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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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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레스토랑, 막다른 길에 서다

SNS 등 통해 유명해진 이색 푸드트럭…

규제개혁 대표 사례라지만 영업 장소 허가 등 시급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등록 2014-11-11 19:13 수정 2020-05-03 04:27
청년 창업가들에게 푸드트럭은 창업 전의 리트머스시험지로 활용된다. 소셜네트워크와 더불어 진화하고 있는 푸드트럭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11월6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푸드트럭에서 손님들이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모습. 정용일 기자

청년 창업가들에게 푸드트럭은 창업 전의 리트머스시험지로 활용된다. 소셜네트워크와 더불어 진화하고 있는 푸드트럭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11월6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푸드트럭에서 손님들이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모습. 정용일 기자

어둑한 뒷골목에서 풍겨오는 트러플(송로버섯) 오일의 향긋함, 한강을 자전거로 달린 끝에 만나는 메밀 소바의 산뜻함, 새벽녘 클럽에서 몸을 부대끼다 나와 즐기는 일본 라멘의 든든함까지, 요즘 가장 ‘핫한’ 레스토랑은 길 위에 있다. 모두 푸드트럭에서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다. 호떡·떡볶이·꼬치 요리에 머물렀던 길거리 음식의 단조로움을 넘어, 최근엔 20~30대 젊은 셰프들의 도전이 뒷골목 곳곳을 달구고 있다.

“어제 영업을 못했기에 오늘 메뉴는 어제와 동일하게 나갑니다. 든든히 챙겨 입고 놀러와주세요.” ‘모바일키친’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고객과 쉴 새 없이 소통한다. 젊은 사장 이천호(28)씨는 손님이 헛걸음할 경우를 대비해 늘 인스타그램에 그날의 영업 일정을 올려둔다. 고객들의 반응은 즉각적이다. “뱅쇼(뜨겁게 데워 마시는 와인의 일종) 한 잔 예약하고 싶어요.” “겨울을 느껴야겠네요! 담요라도 들고 갈까요.”

SNS가 선물한 푸드트럭의 낭만

외식경영을 전공한 이씨는 스무 살 때부터 양식 레스토랑 등에서 6년여를 조리사로 일한 준베테랑이다. 지난 9월 중순 서울 홍익대 앞에서 푸드트럭 영업을 시작해, 연남동에 자리를 잡았다. 파스타를 중심으로 수프나 브루스케타(이탈리아식 오픈 샌드위치) 등 간단한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다. 주로 인근 상인들이 문을 닫은 일몰 이후에 차를 몰고 나와 자리를 잡는다. 영업할 자리에 누가 주차라도 해두면 그날 장사는 공치는 거나 마찬가지다.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가게’에 대한 꿈을 갖는다. 올해 초 이씨도 본격적으로 창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남의 가게’ 생활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대료 부담과 리스크가 너무 컸다. 마침 ‘푸드트럭 합법화’ 관련 보도를 봤다. 1천만원 안팎의 적은 돈으로도 창업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트럭 앞에 옹기종기 모여봐야 4명이 간신히 앉을 수 있는 자리에서 저녁 장사만 하는데도, 꾸준히 찾는 발길들이 있다. SNS의 도움이 아니라면 어려운 일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매일 조금씩 바뀌는 메뉴와 장소, 영업 시간을 게시하면 손님들은 예약을 하거나 오늘 찾아오겠다는 댓글을 남긴다. 웬만한 이탈리아 레스토랑보다 신선한 재료에 잘 삶아진 파스타를 1만원 이하의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어, 벌써 단골이 꽤 생겼다.

SNS를 통해 협업을 제안해오는 점포도 있다. 모바일키친이 카페 마당에 주차하고 먹거리를 팔면 카페는 마실거리를 팔아 윈윈하는 방식이다. “푸드트럭으로선 장소 문제를 해결하고 카페는 새로 손님을 끌어오는 효과를 거둘 수 있지요.”

온라인에서의 소통은 오프라인에서도 이어진다. 혼자 찾아도 셰프와 수다를 나누며 식사할 수 있다는 점도 ‘독거남녀’들에게 푸드트럭이 인기를 얻는 이유다. “연남동이 대학생·직장인 등 1인 가구가 많은 동네예요. 그런데 밤중에 혼자 맛있게 식사를 즐길 만한 곳은 많지 않거든요. 주로 야근을 끝낸 직장여성들이 많이 찾고 있어요.” 이천호씨의 설명이다.

이씨의 경우처럼, 단순히 종잣돈이 부족해서 청년 창업가들이 푸드트럭을 모는 것만은 아니다. 이들에게 푸드트럭은 마케팅의 전초기지다. 많은 푸드트럭이 서울 홍대 앞, 이태원 등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지만 ‘피버제작소’의 김유민(29)씨는 고향인 전북 전주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호텔조리를 전공한 김씨와 동업자 심규련(29)씨는 실력 있는 파스타집이 드문 전주에서 고급 파스타로 승부를 내고 싶었다.

충분한 상품성으로 넘지 못한 현실

별도로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트럭은 손님을 만나는 ‘팝업 레스토랑’(셰프가 반응을 보기 위해 일시적으로 공간을 빌려 운영하는 식당) 개념에 가깝다. “요리사들은 주방과 홀이 분리돼 있어 손님과 소통할 기회가 없어요. 여기선 음식을 내주고 곧바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서 실험적인 메뉴를 시도할 수 있어요.” 이들의 경쟁 상대는 일반 매장이다. 가격도 싸지 않다. 1만3천원의 버섯크림파스타에는 일반 올리브오일 대신 값비싼 트러플오일을 넣었다. “길거리에서 먹는다고 해서 값싼 음식을 제공하기보단, 맛있는 음식에 적정 가격을 내고 즐길 수 있도록 음식문화를 끌어가고 싶어요.”

서울 상수동 뒷골목에서 영업을 해온 푸드트럭 ‘밀라노익스프레스’의 젊은 운영자들은 이력이 화려하다. 기획 등을 맡고 있는 대표 채명진(25)씨는 미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요리를 맡고 있는 28살의 셰프는 스위스에서 호텔경영을 공부했다. 두 사람이 모두 이탈리아에 거주하던 시절 즐겨 먹던 샌드위치 ‘피아디나’를 첫 메뉴로 삼아, 최근 파스타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올해 초 학업을 마친 채씨는, 지난해 군 복무 시절부터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다. 밀라노익스프레스라는 상호 아래 케이터링·파티 기획 등을 함께 진행하며 식당도 열 계획이었다. “브랜드 이미지를 쌓아 팬층도 만들고 우리만의 스토리도 만들어가는 거죠.” 채씨를 비롯해 4명의 친구가 공동창업을 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거나 취직을 포기했다. 미국에서 지낸 채씨가 볼 때 푸드트럭은 상품성이 충분했다. 다만 한국의 현실은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 8월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의 하나로 푸드트럭이 합법화되면서 푸드트럭 창업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그러나 푸드트럭 운영자들은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제한적 합법화’라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밀라노익스프레스 제공

지난 8월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의 하나로 푸드트럭이 합법화되면서 푸드트럭 창업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그러나 푸드트럭 운영자들은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제한적 합법화’라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밀라노익스프레스 제공

미국에서 시작된 푸드트럭의 전통은 18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 따르면 로드아일랜드의 한 지역신문사 앞에서 월터 스콧이라는 남성이 개조한 왜건을 세워두고 야근하는 기자들에게 샌드위치와 커피를 판 것이 푸드트럭의 시초다. 한국처럼 인구밀도가 높지 않은 미국은 여러 지역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각종 축제를 장식하는 푸드트럭이 발달하기에 알맞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엔 소자본 아이디어 마케팅 방식으로 폭발적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해 이미 산업 규모가 1조원대에 이른다. 전국 푸드트럭 최강자를 가리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영되는가 하면, 식도락가들의 천국으로 꼽히는 뉴욕 맨해튼에서도 푸드트럭의 이색적인 먹거리를 경험하기 위해 길게 줄 선 이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됐다.

합법·불법 중간지대에 선 푸드트럭

정부는 이같은 점을 들어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푸드트럭 합법화를 ‘손톱 밑 가시’를 뽑아주는 대표 정책으로 내놓고 적극 홍보해왔다.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화물차를 푸드트럭으로 개조하는 걸 허용하고 유원지에서 푸드트럭 영업을 허용하는 것이 뼈대다. 정부는 관련 규제가 사라지면 6천 명의 신규 고용이 창출되고 약 2천 대가 개조돼 400억원의 부가가치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합법화 소식에 소자본 창업을 준비하던 이들의 관심도 자연히 푸드트럭에 쏠렸다. 그러나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푸드트럭 운영자는 “지금은 합법과 불법의 중간지대에 서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합법적으로 푸드트럭을 운영하기 위해 가스안전 검사 등 차량 구조 변경과 관련된 허가는 받았지만 이는 ‘절반의 허가’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 영업을 위해 필요한 휴게음식점 신고는 푸드트럭 허가 구역인 유원지·도시공원과 장소 협의를 해야 가능했다.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전국의 유원시설은 355곳이지만 그 가운데 푸드트럭을 사용하겠다고 밝힌 시설은 22곳에 지나지 않는다.

장소 허가를 받기 위해 인근 공원에 연락해봤지만 담당자는 “아직 위에서 내려온 이야기가 없다”는 말만 거듭했다. “구조 변경 허가를 받는 데만 담당자와 전화 통화를 하고 3주가 걸렸는데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막히더라고요.”

‘장소’ 문제는 푸드트럭 운영자들이 공통적으로 부딪히는 장벽이다. 식당 창업을 준비하다 푸드트럭 합법화 소식을 듣고 지난 10월부터 경기도 성남에서 토스트 트럭을 운영하고 있는 정성근(34)씨의 기대는 트럭을 몰고 나온 둘쨋날에 곧 깨졌다. “장사를 마치고 들어와서 시동을 끄고 차 안에서 울었어요.” 식음료업계에서 뜨내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양식조리사 자격증도 있고, 수제버거 업체 등에서 관리자 일도 해왔다. 자신이 있었고 메뉴 연구도 했다. 문제는 장사를 시작하긴커녕 차를 둘 곳조차 찾기 어렵다는 데 있었다.

떠돌아다니기만 하다 이틀이 흘러가버렸다. 이미 번화가가 된 곳은 발도 붙일 수 없었다. 구청 단속이 뜨면 장사고 뭐고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자괴감을 느꼈어요. 자기만의 시간을 운용할 수 있고, 여행하듯 떠다니며 팔 수 있으니 낭만도 있을 것 같지만 여기도 전쟁이거든요.” 요령이 생겨 지하철역에서 출근길에 토스트를 팔며 아침 장사를 이어가고 있지만 오전 10시 이후에 갈 곳은 아직 막막하다. 정씨가 말했다. “규제가 완화되면 괜찮을 것 같아서 시작한 건데 현실은 전혀 아니더라고요. 누가 시작한다고 하면 말릴 것 같아요.”

뽑다 만 가시가 더 아프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마련이다. 기존 노점 및 점포와의 형평도 풀어가야 할 문제다. 소규모 식당, 푸드트럭, 노점상 간의 무한경쟁은 정부의 장밋빛 전망에서 고려된 바 없다. 한 푸드트럭 운영자는 “기존 자영업자들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미국처럼 반경 몇백m 안에 같은 업종의 노점이 들어서지 못하게 한다든지 정부기관이 조정해주면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미국의 경우, 푸드트럭 등 이동식 음식 판매상에 판매세를 매겨 관리하고 있다.

전국노점상총연합은 지난 4월 정부의 푸드트럭 규제 완화 방침이 발표되자 “트럭에서 과일을 팔면 불법이고, 트럭에서 음식을 조리하면 합법이라는 것이 말이 되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생존권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푸드트럭 제조업자 입장에서 정책이 나오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반발했다. 강남구청은 지난 10월17일부터 경비용역을 동원해 강남대로의 노점상을 철거하고 있다. 손톱 밑 가시도 제대로 뽑지 못한 채, 누군가의 삶은 뭉텅 뽑혀 나가는 것을 정부는 지켜보기만 할 것인지 의문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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