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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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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책임 추궁을 하냐고요?

2005년 발생한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의 유가족에게 듣는 사고 이후…
거대한 슬픔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안전에 대한 논의와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 확산돼
등록 2014-12-17 15:30 수정 2020-05-03 04:27

거대한 슬픔을 넘어서는 인간의 힘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슬픔을 통해 얻은 교훈을 사회에 새겨넣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새로운 제도’일 수도 있고, ‘새로운 정신’일 수도 있다. 4·16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는 말은 단순히 사건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자는 말을 넘어선다. 타이타닉 침몰사고를 겪은 뒤 해상인명안전협약(SOLAS)이 생겨나고,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뒤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했듯이, 우리에게도 4·16 이후를 상징하는 제도와 정신이 필요하다.

절망 속에서 시작한 ‘기업벌 공부모임’

“왜 책임 추궁을 하려고 하냐면,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로 당시 23살이던 큰딸을 잃은 오모리 시게미(65)의 말이다. 그는 현재 ‘기업벌 공부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 2005년 4월25일 발생한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는 기관사를 포함해 107명이 사망한 대형 사고다. 제한속도가 70km/h인 곡선 구간에서 116km/h로 과속해 진입한 것이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좀더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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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사가 왜 무리한 과속을 했을까’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서일본 여객철도(JR서일본)의 기업 체질이 도마 위에 올랐다. 빡빡한 운행시간표, 이를 지키지 못했을 경우 받게 되는 인격모독적 징계가 그 원인이었음이 드러났다. 사고를 낸 기관사는 사고 직전 정차한 역에서 정차 위치를 지나쳤다 돌아가느라(오버런) 정해진 운행시각에서 1분20초 정도 지연된 상태였다. 이미 ‘일근교육’이라는 징계를 세 차례나 받았던 기관사는 차장과 통신하며 오버런 거리를 단축해 보고해달라고 부탁하는 데 정신이 팔려, 속도를 줄이는 것을 잊었다.

사고의 책임을 물어 현직 사장이 법정에 섰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고의 예견 가능성’이 유무죄의 중요한 기준이다. 사장의 기업 운영 방식이 1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것을 확실하게 예견했을 때만이 유죄가 된다. 결국 현직 사장은 무죄판결을 받게 된다. 이에 납득하지 못한 유가족들은 검찰심사회의 강제기소제도를 통해 역대 사장 3명을 다시 기소한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아마 무죄가 선고될 것이다. 법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산재 사망사고에 초점을 맞췄던 기업살인법의 범위를 확장하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세월호 참사는 기업이 이윤을 위해 안전 책임을 방기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를 보고도 다른 기업들이 경각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저들은 운이 안 좋았지’ 생각하리라는 점이 문제였다.


현행법으로는 대기업에 제대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이들이 시작한 것이 바로 ‘기업벌 공부모임’이다. 유가족 5명과 아베 세이지 간사이대학 교수(사회안전학), 야나기다 구니오라는 저명한 논픽션 작가가 제안자였다. 2014년 3월부터 11월까지 총 다섯 차례 진행했고 기업처벌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교수, 다른 대형 사고의 재판을 담당했던 변호사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앞으로도 두 차례의 추가 검토 이후, 법 개정 운동에 나설 계획이다.

4·16 이전과 이후,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을 통해 한국에도 몇 차례 ‘기업살인법’(기업책임법)이 소개됐다. 한국에선 산업재해 사고를 줄이기 위해 기업살인법이 처음 검토됐다. 당연한 일이다. 2012년 기준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전세계에서 압도적 1위일뿐더러 그 비율은 전혀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12월5일 일본 오사카에서 만난 아베 교수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해 일본과 한국의 재해 발생 건수와 사망자 수(2012년 기준)의 비교표를 만들어 보여줬다. 그는 자동차사고와 해양사고뿐만 아니라 산재사고를 특별히 언급했다. 일본 인구의 절반인 한국에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 수는 6배를 웃돌고 있었다(그래픽 참조).

기업살인법의 필요성을 제기한 노동조합과 사회운동단체들은 1990~2000년대 캐나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기업살인법이 도입되는 것을 지켜보며 아이디어를 얻었다. 노동자 사망에 대한 강력한 책임을 묻는다면, 기업이 안전 규제를 준수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운동은 현재 법안으로도 만들어졌는데,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산재사망 가중처벌법’이 대표적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산재 사망사고에 초점을 맞췄던 기업살인법의 범위를 확장하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세월호 참사는 기업이 이윤을 위해 안전 책임을 방기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를 보고도 다른 기업들이 경각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저들은 운이 안 좋았지’ 생각하리라는 점이 문제였다. 강력한 기업 처벌이 없는 한국에서 기업들은 ‘당연히’ 대형 사고를 부를 수 있음을 알고서도 비용 절감을 위해 규정을 위반하거나 자신의 의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현재 세월호참사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를 중심으로 기업살인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내년 초에 초안이 제출될 예정이다. 지난 12월2일에는 민주노총이 주최한 ‘안전한 일터 안전한 사회 만들기 국제심포지엄’에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기업과실치사법 제정을 주도한 노동조합이 방문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윤 앞에 안전을 방기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이 이제 곧 시작될 것이다.

기업살인법이 기업의 책임을 무겁게 물음으로써 사고 재발을 막으려는 목표를 갖는다면, 4·16 이후 인간의 존엄과 안전을 위한 사회정신은 어떠해야 하는지 논의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 중이다. ‘4·16 존엄과 안전을 위한 인권선언운동’이 그것이다.

12월10일 ‘세계 인권의 날’에 제안된 4·16 인권선언운동은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존중하겠다는 선언을 통해 ‘사회적 약속’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4·16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라고 질문을 던지며 ‘어떻게’를 구체화하는 과정을 인권선언운동으로 만들어가자는 취지다.

참사와 재난의 피해자와 생존자의 증언으로

이 운동의 제안자들은 재난안전가족협의회,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을 비롯해 인권단체와 노동안전운동단체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왔다. 이전 참사의 유가족들은 슬퍼할 권리도, 분노할 권리도 없었다고 증언한다.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로 인해 자신이 죽어가는데도 그 물질이 무엇인지조차 알 권리가 없었다고 피해 노동자들은 증언한다. 이렇게 참사와 재난의 피해자와 생존자의 증언을 직접 들으면서 권리 목록을 작성할 계획이다. 선언 초안은 내년 4월에 발표되며, 이후 1년간 토론 간담회를 304회 열어 선언을 다듬고 확인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재난공화국’이라는 오명 속에서 단 한 번도 사람의 존엄과 안전을 재확인하는 사회적 작업을 펼친 적이 없다. 참사는 항상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를 보여줌에도, 대책은 그중 일부 분야에서만 마련됐다. 그나마도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 또다시, 304명의 우주를 잃은 뒤 한국에서 시작되는 이 작업이 성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우리 사회에 새겨넣을 수 있을까? 우리 앞에 던져진 과제다.

박상은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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