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식 제공에 한가할 때 지겹도록 스키 태워줍니다. 얼마 남지 않은 겨울 함께 즐기고 싶으신 분 전화주세요.” 스키를 지겹도록 탈 수 있다는 말에 홀렸다. 대학생 오아무개(22)씨는 경기도에 자리잡은 한 스키장으로 향했다, 방학 동안 목돈을 벌 꿈에 부풀어서. 그러나 그는 정확히 24시간 뒤,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야 했다.
스키장 현장에선 제대로 된 교육도, 보험도, 기본적인 근무환경도 없었다. “태어나서 스키장에 딱 두 번 가봤는데, 전문강사로 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오씨가 말했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스키 강습 프로그램에 오씨는 경악했다. 스키장에 몇 번을 가봤든 아르바이트생은 하루에 두세 번씩 강습을 하러 스키장으로 나가야 했다. 자격증은 필요하지 않았다. “완전 ‘야매’죠, 그냥 인터넷으로 기술 이름, 용어 같은 거 좀 보고 나가서 가르쳐주고 그래요.” 렌털숍에서 오씨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배아무개(22)씨가 털어놨다.
철저한 안전교육 없이 강습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스키장은 생각보다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광주 곤지암리조트 스키학교에서 스키 전문강사로 일했던 박아무개(22)씨의 말이다. “스키학교에서는 슬로프를 타고 올라가기 전에 안전교육을 반드시 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로 전화할지, 어디로 피할지 등의 기본적인 사항들을 숙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큰 사고가 나지 않아요.” 그럼에도 렌털숍의 ‘아르바이트생 강사’가 스키학교의 전문강사보다 인기다. 비용이 최고 50%까지 저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타임씩 스키 강습을 뛰어도 아르바이트생에게 떨어지는 인센티브는 없었다. “계약서를 보면, 강습을 네 타임 넘게 나가야 그다음부터 한 타임당 1만원을 준다고 돼 있어요. 한 타임은 2시간 수업이고요. 현실적으로 인센티브를 받기란 불가능해요. 하루에 8시간 일하는 걸로 계약된 상황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면 1만원을 더 준다는 얘기니까요. 안 주겠다는 거랑 똑같은 소리죠.” 배씨의 설명이다.
산재보험도 없었다. 강습을 나가는 아르바이트생이나 운전을 맡는 아르바이트생 모두 상황은 비슷했다. 렌털숍에서 차량 운전을 도맡아 했던 최인서(20)씨는 처음부터 보험을 제일 걱정했다.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는 차로 꼬불꼬불하고 비탈진 산길을 운전하는 게 두려웠다. 최씨에게 업주는 “차사고가 나면 가게를 팔아야 한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겁을 주곤 했다. ‘암표’를 사서 파는 것 역시 아르바이트생의 업무였다. 대학생 신분을 이용해, 업주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학생증을 제시해 리프트권을 할인된 가격에 끊어오라고 요구했다. 5만8천원짜리 리프트권을 2만9천원에 사오면 업주는 몇천원을 얹어 팔았다. 물론 아르바이트생에게 떨어지는 인센티브는 없었다.
“잠을 못 자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돈도 많이 주고 재미도 있을 것 같아서 지원했죠.” 최씨는 스키장 아르바이트가 ‘꿀알바’라고 믿었다. 다들 그랬다. 구인·구직 포털 사이트 ‘알바몬’이 최근 아르바이트생 1014명을 대상으로 ‘겨울철에 가장 하고 싶은 꿀알바’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스키장 알바가 5위에 올라 있다. 스키장 아르바이트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구인·구직 사이트 배너에서는 “겨울철 알바의 꽃, 스키장 알바”라는 문구가 반짝였다. 스키장 아르바이트 지원자의 대다수는 20대 초반이다. 특히 수능시험이 끝난 뒤 용돈을 벌려는 수험생이 많다.
최씨는 출근 첫날, 근로계약서에 지장을 찍었다. 그가 계약한 곳은 강원도 홍천 스키장 근처의 렌털숍이었다. 주 업무는 렌털숍 관리와 청소라고 했다. 스키복과 장비 등을 빌려주고 강습도 해야 했다. 한 달 기본급은 110만원, 운전을 맡으면 120만원이었다. 대학생인 최씨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큰돈을 쥔다는 생각에 두근거렸다. “새벽에 스키 강습을 나가면 한 건당 추가로 3만원씩 줄 테니 열심히 해.” 계약서의 항목들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하루 총근로시간은 8시간이고,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이 번갈아 주어진다고 적혀 있었다. 또 ‘새벽 근무자는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취침 및 휴게시간’이라는 문구도 따라붙었다.
하지만 계약서와 실제는 차이가 컸다. 렌털숍은 24시간 돌아갔다. 최씨를 비롯한 아르바이트생들은 하루 16시간 이상 일했다. 애초 계약 사항이던 휴게시간은 지켜지지 않았다. 24시간 내내 장비를 빌리러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건 온전히 그들의 몫이었다. “잠을 못 자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최씨가 말했다. 계약서상의 업무 마감 시간인 자정 이후에도 잔업은 이어졌다. 가게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숙소에서 쪽잠을 자다가도 아르바이트생들은 불침번을 서듯 돌아가며 카운터를 지켜야 했다. 많아야 하루 5시간, 보통은 3시간 남짓 잘 수 있었다. 깨어 있을 때는 카운터 옆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30분마다 꺼지는 난로에 불을 붙이며 몸을 녹였다.
하루 종일 피로감을 느꼈지만 손님이 있는 한 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최씨는 렌털숍에서 일한 10일 동안 단 1시간도 개인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손님이 있는데 휴식시간이라고 일을 안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눈치를 보면서 그냥 계속 일하게 되죠.” 배씨가 말했다. 손님이 없을 때라고 마냥 쉴 수 있는 건 아니다. 펜션 청소를 하고 개밥을 챙기는 것까지 아르바이트생의 업무였다.
잠을 자거나 밥을 먹을 때는 6명이 한 방에 들어앉았다. 방은 4평 남짓한 원룸. 10일 이상 한방을 썼던 6명의 평균 키는 180cm, 몸무게는 70kg대였다. 비좁은 방에서 새우잠을 자고 일어나면 피로가 더 쌓였다. 아침은 라면이나 냉동식품으로 때웠다. 점심은 그마저도 챙기지 못했다.
성수기가 끝나가며 손님이 줄자 사장은 임금으로 지급할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생들 중 최씨를 비롯한 3명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주말에만 나오든지 그만두든지.” 각자의 집에서 2시간 넘는 거리에 위치한 렌털숍으로의 출퇴근은 불가능했다. 사실상 해고 통보였다. 반발하고 언성이 높아지자 사장은 말을 잘랐다. “일하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나마 기회를 준 것인데 왜 트집이야. 선택권을 줬으니까 이건 부당해고가 아니야.” 결국 최씨를 비롯한 아르바이트생 3명은 쫓겨났다. “노동위원회 쪽이랑 통화를 해봤는데 민사소송 외에는 방법이 없대요. 그건 시간도 품도 너무 많이 드니까.” 최씨는 말끝을 흐렸다.
38만7096원. 하루 16시간, 10일간 노동한 최씨가 받은 대가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시간당 2400원꼴이다. 2015년 한국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5580원이다. 그들의 노동은 ‘겨울철 꿀알바, 스키장 알바’로 오늘도 불린다.
천다민 인턴기자 abeairy@gmail.com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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