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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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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장은 출렁이지 않도록

KBS 이사회에서 해임안 가결, 공은 대통령에게로…

유례없이 힘 모았던 노조, 지배구조 개선 논의에 불붙일 듯
등록 2014-06-10 13:24 수정 2020-05-03 04:27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6월5일 이사회의 길환영 사장 해임안 가결 직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 본관 앞에서 파업승리보고대회를 열며 환호하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6월5일 이사회의 길환영 사장 해임안 가결 직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 본관 앞에서 파업승리보고대회를 열며 환호하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예고된 수순이었을까.

KBS 이사회가 6월5일 길환영 사장 해임안을 가결했다. 여야 이사 11명은 이날 7 대 4로 사장 해임에 뜻을 모았다. 여야 구도(7 대 4)를 감안하면 3명의 여당 추천 이사가 길 사장 해임에 표를 던진 셈이다. 표결 직전 길 사장이 해임의 부당성을 주장했으나 이사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이번엔 2시간30분 만에 표결 완료

길 사장 해임안 가결은 세월호 피해 가족들이 KBS를 항의 방문한 지 29일 만의 일이다. KBS 기자협회가 제작 거부에 들어간 지 24일 만이며, 양대 노조가 동시 파업을 벌인 지는 9일 만이다.

무엇보다 6·4 지방선거가 끝난 다음날이다. 청와대가 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길 사장의 생명을 한시적으로 연장했다는 관측이 현실화됐다는 시각이 많다. 이사회는 시간을 더 끌지 않고 선거 바로 다음날 해임안을 전격 처리했다. 5월28일 여당 추천 이사들의 반대로 길 사장 해임안 표결을 연기할 당시 표결 여부만을 두고 9시간 넘는 격론을 벌였다. 6월5일 오후 4시에 시작된 이사회는 2시간30여 분 만에 표결까지 완료했다. 처리에 걸린 시간만 봐도 여당 이사들의 ‘작심’을 읽을 수 있다. 길 사장의 주된 해임 사유는 “정상적인 사장 직무 수행이 어렵다”였다. 여당 추천 이사들의 반대로 ‘청와대의 보도 외압 의혹’은 포함되지 못했다. 길 사장을 해임하되 청와대와의 연관성은 차단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표결이 일주일 보류된 사이 길 사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었다. 길 사장이 진통을 겪으며 임명한 이세강 신임 보도본부장은 6월2일 사표를 제출했고, 장영주 전 CP는 길 사장의 시사 프로그램 개입( 아이템 개입, <tv> 낙하산 MC 임명, 행정소송 포기 등)을 폭로했다. 길 사장의 보도 개입 사실을 처음 공개한 김시곤 전 보도국장은 추가 물증 제시를 예고하며 ‘세월호 국정조사’에 출석해 길 사장과 대질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혔다. 사장 퇴진을 외친 보직간부 6명을 지역총국 평사원으로 보복인사 발령한 일도 비판을 키웠다.
길 사장 해임 과정은 한국 언론사에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양대 노조와 직능단체는 물론 간부·평사원 구분 없이 KBS 구성원들이 ‘유례없이’ 힘을 모았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길환영 사장뿐만 아니라 앞으로 임명되는 어떤 사장이라도 보도나 프로그램에 부당하게 개입할 경우 해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고 평가했다. 세월호 침몰이라는 거대한 참사가 KBS 사장 교체의 촉매제가 됐다는 사실도 특기할 점이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발언에 격분한 세월호 피해 가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박근혜가 해결하라”며 항의한 장면은 한국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취약성을 정확하게 간파한 데서 나온 행동이었다. 길 사장 해임만으로 KBS 사태가 마무리될 수 없는 이유다. 현재 구조에선 차기 사장도 현 정권의 정치적 자력 앞에 출렁일 수밖에 없다. 노조는 특별다수제(중요 안건의 경우 다수결이 아닌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결정)와 국장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KBS 지배구조 개선 논의에 불을 붙일 것으로 보인다.

2008년엔 3일 만에 해임

길 사장 해임의 공은 청와대로 넘어갔다. 방송법상 KBS 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해임 권한은 불분명해 논란이 있어왔다. 2008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이사회의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안을 받아들여 3일 만에 해임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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