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의미는 아시죠? 아빠, 엄마와 아이!”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족에 대해 가르친다. 다큐멘터리 영화 (2012) 속 장면이다. 지민과 철은 동거 중이다. 임신을 했지만, 고심 끝에 비혼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러한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출생신고 때 ‘혼외자’라고 표시된다. 더구나 아기는 선천적 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저소득층에게 지원해주는 수술비가 절실했으나, 결혼하지 않은 부모에겐 줄 수 없다고 했다. 1인 가구, 동거 커플, 한부모 가정….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따로 또 같이 생활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여기,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과 10년 이상의 세월을 함께 살아온 남녀 4명이 있다. 이들의 동반자는 혼인신고가 가능한 이성, 혼인이 허용되지 않는 동성, 성애적 관계가 아닌 친언니까지 다양했다.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는 여전히 결혼 밖 다양한 가족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정도는 다르지만 4명의 남녀는 뜻하지 않은 차별을 경험해왔다. 대면 인터뷰를 바탕으로 ‘남의 집’ 사정을 재구성해보았다. _편집자
함께 살고 있는 4살 아래 애인을 나는 짝꿍이라 부른다. 우리가 교제를 시작한 건 월드컵 열기가 들끓던 2002년이었다. 2년 뒤 내가 ‘같이 살자’고 꾀었다. 급전이 필요했는데, 돈이 나올 구멍은 월세 보증금뿐이었다.
나에게 결혼은 꼭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몸져누운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생계를 꾸렸다. 아버지는 고생뿐인 아내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욕을 하거나 때리는 모습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결혼해 화목하게 산다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대학 입학 뒤 사회운동을 하는 선배들을 보며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서도 집안일을 나 몰라라 하는 선배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남을 위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다행히 짝꿍도 비혼 의사를 받아들여주었다.
우리 사이가 늘 한결같았던 건 아니다. 시민단체에서 일했던 2006년부터 몇 년간은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만났다. 몇 번이나 이별 통보가 날아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함께였다. 언젠가 짝꿍은 다른 이성에게 눈을 돌린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나도 그러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결혼으로 묶여 있지 않아서, 함부로 다른 이성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이나 시선이 불쾌하다. 아는 형님은 “요즘 유부남에겐 애인 있냐고 물어보는 게 아니라, 몇 명 있냐고 물어야 해”라고 하신다. 접대를 빌미로 룸살롱에 드나드는 유부남이 태반이다.
팔순이 넘은 어머니는 한동안 ‘네가 장가만 가면 소원이 없다’고 읍소하셨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으니, 결혼에 대한 집착은 거두신 듯하다. 내일모레 환갑을 바라보는 큰누나는 “결혼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해준다. 초등학교 다닐 때 종갓집으로 시집간 누나는 오랫동안 친정에 발걸음조차 못했다. 우리는 양가 부모님과 왕래하며 살고 있다. 짝꿍네 부모님을 처음 뵌 건 4년 전쯤이었다. 급히 맹장 수술을 한다는 전갈을 받고 병원으로 뛰어갔다가 수술실 앞에서 어색한 첫 만남을 했다. 장인은 결혼하지 않은 딸자식에 대한 걱정이 많으신 눈치다. 약주를 하실 때면, 결혼 좀 어떻게 안 되겠느냐고 하신다. 친한 친구들도 이렇게 살 거면 그냥 결혼하라고 한다. 어머니는 짝꿍과 시장에 갈 때면 ‘며느리’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우리는 명절 때마다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사실 형과 형수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다만 결혼식을 올렸을 뿐이다. 어머니에게 ‘형수 없는 명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시집에서 전을 부쳐내는 형수는 “결혼식을 치르지 말았어야 했다”고 한탄한다.
부부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것들 중 몇 가지는 포기해야 한다. 짝꿍은 내 직장 의료보험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없다. 가족수당도 받을 수 없다. 동거 중이라는 사실은 친한 친구들만 알고 있다. 나를 ‘싱글’로 대하는 사람도 있다. 동거한다는 사실을 굳이 내보이고 싶지는 않다. 괜한 말이 도는 것이 싫다. 내가 선택한 삶을 ‘이상하다’고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그 시선을 이제 그만 거두어주면 좋겠다.
♀김경아(53·가명) + 사별 뒤 절망 끝에서 만난 연하 남편나, 내가 낳은 두 아이, 싱글이었던 남편. 이렇게 4명이 함께 산 지는 15년이 넘었다. 오랜 세월 동고동락했지만, 아이들이 자리를 잡은 요즘에야 신혼 기분을 낸다. 남들은 닭살이 돋을 지경이란다.
돌아보면 참 예측 불가능한 삶이었다. 네 남매 가운데 맏딸로 태어난 나는 집안일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일부러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에 입학했고, 연애도 했다. 스물여섯 되던 해, 2년간 연애한 남자와 결혼했다. 남들처럼, 아들과 딸을 얻었다. 행복했던 결혼생활은 10년 만에 끝났다. 전남편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급작스러운 사고가 나기 몇 달 전, 전남편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식당을 개업했다. 수중엔 돈이 없었다. 전남편이 사라지자, 가족으로 묶였던 시댁 식구들과도 멀어졌다. 금전 문제로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결국 친정 부모님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남편이 된 7살 연하남을 만났다. 숨이 쉬어지지 않고 걸을 수조차 없던 날이 있었다. 응급실에 실려갔다. 그때 난 혼자서는 이 상황을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을 치르고 혼인신고를 하기엔, 가진 것이 너무 없었다. 당시 나와 아이들은 차상위계층으로 분류돼 저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법적 배우자가 생기면 이러한 지원이 끊긴다고 했다. 더구나 남편의 경제 상황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남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고민스러웠다. 살림을 합친 뒤, 남편은 아들과 같은 방을 썼다. 아이들이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한 건 3년 전이다.
10년 전 남편은 조그마한 가게를 차렸다. 가게 주인이 남자인 걸 아는 동네 사람들은, 웬 아줌마가 들락거리냐고 수상쩍게 보았을 것이다. 남편은 더구나 동안이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를 가끔 위축시킨다. 우리에겐 소형차 한 대가 있다. 부부생활을 하고 있는 나까지 보험 적용이 가능하다기에 ‘가족운전자 한정 보험’에 가입했다. 얼마 전 내가 교통사고를 냈다. 보험 처리를 하려고 했더니 정말 우리가 부부생활을 하는지 확인하겠다며 사람들이 찾아왔다. 당당하게 우리 집을 내보였지만, 속옷 서랍장까지 뒤지는 걸 보곤 마음이 불편했다. 없는 살림에도 우리 아들딸은 번듯하게 자랐다. 조만간 결혼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남편이 딸아이와 함께 결혼식장에 들어갈지, 사돈댁과의 관계는 어떻게 할지. 내가 잘못한 건 없지만 이런저런 고민이 있다.
♂천정남(45) + 재앙이 닥치지 않는 한, 백년해로할 우리 애인1997년 나는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2001년에 처음 만난 2살 위 애인과 함께 산 지는 올해로 12년째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성 커플의 혼인신고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8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이혼·재혼 가정에다 동성 부부까지. 형제가 여럿이다보니, 우리 가족 내에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가족 형태가 모두 모여 있다. 이꼴 저꼴 봐온 엄마는 내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하신다. 되레 내가 평생 혼자 외롭게 살다가 죽지 않을까 걱정하던 분이셨다. 우리 애인은 어른들에게 싹싹한 타입이다. 엄마는 그런 배우자를 마음에 들어했다. 우리 남매는 우애가 좋은 편이다. 여덟 형제 모두가 처음부터 우리 둘의 관계를 좋아해준 건 아니다. 서로를 살갑게 대할 때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조카들은 나와 애인을 모두 ‘삼촌’이라고 부른다. 반면 애인네 집에서 나는 없는 사람이다. 외아들이자 장남인 애인은 효자다. 부모님은 아들이 동성애자임을 알고 있지만 인정하려 하시지 않는다. 마흔이 되기 전까지 애인은 선을 보러 다녀야 했다. 만약 그가 부모를 부양해야겠다고 한다면, 같이 할 생각이다.
내가 밥을 차리면 애인은 설거지를 하고 애인이 청소기를 돌리면 내가 물걸레질을 한다. 집안일은 자연스럽게 반반씩 나뉘어졌다. 서로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알고 있지만, 각자 벌이는 따로 관리한다. 지금 함께 사는 집은 내 명의로 돼 있다. 결혼생활 초기 2~3년 동안엔 많이 싸웠다. 서로 속속들이 알게 된 지금, 우리 관계는 편안하다. 의도치 않은 재앙이 닥치지 않은 한, 계속 함께 살 것이다.
나는 사회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우리의 관계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면 좋겠다. 지금은 가장 가까운 반려자이면서도,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초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법적 보호자가 아닌 애인은 내 입원동의서에 사인할 수 없었다. 부산에 사는 누님이 상경해야 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가족이 아닌 우리는 면회를 못할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변을 당한다면 애인은 내 재산을 상속받을 길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이러한 불안감은 점점 커진다.
♀송은주(39·가명) + 연애 에너지가 고갈된 무성욕 친언니현직 공무원인 나는 세 자매 가운데 막내딸이다. 큰언니는 결혼했고 그 아래인 우리 자매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연애 세포가 메말라버린 듯한 둘째언니와 14년 동안 한집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서로 일에 바빠 하루 10분가량 얼굴을 마주한다. 그래도 내게 언니는 심리적 버팀목이다.
연애는 줄기차게 하지만 결혼은 끌리지 않았다. 부모님을 비롯해 우리 가족을 사랑하지만, 이러한 가족이 또 하나 생기는 건 부담스럽다. 어릴 땐 ‘내가 결혼하면 이제 이 남자밖에 못 만나는 건가’ 싶었다. 너만 평생 사랑할 거야. 그런 약속을 해줄 자신이 없었다. 1년 동안 남자친구와 언니, 이렇게 셋이 한 지붕 아래에서 산 적도 있었다. 다른 가족들처럼 즐겁게 지낸 기억이 있다. 그 남자와 헤어진 건, 결국 결혼에 대한 시각차 때문이었다. 언니도 나도 아이에 대한 욕심은 없다. 만약 내가 출산을 원했다면 결혼을 했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도 결혼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셨다. 30살 전후, 결혼 압박은 최고조로 치달았다. 요즘엔 내 삶을 완벽히 이해한다기보단 ‘언젠가는 결혼하겠지’ 위안하시는 것 같다.
굳이 언니와 함께 산다는 걸 감추진 않는다. ‘남자친구랑 같이 산다’고 말하는 것보단 훨씬 건전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니까. 그렇지만 자매로 구성된 가족은 ‘마이너리티’인 것 같다. 아빠가 ‘가족운전자 한정 보험’에 가입하면, 아빠 차를 모는 언니와 나는 적용 대상이 된다. 내가 같은 보험에 가입할 경우, 함께 사는 언니는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차 한 대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가족 보험’ 대신, 30살 이상 누구나 차를 몰아도 보험 처리가 되는 상품에 가입했다. 외교관의 경우, 국외로 나가게 되면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해당 국가 체류 비자가 주어지고 가족수당도 지급된다. 내가 국외에서 근무하게 되더라도, 언니에겐 이런 배려가 주어지지 않는다. 4인 가족 공무원을 해외로 내보내는 것보다 비혼 여성을 내보내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다. 그렇다고 비혼 여성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아니다. 공무원이 숨지면 가족에게 공무원연금법상 유족연금이 지급된다. 부모나 배우자, 자녀 외엔 받을 수 없는 돈이다. 나같이 유족연금을 남겨줄 사람이 없을 경우, 사회에 기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안 되나 싶기도 하다.
노후에 대한 불안은 덜한 편이다. 우리 자매를 비롯해 결혼에 뜻이 없는 여성 7명이 느슨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위급할 때 언제든지 찾아가 1년 정도는 함께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한 언니는 얼마 전 몸이 아파 휴직을 했다. 마흔 넘은 딸이 일흔 넘은 부모를 찾아가 병간호를 받기엔 민망한 노릇 아닌가. 그렇다고 결혼한 형제·자매를 찾아가는 건 민폐일 것이다. 그 언니는 한동안 우리 집에서 머물렀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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