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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웅이 아니다

20.8% 우울 증상 보이고, 62.1% 언어폭력 경험하고, 78.5% 쉬는 날 일해. 소방공무원 8525명이 응답한 국가인권위 보고서가 말하는 인권 실태
등록 2015-11-17 10:02 수정 2020-05-02 19:28
소방관은 생사가 오가는 현장에서 일하는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이다. 이들의 인권은 그만큼 세심하게 배려돼야 한다. 지난 9월23일 경기도 하남시 천현동 섬유공장에서 소방관들이 진화 작업을 하는 모습. 한겨레 김태형 기자

소방관은 생사가 오가는 현장에서 일하는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이다. 이들의 인권은 그만큼 세심하게 배려돼야 한다. 지난 9월23일 경기도 하남시 천현동 섬유공장에서 소방관들이 진화 작업을 하는 모습. 한겨레 김태형 기자

그들은 보호하는 소방관이지만,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다.

58.8살.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자료에 나오는 1998~2007년 퇴직한 소방공무원의 평균수명이다. 도대체 왜? 용감한 공무원, 소방관의 처우와 실상은 짐작과 달랐다. 화재 진압용 장갑도 없다, 초과근무 수당도 못 받는다, 밝혀지는 처우마다 놀라웠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연구책임자 김승섭 고려대 교수에 연구용역을 맡긴 ‘소방공무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보고서)는 그동안 지적된 문제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전국 약 4만 명의 소방공무원 중 8525명(21%)의 응답을 분석한 역대 최대 규모의 이 보고서는 심각한 노동권, 건강권 위기를 드러낸다. 은 보고서 분석에 소방관들 인터뷰를 더했다.

아픈 날도 일하러 나간다

“지난해 같이 일하던 동료가 자살을 했어요. 그렇게 심각하게 병들어가고 있는데 모르고 있었던 거죠. 많이 반성했어요. 남의 일 같지 않았고요.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책임 소재를 추궁하지 감싸는 분위기가 아니에요. 엄청 시달리죠. 지휘관한테 ‘너는 왜 그것밖에 안 되냐’ 소리도 듣고요. 당연히 스트레스 받죠.”(경기도 30대 소방관)

사람이 아프다. 영육이 아프다. 보고서는 그렇게 말한다. 보고서는 설문조사 전 일주일 동안 우울한 정도를 물어 우울증을 진단했다. 이에 따르면, 소방공무원의 우울증 증상이 20.8%로 일반근로자 집단(8.2%)보다 2배 이상 높았다(그림1 참조). 또 지난 1년 동안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한” 소방공무원 비율이 7.2%로 일반근로자(1.7%)의 4배에 이른다.

화재 진압과 긴급 구조를 하며 사실상 저강도 전쟁 상태에서 사는 소방관은 용감한 영웅이지만, 고도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위협에 시달리는 약자다. 경기도의 한 50대 소방관은 “생사가 오가는 현장에 다녀와서 한두 시간 쉬지도 못하고 바로 근무를 한다”고 말했다. 소방공무원을 위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대해 상담해주는 의료진이 배치돼 있지만, 치료는 멀고 일은 가깝다. 소방관 업무 과정에 ‘상처받은 사람’이란 개념은 없다.

“전남에서도 소방공무원 3명이 자살했지만, 원인을 알 수가 없어요. 숨기니까요. ‘내가 어떤 문제를 앓고 있는지 스스로 예방하는 교육’이 선행될 필요가 있습니다.”(전라북도 소방관)

디스크는 소방관의 고질병이다. 조사 대상 소방공무원의 39.5%(3025명)가 ‘디스크 진단을 받은 적이 있음’이라고 응답했고, 디스크 진단 시기는 ‘소방공무원 근무 이후’(91.5%)였다. 이러니 자신이 평가하는 건강 수준이 좋을 리 없다. 건강 수준이 ‘매우 좋다’거나 ‘좋은 편’이라고 응답한 소방공무원은 46.7%로 일반근로자(72.1%)보다 현격히 낮았다.

보고서는 아픈데도 일하러 나가야 하는 상황인 ‘프리젠티즘’(Presenteeism)도 심각하다고 전한다. 설문조사 전 12개월 동안 ‘몸이 아픈데도 나와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소방공무원 비율은 34.1%로 일반근로자 집단(21%)보다 높았다. 조기 복귀한 이유의 92.6%가 ‘직장의 인력 부족’이었다.

“올해 화재 진압을 하다가 얼굴과 손에 화상을 입었어요. 비닐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쪼그라들듯이 얼굴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어요. 그 순간의 공포는 장난이 아니었죠. 이렇게 불 먹고 죽는구나 했죠. 제가 다치기 한 해 전에 같은 소방서에서 2명이 순직했어요. 우리 소방서는 200명 정도의 인원이 있는데, 3교대 하는 소방센터가 2곳밖에 안 돼요. 24시간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 근무라 골병이 듭니다. 한 주 45시간이 아니라 75시간 노동이에요.”(경기도 40대 소방관)

인력이 없으면 인권도 없다

사람이 문제다. 인력이 부족하니 인권이 무너진다. 2009~2013년 소방공무원 수는 3만3992명에서 3만9519명으로 늘었다. 2012년부터 3교대가 도입됨에 따라 충원이 필요했지만, 3교대에 필요한 인력은 느리게 충원된다. 소방공무원의 95.8%가 광역자치단체에 소속된 지방직 공무원이다. 국민안전처의 지휘를 받지만, 인사권은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이 행사한다. 2014년 당시 소방방재청은 2014년부터 5년 동안 1만3362명을 충원하겠다고 밝혔지만, 2014년 충원 계획 3천 명의 41%인 1227명만 늘었다.

중앙정부는 “늘리라”고 주문만 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재원을 달라”고 버티는 틈에서 소방관만 죽어난다. 보고서는 소방공무원 7175명 중 78.5%가 ‘지난 3개월 사이 근무일 외에 다른 날 일한 경험이 있다’고 전한다. 같은 기간에 8043명 중 32.7%가 ‘비번인 날에 일하고도 초과근무 수당을 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1년 동안 필요한 경우에 법정 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경험’도 응답자 8187명 중 54%에 이른다. ‘저녁이 있는 삶’은 없다.

“화상을 입었는데,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서 나오는 돈은 수술비의 80% 정도예요. 보상 기준이 커피 끓이다가 화상 입는 수준에 맞춰져 있어요. 소방관 직무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거죠. 2개월 입원하고 6개월 통원치료를 하다가 복귀했어요. 그나마 제가 연차가 높아서 공상 처리도 하고 병가도 낸 거예요. 다행히 들어둔 사보험에서 치료비에 상응한 보상금이 나왔어요. 그게 아니었으면 바로 출근해야 했어요. 소방서에 가장 많이 출입하는 사람이 보험설계사예요. 신입 직원이 왔다고 하면 귀신같이 바로 찾아와요.”(경기도 40대 소방관)

설문조사 전 1년 동안 화상을 입은 경험이 있는 소방관이 4.6%인데 ‘병원 방문 없이 자가치료를 했다’는 응답이 52.2%, ‘병원비 본인 부담’이 14.2%다(그림2 참조). 인력이 부족해 소방차 운전도 하고 화재 진압도 하는 정신없는 상황이 되면 집중력을 잃고 다치는 경우가 잦다. 그러나 공무상 요양 신청(공상)은 쉽지 않다. 조사에 응답한 소방공무원 중 17.1%(1348명)가 ‘부상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했지만, 이 중 83.3%(1123명)는 ‘공무상 요양을 신청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미신청 이유는 ‘소속 기관의 행정평가상 불이익을 우려해서’가 38.4%로 가장 많았다.

“안전사고가 나면 보고를 안 하려고 해요. 요새는 기관 평가에 안전사고 발생이 감점 요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보고 과정이 까다롭고 중간 간부들도 싫어해요. 안전사고를 당해도 ‘이 직원을 어떻게 보호할까’가 아니라 ‘너 경위서 써봐, 이거 왜 잘못했어?’ 추궁을 당하죠. 그래서 다쳐도 ‘그냥 넘어가자’ 하죠. 뭘 안 했다고 벌을 주려고 하니까요. 100%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조직이 보호해주지 않으니까 좌절감이 커요. ‘나라를 위해 일했는데 돌아오는 게 이건가’ 싶죠.”(경기도 50대 소방관)

“맞은 사람이 때린 사람을 이송해”
지난 11월12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소방공무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토론회가 열렸다. 책임연구자 김승섭 고려대 교수(가운데)가 발제하고 전문가들이 의견을 더했다. 정용일 기자

지난 11월12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소방공무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토론회가 열렸다. 책임연구자 김승섭 고려대 교수(가운데)가 발제하고 전문가들이 의견을 더했다. 정용일 기자

11월12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소방공무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에서 책임연구자 김승섭 고려대 교수는 “노동자들이 부상을 당하면 (가해·피해의) 책임을 묻지 않고 일단 치료부터 하는 무과실 책임제가 있다”며 “안전사고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아무리 행정평가상 불이익이 없다고 해도 소방관들은 (사고에 대한 책임 여부를) 걱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화재로 출동하거나 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조사에서 ‘교통법규를 준수하면서 이송 및 신속 출동이 가능하지 않다’고 응답한 구급대원이 93.4%였다. 출동하다가 생긴 교통사고와 관련해 과태료를 본인이나 탑승팀이 나눠 부담한 경우는 67.8%에 이른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긴급자동차의 우선 통행’을 명시하고 있지만, 2009년 헌법재판소의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4조 제1항 등에 대한 위헌판결로 긴급자동차라도 중상해 또는 11대 항목 위반시 처벌을 받는다.

“구급차를 운전하고 출동하는데 환자가 호흡 곤란이 왔어요. 응급상황이라 서행을 하면서 신호를 바꿨습니다. 근데 갑자기 오토바이가 구급대를 받았어요. 이런 경우도 11대 항목에 포함돼 처벌을 받아요. 합의금 200만원을 제 돈으로 냈어요. 사고가 크면 징계도 받고요.”(대전 소방관)

사람이 문제다. 조사 전 3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일반인으로부터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62.1%였고, 신체적 폭력을 당한 사람은 8.2%, 성희롱을 당한 경험은 3.3%였다. 그러나 신체적 폭력을 당하고도 보고하지 않은 경우는 83.3%, 보고를 했으나 관서의 후속 조처가 없었던 경우는 10%였다.

“맞은 사람이 때린 사람을 이송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어요. 구급차를 부른 사람이 술에 취해서 소방관을 때렸어요. 지휘관이 보호를 해줘야 하는데 술 취한 사람이 시끄럽게 하니까 현장을 빨리 정리하고 싶었던 거예요. 맞은 사람한테 때린 사람을 이송하라고 한 거죠.”(경기도 50대 소방관)

요즘은 “초 단위로 시간을 재면서 구급차를 재촉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극도의 감정노동을 하지만 조직이 자신을 지켜주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그러니 사람이 아프다. 경기도의 한 40대 소방관은 소방관끼리 하는 아픈 말을 전했다. “속된 말로, 10년 단위로 사람이 죽으면 복지가 바뀐다고 한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나고 처우가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현장에 주황색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보고 김영삼 대통령이 ‘저 청소부는 뭔데 왜 저기에 있냐’고 해서 대우가 좋아졌단 얘기가 있다. 2001년 홍은동 화재시 6명이 순직했다. 위험수당도 늘고 변화가 있었다.”

대표기구를 만들고 싶지만

사고가 아니라 조직을 통해 처우를 개선하려는 욕구는 강하다. ‘소방공무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소방공무원의 권익 보호를 위한 대표기구의 필요성에 대해 ‘매우 필요하다’(75%), ‘필요한 편이다’(22.6%)라는 응답이 많았다. 실제 가입 의사를 묻는 질문에도 ‘반드시 가입하겠다’(63.4%), ‘가입할 의사가 조금 있다’(31.6%)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현행법은 소방공무원에게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20년 경력의 경기도 소방관은 후배들에게 멘토링을 하면서 당부하는 말을 전했다. “다치지 마라. 네가 있어야 사람을 구한다. 네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다친다. 나를 보호해야 남을 구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이은주 교육연수생 helloly3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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