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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최루탄 바레인 시민을 쏘다

‘바레인워치’ 활동가들, “한국산 최루탄에 희생된 바레인 시민 70여 명” 증언
‘무기거래 조약’ 등 존중해 인권침해 가능성 농후한 최루탄, 산탄총 탄약 수출 규제로 총단법 개정해야
등록 2014-03-26 15:16 수정 2020-05-03 04:27
빌 마크작(왼쪽)은 미국에서 박사후 과정 공부를 하다가 조국의 인권 탄압 실상을 알고 최루탄 문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알라 쉬하비는 2011년 바레인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직장을 잃었고, 남편은 투옥됐다. 그는 현재 영국에 체류 중이다.김명진

빌 마크작(왼쪽)은 미국에서 박사후 과정 공부를 하다가 조국의 인권 탄압 실상을 알고 최루탄 문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알라 쉬하비는 2011년 바레인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직장을 잃었고, 남편은 투옥됐다. 그는 현재 영국에 체류 중이다.김명진

70여 명이 ‘이것’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청년은 맞아서 숨지고, 아이는 숨막혀 죽고, 노인은 심장마비로 떠났다. 아랍의 봄, 2011년 이후 바레인에서 ‘이것’의 직간접적 영향으로 숨진 사람의 수라고 그들은 말했다. “39명 아니냐”고 하자 “그건 2011~2013년 통계이고, 최근까지 합치면 70여 명”이라고 정정했다. 민주화 시위 이후 숨진 140여 명 중 절반이 주로 한국산 최루탄에 맞거나 질식해 숨졌다는 주장이다. 2011~2012년 한국산 최루탄 150만 개가 바레인에 수출됐다. 그리고 인구 120만 명의 섬나라에서 하루에 2천 발씩 사용됐다. 피 묻은 축구공이 아동노동 착취에 대한 은유라면, 피 묻은 최루탄은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다. 아랍의 봄과 한국은 그렇게 비극의 고리로 연결돼 있었다. 지난 3월18일, 한국산 최루탄의 오·남용을 알리기 위해 한국에 온 ‘바레인워치’(Bahrain Watch) 활동가들을 만났다. 이들은 비살상용으로 수입돼 살상용으로 변한 최루탄의 실상을 전했다.

최루탄 이전에 한국의 이미지가 있었다. 민주화 시위에 참여한 뒤 영국 런던으로 이주한 알라 쉬하비(35)는 “한국인 고용주와 일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한국은 “현대화, 세계화된 나라”였다. 히잡을 쓴 쉬하비와 함께 온 빌 마크작(28)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이며 “나는 삼성 휴대전화를 쓰고, 아버지는 현대 자동차를 몬다”고 말했다. 그는 “2NE1과 나인뮤지스의 팬이기도 하다”며 웃었다. 마크작은 부모와 함께 홍콩에 살았던 2001년, 한국을 여행한 적도 있다. 이렇게 케이팝(K-Pop)을 좋아하고 한국에 친숙했던 이들은 “2011년 이후 한국의 이미지는 최루탄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최루탄이 자욱한 섬나라, 바레인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그렇게 변했다.

- 발사된 최루탄에 아무런 표기가 없어서 한국산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들었다.

빌 마크작(이하 마크작) - 2011년 민주화 투쟁 이전에는 발사된 최루탄에 영국, 미국 등 생산지 표시가 있었다. 그러다가 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된 이후 생산지 표시가 없는 최루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최루탄의 모델명 등을 추적했지만 찾기가 어려웠다. 인터넷을 뒤지다 한국 회사 홈페이지에서 작은 홍보용 사진을 발견했다. 여기에 아주 작게 바레인 국기를 든 사람이 보였다.

알라 쉬하비(이하 쉬하비) - 한국을 민주주의 국가, 평화를 추구하는 나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실망이 컸다.

나의 삼성폰, 아버지의 현대차

마크작이 지난 3월19일 국회에서 열린 ‘총단법 개정의 필요성’ 토론회를 위해 보낸 발제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한국 정부가 업체에 수출허가서를 발급하기 이전부터 이미 바레인에서는 끔찍한 인권침해가 자행된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게 충분한 위험이 있지만, 수출은 제한되지 않았다. 비살상 무기로 분류되는 최루탄은 ‘총기·동검·화학류 등 단속법’(총단법) 등에 근거해 지방경찰청장의 허가만 있으면 수출이 가능하다. 바레인 활동가들이 ‘선적을 멈춰라’(Stop the Shipment) 캠페인을 벌이면서 지난해 한국의 평화활동가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낸 뒤에야 한국산 최루탄의 폐해는 알려졌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지난해 말, 경찰청에 공문을 보내 한국산 최루탄이 바레인에서 살상용 무기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지난 1월 경찰청, 방위사업청, 국방부 등 관계기관 회의를 거쳐 한국산 최루탄의 수출은 불허됐다. 2013년에도 바레인으로 무려 160만 개의 추가 수출 허가 신청이 있었던 것이다. 대외무역법의 “‘국제평화’를 사유로 무기류의 수출을 제한할 근거”를 원용한 결과였다. 임의적 조처에 가까운 이런 결정을 넘어 최루탄 수출을 법적으로 제한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김현 민주당 의원 등은 “중대한 인권침해 위험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때” 최루탄 등의 수출을 제한하는 총단법 개정에 나섰다.

“마을에 뿌리고, 창문에 넣어”-도대체 어떻게 사용하길래 이렇게 많은 인명 피해가 생겼나.

마크작 - 최루탄 직격 발사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경찰이 훈련이 안 돼서 그렇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정책의 일부라고 볼 수밖에 없을 만큼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쉬하비 - 이틀 전에 한 명이 최루탄 사용으로 숨졌다는 소식을 어제 들었다. (휴대전화 사진을 보여주며) 친구가 자기 집에 떨어진 한국산 최루탄을 찍어서 보내온 것이다. 이렇게 한국산 최루탄은 아직도 쓰이고 있다. 경찰은 시위대가 보이지 않으면 사방으로 최루탄을 발사한다. 마을에도 난사한다. 집안 창문으로도 던진다. 무분별한 최루탄 사용은 화학약품 공격과 마찬가지다. 정부는 노인들이 심장마비, 아이들은 호흡기 문제로 숨졌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게 취약한 이들이 최루탄 공격을 받아서 사망한 것이다. 최소 5명은 직격으로 쏜 최루탄에 맞아 숨졌다.

2011년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던 쉬하비는 토론회 발제문에 “제가 최루탄을 맞지 않은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의 발제문은 “(최루탄이) 총알처럼 사용되고” “경찰은 때론 장난 삼아 최루탄을 발사하기도 한다”고 증언한다. 쉬하비는 “동영상을 찾아보라”고 당부했다. 유튜브에서 ‘바레인 최루탄’(Bahrain Tear Gas)을 치면 나오는 동영상은 이렇다. 2011년 4월 방송은 바레인 시민이 올린 동영상을 뉴스에 담았다. 수십 명의 경찰이 한 명의 시위대와 마주하는 장면이다. 경찰은 비무장한 남성에게 총을 쏘듯이 최루탄을 발사한다.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남자가 배를 움켜쥐고 일어서자 다시 경찰은 그의 목을 향해 최루탄을 발사했다. 다른 동영상은 “최루탄 공격이 일상이 되었다”는 쉬하비의 말을 증명한다. 2011년 9월23일 <cnn> 뉴스는 어둠이 깔린 조용한 마을을 비춘다. 순찰을 돌던 경찰이 갑자기 멀리 떨어져 차를 세우는 여성을 향해 최루탄을 던진다. 부르카를 입은 여성은 황급히 차 문을 연다. 아이가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식간에 최루탄이 차를 뒤덮었다. 쉬하비의 발제문은 사망사고도 전한다. “15살 세이드 사이드 하쉼이 시위 뒤 구급차 안에서 사망한 2012년 당시 저는 시트라에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면, 그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그는 비무장 상태였습니다. 저는 시트라에서 사망한 또 다른 아이인 알리 샤이크를 진찰했던 미국인 의사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가 말하길, 경찰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 아이의 목에 최루탄을 발포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산 최루탄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살상무기 쓰지 않는다는 전시용”

-최루탄 문제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쉬하비 - 민주화운동 초기에 장갑차, 총 등이 동원됐다. 정부는 실탄 발포 영상이 인터넷에서 일주일 만에 조회 수 200만 회를 기록하자 정책을 바꾸었다.

마크작 - 세계를 향해, 봐라 우리는 최루탄만 사용한다고 전시하는 것이다.

쉬하비 - 살상무기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살상무기로 사용되는 최루탄이 그래서 중요하다. 한국산 수입이 제한되자 요즘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수입된 최루탄을 쓴다.

바레인워치 활동가들은 지난 3월19일 국회 토론회에서 알리 셰이크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활동가들은 이 소년이 최루탄을 목에 맞아 사망했다고 전했다.바레인워치 제공

바레인워치 활동가들은 지난 3월19일 국회 토론회에서 알리 셰이크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활동가들은 이 소년이 최루탄을 목에 맞아 사망했다고 전했다.바레인워치 제공

-그렇게 대체된다면, 한국산 수입 금지의 의미는 뭔가.

마크작 - 200여 개국이 있지만, 최루탄을 수출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한국 같은 대규모 수출국을 압박하면 바레인 정부의 오·남용도 압박할 수 있다. 한국산 최루탄 문제가 <cnn> <bbc> 같은 언론에 나왔다. 이러면 다른 나라도 바레인에 최루탄 수출을 꺼리게 된다.

쉬하비 -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국제 평화에 기여하는 나라로 홍보한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런 효과가 남아공에도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은 인권침해에 사용될 위험이 있는 재래식 무기의 이전을 금지하는 ‘무기거래조약’(ATT)에 가입했다. 더구나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이자 인권협약 당사국이다. 유엔 국제법위원회는 “국제적 위법행위를 자행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조력하는 국가는 그러한 국제적 위법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때로는 살상용 무기로 변하는 최루탄의 수출을 제한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바레인에 수출이 불허됐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한국은 2011~2013년 터키에 최루탄 47만 개를 수출했다. 지난 3월11일 사망한 터키 소년도 이렇게 수출된 한국산 최루탄에 맞아서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 진선미, 장하나 민주당 의원실이 지난해 공개한 ‘방위사업청 최루탄 수출 허가 현황’을 보면, 터키·인도네시아·사우디아라비아 등 7개국에 77만 개의 최루탄이 수출됐다. 최루탄 수출 금지는 당장의 현안인 것이다.

나아가 최루탄만의 문제도 아니다. 3월19일, 총단법 개정 국회 토론회에서 박승호 무기제로 활동가는 이집트 치안군의 무분별한 산탄총 사용 사례를 전했다. 그의 발제에 따르면, 이집트의 25살 청년 가베르 아흐메드 압델 바기는 치안군이 발포한 산탄총 탄약인 벅샷(BuckShot)에 맞아 숨졌다. 사진으로 본 그의 등에는 산탄총 파편 자국이 선명했다. 그런데 한국은 2010~2012년 이집트에 산탄총 탄약 311만여달러어치를 수출했다. 박 활동가는 “국제 인권단체들이 이집트 치안군이 시위자들에게 산탄총을 무분별하게 발포하는 등 중대한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했음에도 한국은 2010년 이후에도 수출했다”고 지적했다.

통상 민수용으로 분류되는 산탄총 탄환은 최루탄처럼 군사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이상 총단법으로 규제받지 않는다. 하지만 바레인, 이집트 등에서는 인명을 빼앗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평화활동가들은 “총단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민수용 총포’도 ‘사람을 죽인다’는 위험이 있다면, ‘중대한 인권침해’에 사용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 활동가는 고문방지협약 등을 준용해 “수입국의 인권 존중도, 수출 신청된 총포의 특성, 최종 사용자, 전용 위험성 등을 평가해 수출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민주주의 탄압을 수출해서야

2011~2013년 바레인 정부의 최루탄 오·남용 실태를 조사한 ‘인권을 위한 의사회’(Physicians for Human Rights)는 바레인의 상황이 1980년대 한국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의 최초 최루탄 보고서는 1987년 한국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희생을 계기로 한국 민주주의는 진전했다. 지속적인 최루탄 반대 여론의 결과로 1998년 마침내 경찰은 무최루탄 원칙을 세웠다. 그렇게 지킨 민주주의를 수출하지는 못할지언정, 민주주의 탄압을 수출해서는 안 된다. 국회 토론회 마지막, 바레인 여성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물었다. 국회의원, 경찰, 공무원 등 토론회에 참석한 누구도 답하지 못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bbc></cnn></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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