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히데유키 일본 원자력자료정보실 공동대표가 2011년 4월5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후쿠시마 핵사고의 진실’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공항에서 입국거부를 당하기 최소 1년 전부터 그는 입국거부자였다. 입국금지 요청 기록은 이미 파기됐고, 입국금지 조처 기록은 아예 만들어지지 않았다. 입국거부자는 그렇게 비밀리에 생산·관리되고 있었다. 입국금지 3년여 만에 비밀의 꼬리가 노출됐다.
2013년 4월19일 일본의 반핵운동가 반 히데유키 원자력자료정보실 공동대표가 인천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돼 돌아간 일이 있었다. 법무부는 그가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될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출입국관리법 제11조)이라고 밝혔다. 공공의 안전을 해칠 ‘이유’가 있다면서도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다. 국내의 ‘관계기관’이 그의 입국금지를 요청했다고만 했다. 시민사회단체와 야당은 “납득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반 히데유키는 반핵운동의 국제적 명망가다.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의 교보환경대상을 받기 위해 입국하던 중이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 이후 반 히데유키는 일본 정부의 정보 은폐가 사고를 키웠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국 언론에도 자주 등장해 원전의 위험을 지적해왔다. 그 자신도 입국거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인지도 높은 반핵운동가의 입국금지에 녹색당은 2013년 5월1일 법무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①반 히데유키의 입국금지를 요청한 기관 이름과 요청 시기 ②‘관계기관’이 법무부에 입국금지를 요청한 공문 ③법무부가 입국금지 조처를 취하며 내부 결재를 받은 공문의 공개를 요구했다. 법무부의 비공개 결정(5월9일)→녹색당의 이의신청→법무부의 기각(5월29일)이 이어졌다. “국가의 주권적 재량행위에 해당하는 특정 외국인의 입국금지 조치와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할 경우 당사국과의 외교분쟁 등으로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관련 정부기관의 정당한 직무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법무부는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녹색당은 7월31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재결을 청구했다. 위원회는 2014년 4월15일 기각했다. 기각 결정문에 ‘비밀’의 일단이 언급돼 있다.
“원전에 비판적인 학자 재입국을 막으려는 시도”
위원회는 “법무부가 2014년 3월10일 제출한 ‘행정심판 심리 관련 자료 제출’이란 제목의 문서 및 대외비관리기록부에 ②는 해당 의뢰기관의 입국금지 요청 공문의 예고문에 따라 2012년 4월30일에 이미 파기된 것으로 기재돼 있다”고 썼다.
위원회의 설명으로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관계기관’은 최소 2012년 4월30일 이전에 공문을 보내 반 히데유키의 입국금지를 요청했다. 법무부는 입국금지 조처 뒤 관계기관이 정해준 시점에 맞춰 2012년 4월30일 해당 공문을 파기했다. 반 히데유키는 인천공항에서 입국금지 사실을 통보받기 적어도 1년 전에 이미 입국금지된 상태였다.
반 히데유키의 마지막 방한은 2011년 4월이었다. 그는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5일 ‘일본 반핵운동가로부터 듣는 후쿠시마 핵사고의 진실’)과 국회(6일 ‘후쿠시마 핵사고의 진실과 교훈’)에서 각각 강연했다. 그의 입국금지는 강연 뒤 1년 사이에 이뤄진 셈이다. 당시 한국에서의 활동이 그가 입국금지를 당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말했다.
“2011년 4월 전후는 후쿠시마 사고의 영향과 원전의 안전성을 두고 한국에서 큰 논란이 벌어진 시기다. 원전에 비판적인 학자의 재입국을 막으며 사회적 논의 자체를 차단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반 히데유키는 이명박 정부가 ‘후쿠시마 방사능이 한국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을 때 한국에 왔다. 이 대통령도 라디오 연설에서 “근거 없는 소문이나 비과학적인 억측에 결코 흔들리지 말라”(3월21일)고 강조하던 시점이었다. ‘편서풍 때문에 방사능이 한국에 날아올 수 없다’는 정부의 공식 입장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방사성물질 검출을 인정(3월26일)하면서 거짓으로 들통났다.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는 국민의 방사능 우려를 ‘유언비어’라며 “국가를 전복시킬 생각을 갖고 활동하는 불순세력”이 사회불안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4월8일)했다. 국가정보원이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후쿠시마 방사성물질의 확산 경로를 살핀 국립환경과학원의 모델링 결과가 한반도 유입 가능성을 지적하자 국정원이 결과를 폐기(2011년 3월)했다고 (2012년 3월8일)가 보도(국정원이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지난 4월 서울고등법원에서 패소)했다.
반 히데유키는 방한 당시 “후쿠시마 사고로 확률론적 안전 평가에 의존해 원전을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드러났다”고 역설했다. 국회에선 “한국도 원전 사고로부터 안전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일 정부에 원전 확대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을 정권의 치적으로 홍보하던 이명박 정부가 반 히데유키를 입국금지한 ‘맥락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그를 초청한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대표는 “정부가 정보를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단체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반 히데유키를 초청했다. 한국 정부에 부담스러운 발언을 하는 전문가의 재입국 금지는 정부가 ‘후쿠시마 이후’에 치밀하게 개입한 정황을 드러내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2012년 3월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땐 사토 다이스케 반핵아시아포럼 사무국장이 입국거부를 당하기도 했다. 아시아 7개국 반핵활동가 30여 명은 핵안보정상회의에 맞서 한국에서 포럼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행정심판위원회의 결정문은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관계기관’의 입국금지 요구 공문을 정부가 관행적으로 파기해온 정황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공문에 파기 시점이 명시돼 있다. 우리는 공문대로 파기할 뿐이다. 파기 규정은 비밀문서 관련 지침을 따른다”고 했다.
그가 말한 ‘비밀문서 관련 지침’은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이다. 국정원이 총괄하는 행정규칙이다. 전진한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소장은 지적했다.
“정권에 불편한 사람을 입국금지시켜도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에 따라 파기했다고 하지만,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이 상위법이다. 기록물평가심의회를 열어 파기 여부를 논의해야 하는 공공기록물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녹색당은 법무부가 반 히데유키의 입국금지를 결정한 내무 문서(③) 공개도 요구했다. 행정심판위원회가 기각하며 전한 법무부의 입장은 이랬다. “업무 특성상 입국금지와 관련한 내부 검토 보고서는 별도로 작성·보관하고 있지 않다.” 법무부 쪽은 에 “내부 문서를 남길 이유가 없다”고 했다.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입국금지 조처를 남발해도 당사자는 물론 외부에서 이유를 파악하거나 타당성을 검증할 어떤 장치도 없다는 뜻이다. 녹색당은 8월13일께 법무부를 상대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말했다.
“(2013년 4월 이후) 반 히데유키의 입국금지 해제 여부도 개인정보여서 알려줄 수 없다. 당사자가 주일 한국대사관에 가서 물어보거나 재입국할 때 (공항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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