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자신이 없어요.”
“책은 샀지만 읽을지는 모르겠네요.”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집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지음, 창비 펴냄) 발간 직후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은 아니었다. 기록하는 일도 쉽지 않다고 작가들끼리 입을 모을 때가 많았다. 녹취를 풀면서도 눈물이 흘러 몇 분 풀다가 자리를 비우고 서성대기 일쑤였다. 하지만 왠지 이런 반응 앞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은 아프고 눈물만 나는 책이 아니에요. 투쟁하는 이야기예요. 엄마들이 자신의 삶을, 세상을 바꿔내는 이야기로 읽히기를 바라요.” 단원고 희생자 2학년4반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노선자씨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 마음속 왠지 모를 억울함의 이유를 깨달았다.
지난 1월23일 금요일 밤 경기도 안산에서는 을 쓴 작가기록단과 구술에 참여한 열세 가족의 만남이 있었다. 이 책을 온몸으로 통과해온 부모님들의 책 발간 이후의 마음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건우 어머니는 유가족들의 이야기가 지닌 의미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을 풀어놓았다.
“어떤 사람들은 분향소에 들어가면 영정사진 속 아이 얼굴을 못 본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하나하나 찬찬히 봐요. 그 아이들을 기억해주고 싶어서. 그래서 이 책도 세세히 봤어요. 아이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요. 내가 오늘은 얘하고 친구가 되어서 이야기하고, 내일은 또 얘한테 이야기해야지. 이런 마음으로 끝까지 다 봤는데 제가 무서워하는 부분이 딱 한 군데 있더라고요. 배 안에서 있었던 상황. 마지막 순간들. 그게 너무너무 무섭고 상상도 하기 싫어서 제 생각 속에서도 도망 다닐 정도로 외면했어요.
근데 책 속에서 지성이 아빠가 한 얘기들, 해경이랑 어부들이 도착했을 때 아이들이… 창문에 대고 숨을 쉬었다는 거… 읽으면서 너무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앞을 가렸어요. 아이들 손톱이 다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막상 책으로 그 상황을 보는 순간 그게 우리 아이 같은 거예요. 내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 건우가 당하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겨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다 읽었어요. 그게 아이들에 대한 예의고, 우리가 기억해야 하고 알아야 하고 전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살아요. 모르는 사람들이 정말 너무 많더라고요. 이 책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 많이 갔으면 좋겠어요. 이건 눈물만 나는 책이 아니니까 꼭 보라고 주변에 얘기해주고 싶어요.”
작가기록단이 유가족들의 육성을 기록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진상 규명’이라는 말로는 다 포괄하지 못하는 참사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였다. 기억하겠다는 의지가 힘없이 사라지는 것은 그것이 구체적인 이해에 기반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하겠다는 약속이 땅에 뿌리내리기 위해 우리는 더욱더 많은 것을 알아야만 한다. 2학년5반 이창현 학생의 어머니 최순화씨의 말은 이 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저는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다 봤어요. 똑같은 상황을 겪었으니 분노나 그런 아픔들은 같지만 각각의 경우가 다 다르더라고요. 책을 못 보신다는 분도 있는데 저는 더 찾아봅니다. 왜냐면 아직 아홉 명의 실종자가 있어요.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금요일은 아니었지만 돌아는 왔거든요. 돌아오지 못한 아홉 명을 찾아야 하는 당면한 숙제가 있는데 알아야 할 건 알아야죠. 다들 어떻게 아팠는지를 알아서 또렷하게 기억해서 사람들에게 얘기해야 해요. 도대체 우리 가정에 뭔 짓을 했는지 낱낱이 파헤쳐서 다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성이 얘기가 제일 가슴이 아팠어요. 지성이 아빠를 볼 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일만 열심히 하시는데 그런 내용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아픈 얘기지만 더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에서는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직시할 때만이 얻게 되는 인식의 확장이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정의롭지 못한 고통 앞에 어떻게 부서지고, 맞서는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모양으로 생겨 있는지. 사람이 같은 사람을 어떻게 상처 주는지, 또 일어서게 할 수 있는지.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통해 배웠다. 그러니, 슬프고 아프지만 조금만 더 힘내서 그 이야기들을 듣고 읽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책을 이불에 싸놓은 동생
간담회에 참석한 2학년7반 이준우 학생의 어머니 장순복씨는 준우의 동생, 열다섯 태준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책이 집으로 오는 날 퇴근을 하니까 태준이가 나를 막 방으로 끌고 가요. 가봤더니 침대 위에 책이 든 박스를 이불에 싸놨더라고요. 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누가 멀리서 온다고 하면 아랫목에다 밥그릇을 그렇게 싸놓잖아요. ‘엄마 봐봐. 누가 볼까봐, 이게 어디 갈까봐 내가 이불에 싸놨어. 엄마 선물이야’ 그러더라고요. 왜 그랬니, 그랬더니 ‘엄마한테 제일 소중한 거 같다’고. 그 말을 하는데 그 쪼끄만 게 평소에 말은 잘 안 하지만, 얘한테 형아가 온 느낌이라고 할까… 그 마음을 같이 이야기하는 것 같더라고요.”
태준이의 마음처럼, 유가족들의 육성 기록 곳곳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절절한 사랑의 언어다. 지난 수개월간 유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가슴에 가장 크고 깊게 와닿은 것도 바로 그 ‘사랑’이었다. 바람에 날아갈까, 혹여 누가 보면 사라질까 싶을 만큼 소중하고도 소중한 이들을 뜨겁게 사랑한 이야기 말이다. 생전에 제대로 아껴주지 못한 회한의 마음조차도 사랑이었다. 그렇기에 이 기록은 유가족에게 아이의 기억을 담은 선물이면서 차마 펴들지 못할 가장 고통스러운 책이 되었다. 간담회에서는 책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려온다는 부모들의 통곡 어린 고백이 줄을 이었다.
“저는 책 표지를 보고 처음에 애들을 왜 이렇게 까맣게 해놨을까 싶어서 많이 울었어요. 막 울다가 보니까 애들이 아닌 거야. 이 사람들이 시민들이고 부모들이고 이런 거잖아요. 저는 책을 거의 못 봤어요. 표지만 봐도 너무 아파서 엎어놨다가 또 수건으로 덮어놨다가. 저는 읽어볼 마음도 없어요, 지금은. 누구는 나더러 비겁하게 물러난다고 하는데 그 말에는 동의할 수 없고… 언젠가는 읽어볼 수 있겠지만, 저는 애가 없는 것을 책자나 이런 걸로 받아보는 게 아직 너무 힘들고 아프더라고요.”(2학년10반 김다영 어머니)
“책 보고 가슴이 아려서 첫 장을 보고 울면서 덮었다가 다시 첫 장을 또 읽고. 그다음 장을 못 넘기겠더라고요. 저도 간담회를 따라다니기는 하는데 말은 안 해요. 그냥 옆에만 있다가 와요. 그래도 세희 아빠한테 그래요. 다음에 갈 때 시간 맞으면 나 좀 데려가라고. 그래야 나중에 우리 아이 눈 한 번 마주칠 거 같아서.”(2학년9반 임세희 어머니)
채 스무 해도 채우지 못한 어린 자식을 억울하게 떠나보낸 부모들은 여전히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과 슬픔 속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엄마들의 말 속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회피나 무기력이 아닌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절박한 몸짓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한마디도 못하더라도 간담회를 꼭 따라간다는 세희 엄마. 수건을 덮었다 책을 뒤집었다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책을 치우지 않고, 작가들을 만나러 나오는 다영 엄마. 각자가 가진 마음의 근력은 다르지만, 유가족들은 모두 직면한 현실 앞에서 애처로울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한 걸음 내딛는 것보다 꺾이는 무릎을 버티는 데 더 무진 애를 써야 하는 법이다. 이 몸부림 앞에서 나는 잊으라, 극복하라는 말이 얼마나 어리석고 못된 말인지를 깊이깊이 깨닫게 된다.
“지금도 자다가 눈을 뜨면 ‘그 상황’으로 들어가요. 배 속에서 아이들이 당하는 고통 상황. 저는 우리 아이를 안고 쓰다듬어줘요. ‘금방 끝나, 금방 끝나….’ 이런 상황을 계속 생각하면서 그 상황을 넘기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그때 있었으니까. (참사 직후) 3일 밤낮으로 그 상황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해주고 싶었어요.”
생각 속에서조차 도망 다닌다는 ‘그 상황’ 속에 건우 엄마는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감싸안는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기 때문에 아무런 힘조차 낼 수 없게 아프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도저히 힘을 낼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힘을 낸다. 그런 존재다, 사람은. 나는 유가족들을 만날수록 이들의 싸움이 결코 포기될 수 없는 성질의 싸움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지난 1월29일 안산에서 책 출간 뒤 첫 북콘서트가 열렸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있는 동네에서 열리는 자리라 유가족들은 불안과 기대를 함께 가지고 준비에 참여했다.
북콘서트의 마지막 순서는 안산 시민에게 보내는 유가족의 편지 낭독이었다. 글쓰기와 낭독을 맡은 2학년2반 이혜경 학생의 어머니 유인애씨는 무대 뒤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울지 말아야 하는데”라고 몇 번씩 다짐했다. 잠시 뒤 무대에 올라 침착하게 편지를 읽던 혜경 엄마의 목소리와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중요한 자리의 마무리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읽는 내내 그이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눈물과 싸우고 있는지 느껴졌다. 보고 있던 내 손이 꼭 쥐어졌다. 잘하고 있어요. 너무나 잘하고 있어요. 조금만 더 힘내요.
슬픔을 마주할 때, 이겨낼 힘도 난다
단정하게 인사를 마치고 무대 뒤에서 혜경 엄마는 아이처럼 팔을 벌리고 휘청거리듯 걸어와 작가들에게 안겼다. 그 순간, 서로 안아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렇게 안아주는 것이라는 걸, 새삼 깊이 깨달았다. 혜경 엄마의 말대로 유가족들은 치유약이 없는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들이 버티고 살아가게 할 수는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도 조금 더 슬픔을 마주할 수 있는 힘을 내게 된다.
박희정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깊이 읽기
고통을 마주하기
[%%IMAGE3%%]아픈 이야기를 좀더 수월히, 깊게 읽는 방법도 ‘함께 모여 읽는 것’이다. 4·16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하는 그날까지 을 함께 읽는 다양한 자리가 마련된다. 1월29일 안산에서 시작된 북콘서트는 2월5일 서울(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 2월9일 대구(아트팩토리 ‘청춘’), 2월28일 광주 등 전국 각지로 이어진다. 또한 2월13일 광화문 농성장에서는 박재동, 손문상, 최호철 등의 만화가와 함께하는 광장독서회가 열린다. 심리, 문화, 사회학자들과 함께하는 ‘고통을 마주하기: 깊이 읽기’도 2월27일부터 매주 금요일 3차례에 걸쳐 마련된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징검다리다.
[ 장소 ] 서울 프란치스코 회관 4층 [ 일시 ] 2월27일(금), 3월6일(금)), 3월13일(금) 오후 7시30분~9시
[ 주최 ] 창비, [ 문의 ] 창비(031-955-3356)
[ 2월27일 ] 최현정(트라우마 치유센터 ‘사람마음’ 상근활동가) [ 3월6일 ] 정원옥( 편집위원) [ 3월13일 ] 문강형준(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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