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6일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2014 나다뮤직페스티벌’에서 록그룹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공연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이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무대 배경에는 음악을 시각화한 영상이, 오른쪽 스크린에는 노래 가사가 나오고 있다(왼쪽). 지난 7월25일 서울 강남에 있는 클럽 옥타곤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정상우씨와 한 독일인이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정씨는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 춤을 춘 이 독일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페스티벌 나다 제공, 변재원 제공
7월25일 금요일 밤이었다. 서울 강남의 ‘힙’한 클럽 ‘옥타곤’ 앞에 특별한 클러버(clubber) 7명이 나타났다. 클럽 경험이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 변재원(21)씨는 목발을 짚어야 걸을 수 있는 지체장애인이다. 박정인(26·가명)씨에겐 시각장애가 있다. 정상우(30·지체장애), 김덕원(22·청각장애), 김재인(가명·청각장애)씨까지. 일곱 중 다섯이 장애인이다. 이름하여 장애인 클럽 원정대.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이날 밤 클럽에서 불타는 금요일을 보내는 것이었다.
만 19살 미만 딱지로부터 해방된 자라면 한 번쯤 클럽이 어떤 곳인지 궁금할 법하다. 클럽 원정대 청년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아프니까 청춘’이기 이전에 ‘아프니까 장애인’이었다. 클럽에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정상우씨는 2년 전 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됐다. 전동휠체어가 있어야 이동을 할 수 있다. 사고 전에는 여느 클러버처럼 홍익대 앞을 누비며 불타는 밤을 보냈다. “사고 후엔 클럽 갈 생각은 아예 못했죠. 보통 클럽 내 통로가 좁은데다 출입구에는 계단이 있어서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조차 없거든요.” 옥타곤 출입구에도 계단이 놓여 있다. 대신 무대 뒤로 통하는 뒷문 쪽에 짐을 운반하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클럽 쪽이 배려해준 덕에 입장이 가능했다.
음악이 나오고 조명이 켜지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흥이 나는 건 마찬가지다. 정씨는 이날 밤 무대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비결은 그가 탄 전동휠체어의 비상전조등이었다. 자유자재로 불빛을 이용해 그만의 쇼를 선보였다. 반응은? “형님 존경해요!” 낯선 동생이 외쳤다. 적극적인 사람들은 정씨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변재원씨는 목발을 활용한 춤을 췄다. 리듬에 맞춰 목발을 지그재그로 짚으며 움직이기도 하고 왼쪽 목발을 높이 들어 방방 뛰기도 했다. 그만이 출 수 있는 춤이다. 신나는 마음 한켠엔 씁쓸함도 깃든다. 정씨는 함께한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제 몸무게와 휠체어를 합치면 200kg 가까이 나가거든요.” 한 뼘도 안 되는 턱을 넘기 위해선 일행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변씨가 중학교 수학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휠체어를 탔기 때문에 친한 친구가 휠체어를 밀어줬어요. 여행을 다녀온 뒤 저 때문에 제대로 못 놀았다고 그 친구 부모님께 연락이 왔더라고요.” 혼자서 거동이 어려울 땐, 불편함과 더불어 동행인에 대한 미안함까지 짊어져야 한다.
변씨는 지난 6월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울트라뮤직페스티벌’에 친구들의 동행 요청도 마다하고 홀로 갔다. 대신 치밀하게 준비를 마쳤다. 짐을 가능한 한 줄이고 물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화장실을 오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게 페스티벌을 즐기는 길은 ‘비장애인이 해외여행 가는 것’과도 같았다.
들을 순 없어도, 음악을 느낄 수 있다. 청각장애인들이 그렇다. 소리의 떨림(진동)을 통해 리듬을 탄다. 김덕원씨에게 클럽은 진동으로 기억됐다. “대형 스피커 때문에 소리가 엄청 크고 심장이 요동칠 정도로 진동이 강했어요.” 청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가 아닌 그가 음악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소리도 커야 한다. 클럽은 김씨가 여러 사람들과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8월6~7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음악 축제 ‘2014 나다뮤직페스티벌’이 열렸다. 이곳에서 만난 청각장애인 이진경(20)씨는 록그룹 ‘갤럭시 익스프레스’ 음악에 온몸을 실었다. 풀어헤친 머리가 휘날리도록 고개를 격렬하게 흔들기도 하고 다리가 아프도록 뛰기도 했다. 록 공연이 처음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나다뮤직페스티벌 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좌석을 마련했다. 등받이 부분에 진동스피커가 장착된 형태다. 이 의자에 앉아 허리를 기대면 떨림을 느낄 수 있다. 소리가 커질수록 떨림도 세진다. 진동의자를 이용해본 청각장애인 이효진(27)씨는 “혼잡한 공연장에서는 특정 소리에 집중하기 어려워요. 진동의자가 공연을 즐기는 데 도움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최하늘(27)씨의 생각은 달랐다. “낯설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뜨거워져 불편하기도 했고요.” 진동의자에 대한 청각장애인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박정인씨는 원인 모를 시각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시신경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만 알 뿐이다. 박씨는 자외선이 강한 낮에는 시야가 흐려져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어두운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시야가 좋아진다. 이런 박씨를 두고 변재원씨는 ‘클러버가 되기 위해 타고난 장애’라고 표현한다. 박씨는 안전거리를 확보하며 움직이는 정상우씨의 전동휠체어를 길잡이 삼아 옥타곤 무대를 누볐다. 종종 1980~90년대 음악이 나오는 ‘밤과 음악 사이’에서 친구들과 춤을 추는 박씨였지만 일렉트로닉 음악이 쿵쾅거리는 클럽은 또 다른 ‘신세계’였다. “시각장애인이건 지체장애인이건 청각장애인이건 같이 즐기고 춤추고 신나하는 모습이 무척 좋았어요. 모두 기뻐하고 소리 지르는 모습에 가슴이 벅찼어요.” 박씨는 7월25일 그날의 밤을 이렇게 기억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문화 공간에서는 사람들 간 ‘케미’(화학작용)가 발생한다. 8월3일 홍대 앞에 위치한 대안공간 ‘나다’에서는 배리어프리 영화를 상영했다. ‘배리어프리’란 ‘장벽이 없다’는 뜻으로 자막과 음성 화면해설이 더해져 시·청각장애인들도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뜻한다. 이날 록밴드 ‘어느새’ 일원인 덥의 배꼽 잡는 화면해설 덕에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김수정 사무국장은 “공적인 장소에서의 영화 관람은 관객들의 감정이 어우러져 ‘제3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고 했다. 영화를 매개로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끼리 웃음소리·표정·분위기 등을 공유하며 ‘케미’가 발생하는 것이다. 김수정 사무국장은 이러한 문화 공간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접점을 찾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영화관뿐이랴. 클럽·공연장 등 일상적인 문화 공간 모두 ‘접점’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에게 문화 공간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영화관 스크린 바로 앞에 설치된 휠체어석에 앉으면, 고개를 심하게 젖힌 채 불편한 자세로 영화를 봐야 한다.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은 자막 지원이 되지 않는다. 변재원씨에게 물었다. 다른 장애인들이 클럽에 갈 수 있을 것 같으냐고. “잘 모르겠어요. 클럽 쪽에서 배려를 많이 해주셨는데 이게 (다른 사람에게도, 다른 클럽에서도) 가능할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클럽 원정대’가 탐험한 곳도 아직 한 군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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