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철도노동조합(이하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한겨울 거리로 나섰다. 2009년 회사의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 통보에 항의하며 8일 동안 대대적으로 파업을 벌인 지, 꼬박 4년 만이다. 파업의 도화선은 국토교통부가 지난 6월26일 발표한 ‘철도산업 발전방안’이었다. 이날 코레일은 자회사를 세워 수서발 KTX 노선 운영을 맡기겠다는 내용을 밝혔다. 자회사 지분은 코레일과 공공자금 등이 나눠 갖는 형식이다. 정부는 이를 두고 ‘독일식 철도 경쟁체제 도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이어진 ‘KTX 민영화 논란’에 또 다른 불씨가 옮겨붙는 순간이기도 했다. 철도노조 와 노동계는 철도산업의 지분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 자체가 ‘철도 민영화의 신호탄’이라고 지적했다. 곧이어 철도노조는 파업을 선언했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해 “국민의 철도, 공공의 철도를 지키기 위해, 이제 철도 민영화를 막기 위한 마지막 수단(파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직위해제, 파업 뒤 복귀시 문제‘철도 민영화 논란’을 두고 강한 파열음이 일어나고 있다. 철도노조의 총파업에 맞서 정부가 징계와 고발이라는 칼을 마구 휘두르면서, 철길처럼 팽팽한 갈등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2월12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법무부·안전행정부·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 장관들과 함께 대국민 합동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파업은 어떠한 명분과 실리도 없는 명백한 불법파업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 불편과 국가 경제 손실을 외면하는 불법파업은 결코 국민들의 이해와 용서를 얻을 수 없다.” 정부가 철도노조의 파업을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유례없는 철도노조 조합원들의 직위해제에서도 정부의 태도가 읽힌다. 코레일은 파업 시작일부터 12월12일까지 노조 전임간부 143명을 포함해 파업에 가담한 7608명에 대해 ‘직위해제’를 내렸다. 직위해제는 “직위를 계속 유지시킬 수 없는 사유가 있어 직위를 부여하지 않은 것”으로 징계가 아닌 이른바 대기발령이다. 문제는 직위해제 처분을 받으면, 파업이 끝나고 업무에 복귀할 때 코레일의 정식 조사를 거쳐 계속 근무가 가능한지를 평가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즉, 직위해제 명령은 파업 가담자에게 나중에 책임을 묻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조치다. 앞서 2009년 파업 때도 직위해제가 이뤄졌지만(950여 명), 현재 인원은 4년 전의 8배에 이르는 규모다. 이에 대해 철도노조는 “직위해제 여부와 관계없이 파업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 조사를 통한 철도노조 압박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파업에 들어가기 무섭게 코레일은 노조 집행부 등 194명을 대전지방경찰청 등 각 지역 경찰서에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경찰은 12월13일 2차 소환에도 불응하면 대상자들을 강제 구인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이에 맞서 철도노조는 수서발 KTX의 자회사 설립을 승인한 코레일 이사진 12명을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근로조건과 무관” vs “노동조건과 밀접한 연관”이처럼 징계와 고발이 난무하는 건, 정부와 노조가 이번 파업의 성격을 두고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는 파업 등 쟁의행위에 대해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노사 간) 주장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한 분쟁”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코레일은 철도노조가 파업의 명분으로 내세운 ‘철도 민영화 반대’는 근로조건과 관계없는 사안이므로 파업의 명분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 정책 변경을 요구하는 것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불법파업”이라는 서승환 장관의 논리도 같은 맥락이다. 철도노조와 노동계는 “수서발 KTX 운영 자회사 설립이 경영 악화를 초래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노동조건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며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철도노조는 “법률 전문가와 국회 환경노동위 야당 위원들은 수서발 KTX 분리가 철도노동자의 노동조건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필수 유지 업무를 준수하고 있기 때문에 합법이라고 보고 있다”며 “이러한 판단은 국제노동기구와 국제노동단체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갈등이 이어지면서 철도 민영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민간 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통해 수서발 KTX 자회사 운영 방안을 준비했다. 당시 일부 위원들이 “철도 민영화에 들러리를 서고 있다”며 위원회를 탈퇴했다. 정부는 공론화 형식만 취하고는 방안을 밀어붙이는 상태다. 또 사회적 토론 대신 ‘민영화가 아니다’라고 규정한 채 반대 여론을 잠재우려는 모습도 보인다. 서승환 장관은 지난 12월11일 기자들을 만나 “박근혜 정부는 철도산업 민영화 의지가 전혀 없다. 수서발 KTX가 철도 민영화의 시발점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도 12월9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수서발 KTX는 코레일의 계열사로 확정됐고 지분 참여 가능성도 완전히 차단했다”며 “(노조의) 민영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 사장조차 코레일 사장으로 임명되기 전인 지난해 1월31일 에 실은 칼럼(‘국익에 역행하는 고속철도(KTX) 민간 개방’)에서는 “국가 기간 교통망인 고속철도에 민간 참여라는 극단적 방법까지 동원해 경쟁을 도입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정부 입장과 다른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놓은 바 있다.
“적자 문제는 정책 당국이 주범”철도 민영화를 둘러싼 갈등은 대규모 고소·고발전으로 비화한 탓에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철도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직후인 12월10일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중단하고 TV토론 등으로 전 사회적인 토론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코레일은 이를 거부했다. 민주노총은 정부와 국회, 코레일 쪽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산하에 철도발전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 기구를 만드는 중재안도 내놓은 상태다. 철도노조와 노동계는 “철도산업계의 적자 문제는 독점이 아닌, 낙하산 인사와 투자 외면, 잘못된 정책에 따른 손실을 야기한 정책 당국이 주범”이라고 지적하면서 ‘소통’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철도노조를 향해 징계의 칼을 꺼내든 정부 당국에는 이들의 목소리가 그저 ‘반역’처럼 들리고 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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