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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라서 문제인 게 아니다

역대 인권위원 54명 이력 분석해보니 ‘현병철 체제’ 이후 시민사회 경험 인권위원 비율 69%→32%… 성소수자 등 다원화된 인권 의제 보듬을 인권위원 절실
등록 2015-08-05 16:39 수정 2020-05-03 04:28

8월12일 퇴임하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후임으로 이성호 서울중앙지법원장이 내정되자 인권위원장의 자격을 둘러싼 쟁점이 독립성에서 다원성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병철 위원장과 차관급 상임 인권위원 3명, 비상임 인권위원 7명 등 11명의 인권위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6명이 판사·검사·변호사 출신이다. 여기에 법학 교수 2명을 더하면 ‘법’이라는 동일한 출신 배경을 지닌 이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법조 일색의 획일적 구성으로는 법이 보장하지 않거나 오히려 침해하는 기본권을 구제한다는 인권위의 설립 목적을 구현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렇다면 정말 판사·검사·변호사·법학 교수 등 법을 다루고 연구하는 이들은 인권위원으로서 적절하지 않은가. 출신 직역의 다원성은 ‘현병철 체제’를 극복하는 인권위 혁신의 방안이 될 수 있는가.

이성호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7월20일 국가인권위원장으로 내정된 뒤 소감을 발표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중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이성호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7월20일 국가인권위원장으로 내정된 뒤 소감을 발표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중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법조인 비율은 현병철 체제 전이 더 높아

2001년 인권위 출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이진강 변호사를 비상임 인권위원으로 임명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1년 검사로 임용돼 1993년까지 22년 동안 검찰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그 이력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을 다루는 인권위원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 시민사회는 ‘이진강 인권위원’을 수용했다. 검사 시절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경찰의 축소·은폐 시도를 수사해 기소한 ‘진짜 이력’ 때문이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검사 출신 유영하 인권위원에 대해선 적잖은 비판이 제기됐다. 임명 당시 회자된 검사 시절의 이력은 나이트클럽 사장으로부터 180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이유로 3개월 감봉 징계를 받은 일이 전부였다. 유 위원은 검사를 그만둔 뒤 징계처분 취소소송을 냈지만, 향응 제공 사실이 인정된다는 법원의 판결로 패소했다.

이진강 위원과 유영하 위원의 사례는 인권위원의 자격이 검사라는 직역만으로 적격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병철 위원장을 비롯해 이명박 정부 이후 임명된 법률가 출신 인권위원들이 지닌 진짜 문제는 그들이 인권 관련 이력이 전무한 ‘무인권’ 법률가라는 데 있다.

실제 법조인과 법학 교수를 포함한 법률가 비율은 인권위가 국가인권기구로서의 기능을 그나마 정상적으로 수행하던 현병철 체제 이전에 훨씬 높았다.

국가인권위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인권위원 소개란을 토대로 2001년 11월 인권위 출범 당시부터 2015년 현재까지 전·현직 인권위원 54명의 이력을 분석한 결과, 판사·검사·변호사, 즉 법조인 출신 인권위원이 38.9%(22명)를 차지했다. 여기에 법학 교수(10명)를 더하면 법률가가 59.3%(32명)에 달한다.

특히 현병철 위원장 취임 전에 임명된 인권위원 32명 가운데 법률가(법조인 13명+법학 교수 7명)는 모두 20명으로 전체의 62.5%에 이르렀다. 이는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임명된 인권위원 22명 가운데 54.5%(12명, 법조인 9명+법학 교수 3명)가 법률가인 데 견줘 크게 높은 수치다.

현병철 체제 인권위원은 대부분 ‘정부 쪽’ 변호사

그런데 현병철 취임 이전에 임명된 32명 가운데 68.8%(22명)는 시민사회단체 설립을 주도했거나 운영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반면 현병철 취임 이후 임명된 22명 가운데 시민사회 현장 경험이 있는 이는 7명으로 31.8%에 그친다. 현병철 체제 이전의 법조 출신 인권위원 13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6명은 변호사다. 대다수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 공권력에 의해 불법과 위법으로 내몰린 이들을 변호한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초대 인권위원장인 김창국 변호사는 검사 출신이지만 변호사 시절인 1987년 고 김근태 의원의 고문 사건과 1991년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을 맡았던 대표적 인권변호사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이흥록 비상임위원 역시 영화 의 배경이 된 부림사건을 변론한 부산을 대표하는 인권변호사였다. 여성 인권사에 남은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조영황 변호사는 3대 인권위원장이었다. 최영도 인권위원장, 유남영 상임위원, 윤기원 상임위원 등도 권위주의 정부 시절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도 입신양명 대신 가시밭길을 선택한 이들이었다.

반면 현병철 체제에서 임명된 변호사들은 인권과 밀접한 사안에 관여하긴 했으나, 공권력을 변호한 경우가 많다. 대법원장이 임명한 한위수 비상임위원의 경우,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 광우병 정정보도’ 사건에서 정부를 변호했다.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인터넷 언론사 대표의 헌법소원 사건에서도 인터넷 실명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쪽 변호사로 활동했다.
하지만 시국사건을 변론한 인권변호사 또는 권위주의 정부에 저항한 민주화운동 이력으로도 인권위원의 자격을 충족할 수 있었던 인권위 초창기를 넘어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인권위 출범 당시만 하더라도 법학자들 가운데 헌법 전공자 또는 시민사회운동가 출신이 인권 전문가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그나마 여성 인권위원의 경우 성폭력, 일본군 위안부 등 비교적 구체적인 여성 인권 경력을 지녔지만, 남성 인권위원들은 구체적 인권 분야의 경험보다는 참여연대 또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사회단체 출신이 대다수다.


직역만 따지는 기계적 다원성 넘어서야
인권 의제는 다원화되고 있다. 헌법적 기본권 보장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하지만, 아예 법적 권리 보장에서 제외되는 새로운 유형의 소수자가 생기는 것이다. 성소수자가 대표적이다. 장병권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성소수자는 여전히 한국 사회가 관용하지 못하는 유형의 소수자다. 최근 인권침해가 차별과 혐오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현병철 체제의 인권위가 한 일이 없다”고 했다. 장서연 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 위원장(변호사)은 “교도소 재소자, 외국인보호소 이주민, 에이즈 감염인 등 소수자의 인권은 개별 사건의 인권침해를 구제해주는 것보다 사회 전반적인 인권 문화를 증진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법원보다 인권위의 구실이 중요하다”고 했다.
따라서 인권위원 구성의 다원성 논의는 법조인이냐 아니냐와 같은 직역에 기반한 기계적 다원성이 아닌, 다원화하는 인권 의제의 고려에 기반한 ‘사회적 다원성’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남영 전 인권위 상임위원(변호사)은 “인권 의제가 생기는 곳은 법이 아니라 현장에 있다. 법 바깥에 있거나 법을 위반하는 과정에서 인권 의제가 생긴다. 그런 점에서 법률가 출신 인권위원이 지니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고 했다.
ICC도 ‘다원성 보강하라’ 권고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가 지난해 4월부터 세 차례나 한국 인권위의 등급 결정을 보류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성별 이외의 사회적 다양성 확보 때문이다. 지난해 4월 ICC가 보낸 결정문을 보면 세 가지 권고사항(△선출과 임명 △다원성 △기능적 면책 및 독립성) 중 다원성 부분에서 “다양성은 국가인권기구가 속한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인권 문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대처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까지 인권위원에 구현된 사회적 다원성은 장애 분야가 유일하다. 2007년 민주당이 한 차례 상임위원 추천을 철회하는 진통 끝에 추천한 최경숙 한국여성장애인연합 공동대표가 장애 당사자였다. 이후 민주당 추천 몫인 상임위원 자리는 장애 당사자이면서 여성인 사람으로 채워졌으나, 지난 3월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자리에 이경숙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를 추천해 명맥이 끊겼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성별 말고 다른 차원의 쿼터제를 기계적으로 두기는 쉽지 않다. 인선과 선출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공론화를 통해 이주민, 성소수자, 아동·청소년 등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분야의 인권 의제를 인권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고 했다.

진명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torani@hani.co.kr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만든  ‘국가인권위원장추천위’  5명이  답했다

인권위원의  자격은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뿐만 아니라 대법원장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추천권을 지닌 비상임 인권위원 2명도 8월 임기가 만료된다. 3명의 인권위원 교체로 인권위 혁신의 전기가 될 수 있었던 올해, 인권위원 자격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사회적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인권위원들을 발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여성, 장애, 성소수자, 노동, 아동·청소년, 북한 인권 등 각 분야의 인권옹호자들을 위촉해 꾸린 ‘제7대국가인권위원장후보추천위원회(위원장 유남영 전 인권위 상임위원)’다. 위원회가 발족한 7월20일, 청와대가 이성호 서울중앙지법원장을 인권위원장 후보자로 발표하면서 구체적 활동에 나서지는 못했다. 당시 위원으로 위촉된 이들에게 신임 국가인권위원의 자격에 대해 물었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 그냥 장애 당사자가 아니라 장애 인권 감수성을 갖고 현장에서 장애인의 차별적인 삶을 경험한 장애 당사자가 있어야 한다.
장병권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집행위원 연령, 성적 지향, 인종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인권위법을 근거로, 사회적으로 가장 심각한 차별 및 혐오에 노출된 분야의 당사자들이 인권위원으로 참여해야 한다.
김경빈 아수나로 수원지부 회원(고1 학생) 교육청 차원의 학생인권조례가 청소년 인권의 전부로 인식되는데, 학교 밖에 있는 청소년과 미취학 아동들까지 인권의 주체라는 점을 공론화할 수 있는 인권위원이 필요하다.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대표 인권 문제를 단순히 진정 사건의 해결로 축소하지 않고 인권침해 당사자들이 있는 현장에 밀착하는 인권옹호자로서의 인권위원이 필요하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에이즈 감염인인 동시에, 감염 이후 제때 치료받지 못해 시각장애인이 된 에이즈 인권활동가들이 있다. 다양한 소수자의 정체성과 감수성을 지닌 인권위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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