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통합진보당 해산을 둘러싼 법정싸움이 제2라운드에 돌입한다. 헌법재판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5명과 비례대표 지방의원 6명이 서울행정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과 ‘의원지위 확인소송’을 제기한다. 이들은 “헌재와 중앙선관위가 법률상 근거도 없이 국민대표 자격을 박탈했다. ‘권한 없는 자의 법률행위’로서 당연 무효”라고 주장한다.
우선 국회의원직부터 따져보자. 현행 우리나라 헌법이나 법률에는 헌재가 정당 해산을 결정할 경우 소속 국회의원 자격이 유지되는지, 상실되는지 규정이 없다. 과거에는 있었다. 1962년 제3공화국 헌법은 제32조에 국회의원은 “소속정당이 해산된 때에는 그 자격이 상실된다”고 규정돼 있었다. 그 법조문은 1972년 제4공화국 헌법부터 삭제됐다. 한국공법학회가 헌재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아 2004년 12월에 펴낸 ‘정당해산심판제도에 관한 연구’를 보면,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입법자의 의사가 이전의 명문 규정(의원직 상실)과는 반대로 바뀐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정당이) 해산되더라도 (국회의원) 자격을 상실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정당해산 결정에도 불구하고 원칙적으로 국회의원의 자격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삭제한 건 “입법자 의사가 반대로 바뀐 것”헌재가 2004년에 발간한 도 ‘의원직 유지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국회의원 자격은 국회의 자율적 결정 사항이므로 국회의 자격 심사나 제명 처분에 의해서만 상실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지된다.” 한국 헌법학계의 원로이자 보수 헌법학자인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도 에서 이런 견해를 밝혔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헌법 이론상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지 정당의 대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헌법상 무소속 입후보 금지 규정이 없고 무소속 입후보가 선거법상 허용돼서다. 김 교수는 2013년 9월6일 인터뷰에서 진보당 해산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의원직 상실에 관해서는 국회 자율권을 강조했다. “헌법이나 선거법, 정당법 등에 명시적 규정은 없지만 비례대표·지역구 의원 모두 국회가 자율적으로 제명 조치해야 한다.”
그러나 헌재는 2014년 12월19일 진보당을 해산하면서 김미희, 김재연, 오병윤, 이상규, 이석기 등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을 선고했다. 헌재 재판관 8명이 동의한 다수 의견은 “정당해산 결정의 실효성을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만일 해산되는 위헌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의원직을 유지한다면 그 정당의 위헌적인 정치이념을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서 대변하고 이를 실현하려는 활동을 계속 허용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정당이 존속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온다.”
지방의원에 대해서는 중앙선관위가 뒤집어이러한 헌재 결정이 위헌·위법적이라며 최용기 창원대 교수(헌법학)는 헌재 재판관 8명의 탄핵소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청원했다. 최 교수는 “우리 헌법은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국회의원의 자격 심사는 국회만 하도록 돼 있는데 헌재 재판관이 국회의원의 신분을 박탈했다”고 지적했다. 헌법 제64조를 보면, 국회가 의원의 자격을 심사하고,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제명하며, 이 처분을 법원에 제소할 수 없다고 돼 있다.
그럼에도 헌재가 국회의원직 상실을 선고한 근거는 1952년 10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사회주의제국당(SRP) 위헌 결정이다. 당시 독일 연방헌재는 “정당의 위헌성이 확인되면 그 정당 소속 의원의 연방의회·주의회 의원직은 상실된다”고 판단했다. 진보당 해산을 청구한 법무부는 우리 헌법과 법률이 독일 등 대륙법계를 토대로 제정됐으니까 독일 연방헌재의 판례도 그대로 인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의원은 제외하고 국회의원만 의원직 상실을 헌재에 청구한 것도 이 독일 판례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의원직 상실을 선고하면서 지방자치단체 의원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본질적으로 정치적 결정이 이뤄지는 곳이 아니라 행정적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국회의원에 한해 의원직이 상실된다고 합리적으로 해석함이 상당하다.”(법무부 2014년 1월7일 준비서면 351쪽)
법무부의 “합리적 해석”을 중앙선관위가 뒤집었다. 헌재 결정 사흘 뒤인 12월22일 중앙선관위는 옛 진보당 소속 비례대표 지방의원 6명(광역 3명, 기초 3명)의 의원직 상실도 선언했다. 지역구는 법률상 신분 규정이 없지만, 비례대표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퇴직해야 한다고 했다. 선거법 제192조 4항을 보면, “비례대표 국회의원 또는 비례대표 지방의원이 소속 정당의 합당·해산 또는 제명 외의 사유로 당적을 이탈·변경하는 때에는 퇴직된다”고 돼 있다. 법 조항 그대로 해석하면 정당이 해산되더라도 비례대표는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하지만 중앙선관위는 “이때 해산은 자진해산을 의미한다. 위헌정당에 대한 헌재의 해산 결정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선거법 제192조 4항은 1992년 제14대 총선 이후 탄생했다. 당시 공천에서 탈락한 일부 후보자가 다른 당으로 당적을 옮겨 비례대표로 뽑혔다. 하지만 이들은 당선 직후 원래 소속 정당으로 돌아가버렸다. ‘철새 정치인’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비례대표가 임의로 당적을 이탈·변경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 조항이 생겼다. 이 규정은 지방의원뿐 아니라 국회의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철새 정치인’에 대한 조항을 똑같이 적용
옛 진보당 쪽 법률대리인단의 이재화 변호사는 “선거법 제192조는 비례대표 의원이 임의로 당적을 이탈·변경하면 의원직을 박탈한다는 취지이지, 중앙선관위에 정당해산에 따른 후속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규정이 아니다. 선관위의 행정처분은 권한 없는 기관이 한 것이므로 당연히 무효다”라고 주장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헌법학)도 “월권행위”라고 비판했다. 첫째, 후속 조치가 아니다. 후속 조치란 현상을 확정하는 것이지 새로운 법률적 관계를 형성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정당해산 결정은 중앙정치의 문제다. 지방정치는 정당이 관여한다 하더라도 주도적 결정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고 봐야 한다. 셋째, 비례대표와 지역구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투표 방식이 1인1표제가 아니라 1인2표제이기 때문이다. 비례대표도 지역구 대표처럼 똑같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는데 그들만 쫓겨나야 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헌법학)는 “헌재나 중앙선관위의 결정은 헌법 제11조 평등원칙에 위반된다.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비례대표와 지역구 대표를 차별해 취급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 앞으로 또 다른 법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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