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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에서 함께 웃자

쌍용차 해고자들 해고무효 소송 2심 승소
서울고법 “손실 과장하고 해고 회피 노력 부족했다”
등록 2014-02-12 14:34 수정 2020-05-03 04:27
지난 2월7일 서울고법 민사2부는 쌍용자동차 노동자 153명에 대한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왼쪽)과 이창근 기획실장이 법원 앞에서 휴대전화로 판결 소식을 전하고 있다.한겨레 김봉규

지난 2월7일 서울고법 민사2부는 쌍용자동차 노동자 153명에 대한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왼쪽)과 이창근 기획실장이 법원 앞에서 휴대전화로 판결 소식을 전하고 있다.한겨레 김봉규

해고는 살인이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먼 길을 돌아왔다. ‘해고는 살인’이라고 주장하며 77일간 공장을 점거했던 옥쇄파업이 남긴 상처는 지금도 쓰라리다. 그새 24명의 동료가 생활고 등을 견디다 못해 세상을 등졌다. 사회적 타살이었다. 47억원의 손해배상 소송 폭탄을 맞아 예금통장 등은 가압류됐다. 회사와 경찰은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라”고 이들을 옥죄었다. 해고가 살인일 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부당했다고 인정받기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

부둥켜안고 눈물 흘린 해고자들

지난 2월7일, 서울고법 민사2부(재판장 조해현)는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153명의 해고노동자가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해고 기간 동안의 임금 일부로 1인당 100만원씩 지급하라고도 판결했다. 1심에서 패소한 터라 큰 기대 없이 항소심 법정을 찾았던 해고자 30여 명은 판결 직후 부둥켜안고 울었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면, 이들은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다.

잠시 시계를 2009년으로 돌려보자.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자동차 판매량이 급감하고 현금 유동성이 부족해지자, 쌍용차는 이듬해 1월 법원에 파산(기업회생절차 개시명령) 신청을 냈다. 2005년 쌍용차를 인수한 중국 상하이차는 기술 유출 논란을 뒤로한 채 경영권을 포기했다. 법원은 2월 파산 신청을 받아들였고, 3월 회사 쪽 의뢰를 받은 삼정KPMG는 ‘쌍용차 경영정상화 방안 검토보고서’를 작성했다. 총 2646명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뼈대였다. 회사가 인력 구조조정 방안을 공식 통보하자, 노조는 5월 파업에 들어갔다. 1666명이 희망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났고, 980명은 정리해고자로 남았다. 8월 파업이 끝나면서 노사 합의를 통해 무급휴직, 희망퇴직 신청을 다시 받기로 했다. 결국 남은 최종 정리해고자는 159명.

그런데 노조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회사는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할 만큼 진짜 위기였을까? 판결문에 따르면, 2008년 말께 급여 255억원을 지급하지 못하는 등 회사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회사는 위기를 부풀렸다. 2008년도 회계감사를 맡은 안진회계법인이 “유형자산을 손상차손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제안하자, 회사는 재무제표상 약 5176억원의 손실을 과다하게 계상했다. 부채비율은 561%까지 치솟았다. 이는 훗날 정리해고 인원 삭감 규모 등을 결정하는 삼정KPMG 보고서의 주요 근거로 이용됐다. 재판부는 “단종될 차종의 판매량은 작게 잡고, 신차종에서 나올 미래 현금 흐름은 전부 누락시켰다”며 ‘엉터리’ 회계 조작이 있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노조는 회계법인들과 쌍용차 대표이사 등을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재판부는 정리해고를 할 정도로 “긴박한 경영상 위기가 있었는지 분명치 않다”고 판단했다.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가 유효하려면,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 이외에 회사의 해고 회피 노력 등이 충족돼야 한다. 재판부는 “회사 쪽이 해고를 회피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무급휴직을 시행하면 정부에서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도, 회사가 희망퇴직만 강요했던 탓이다.

재판장 “인내의 기간 길지 않기를”

해고자들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회사 쪽은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외 판매량이 늘어나 지난해 2~3분기에 6년 만의 흑자 전환을 이뤄냈지만, 쌍용차 공장 문은 해고자에겐 굳게 닫혀 있다. 조해현 재판장은 이날 “재판은 평화를 이루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앞으로 대법원 판결까지 (해고자들이) 잘 인내하길 바란다. 그 기간이 길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5년은 충분히 길고 고통스러웠다. 그들 앞에 놓인 길이, 부디 평화로 향하는 짧은 길이기를.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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