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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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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생명연장의 ‘헛된’ 꿈

고리·월성 1호기 폐로·계속운전 여부 놓고 논란… “고리 1호기 10년 및 20년 계속운전 모두 경제적 타당성 있다”는

정부의 분석에 맞서 “핵연료 처리, 원전 해체 비용 등 늘어나 적자” 이견 팽팽
등록 2014-08-30 14:54 수정 2020-05-03 04:27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7월11일 서울 명동성당 앞 거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비마이너 제공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7월11일 서울 명동성당 앞 거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비마이너 제공

“이 지역에서 우리는 도대체 뭡니까. 우리가 받은 생명 수당은 죄다 경주 시내에서 가져가버리고…. 여긴 ‘앞으로 어떻게 살까’ 이렇게 삶에 허덕이는 농민들만 남아 있어요.”

그는 고향을 떠나겠다고 했다. 적어도 핵발전소의 콘크리트 돔이 안 보이는 곳까지 벗어나겠다고 했다. 지난 8월5일 오후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자력본부 앞에서 만난 이 지역 주민 이진곤씨는 이렇게 말했다.

후쿠시마 사고 뒤 외지인 발길 끊기고

나아리 근처에서 모텔·식당을 운영하는 그를 비롯해 72가구 주민들은 얼마 전 ‘월성 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대책위)라는 조직을 꾸렸다. 1982년 월성 핵발전소가 들어서기도 전부터 이 지역을 지켜온 주민들이 뒤늦게 대책위까지 꾸리게 된 속사정은 이랬다. 고향이 급속하게 황폐화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발전소 건설 기간을 합쳐 한동안 늘어났던 유동인구 덕에 작게나마 돌아가던 상권도 이제는 제 역할을 못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씨는 지난 7월 모텔과 함께 운영하던 식당 문을 닫았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뒤, 이곳을 꺼리며 외지인의 발길은 더욱 끊겼다.

“우리는 폐로를 원합니다. 폐로가 되면 아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제가 알기로는 이게 20년도 더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네요. 간접비용까지 4조~5조원이 든다고 해요. 결국 폐로 결정을 못하는 이유도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폐로 해도 땅이 안 팔리니까. 그러니 저희는 한국수력원자력에서라도 이 지역을 사들이라는 겁니다.” 대책위 사무실에서 만난 사무국장이자 이 지역 주민인 이용국씨가 말했다. 월성원자력본부 안에는 가장 오래된 월성 1호기를 포함해 모두 6기의 원자로가 있다. 고개 하나를 건너면 나오는 양북면에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서 올해 말 문을 여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있다.

노후 핵발전소와 마을 주민 사이의 갈등은 고리 1호기와 가까이 있는 부산·울산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앞서 2017년까지 가동 연한을 한 차례 늘린 바 있는 탓에 지역 안에서는 고리 1호기의 가동을 한 차례 더 연장하는 부분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지난 8월4일 오후 만난 부산 기장군 기장읍 주민 김성규씨는 “과연 정부에 고리 1호기를 안전하게 폐로 할 계획이 있는지, 폐로에 들어가는 돈을 모으고 있냐가 가장 큰 문제다. (핵발전소를) 가동하다가 나는 고장은 기술로 대체되겠지만, 안전 폐로에 대해 준비를 안 하고 있다면 문제가 심각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안전하게 폐로 할 계획은 있는가

국내의 대표적 노후 핵발전소인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그동안 고장으로 인한 가동 중지 등으로 주목받던 이들 핵발전소 문제가 6·4 지방선거를 거치며 ‘폐로 여부’에 대한 지역의 민심 표출로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리 1호기의 경우 서병수 부산시장조차 “수명 연장은 반대”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고, 월성 1호기는 대통령 공약 사항이던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이후에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상태다. 게다가 두 핵발전소를 둘러싼 폐로 또는 계속운전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실질적으로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 상반기라는 점에서 8월26일 한수원의 올해 국정감사를 시작으로 주요 쟁점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노후 핵발전소는 한수원 내부에서도 민감한 문제다. 이 김제남 의원(정의당)과 함께 지난 8월4~5일 고리·월성원자력본부를 찾은 현장에서도 그랬다. 한수원은 이날 주제어실과 비상 디젤발전기 시설 등 고리·월성 핵발전소의 내부 시설 일부를 공개했다. 이날 만난 우중본 고리원자력본부 본부장은 “계속운전 신청서와 폐로 신청서 모두를 준비하고 있으며, 과학적·기술적 안전성과 주민 수용성 그리고 경제성 등 세 가지를 계속운전의 조건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 본부장은 또 “(폐로를 할 경우에 대비해) 준비를 하고 있다. 법령에 따르면 해체 계획서를 통해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다음날 찾은 월성원자력본부의 윤청로 본부장은 “계속운전 여부 심사에 따라 계획 운영의 일정을 보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월성 1호기와 같은 중수로형 원자로가 있는 캐나다에서는 19기 중 피커링·젠틀리 등 약 87%(11기)가 계속운전을 하고 있다. 월성 2·3·4호기도 월성 1호기와 동일한 상황이 올 것이다. 전세계적 추세가 계속운전을 하고 있고, 이게 일반적인 기술이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가동을 중단한 월성 1호기는 스트레스테스트와 관련한 최종 보고서 작업 절차를 밟고 있다.

이에 대해 김제남 의원은 고리원자력본부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고리 1호기는 이미 안전하지도 않고 경제성도 없다는 것이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전체 발전 설비의 0.6%에 불과해 지금 당장 폐쇄하더라도 전력 수급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폐쇄를 주장했다.

이처럼 노후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도 복잡하지만, 그 뒤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안전성이 확보된다고 하더라도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를 계속 운영하는 게 과연 경제적인지를 두고도 이견이 팽팽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수원은 한국전력공사 전력연구원에서 용역 조사를 한 ‘고리 1호기 계속운전의 경제성에 대한 분석보고서’(2007년 6월)와 ‘월성 1호기 계속운전 경제성 분석’(2009년 9월) 보고서 결과를 바탕으로 노후 핵발전소의 계속운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해왔다. 이 입수한 두 보고서 전문에는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를 계속 운전하는 게 경제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고리 1호기 분석보고서에는 “할인율(향후 소득에 대한 현재 자원의 교환 비율) 7%를 적용할 때 10년 계속운전(2017년까지 운영)의 경우 1488억원, 20년(2027년까지 운영)의 경우 3440억원의 순현재가치(NPV)가 산정됐고, 내부 수익률도 각각 22.7% 및 26.2%로 산정돼 기준할인율 7%보다 크며 투자비 회수 기간도 적정해 고리 1호기의 10년 및 20년 계속운전 모두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히고 있다. 월성 1호기 분석보고서에서는 “순현재가치가 10년 계속운전은 2821억원, 20년 계속운전은 7101억원(할인율 7%, 세전)”이라고 밝혔다.

‘수명 연장 조건 강화’ 법 개정안 준비 중

그러나 이런 정부의 경제성 분석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환경운동연합과 심상정 의원(정의당)은 지난 8월20일 “전력연구원의 월성 1호기 분석보고서를 국회예산정책처에 의뢰해 받은 ‘월성 1호기 계속운전 경제성 재분석’ 보고서와 비교한 결과, 월성 1호기의 수명을 연장할 경우 1462억~2269억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2009년 경제성 분석 당시 10년 수명 연장을 하면 604억원의 흑자를 볼 것으로 예상했지만, 2014년 현재 사용후 핵연료 처리 비용, 원전 해체 비용,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비가 모두 늘어나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수원 쪽에서는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에도 월성 1호기의 계속운전이 1395억~3909억원가량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을 들어 경제성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심 의원은 지난해 12월 전력연구원의 고리 1호기 분석보고서에 대해, 발전소 철거 비용 등 핵발전소의 사후 처리 비용이 누락되고 발전소의 평균이용률이 현실과 달리 100%를 적용해 산출됐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국회에서는 말 많고 탈 많은 노후 핵발전소 논란을 보완하기 위해 수명 연장 조건을 강화하는 원자력안전법 개정안도 준비하고 있다. 개정안에는 핵발전소가 신규 허가를 받을 때는 방사성폐기물 처리 방안과 해체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신청하려면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후 핵발전소의 미래가 쉽지만은 않아 보이는 이유다.

부산·경주·울산=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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