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1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골목. 문전성시를 이룬 과일가게 옆으로 합판 자재와 배관 설비가 어지러이 쌓여 있다. 가게가 폐업한 흔적이다. 아직 채 떼어지지 않은, ‘곱창29막창’이라고 적힌 노란색 간판은 이곳이 곱창가게였다고 증언한다. 입구 유리문에는 ‘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맘상모)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다. 맘상모는 2013년 5월 영세 자영업자의 권리를 위해 만들어졌다.
2014년 8월부터 이곳에서 곱창 장사를 해온 최병열(55)씨는 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지난 7월20일 장사를 접었다. 매달 220만원씩 빠져나가는 대출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25평 가게를 처분했다. 날마다 새벽 2시에 장사를 마치고 다음날 장사 준비를 한 뒤 쪽잠을 자고 아침부터 새 가게를 알아보러 다닌 것이 어느새 한 달을 훌쩍 넘겼다.
최씨가 가진 자본금은 7천만원뿐. “가게 얻으러 가면 (부동산에서) ‘투자비 얼맙니까’ 하고 물어봐요. 그러면 말을 못해요. ‘7천 가지고 가게 얻으러 왔습니다’ 하면 뒤도 안 돌아봐요. ‘그걸로 가게 못 얻습니다’ 이래요. 저기 서울 끝자락 동네로 올라가서 찾아야 할 입장이야. 그게 내 눈에 맞겠어요?”
8월11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곱창 가게가 빠진 자리를 돈가스 가게로 꾸미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류우종 기자
최씨의 곱창 장사는 올해로 30년째. “필생을 자영업 하면서 열심히 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최씨가 ‘강제퇴거’를 당하고 집을 알아보는 일은 이번으로 세 번째다. 그는 30년 동안 8곳의 곱창 가게를 운영했는데 이 중 3곳에서 건물주로부터 ‘강제퇴거’를 당했다.
1996년 동대문에서는 가게 주변이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돼 쫓겨났다. 2002년 건국대 앞에서는 건물주에게 속아 쫓겨났다. 한창 장사가 잘됐는데 건물주로부터 “리모델링을 할 테니 6개월 뒤에 다시 들어오라”는 얘기를 듣곤 사당동으로 잠시 가게를 옮겼다. 그러나 최씨가 떠난 자리를 차지한 것은 건물주의 아들이었다. 간판 그대로 가게를 확장해 곱창을 팔고 있는 것을 최씨는 뒤늦게 알게 됐다. 억울했지만, 최씨를 보호해줄 법은 없었다.
2011년 3월 홍익대 앞 주차장 골목에 ‘최준혁 원조 곱창포차’라는 이름으로 2층짜리 가게를 얻었다. 4억5천만원(보증금 1억원, 권리금 1억5천만원, 인테리어 비용 2억원)의 목을 얻기 위해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다. 대출이자가 만만치 않았지만 최씨는 자신 있었다. “‘곱창 기술은 최고다’라는 소리 들으며 장사했어요.” 블로그에서 입소문이 났다. 돼지 잡내가 안 나는 곱창으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60평 규모의 홀에 손님이 가득 찼다. 곧 단골도 생겼다.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2013년 1월, 최씨는 2년 계약 만료를 앞두고 갱신을 위해 계약서를 받고서 석 달 전 건물주가 바뀐 사실을 알았다. 새 건물주는 최씨에게 일방적으로 퇴거를 요청했다. 퇴거하고 싶지 않으면 1년을 추가 영업하되 월세를 700만원에서 400만원 인상한 1100만원씩 내라고 요구했다.
그만큼의 월세는 감당할 수 없었다. 700만원도 버거워 주방에서 두 사람 몫을 한 최씨다. 그렇다고 조용히 퇴거하는 것도 답은 아니었다. “보증금 1억원으로 어디 가서 장사할 수 있겠느냐고요. 대출을 한도까지 다 받은 상태에서 뭘 하겠어요.”
퇴거를 거부하자 건물주는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명도소송은 계약이 만료돼도 임차인이 나가지 않는 경우 법원에 집행을 청구하는 소송이다. 현행법상 명도소송에서 임차인이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소송 기간에 이런 말도 했어요. 판사님, 저는 이 가게에 5억원을 투자한 사람이고요, 저 건물주는 10원 하나 투자 안 했습니다. 그럼 누구 손을 들어줘야겠냐고요.” 2개월 뒤 결과가 나왔다. 판사는 건물주 손을 들어줬다.
세 번째 강제퇴거 이후의 삶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권리금 1억5천만원과 인테리어 비용 2억원은 끝내 돌려받지 못했다. 보증금 1억원은 ‘영업 펑크’를 메우느라 깎아먹었다. 3억5천만원을 투자했는데 손에 쥔 건 건물주로부터 받은 보상금 1억원이 전부였다. 이전의 퇴거보다 권리금 손실이 컸고, 분쟁의 여파도 있었다. 최씨는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려 치료를 받아야 했다. 지금도 그는 이따금 죽음을 생각한다고 했다.
법도 외면한 최씨의 사정을 숫자가 신경 써줄 리 없었다. 손 놓은 사이에도 대출이자는 불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최씨는 지난해 8월 보상금 1억원으로 망원동 골목 안쪽에 급하게 25평짜리 가게를 얻었다. 권리금 7500만원에 시설보수비 3천만원. 그 과정에서 또 2천만원 정도의 대출을 받았다. 규모도 줄었고 목도 좋지 않아 장사가 잘되지 않았다.
트라우마도 생겼다. “항상 가슴속에 ‘또 쫓겨나면 어떡하나, 장사를 더 하고 싶어도 (계약) 만기 되기 전에 팔고 나가야지, 잘못되면 또 (강제퇴거) 상황 오겠다’, 이런 걸 염두에 두기 때문에 음식 맛을 제대로 낼 수 없을 정도예요.”
2014년 1월14일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상가권리금 약탈 피해 사례 발표회’에 최병열(왼쪽)씨도 참여해 ‘최준혁 원조 곱창포차’의 사례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결국 최씨는 1년 만에 망원동 장사를 접어야 했다. 규모에 비해 수익이 적어 대출이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가게를 급하게 내놓는 바람에 투자비를 밑도는 권리금을 받아 1천만원을 손해 보고 나왔다. 지금 물색하는 가게는 10평. 불과 2년 사이에 장사 규모는 60평에서 25평으로, 25평에서 10평으로 줄어들었다. “곱창을 하지 말아야 하나, 다른 업종으로 바꾸라는 건가. 요즘은 이런 생각까지 들어요.” 최씨의 의지도 평수만큼 줄었다.
평생 번 돈을 투자해 창업했지만 건물주에게 권리금을 ‘약탈’당해 일거에 삶의 토대를 잃었다. 이는 최씨만의 사례가 아니다. 2014년 3월 서울시가 시내 5052개 상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상가임대 정보 및 권리금 실태 조사’에 따르면, ‘숙박 및 음식점’ 업종의 점포당 평균 권리금은 1억883만원, 평균 임대 기간은 1.7년이다. 22.6%의 상가는 환산보증금(보증금+100개월치 월세)이 4억원 이하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특히 강남 상권의 경우 45.5%의 상가가 법의 보호망에서 비껴나 있다.
‘카페 라떼킹’은 강남에 있다. 엄홍섭(60)씨는 2억8천만원(권리금 1억6200만원, 보증금 4800만원, 개조 비용 등 7천만원)을 투자해 2011년 6월 카페를 열었다. 노후 대책이었다. 정년퇴직 뒤 받은 퇴직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1년6개월 만에 건물주로부터 “재건축을 해야 하니 가게를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엄씨는 명도소송을 벌였다. 2014년 9월까지 퇴거하라는 법원의 계고장이 소송의 결과였다. 농성을 시작했다. 세 차례 강제집행이 들어왔지만 2013년 결성된 임차상인들의 연대체인 맘상모 회원들과 정당·시민단체의 연대로 막아냈다. 8개월의 농성 끝에 권리금 중 일부를 보상받기로 건물주와 합의하고 퇴거했다. 권리금의 반도 회수하지 못했다. 이것도 빈털터리로 쫓겨나는 다른 상인에 견줘 어렵게 싸워 얻은 결과지만, 타격은 여전히 컸다.
2년 가까이 지속된 싸움은 엄씨 가족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아내가 카페를 하자고 했거든요. 그래서 아내가 죄책감을 갖는 거예요. 괜히 자신이 집안 망하게 한 거 아닌가 하고.” 노후 대책을 잃은 엄씨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지난 5월13일 임차인의 권리를 향상시킨 개정법이 시행됐다. 임대인이 바뀌는 경우에도 이전 체결된 계약의 효력을 주장할 수 있다. 또한 그동안 암묵적으로만 존재해온 권리금에 대한 정의 규정도 신설됐다. 가끔 배보다 큰 배꼽인 권리금 보호의 단서가 마련된 것이다. 맘상모를 위시한 영세 자영업자들이 2년간 치열하게 싸워온 결과다. 20여 명으로 시작한 맘상모는 2015년 8월 현재 269명의 회원이 모였다. 하지만 개정법을 추동한 ‘쫓겨난 상인들’의 현실은 큰 변화가 없다.
자영업자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도 부실하다. 사회보장 체계나 사회적 임금 체계가 정규직 임금노동자 중심으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김상철 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사회보장 체계의 대대적인 개혁을 주문한다. “‘노동’을 바라보는 사회적 관점을 확대해서 새로운 사회보장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영세 상인들의 경우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 때 반드시 공백이 생긴다. 임금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실업급여가 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의 비중이 높은 한국에서는 더 시급한 일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자영업자 수는 560만 명(2015년 6월 기준)에 이른다. 201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자영업자 비중(15.8%)에 비해 2배 가까이 높다(28.2%).
이렇게 국가는 보호하지 않고 임대인은 횡포를 부리는 사이에 자영업자는 장사를 하면 할수록 뒷걸음질이다. “가게만 잃는 것이 아니라 집도 잃을지 몰라요. 대출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최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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