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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종교재판관들은 마녀로 지목된 여성을 밧줄로 묶으며 요구했다. “물에서 살아나오길 포기함으로써 마녀가 아님을 입증하라.” 일본의 에도막부는 그리스도인으로 지목된 사람을 칼로 위협하며 요구했다. “성화를 밟고 지나감으로써 신자가 아님을 입증하라.” 김태흠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하 사제단)을 ‘종북구현사제단’이라고 부르며 요구(11월24일)했다. “사제복 뒤에 숨지 말고 종북 성향을 국민 앞에 드러내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천주교에 사제들 자격 박탈을 요구(11월26일)하며 말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정체를 밝혀줄 것을 요청한다.”
많은 경우 폭력은 자신감에서 나온다. 누군가의 정체를 묻는 질문 속엔 진리 혹은 권력을 주도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다. 사제단을 반체제 인사로 몰아가는 ‘대통령→여권 수뇌부→수사기관→보수단체’의 일사불란한 협력체제에선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팽창하는 보수의 강한 자신감이 관찰된다. 종교인의 비판을 이단으로 낙인찍는 정치 시스템에선 ‘공포 마케팅의 열렬한 소비자들’이 동원돼 연출하는 종교적 징후마저 읽힌다. 아기 예수의 탄생일을 눈앞에 두고 사제단을 마녀사냥 하는 ‘보수의 성령’이 충만하다.
“시국에서 거리 두기 더 어려워져”종교가 다시 전선에 서고 있다. 종교인들이 사회적 발언의 전면에 나설 땐 시대의 엄중함이 선을 넘었다는 판단이 전제돼 있다. 사제단 전주교구와 박창신 신부 강론(11월22일)의 메시지는 단순했다. 박 대통령이 선거 부정 사실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종북몰이로 사태를 덮으려 한다면 결국 사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박 신부의 ‘연평도 발언’을 빌미 삼은 정권의 맹공이 거꾸로 개신교·불교·원불교의 성직자·신도들까지 대통령 퇴진운동 대열로 불러내고 있다. ‘진상 규명·책임자 처벌’이란 상식적 요구가 전 국가기관이 동원된 종북몰이 앞에 좌절되는 절망감이 불쏘시개가 되고 있다.
사제단은 외부의 공격에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사제단의 한 신부는 “전주교구의 인식에 한국 전체 사제들의 80% 이상이 뜻을 같이하고 있다”고 전했다. “어려운 수학 문제가 아니지 않냐”고도 했다. 그는 “정부의 왜곡과 모독으로 교회가 현 시국으로부터 거리를 두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는 선거 부정 외에도 경제민주화나 쌍용자동차 국정조사 약속도 다 뒤엎었다. 우리는 시민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정부가 듣지 못하는 민심을 전달해왔다. 종북몰이로 교회가 입은 상처가 매우 크다. 반칙을 뉘우치고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호소를 국가 전복 세력으로 몰아가면 정말 싸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
천주교 역사에서도 사회의 고통을 직시하는 움직임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한국전쟁 전후 강렬한 극우·보수 정서가 교회를 지배했다. 당시 의 제목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말살의 신념을 갖고 남보다 맹렬히 적을 공격하라’(1951년 11월10일), ‘가톨릭 정신을 기조로 멸공구국의 십자군이 되라’(1951년 3월20일), ‘무찔르려마 무찔르려마 사탄의 대열을 무찔르려마’(1951년 1월14일). 멸공은 신앙과 동격이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맞선 민주화운동 시기의 천주교는 진보적 흐름으로 선회한다. 서울교구의 김수환 추기경과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 전주교구의 김재덕 주교 등이 주도했다. 김 추기경은 한국 천주교 사회참여의 얼굴이었고, 정권의 지 주교 탄압은 사제단 창설의 계기가 됐으며, 전주교구는 이번 시국미사에 이르기까지 비판적 흐름의 주력으로 역할해왔다.
1987년 이후 천주교는 사회 흐름과 달리 보수로 회귀했다. 가톨릭농민회를 신자들만의 모임으로 국한시키고,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수장을 보수적 인물로 교체했다. 천주교 사회참여의 공식 통로인 정의평화위원회도 주교회의 자문기구로 역할을 제한했다. 정진석 현 추기경이 이끈 이 흐름은 200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보수언론이 내세운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분위기가 재선회한 계기는 2009년 1월 서울 용산 참사였다. 정의평화위원회는 4대강 사업에 반대 의견을 밝혔다. 2011년엔 12월 둘쨋주를 ‘사회교리 주간’으로 선포했다. “사회교리는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는 교회의 시각과 역할을 담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 교회마저 손을 놓으면 이 시대가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절박함이 반영됐다. 우리나라 천주교에만 있는 특수한 역사적 산물이다.” 한상봉 편집국장은 설명했다.
현재 천주교 사제들은 한국 사회의 최전선에서 고통과 마주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농성장과 경남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에서 현장의 눈물을 닦고 있다. 주교회의를 통해 탈핵 정책 수립을 정부에 공식 요구하기도 했다. 전주교구의 박 대통령 퇴진 요구는 그 정점인 셈이다.
주요 방송과 보수언론들이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의 목소리를 내세워 교회 내 균열을 강조하는 것도 의도적인 침소봉대란 지적이다. 손병두(박정희기념재단 이사장·“유신시대가 더 좋았다” 발언), 김중위(전 환경부 장관·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피해자 권인숙씨를 두고 “정신감정을 받아볼 필요” 발언), 김현욱(가톨릭뉴라이트 상임의장·전두환의 광주 학살을 두고 “북한 특수부대 소행” 발언), 박관용(전 한나라당 부총재·국회의장) 등 민정당·한나라당·새누리당에 몸담았거나 가까운 사람들이 발기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교계 한 관계자는 “천주교 전체 의견 분포로 보면 그들은 극소수다. 신앙에 입각한 말이라기보다 정치적 보수세력이 교회 안에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의 들러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권과 보수세력은 ‘정교분리’ 논리로 사제단의 정치 비판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 역사적·신학적 맥락을 무시한 왜곡에 가깝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연구실장(목사)은 “종교인이 투표를 하는 것 자체가 정치참여다. 서양에서는 종교에 기반한 정당도 흔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건 사문화된 정교분리 원칙이 아니라 어떤 정치참여냐다. 보수든 진보든 종교인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선 안 된다”고 했다. 사제단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6월 ‘고 김선일씨 추모 및 파병 철회 촉구 미사’를 올리며 ‘정권 퇴진 불사’를 외쳤으나 종북으로 몰리진 않았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의 신학과 교수도 말했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행위고, 사제의 정치참여를 비판하는 것이 바로 정치적이다. 한기총의 시조 격인 요한 칼빈(장로교 창시자)은 스위스 제네바를 신정정치로 통치했다. 역사적으로 정교분리는 있어본 적도 없다.” 프란치스코 현 교황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며 누구보다 정치적 발언을 강하게 하고 있다. 한 신부는 “전주교구의 시국미사를 두고 사제의 정치참여를 문제시한 염수정 대주교의 발언은 전혀 교회적이 아니다. 정치권력의 천주교 공격을 누그러뜨리려는 고육지책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총선, 보수 교단 정당 난립박 대통령과 여권의 사제단 비난은 이중적이다. 자신의 지지층인 보수 기독교가 훨씬 노골적으로 국내 정치에 개입해온 사실을 생략한 까닭이다. 지난 4월 보수 교회들은 교인들을 독려해 야당 의원들을 겁박하는 방식으로 차별금지 법안을 자진 철회시켰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곤 보수 교단이 만든 기독자유민주당·한국기독당·기독사랑실천당 등이 난립하며 직접 정당정치에 뛰어들었다. 정치와 종교의 거리를 완벽하게 없앤 정치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그는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며 ‘정치의 종교화’를 시도했다. 이후 국내는 물론 한인교회가 세워진 전세계에서 해당 도시를 ‘성시화’하는 선언이 잇따랐다.
박 대통령과 여권의 사제단 비난은 이중적이다. 자신의 지지층인 보수 기독교가 훨씬 노골적으로 국내 정치에 개입해온 사실을 생략한 까닭이다. 지난 4월 보수 교회들은 교인들을 독려해 야당 의원들을 겁박하는 방식으로 차별금지 법안을 자진 철회시켰다.
박 대통령은 “분열을 야기하는 일들은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겠다”(11월25일)고 단언했다. 그의 발언 전후로 사제단을 향한 여권과 보수단체의 살벌한 포화가 퍼부어졌다. 박 대통령의 “애국과 단결”이 교시처럼 활용됐다.
입들이 터졌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그 사람들의 조국이 어딘지 의심스럽다”(11월24일)고 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북한이 최근 반정부 대남투쟁 지령을 내린 후 대선 불복이 활성화된다는 지적이 있다”(11월25일)며 사제단과 북한의 연계 가능성까지 주장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국가를 부정하는 행위에 확고한 의지로 대처해나가겠다”(11월25일)고 했고, 유승민 국방위원장(새누리당)은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박 신부의 연평도 발언 규탄 결의안 채택을 제안(11월26일)했다.
보수와 극우의 중흥, 젖줄은 대통령행동이 따랐다. 박 신부를 상대로 보수단체의 고발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활빈당(11월25일)은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에, 자유청년연합(11월25일)과 인터넷 김기백 대표(11월25일)는 각각 대검찰청에, 호국보훈안보단체연합회(11월26일)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자유민주국민운동(11월26일)은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국가보안법 위반과 내란선동 혐의를 들었다. 대한민국재향경우회·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는 에 광고(11월26일)를 내 사제단이 “합헌정부 전복 선동 쿠데타 음모를 획책하고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5천만 국민과 반국가 패거리들을 분쇄해나갈 것을 천명”했다. 탈북자합창단은 ‘종북신부 규탄 거리공연’(11월27일)을 펼쳤다. 칼도 움직였다. 검찰은 곧바로 수사 착수 절차에 돌입했다.
하루이틀 사이에 정·관·민이 톱니바퀴처럼 움직였다. ‘대통령이 말하고, 단체가 고발하며, 검찰이 수사하는 팀플레이’는 국정원 선거 개입 사태가 전개되면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안착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공무원 정치 중립” 발언 이후 자유청년연합의 잇따른 고발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검찰 압수수색을 당한 전례의 되풀이다.
일종의 징후다. 박근혜 정권이 비판 자체를 옥죄면서 도드라지는 현상이 있다. ‘보수와 극우의 중흥’이다. 자신감이 확연하다. 젖줄은 박 대통령이다. 대통령과 국가 권력기관들이 공안·공포정치를 펼치면서 ‘다른 생각들’에 행사하는 보수 정치인과 단체들의 폭력 수위가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시민의 눈치도 이성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정치인들부터 폭주한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프랑스에서 국정원 선거 개입을 비판하는 시민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폭언을 퍼부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국민심리전은 국민 오염을 방지하는 정당한 임무 수행”이라고 강변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소설가 이외수씨의 천안함 발언을 이유로 MBC 예능방송(‘진짜 사나이’) 출연 분량을 들어내게 만들었다. 법은 편승한다. 지난해 ‘검란’으로 불명예 퇴진한 한상대 전 검찰총장은 사제단 마녀사냥 분위기에 올라타 ‘재임 때 종북 검사들 축출’ 사실을 자랑했다. 법무부는 정당해산심판 청구에 반발한 통합진보당의 삭발·단식 투쟁까지 ‘종북세력의 증거’라며 헌법재판소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단체와 개인들은 ‘완장’이 된다. 정부 지원을 받는 자유총연맹은 한 달간 ‘종북척결 전국 순회 투어’를 펼쳤고, 사제단 발언에 반발한 사람이 명동성당 폭파를 협박하는 ‘백색테러’가 벌어졌다. 사제단 원로인 함세웅 신부가 은퇴미사 때 손에 든 성체를 조선노동당원증으로 바꾼 합성사진까지 “믿음으로 보셔야 합니다. 합성이 아닙니다”란 말과 함께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박근혜 정권의 자신감은 분명 ‘진화’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나 채동욱·윤석열 찍어내기 및 ‘이석기 내란음모 사태’까지만 해도 정국 전환용 카드란 분석이 많았다. 전교조 법외노조화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로 옮겨가면서는 한국 사회의 체질을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전으로 되돌리려 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사제단 전주교구의 시국미사에 반응하는 보수의 일치단결에선 ‘이단을 척결해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까지 엿보인다. ‘반인반신’ 발언(남유진 구미시장)으로 대표되는 ‘박정희 신격화’ 움직임과도 맞물려 있다. 신앙의 대상(박정희·박근혜)과 교리(반종북)와 맹렬한 신도들(보수단체)을 갖춘 ‘종교적 성격이 강한 정치’로 나아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김진호 연구실장은 분석했다.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어떤 행위를 하고 어떤 사실이 드러나도 변함없이 지지한다. 교회 목사가 성추행을 하고 스캔들의 주인공이 돼도 교인들이 동요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성으로 판단하지 않고 감성적으로 추종하는 정치 현상은 전형적인 종교의 성격을 띤다.”
불교 조계종 승려도 시국선언이명박 정부의 ‘성장·성공 담론’이 실패한 상황에서 여권이 대중의 절박한 고통을 반공주의 경향이 짙은 ‘박정희 메시아주의’와 묶어 정치자원으로 동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대쪽을 향한 증오를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 장치로서 집단적 종교성(반종북)이 악용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종북몰이의 개신교 쪽 엔진인 한기총의 사제단 비판 성명에서도 ‘정치적 동원’의 일단이 확인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일 년도 채 안 된 과정에 수많은 외교 정상들을 만나 역대 대통령 중에 국가 신임도를 가장 높인 평가받을 만한 대통령으로 국민 앞에 각인되고 있다. 국민 전체가 한마음으로 성원하고 협력하는 것이 국민 된 도리가 아니겠는가.” 신앙 위에 정견을 얹자 ‘국민 된 도리’로 귀결됐다.
사제단의 뒤를 이웃 종교들도 속속 따르고 있다. 개신교 단체들로 구성된 ‘국정원 선거개입 기독교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11월27일 기자회견을 열어 박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했다. 공대위는 12월6일 비상시국대회 전야제 때도 부문대회 형태로 사퇴 요구 기도회를 연다. 개신교 목사들의 모임인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는 12월16~25일 서울광장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금식기도’를 계획하고 있다. 불교 조계종 승려 1012명도 11월28일 선거 개입 관련자 처벌과 대통령 사과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천주교 전국 15개 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12월11일 총회를 열어 사태의 대응책을 마련한다. 사제단은 내년 1월 총회에서 대통령 사퇴 요구의 전면화 여부를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전선은 확대되고 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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