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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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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사흘째, 28시간 계구 속에 갇혀 “살려달라”

제헌절에 서울구치소에서 가혹행위 당한 조익진씨… 법에 계구 사용 요건

명시돼 있지만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사용할 수 있어
등록 2014-08-27 13:57 수정 2020-05-03 04:27
한겨레 자료

한겨레 자료

“턱에는 물집이 잡힌 뒤 터져 피딱지가 말라붙었다. 쇠사슬을 명치로 바짝 올려붙여 꽉 졸라맸을 땐 숨을 못 쉬었다. 내장이 조여드는 끔찍한 통증. 자리에 선 채 몇 시간 동안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1980년대 고문의 추억이 아니다. 2014년 감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조익진(28)씨는 지난 7월23일 이러한 내용이 담긴 편지를 구속노동자후원회에 보냈다. 수갑 등 수감자가 움직이기 어렵게 만드는 도구를 일컫는 ‘계구’로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주장이었다. 조씨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다. 지난 3월 병역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이 확정됐다. 앞서 쌍용자동차 연대 집회에서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벌금 30만원형을 선고받았지만 확정판결이 나지 않은 상황이라 구치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서울구치소에서 산 지는 다섯 달째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수용질서 확립의 해’ 구치소 배치된 유단자들

지난 7월14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유가족 참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을 시작했다. 사흘 뒤, 조씨도 “건강이라도 내걸고 힘을 보태고 싶다”라며 동조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은 구치소 내 생활 개선 문제를 제기하려는 의미도 있었다. 서울구치소에서의 생활은 힘겨웠다. 대낮의 무더운 날씨에도 감방 안에서 윗도리를 벗거나, 누워 있으면 주의를 받았다. 운동 시간은 하루 1시간도 허용되지 않았다. 구치소 벽이 너무 하얀 나머지, 한여름 땡볕이 수감자들을 향해 반사돼 눈이 부셔 잠깐의 운동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온수를 사용할 수 있는 목욕 시간은 고작 7분밖에 안 됐다. 이러한 환경에 대해 여러 번 개선을 요청했지만 큰 변화를 못 느끼던 터였다.

제헌절 점심 즈음, 서울구치소 보안과장이 조씨가 수용된 건물을 살피러 나왔다. 조씨는 불만 사항을 외쳤다. 목소리가 높아지자 구치소 내 기동순찰팀(CRPT)이 출동했다. 2009년 법무부 교정본부는 ‘수용질서 확립 원년의 해’를 선포하고 전국 교정시설에 기동순찰팀 250명을 배치했다. 대개 무술 유단자인 이들은 24시간 내내 감옥 복도를 순찰하며 수감자들의 생활 태도를 감시한다. 조씨는 곧 독거실(독방)에서 끌려나왔다. 그는 이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징벌조사실에 끌려간 적이 있었다. 조사실로 가지 않으려고 강하게 발버둥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머리와 허리, 손과 발에 계구가 채워졌다.

그 뒤 28시간 동안 조씨는 자유롭지 못했다. 권투 헬멧처럼 생긴 머리보호장비와 허리에 차는 금속보호대, 수갑과 발목보호장비를 차고 있어야 했다. 계구는 이외에도 보호침대·보호의자·보호복·포승(긴 끈) 등을 합쳐 모두 8종류다. ‘보호’라는 미명하에 신체를 구속하는 도구다. 머리보호장비는 고무로 된 헬멧인데 턱을 고정하는 게 목적이라 얼굴 전체가 꽉 껴 물집이 잡히기 쉽다. 허리·손목·발목에 채우는 계구는 금속 재질이라 세게 옥죄면 피부가 파이기 십상이다. 조씨는 구치소 쪽이 계구를 활용해 ‘단식을 그만두라’는 회유와 협박을 했다고 주장한다. 모든 교정시설은 수감자를 건강하게 수용할 책임이 있다. 한 명이라라도 건강을 해치면 난처해진다. 그는 편지에서 “단식 지속시 고통을 가중시키겠다는 협박을 노골적으로 일삼았다”고 호소했다. 단식을 그만두지 않으면 계구를 더 세게 조이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99조에는 계구를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하며, 보호가 아닌 징벌을 목적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구치소 쪽 “직원 허리 부상… 정당한 법 집행”

인권단체들은 구치소 조처에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며 비판했다. ‘계구의 규격과 사용 방법 등에 관한 규칙’ 제14조에 따르면, 계구를 사용할 때 수용자의 건강 상태를 참고해야 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주거나 신체 기능을 훼손해선 안 된다. 구속노동자후원회 이광열 사무국장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는 사람에게 28시간이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은 과한 조치 아닌가. 머리를 압박한다든지, 명치가 눌린 상태에 있으면 체력 소진이 크다. 단식하는 사람에게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구치소가 건강관리 책무를 방기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서울구치소는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식사할 것을 권유하고 설득한 적은 있으나 보호장비(계구) 탈·부착을 조건으로 단식을 철회하라고 회유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계구 사용 배경에 대해선 “여러 직원들이 수차례 진정하고 지시를 따를 것을 설득했으나, 계속 고성을 지르며 다가오는 직원을 밀쳐 넘어뜨렸다. 직원이 허리 부상을 입는 등 (조씨의) 흥분 상태가 계속돼 자해와 위해가 우려됐다”고 밝혔다. ‘정당한 법 집행’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정시설의 판단에 따라 계구가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사용될 위험이 있다고 인권단체들은 지적한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97조에는 계구 사용 요건이 명시돼 있긴 하다. △감옥 밖 장소로 수감자를 호송할 때 △도주·자살·자해 또는 다른 사람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큰 때 △위력으로 교도관 등의 정당한 직무 집행을 방해하는 때 △감옥 시설을 망가뜨리거나 안전을 해칠 우려가 클 때 등이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계구 남용’의 전형적인 패턴이 있다고 분석한다. “수용자들이 어떤 요구를 하면 교도관들이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면 방문을 걷어차거나 욕을 하는 등 항의 표시를 한다. 이럴 때 ‘조용히 하라’는 지시를 듣지 않으면 일종의 징벌 사유가 된다. 그렇게 징벌조사실에 격리되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 처지에선 이러한 처분이 납득되지 않아, 또다시 항의하면 기물 손괴 우려 혹은 자살 우려가 있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해 계구를 쓰는 것이다.”

계구 사용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건 조씨뿐만은 아니다. ‘공안탄압 반대, 양심수 석방과 사면·복권을 위한 공동행동’은 대구교도소에서 생활했던 ㅇ씨 사례를 소개했다. ㅇ씨는 지난해 11월 거실(감방)에 누워 있다가 기동순찰팀 대원에게 경고를 받았다. ㅇ씨는 ‘죄송하다’고 말했음에도 징벌조사실로 끌려갔다고 주장했다. 거실로 돌아온 ㅇ씨는 단식 의사를 밝힌 뒤 국가인권위원회에 넣을 진정서와 볼펜을 요청했다. ‘하지 말라’는 교도관의 말을 듣지 않자 다시 징벌조사실로 끌려가 수갑과 금속보호대를 찼다.

독일에선 간이 소송 절차 마련돼 있어

강성준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는 계구의 사용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법률상 ‘필요한 범위에서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하지만, 관행적으로 한 가지가 아닌 여러 장비를 한꺼번에 착용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용 기간도 문제다. 정의당 서기호 의원실이 입수한 ‘최근 5년간 교정시설별 보안장비 사용내역’을 보면, 2013년 상반기(8월 기준) 전국 구치소·교도소에서 24시간 넘게 수갑 및 계구 등을 활용한 경우는 1024회에 달한다.

이호중 교수는 “교정시설이 권한을 남용했을 때, 통제 장치가 없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독일에선 수용자들이 법원에 서면 신청을 내면 교도소 처분이 위법하느냐 아니냐를 2~3일 내에 가려주는 간이 소송 절차가 마련돼 있다. 영국에선 교도소별로 설치된 시민감시위원회가 인권침해 문제를 신고받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다.

박선희 인턴기자 starking07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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