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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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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한 혐오표현 처벌? 차별금지법부터 만들라!

혐오표현을 의견 개진 아닌 선동 ‘행위’로 여겨 규제·처벌하고 있는 여러 나라들… 국회는 차별금지 관련 기본 입법도 포기했으면서 왜 ‘혐오표현 규제 입법’에 열 올릴까?
등록 2015-07-09 17:15 수정 2020-05-03 04:28

얼마 전 퀴어 퍼레이드와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언제부턴가 이런 행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손님이 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서울학생인권조례나 서울시민인권헌장의 제정 과정에서도 이미 그 위세를 과시한 바 있는 그 사람들이다. 그들은 동성애 반대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문화행사, 항의집회, 성명 발표, 신문 광고 등 민주주의국가가 허용하는 모든 언로를 활용한다. 이에 대항해 이들의 행위를 ‘혐오표현’이라고 콕 집어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범죄로 처벌받을 행위인데 더 이상 우리 사회가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주문이 뒤따랐다. ‘자유에 속하는 표현’과 ‘규제되어야 하는 표현’을 놓고 일대 격돌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드라지기 시작한 혐오표현 규제 논란

지난 6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흑인교회의 총기난사범인 ‘딜런 루프’는 백인우월주의자로 드러났다. 그가 들고있는 깃발은 인종차별의 상징인 남부연합기이다. AFP 연합뉴스

지난 6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흑인교회의 총기난사범인 ‘딜런 루프’는 백인우월주의자로 드러났다. 그가 들고있는 깃발은 인종차별의 상징인 남부연합기이다. AFP 연합뉴스

개념부터 확인해보자. 일단 ‘혐오범죄’(Hate Crime)와 ‘혐오표현’(Hate Speech)은 구분돼야 한다. 인종·종교·젠더·연령·장애·성적지향 등 차별 사유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혐오범죄는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고, 혐오표현은 선동적·모욕적·위협적 표현을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혐오범죄는 차별적인 증오·편견에 근거해 살인이나 폭행 등 ‘기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고, 그 사회적 해악이 크다는 이유에서 기존 범죄보다 가중처벌된다. 만약 퀴어축제를 물리적으로 방해하거나 폭행을 가하는 경우 혐오범죄의 문제가 되겠지만, 단순히 항의 시위나 문화제를 하는 것은 혐오표현의 문제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혐오표현이다. 이전에는 물리적 충돌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으나, 올해 퀴어축제에서는 부채춤, 난타, 발레 공연, 피케팅 등 ‘평화로운’ 방법의 반대운동이 펼쳐졌고 큰 충돌 없이 축제가 마무리됐다. 혐오표현의 온상으로 지적되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사이트의 여러 게시물들은 그 내용이 심각한 문제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말’에 머물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혐오표현이 혐오범죄로 진화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에 예의 주시할 필요는 있지만, 어쨌든 현재 수준에서의 문제는 주로 혐오표현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혐오표현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일단 국제적 차원에서는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의 선동이 될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증오의 고취는 법률에 의하여 금지된다”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0조 2항의 내용이 혐오표현의 규제에 대한 근간을 마련하고 있고, 이는 ‘인종차별 철폐 협약’ 제4조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된다. 유럽연합(EU)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혐오표현에 대한 ‘불관용’ 정책을 일관되게 취해왔고 ‘더반 선언’ ‘라바트 선언’ ‘표현의 자유와 평등에 관한 캠던 원칙’ 등 국제적 문서들도 혐오표현에 대한 문제의식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0조 2항에 대해선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미국 등은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을 이유로 그 적용을 유보하고 있다. ‘인종차별 철폐 협약’ 제4조 역시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영국, 미국 등에서 적용을 유보하고 있거나 제한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혐오표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에 국제적 합의 수준은 높지만, 각국에서 법으로 강행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가진 나라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국제 합의에서 ‘각 국가들은 혐오표현을 처벌하라’고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 의견 개진과 구분해야 할 ‘혐오표현’

또한 인종·종교적 혐오표현에 대해서는 ‘불관용’으로 의견이 수렴되고 있지만, 장애·여성·성소수자 등 다른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표현에 대해서는 온도차가 있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는 유럽에서는 인종적·종교적 혐오표현에서 혐오표현 문제가 출발했고, 다른 혐오표현에 대한 대책이 뒤따랐다. 전자가 먼저 자리를 잡은 반면, 후자는 지금도 발전 중인 것이다. 여러 국제 문서들이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는 평등과 차별 금지를 위한 조치이며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차별을 실질적으로 조장하는 표현은 단순히 말이 아니라 ‘행위’이기 때문에 차별적·적대적·폭력적 선동(Incitement)에 대한 처벌은 ‘인권적 관점’에서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동’의 해악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이를 단순한 ‘의견 개진’과 구분하는 것으로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혐오표현에 대한 국제적 논의가 발전해오는 사이, 각 국가들도 나름의 대책을 마련해왔다. 크게 나눠보면 ‘유럽의 길’과 ‘미국의 길’이 있다. 유럽 국가들은 대개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하는 쪽을 택했지만, 전통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불가침으로 여겨온 미국은 다소 다른 대책을 모색해왔다. 유럽 국가 중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하는 나라는 벨기에, 덴마크,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등 16개국이다. 특히 이 중 12개국은 한국에서 최근 문제가 된 동성애에 관한 혐오표현 처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개 단순한 의견 개진을 넘어서는 선동을 처벌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 둘 사이의 경계를 구획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프랑스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진술을 관련 법에 따라 처벌한 바 있고, 유엔에서도 이 처벌이 표현의 자유와 상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단순히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발언에 대해 처벌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영국은 공공질서법으로 인종이나 성적 지향에 대한 혐오를 자극하는 위협적·모욕적 표현을 처벌하고 있는데, 실제 처벌 사례들을 보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동성애 중단”(stop homosexuality)이라고 말한 전도사와 “동성애는 죄악(sin)”이라고 말한 목사가 무죄를 받은 사례도 있지만, 동성애에 대해 성경이 “혐오”(abomination)라고 말하고 있다고 한 목사는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맥락에 따라 판결이 엇갈리고 있어서 일관성을 찾기 어렵고, 당연히 당사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물론 영국의 공공질서법을 한국에 적용한다면 동성애 반대세력의 발언 중 일부가 처벌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혐오표현 하면 회사서 ‘징계’ 받는 미국

국내에서도 차별금지법안의 입법 움직임은 있었으나 보수계의 반발에 좌절됐다. 2013년 4월 국회가 차별금지법안을 철회하자 이에 항의하는 차별금지법안 찬성론자들의 모습. 한겨레 김정효 기자

국내에서도 차별금지법안의 입법 움직임은 있었으나 보수계의 반발에 좌절됐다. 2013년 4월 국회가 차별금지법안을 철회하자 이에 항의하는 차별금지법안 찬성론자들의 모습. 한겨레 김정효 기자

반면 미국은 혐오표현을 다른 ‘차별 행위’와 동일한 방식으로 다뤄왔다. 즉, 차별 시정 기구인 고용평등위원회나 기관 내 자율규제를 활용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고용 평등 차원에서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출신 국가, 장애, 연령 등 금지된 차별 사유에 근거한 괴롭힘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 이를 위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차별 시정이나 민사 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또한 미국의 회사나 대학 등에서는 ‘표현 강령’(Speech Code)을 제정해 내부 구성원들의 표현을 규제하는 경우가 많다. 혐오표현은 회사나 학교 차원에서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또한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포드, 스타벅스 등 미국의 유수 기업들은 동성애친화적인 정책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이런 기업에 다니는 직원들이 회사 내에서 동성애 혐오표현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요컨대, 혐오표현 처벌 법규가 없다고 해서 미국에서 혐오표현을 할 수 있는 자유가 무제한적으로 보장돼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에서도 혐오표현에 대한 나름의 대책이 마련돼왔다. 의외로(!) 국회가 혐오표현 문제에 대해 발 빠르게 대응해왔다. 2013년 여당 의원들 중심으로 인종 및 출생 지역을 이유로 한 혐오를 처벌하는 형법 개정안이 제출된 바 있고, 며칠 전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지역 감정, 종북 타령 등을 제재하겠다는 취지의 법안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국회가 혐오표현 문제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입법이 추진되는 맥락을 보면 미심쩍은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혐오표현 규제 입법은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 문제를 필연적으로 야기하기 때문에 정교한 정당화 논리와 세심한 입법 기술이 필요함에도, ‘강력한 처벌’이 담긴 화끈한 입법만 앞서가는 모양새다. 이런 식으로 추진되는 입법은 표현의 자유 전반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또 다룰 기회가 있겠지만, 이미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니 급한 대로 딱 한 문제만 지적하고 싶다. 주지하다시피 혐오표현은 소수자 ‘차별’에 대한 문제다. 그런데 한국에는 차별금지법조차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법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초보적인 수준의 차별금지법과 차별 시정 기구 구실을 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그나마 있는 법과 제도조차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현재 수준에서도 혐오표현에 대한 다양한 조치가 가능함에도 인권위는 요지부동이다. 유감스럽게도 국회가 이 문제를 집요하게 따지고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또한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하는 국가들에는 차별금지법도 있기 마련이다. 차별 문제를 다루기 위해 차별금지법을 마련해놓고, 더 나아가 차별을 조장하는 발언‘도’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쎈’ 입법보다 우선되어야 할 기본

한국에서 차별금지법 논의가 시작된 게 벌써 10년 전이다. 19대 국회에서도 차별금지법이 3건이나 발의됐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발의한 차별금지법 2건이 모두 ‘자진 철회’되는 불상사도 있었다. 소수자 차별 금지를 위한 기본 입법조차 포기한 정당에서 ‘혐오표현 규제 입법’을 시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혐오표현’이라는 표제하에 종북 타령 같은 이질적인 문제가 슬그머니 끼어드는 경우도 있고, 일제 찬양 행위에 대한 처벌 법규와 혼동하기도 한다. 뭔가 꼬여도 단단히 꼬여 있다. 일단 이 매듭부터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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