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공안 정국이 다가오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2014년 12월19일)을 기점으로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전방위적으로 행해질 조짐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다. 정부와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는 세력들이 마치 사회질서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발생시키는 것처럼 과장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반공’을 기치로 하는 보수적 담론이 대한민국을 뒤덮어버릴 기세다.
민변 변호사도 국보법 위반 수사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보수단체들은 통합진보당 당원 전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통합진보당이 이적단체인지, 당원들의 활동을 이적행위에 대한 동조로 볼 수 있는지 검토해봐야 한다”고 했다. 현재로서는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를 비롯한 당 핵심 지도부가 우선 수사 대상이지만, 추후 10만 명에 이르는 일반 당원에 대한 포괄적인 수사까지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일반 당원 가운데 공직에 있는 이들이 해고되거나 일반 직장인 당원들에게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사태는 헌법재판소 결정문에서 김이수 재판관이 밝힌 소수의견에서 예견된 바 있다. 김 재판관은 “이석기 등 일부 당원의 일탈행위를 이유로 통합진보당을 해산해버린다면, 이 노선과 활동을 지지해온 일반 당원들에게 사회적 낙인 효과를 가하게 될 것이다. 과거 독일에서 공산당 해산 결정이 이뤄진 뒤 다시 독일공산당이 재건되기까지 12만5천여 명에 이르는 공산당 관련자가 수사를 받았고 그중 6천~7천 명이 형사처벌을 받고 그 과정에서 직장에서 해고되는 등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우려를 제기했다. 그 우려가 이미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검경의 수사는 통합진보당뿐 아니라 정권의 치부를 드러내거나 정권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세력을 향해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최근 경찰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장경욱 변호사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장 변호사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에서 간첩으로 몰린 유우성씨를 변호해 무죄를 받아냈고, 이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의 간첩 증거 조작을 세상에 드러나게 한 인물이다. 경찰의 수사와 별개로 검찰은 그가 간첩사건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을 종용했다고 주장하며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를 신청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경찰은 시민단체인 ‘21세기코리아연대’ 회원 등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있으며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반발하는 집회 주최자들에 대해서도 처벌 가능성을 따져보고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공안 정국이 점점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통합진보당 고발건에 대해서도 검찰이 기존 태도와는 달리 굉장히 발빠르게 수사에 착수했다. 또 2015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여권은 선거 승리를 위해 종북몰이 등 ‘공안’으로 선거 프레임을 가져갈 공산이 크다. 2015년에는 이념적 갈등이 더욱 증폭될 우려가 훨씬 높아졌다”고 전망했다.
새누리, 4월 재·보궐 선거 때까지 공세 지속할 듯청와대는 이런 상황을 정치적으로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다음날인 2014년 12월20일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발언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보수층을 결집하면서 한편으로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국면을 전환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윤회 사태로 역대 최저로 떨어졌던 대통령 지지율이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소폭 반등한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봐도 이번 정당 해산 국면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박 대통령은 12월1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재미동포 신은미씨의 토크콘서트에 대해 ‘종북 콘서트’라는 단어를 사용해가며 “일부 편향된 경험을 북한의 실상인 양 왜곡·과장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윤회 사태’로 수세에 몰린 상황을 ‘이념 논쟁’을 통해 돌파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여당도 대대적인 종북몰이에 나설 태세다. 여당 지도부는 정권에 반하는 정치세력의 싹을 잘라내려는 시도와 동시에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공세를 가속화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2월22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집권만을 위해서 통합진보당과 연대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이제 종북, 헌법 파괴를 일삼는 낡은 진보세력들과 절연을 선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인제 최고위원도 “통합진보당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러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의 헌법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위협이 산재해 있다. 앞으로 새누리당이 이번 헌재 결정을 계기로 더 자세를 가다듬고 정통성과 정체성을 수호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공안 정국을 예고했다.
새누리당의 종북 공세는 적어도 2015년 4월 재·보궐 선거 때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 소속 지방의원의 의원직 박탈뿐 아니라 이미 국회의원직이 박탈된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피선거권까지 없애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현행법으로는 의원직을 상실한 통합진보당 의원이 다시 재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 당 김진태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을 종합해 당에서 통일적인 법안을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이런 추세라면 새정치연합 지자체장 아래에서 단체장이나 기관장을 맡아온 통합진보당 인사들뿐 아니라 이들에게 자리를 내준 새정치연합의 지자체장까지 공격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여당이 새정치연합과 통합진보당을 연결해 압박하는 행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 소속 지자체 산하 기관장 등의 경우도) 야권 연대가 끊긴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연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정치 공세가 시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종북몰이까지 하고 나면 뭐가 남지?이 모든 상황을 등에 업은 박근혜 대통령은 상승세로 돌아선 지지율을 지켜낼 수 있을까. ‘정당 해산’이라는 국면 전환용 초강수가 결국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은 없을까. 윤희웅 민정치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이렇게 진단했다. “안정성을 동반한 지지율 반등이라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수 성향층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종북·안보 이슈를 통해 단기적으로 보수층을 결집하는 효과는 가져왔다. 다만 이런 상승세가 국정 성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부적 이슈에 의해 잠시 동안 이뤄졌다는 점, ‘비선 실세 국정 개입’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한다는 점 때문에 이 국면이 지나고 나서 그 문제가 다시 이슈로 부각되면 또 한 번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통합진보당의 해산으로 종북몰이의 대표적인 소재가 소멸해버렸기 때문에 앞으로는 종북 메시지로 인한 상시적인 보수층 결집의 효과가 낮아질 수 있다. ‘정당 해산’이 상당히 엄격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국민들이 앞으로는 청와대에 더 높은 도덕적 기준 등의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로서는 부담도 함께 지게 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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