이다. 현 정부는 시민운동이 없던 시절로 통치 방식을 되돌렸다. 시민운동의 역할과 거버넌스(협치) 자체를 무시한다.
박근용 “현 정부 출범 이후 ‘시민사회 배제’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실력이 중요하다. 정치적으로 우리를 무시하더라도 사회적 논쟁 공간에서까지 무시당해선 안 된다. 집중력이 필요하다. 무엇에 집중할지를 분명히 한 뒤 그 분야에서만큼은 무시당하지 않을 능력을 키워야 한다. 우리가 설정한 의제를 두고 관료 및 보수언론과 대결할 수 있는 자신감과 실력을 갖출 것이다. 지향만 가지고 운동하는 시대는 지났다.”
안진걸 “흑백 이분법의 종교적 도그마에 사로잡힌 정권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성과가 ‘퇴행’을 넘어 ‘파괴’에 이르고 있다. 우리를 지켜주는 건 결국 시민이다. 시민의 피부에 가닿는 이슈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시민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감수성을 갖도록 노력하겠다. 진보는 못하더라도 파괴는 막아야 한다. 민주주의·민생·평화를 수호하는 보루로서 참여연대의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국회 앞 ‘시민 필리버스터’도 참여연대가 아이디어를 냈고 가장 힘든 시간대(밤 12시~다음날 아침 8시)를 지켰다. 누군가 그러더라. 김기식(2002년 2월~2007년 2월)·김민영(2007년 2월~2011년 2월)은 양복 입고 국회에도 갔는데 이태호(2011년 2월~2016년 2월)는 왜 맨날 점퍼 걸치고 거리에 눕냐고. 그게 이명박·박근혜 시대의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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