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수는 언제부터 친일·독재를 미화하고 국가 주도의 ‘폭력적인 교과서’에 찬동하기 시작했을까. 그는 뼛속 깊이 관변학자인 것일까. 그는 왜 5·16 군사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부르대는가.
은 이 교수가 직접 쓴 논문과 학술대회 토론문 등을 모두 조사했다. 한국연구재단이 운영하는 ‘한국 연구자 정보’(<font color="#C21A1A">https://www.kri.go.kr/kri2</font>)를 비롯해 각종 논문 검색 서비스로 확인 가능한 논문 등은 1998년부터 2013년 사이 27편이다. 자유경제원 등에서 발표한 발제문·토론문 따위는 따로 살폈다. _편집자</font>
2002년 45회 전국역사학대회. 이명희 교수는 논문 하나를 발표했다. ‘제7차 교육과정기 교과서 체제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당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원이던 그는 논문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1종(국정) 교과서도 2종(검정) 교과서도 전국의 학교들을 표준화하여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단위 학교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단위 학교의 자율성을 살리는 방향에서 교과서 제도를 생각한다면 교과서의 자유발행제를 도입하는 것이 요청된다. (…) 1종 교과서 제도는 특수 목적학교의 특정 교과 교과서처럼 수요가 극히 적어 민간에서 개발하기에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은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폐지되어야 하며….”
이쯤이면 상전벽해다. 현재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앞장서고 있는 그의 언행과 정반대다. 같은 논문에서 그는 교과서 자체에 대해 불신하는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교과서는 절대적인 교재가 아니라 하나의 교재이며, 교과서 이외에 다양한 교재가 요청된다. 단위 학교의 자율성이 최대한 살려지기 위해서는 전국 단위에서 개발되는 교과서보다는 개별 학교 단위에서 개발되는 보조 교재가 더욱 적절하기 때문이다.”
1998년 1월 문을 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1종 도서 개발과 2종 도서 검정을 전담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이 교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창설 때부터 2002년 공주대 교수로 부임할 때까지 4년간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교수가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주장한 맥락이다. 김대중 정부는 2001년 12월 “21세기 지식 기반 사회에서 국가의 경쟁력은 그 나라가 보유한 인적자원의 수준에 달렸다”며 국가인적자원개발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교육 분야의 핵심 정책은 국민기초교육 보장과 초·중등 교육체제의 자율화였다. 이 교수는 이런 정부 정책에 충실한 논리를 폈던 것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원 시절 그가 발표한 논문에는 ‘이념 편향적’ 주제나 서술이 거의 없다. ‘역사학습의 한 방법으로서 추체험의 가능성’ ‘일본에서 지역학습과 향토교육’ ‘일본의 소학교 중학년 사회과 지역학습의 실태’…. 1994년과 98년 일본 쓰쿠바대학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그는 학생들의 학습에서 체험을 줄곧 강조했다. 또한 일본 사례를 인용해 지역의 특수성·구체성을 살린 생생한 교육을 제안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초기엔 지역 특수성 교육 강조</font></font>“우리는 학교의 국사 수업에 향토사를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국사 교육에 생기와 활력을 돋아나게 할 수 있다.”(‘일본에서 지역학습과 향토교육’, 1998)
“만일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동일한 내용을 동일한 방법으로, 동일한 목표를 향해 공부하게 된다면 학업성취도 평가가 학습과 교육의 획일화를 부추기는 방향으로 기능할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의 흐름에도 역행하는 것이고 개성의 신장을 지향하는 교육의 기본 정신과도 어긋나는 것이 된다.”(‘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우려는 있어도 필요하다’, 2002)
이때까지 그는 한국 근현대사 문제를 직접 다룬 논문을 거의 쓰지 않았다.
2002년 8월 공주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이듬해 ‘신국가 건설기 교육과정의 성격-사회생활과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냈다. 이 논문에서 그는 1945년 해방 직후부터 1953년까지를 ‘신국가 건설기’로 규정한 뒤 교육과정 배경과 특징을 분석했다. 이 논문에는 이 교수의 이후 행보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등장한다.
“당시 교육에 종사하였던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적인 편향을 나타내기는커녕 근대국가의 교육에서 당연히 추구하는 국가 정체성 교육도 보류하고 있다. 즉 국가 및 교육 재건의 방향을 일제 불식과 민주주의 실현으로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이념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하지 않고 주로 방법적 측면에서만 민주주의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정체성을 강조했지만 여전히 그는 이념적 편향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2005년 발표된 ‘중학교 역사 교육에서 지역사 교육과정의 구성’에서도 초기 논문과 마찬가지로 지역사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지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을 이해하는 활동이며, 동시에 공동체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자신을 이해하는 활동이 된다.”
그러나 이 교수의 논지는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기에 ‘우향우’로 내달린다. 그가 2007년 발표한 ‘한국 근현대사 텍스트로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대한 검토’가 상징적인 논문이다. 은 1979~89년 6권으로 간행된 에 맞서 보수·우파 학자들이 반작용으로 내놓은 책이다. 논문에서 이 교수는 이 책을 일러 “지금 시작되는 ‘선진화 시기’의 역사의식을 대변하는 역사서”라고 추어올렸다. 또한 “지금이 새로운 역사교육의 실천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 논문에는 지금까지 그가 줄기차게 웅변하는 주장의 뼈대가 그대로 담겨 있다.
“광복 이후 정치사 인식의 초점은 어떻게 민주주의가 시련을 겪었느냐가 아니라, 건국 초에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그후 어떠한 배경하에 점차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실현할 수 있었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노무현 집권기에 ‘우향우’</font></font>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이 교수의 논지는 더욱 과격해진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2009)에는 현재 이 교수가 주장하는 논리가 대부분 담겨 있다. 그는 금성출판사판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를 지목한 뒤 ‘대한민국의 정통성 부정적 서술’ ‘이승만 전 대통령 평가절하’ ‘미국과 6·25 전쟁 의도적 왜곡’ ‘대한민국 성취에 대한 부정적 평가, 북한에 대한 우호적 서술’ 따위의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대목도 있다. “리영희의 책들은 한국 현대사를 부정하며 친북한 정권적인 인식을 가져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에 “보다 더 넓은 관점을 포용하기 위해 경제학자, 정치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등과 같은 인접 사회과학자들을 비롯하여 자연과학 분야와 미술과 음악·체육 등의 예체능 분야의 학자들도”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2013년 자신이 집필자로 참여한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의 ‘탄생’을 예고하는 발언이자, 현 정부가 국사 국정 교과서를 추진하면서 내놓은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내처 그는 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현행 역사교육 전체를 싸잡아 비판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초·중등학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역사교육은 필자가 대학 시절 반체제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행해지던 비공식적 역사교육과 유사한 내용들로 채워지고 있다.”(‘헌법 정신과 역사 교과서’, 2011)
11월24일 이명희 교수의 EBS 사장 선임에 반대하는 ‘EBS 구성원-시민단체 공동 결의대회’에 참석한 송원재 전 교사( 편집실장)는 이렇게 증언했다. 그는 이 교수의 대학 2년 선배다. “그때는 누구나 그렇듯 이명희와 유신 철폐를 위해 함께 손잡고 거리시위도 하고 그랬다. 당시 광주 민주화운동이 터졌고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군홧발로 짓밟고 그들이 억울하게 죽어갈 때 이명희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겁이 났을 것이다.” 이 교수에게 민주화운동 이력은 숨겨야 할 비밀이었던 것일까.
이 교수는 지난 10월21일 자유경제원의 ‘국정교과서 실패-연속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 문제는 21세기 한민족의 미래를 건 한판 싸움이며, 그 싸움의 본질은 이념전 혹은 사상전이다. 대한민국의 좌익과 북한의 권력집단은 기본적으로 뿌리가 같은 동일 이념집단이다. 교과서 국정화는 역사 문제 해결의 출구가 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얼마나 많은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느냐에 달려 있다.” 이 교수는 역사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이 EBS 사장이 되어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겠다는 포석을 지녔던 셈이다.
그러나 세 차례 응모에도 정권은 그에게 EBS 사장직을 내주지 않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는 이 교수의 낙마에 일단 안도하면서도 향후 투쟁 의지를 다졌다. 이 교수가 사장에 선임될 경우 총파업을 하기 위한 찬반투표(11월24~26일)에서는 조합원 92%가 찬성한 상태다.
홍정배(45) EBS노조 지부장은 “EBS노조 조합원들의 92%가 총파업에 찬성한 것은 그만큼 이명희 교수가 사장이 되면 안 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앞으로 EBS가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작 자율성과 편성 독립성이 보장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중점 목표다”라고 했다. 앞서 11월24일 공주대 민주동문회 또한 이 교수의 EBS 사장 선임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2013년 9월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 파동’ 때는 공주대 역사교육과 동문 243명이 이 교수의 교수직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2014년 박근혜 교육정책 비판 발언</font></font>그동안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이명희 교수는 현 정부를 비판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낸 이력이 있다. 2014년 12월9일 자유경제원이 연 교육대토론회(‘흔들리는 교육,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에서다.
“친전교조 성향의 교육감들이 시·도 교육청 차원에서 추진하는 정책들이 주요 교육 어젠다로서 국민들의 귀와 눈에 오르내리는 것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국민들의 주목을 받고 또 지지를 받는 정부 차원의 교육정책이 없는 것이 바로 근본적인 원인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교육정책들 중에 우리들이 알고 있는 어떤 정책들이 있는지를 들어보자. 내세울 수 있는 이렇다 할 교육정책이 없다고 말하면 지나친 것일까? 우파 정부 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직무를 방기 혹은 유기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먼저 비판을 가해야 한다.” 그에겐 잊고 싶은 발언일지 모른다.
이명희 교수는 김대중 정부의 교육정책에 맞춰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비롯해 자율을 강조하는 논리를 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친일·독재의 역사적 사실을 전복하는 ‘뉴라이트’ 논지를 앞장서 주장했다. 정권 코드에 맞춘 행보다. 그가 앞으로도 ‘이명박근혜의 역사 나팔수’ 노릇을 이어갈지, 아니면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할지 주목된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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