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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자유이용권’ 준 대법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영자의 판단 존중해야 한다”는 대법원,
노동자 손 들어줬던 원심 파기해
등록 2014-11-19 14:25 수정 2020-05-03 04:27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11월4일부터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2천배를 올렸지만 대법원은 13일 정리해고의 허용 범위를 넓히는 판결을 내렸다. 박승화 기자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11월4일부터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2천배를 올렸지만 대법원은 13일 정리해고의 허용 범위를 넓히는 판결을 내렸다. 박승화 기자

정리해고는 회사를 살리는 최후의 수단이다. 노동자가 잘못 없이 쫓겨나는 상황이니까 그 허용 요건이 엄격하다. 근로기준법 제24조를 보면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를 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돼 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에 대해 대법원은 두 가지 정리해고 요건을 충족한다고 인정했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지난 11월13일 쌍용차 해고노동자 감아무개(40)씨 등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노동자 쪽 손을 들어줬던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2009년 당시 정리해고를 할 수밖에 없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다. 당시 회사가 해고 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이와 다르게 판단한 원심은 법리를 오해하거나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파기환송심은 서울고법에서 다뤄지며 대법원 판결 취지를 대부분 수용한다.

쟁점1.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나

2009년 2월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한 쌍용차는 같은 해 5월 회생계획안을 짜면서 전체 인력의 37%에 달하는 2646명의 정리해고를 결정했다. 당시 회사 쪽은 스포츠실용차(SUV)에 대한 세제 혜택 축소로 매출이 급감한데다 경유 가격이 급등하고 국내외 금융위기로 경영상 어려움이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정리해고를 하지 않았으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었다며 회사 쪽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지난 2월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쌍용차가 경영상 위기를 부풀렸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존 차종은 2009년 또는 2010년 단종을 전제로 예상 매출 수량을 추정하면서 신차는 2013년까지 하나도 출시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유형자산 손상차손(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이 과다하게 계상됐다.” 대법원은 항소심의 판단을 배척하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래에 대한 추정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다소 보수적으로 이뤄졌다 해도 합리성을 인정해야 한다.”

쟁점2. 해고 회피 노력을 다했나

쌍용차가 2009년 4월 노동자 3명 중 1명꼴(2646명)로 구조조정을 통보하자 노조는 경기도 평택공장 등을 점거해 파업에 들어갔다. 6월에는 1666명이 희망퇴직 등으로 퇴사하고 나머지 980명이 정리해고됐다. 8월 노사 합의를 통해 해고자 815명을 무급휴직, 희망퇴직, 영업직 전환 처리하고 최종적으로 165명이 해고됐다.

항소심은 쌍용차가 해고 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정리해고 전에 무급휴직 등 조처를 취하지 않았고, 정리해고 이후에야 시행한 점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 항소심은 “대기업은 일반적으로 중소기업보다 능력이 크기 때문에 해고 회피 노력도 더 많이 요구된다. 회사가 인원을 감축한다 해도 근로자의 3분의 1을 상회하는 대규모 인원 감축이 필요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판단 또한 대법원이 배척했다. △무급휴직 조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시행한 것이고 △부분휴업, 임금동결, 순환휴직, 희망퇴직 등의 조치를 실시한 만큼 해고 회피 노력을 다했다고 했다. 대법원은 특히 “필요한 인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잉여 인력은 몇 명인지 등은 경영 판단의 문제”라고 못박았다. 회사 쪽에 ‘해고 자유이용권’을 선물한 셈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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