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세연(6)은 색연필을 탁 집어던진다. “아잇, 짜증나!” 모처럼 색연필을 잡았건만 색칠공부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여긴 춥고 어두침침하다. 엄마 강화숙(44)씨가 손에 든 호롱불만 한 독서등 아래선 공주님의 드레스가 제대로 표현될 리 없다. “왜 이렇게 깜깜해? 왜 불을 안 켜?” 책상에서 물러나 사무실 스위치를 몇 번이고 눌러본다. 답이 없다. 전기는 끊긴 지 2주째다.
아이는 모른다. 퇴근 시간이 지나도 엄마가 집에 가지 못하는 이유를, 이모들이 깜깜한 사무실에 웅크리고 앉은 이유를, 알 리 없다. ‘이모’ 중 한 명이 농반진반으로 아이를 달랜다. “세연아, 힘들지? 이모들도 힘들어. 이게 다 ‘최동열’ 때문이야.”
장면2 어두운 계단을 오르내리던 경비원이 오석순(48)씨에게 쓴소리를 한다. “아이참, 예쁜 아줌마가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할까.” 오석순씨는 경비원에게 하소연한다. “아저씨! (예쁜 아줌마라고 해주신 건 고맙지만) 아저씨 힘드신 거, 저 때문은 아니에요. 기억하세요. 아저씨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최동열’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다 ‘최동열’ 기륭전자(현 렉스엘이앤지) 회장 때문이다. 지난 1월8일, 기륭전자 노조원인 세연의 엄마와 이모들은 서울 신대방동 태웅빌딩 8층 사무실에서 9일째 밤샘농성 중이었다. 지난해 12월30일 기륭전자 사 쪽은 조합원들에게 거취를 알리지 않고 ‘도둑 이사’를 감행했다. “황당했죠.” “기가 막혔죠.” “멘붕(멘털 붕괴)이죠.” 세밑 ‘야반도주’한 사 쪽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조합원들의 회고다.
그날 아침 8시40분께 조합원들이 출근했을 땐 이미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거의 모든 짐을 빼낸 뒤였다. 건물 7층과 8층 기륭전자 사무실에 남아 있던 집기들은 경기도 광명의 물류창고로 보낸다고 했다. “짐이 10t이 넘는데, 어떡할까요?” 이삿짐센터의 연락에 정아무개 총무부장이 사무실을 찾았다. “도대체 어디로 이사 가는 거냐”는 조합원들의 질문에 그의 답은 답이 되지 않았다. “근처로 가요.” 그는 더 추궁받기 전에 황망히 자리를 떴다.
의구심을 떨친 ‘실수로 받은 인터폰’낌새는 있었다. 기륭전자 본사 사무실은 이미 지난해 9월께부터 ‘개점휴업’ 상태였다. 9월24일 한국거래소가 기륭전자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결정했다. 최동열 회장과 임원진들은 그때부터 본사에 숫제 발길을 끊었다. “아무리 그래도 직원들한테 말도 안 하고 (이사) 간다고는 생각 못했죠. 심사 중에 이사를 간다는 건 상식이 아니죠.”(오석순씨)
지난 1월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반가운 소식이 떴다. 기륭전자의 ‘본점 소재지 변경’ 공시였다. 변경 뒤 주소지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신대방1가길 38’. 기륭전자 사무실을 마주 보고 있는 ㅅ오피스텔 건물이었다. ‘근처’로 이사했다는 정 총무부장의 말은 사실이었을까. 지난 1월7일 찾은 오피스텔 사무실은 굳게 잠겨 있었다. 사무실 팻말은 물론이고, 우편물이 오거나 사람이 오간 흔적도 없었다. “본사 이전 공시는 야반도주다 뭐다 여론이 시끄러우니까 연막으로 한 것 아닐까 싶어요. 최동열 회장과 재무팀이 출근을 안 한 지가 4개월 됐으니 실제로 가동하는 사무실이 다른 데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윤종희(44)씨는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파산도, 부도도 아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회장님’과 기륭전자는 도대체 어디로 내뺀 걸까. 조합원들과 최 회장의 숨바꼭질이 시작된 이유다.
‘최동열 찾기’에 나선 조합원들의 아침은 서울 상도동에서 시작된다. 매일 아침 8시면 최 회장 자택이 있는 아파트 단지 앞에서 거리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2월31일부터 벌써 열흘이 넘었다. 나서는 길엔 불안감도 있었다. ‘최동열이 여기 안 살면 어쩌지?’ ‘딴 데 가 있으면 헛수고 아닐까?’ 아는 거라곤 그의 집 주소뿐이었다. 대안이 없었다.
선전전 첫날 ‘누군가’가 실수로 받은 인터폰이 조합원들의 의구심을 떨쳐주었다. “할 거 다 해줬는데 왜 생떼야.” 인터폰 너머에서 짜증 섞인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정을 모르는 이가 그런 말을 할 리 없다. 최 회장의 아내 백아무개씨로 짐작됐다. “어쨌든 누군가 살고 있는 걸 확인했으니, 그날부턴 날마다 가고 있어요.”(유흥희 분회장)
4대 보험 가입도 어렵다더니, 3억7천 순이익 공시사실 그는 해야 할 것을 해준 적이 없다. 2010년 11월1일, 최동열 회장은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노사합의문에 직접 서명했다. 환한 웃음으로 ‘인증샷’도 남겼다. 2005년 8월24일 사 쪽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에 반발한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전면 파업에 나선 지 5년여 만이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사회 통합과 노사 상생을 바탕으로 이번 합의가 이뤄졌다”며 마지막까지 투쟁한 조합원 10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로 약속했다. “그때 (최 회장이) 꿈의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던가 그렇게 말했죠. ‘어휴,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희도 정말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랬었죠.” 어느 조합원은 돌이켰다. 기륭전자의 합의는 ‘상생’의 모범 사례로 큰 조명을 받았다.
노조도 한 걸음 양보했다. 생산설비가 없는 회사 상황을 고려해 고용 시점을 1년6개월 미뤄주었다. 약속한 복직 시점인 2012년 5월, 노조는 다시 반 걸음 물러섰다. 2011년에 매출 200억원, 영업이익 10억원의 흑자 공시를 내고도 회사는 “아직은 생산설비를 갖추는 데 내적 어려움이 있다. 반드시 설치하겠다”는 말만 거듭했다. 부속합의서에 따라 한 차례 더 유예기간을 허락했다. 2년6개월 만인 지난해 5월2일에야 기륭전자 조합원 10명은 회사에 복귀했다.
‘복직’한 조합원들을 바라보는 최 회장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2년6개월 전의 미소는 간데없었다. 사 쪽은 “자리가 없으니 회의실에 대기하라”고 했다. 일감은 없었다. 2005년까지 위성항법장치(GPS)와 내비게이션을 만들어 200억원의 흑자를 내던 회사는 어느새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2008년 최동열 회장이 경영권을 인수한 뒤 기륭전자는 금천구 가산동의 본사 부지와 생산시설, 중국 장쑤성 쑤저우의 공장을 모두 팔아넘겼다.
노사는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실무교섭을 이어가기로 했다. “6월 교섭 때 우리가 기륭전자에 복직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도록, 당장 업무를 줄 수 없다면 4대 보험이라도 가입해달라고 요구했어요.” 유흥희 분회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4대 보험 가입도 어렵다고 하더군요. 직원들도 다 임금체불 중이라면서….” 돈이 없어 보험 가입도 해줄 수 없다던 회사는 지난해 1분기 보고서에서 3억7천만원의 당기순이익을 공시했다. 지난해 8월 ‘사회적 합의’를 물로 보는 사 쪽의 배짱에, 기륭전자 노조는 다시 투쟁에 나섰다.
‘인터폰 단말마’ 이후 최동열 회장 쪽은 묵묵부답이다. 전화 연락 또한 닿지 않는다. 지난 1월6일 ‘건재함’을 알린 행동이 마지막이다. 아침 선전전 뒤 자신의 아파트 건물에 진입한 유 분회장을 최 회장은 경찰에 신고했다. 150cm가 채 되지 않을 작은 체구의 유 분회장을 경찰 6명이 들어올려 건물 밖으로 끌어냈다. 정보과에서 나온 형사가 유 분회장에게 전했다. “(최 회장을 만났는데) 최 회장은 ‘그 사람들은 우리 회사에서 일한 적도 없고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여기 와서 소란을 피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노사합의서에 도장을 찍은 이도, “회사가 잘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말한 이도 최 회장 자신이었다.
“우리가 찾아간 것만으로 불편할 테니까”9년에 걸친 싸움이다. ‘왜 그리 끈질기게 붙어 있냐’는 이들도 있다. “기륭 합의는 단순한 노사 합의가 아니거든요.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이 마음을 모아서 만든 사회적 합의고, 국회에서 조인까지 했잖아요. 그런데 그 사회적 합의란 걸 기업은 너무나 쉽게 내팽개치는 거죠. 하다못해 복권이 당첨되면 얼마씩 나누겠다는 개인 간의 약속도 지켜져야 한다는 판례도 있습니다. 노사 간의 약속에도 강제력이 필요한 것 아닌가요.” 유흥희 분회장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은 기업에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와 전문가 집단이 대토론을 해보자는 제안이다.
‘좋은 뜻인 것 같긴 한데, 너무 어려운 이야기’라는 훈수는 노동계 안에도 있다. 사실이다. 멀고, 지치는 길이다. ‘기륭’이어서 가능한 도전이다. “우린 복잡하게 생각 안 해요. 남자들은 예단한 뒤에 서로 다투고, 해보기도 전에 포기하는데…. 우린 ‘해야 되면 해야지. 일단 해보자. 안 되면 다른 길로 가면 되지’ 생각해요.”(윤종희씨)
이를테면 이런 단순함이다. 조합원 3명은 지난 1월8일 최 회장의 동생인 최성열 기륭전자 부회장이 회장직을 맡고 있는 대한레슬링협회를 무작정 찾았다. ‘거기 가도 그 사람 없다’는 기자의 고언에도, 승합차를 몰아 서울 잠실의 협회 사무실을 방문했다. “최성열 회장을 만나러 왔다”는 조합원들의 씩씩한 요구에, 협회 직원들은 잠시 당황한 듯 보였다. “그분은 여기 안 와요. 연락처도 개인정보 때문에 드릴 수가 없어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없었다. 차를 나눠 마시며 조합원들은 협회 직원에게 저간의 사건들을 설명해주었다. 윤종희씨는 “우리가 찾아갔단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최 부회장이 불편해질 테니까.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는 거죠”라며 웃었다.
1895일. 기륭전자 조합원 10명이 희망을 걸고 거리에서 버텼던 투쟁의 날들이다. 머리카락 보이지 않게 꼭꼭 숨은 최동열 회장이 그들보다 오래, 질기게 버틸 수 있을까.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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