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6월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동성애자 남성 5명에게서 이전까지 보고된 바 없는 ‘폐렴’이 발생했다. 몸에 붉은 반점이 생겼고 이내 숨을 거뒀다. 폐렴이 아니라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였다. 본 적 없는 괴질을 접한 인류는 신경증적 반응을 보였다. 마침 노스트라다무스가 점쳤던 세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떤 종교인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퇴폐적인 도덕의 귀결”이라는 주장이었다. “신의 징벌” “자연의 복수” 같은 치욕의 말들이 몸의 고통과 함께 감염인의 정신을 좀먹었다. 에이즈는 “인간이라는 종의 삶과 희망을 꺾는 가장 무시무시한 징계”(수전 손태그, )가 되었다.
지난 11월5일, 그같은 치욕을 견디다 못한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였다. 6명의 에이즈 감염인이 서울 무교동 국가인권위원회 8층 배움터에 섰다. 가로폭 8m의 펼침막이 그들 앞에 드리워졌다. 펼침막 뒤에서 얼굴 없는 목소리들이 분노를 쏟아냈다.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할 곳에서조차 감염인들의 존엄이 내동댕이쳐지고 있다는 호소였다. 이들의 직접 증언과 사건을 조사한 ‘국가에이즈사업모니터단’의 간접 증언을 바탕으로 그들이 겪은 차별의 경험을 재구성했다. 증언자들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모두 이름과 나이를 밝혀 적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에이즈를 소리내어 말할 수 없었다. 지독한 모순이었다. 중증 에이즈로 지친 이들이 찾는 쉼터에서, 에이즈는 금기어가 돼 있었다. 2012년 7월부터 한 달여 경기도 남양주의 에이즈 감염인 장기요양시설 ㅅ요양병원에 입원했던 박선우(가명)씨는 여전히 그 일이 이해되지 않는다.
“‘에이즈’란 말 절대 하지 마세요”
“암병동이나 실버타운 입원 환자들에게 에이즈 감염인이라고 절대 말하지 마세요.” 병원의 중간관리자인 사회복지사가 입원을 앞둔 박씨에게 건넨 첫 당부였다. “환자와 간병인 사이에 ‘터치’(접촉)하면 안 돼요.” 간병인이 또 다른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에이즈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환자는 병원 건물 밖에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징벌’ 수준이었다. 그 와중에 사회복지사는 생색내듯 말했다. “우리 병원이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에이즈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에요.” 박씨는 저절로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어차피 갈 수 있는 병원을 선택할 처지는 못 되었다. 고관절 수술을 받아 걸을 수 없었지만 그를 돌봐줄 가족은 없었다. “ㅅ요양병원에 들어가면 바보 돼서 나온다”고 다른 병원의 간병인들이 자꾸 말했지만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달리 대안도 없었다. 대부분의 요양병원은 에이즈 감염인을 받기 꺼렸다. 많은 에이즈 감염인의 처지가 그와 비슷했다.
ㅅ요양병원은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감염인이 머물 수 있는 유일한 요양병원이다. 병원은 2010년 질병관리본부의 장기요양사업 위탁기관으로 선정돼 72개 에이즈 환자 병상을 운영하기 위한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2010년 7천만원, 2011년 4억1천만원, 2012년 2억6천만원, 2013년 2억4천만원의 국고를 지원받아 사회복지사·상담간호사·간병인을 고용하고 있다. 재가복지 사업의 하나로, 건강 상태가 양호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들이 간병인으로 채용됐다.
외부와 격리된 요양병원에선 군 내무반과 비슷한 규율이 작동했다. ‘의사-사회복지사-간병인-감염인’ 사이에 “눈에 보이는 갑·을 관계가 형성됐다”. 암환자 병동, 실버타운 등 300여 개 병상이 있었지만 에이즈 병동에만 억압적인 환경이 주어졌다. 밤 9시가 되면 에이즈 병동의 불은 꺼졌다. 일체의 움직임이 통제됐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9시가 지나면 환자들은 병상을 지켰다. 깜깜한 병동 바깥에선 암병동·실버타운의 환자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노랫소리도 들렸다. “갑갑하죠. 그런데 간병인들에게 감히 어떤 요구를 할 수 없는 환경이었어요.” 박선우씨의 설명이다.
병원에서는 간병인 13명이 2교대로 환자 40~50명을 돌봤다. 1명의 간병인이 8명 넘는 환자를 돌보는 셈이었다. 그 자신도 감염인인 간병인들은 격무에 시달렸다. 병원 청소노동자는 에이즈 감염인의 병실은 청소하지 않았다. 간병인들이 직접 병실을 청소하고 유리창까지 닦았다. 외래진료 환자를 수송하거나 의료 행위인 ‘드레싱’ 보조하는 일도 떠맡았다. 재활치료가 많은 탓에, 환자의 일정은 빡빡했다. 40분의 식사 시간에 환자와 간병인의 식사를 마쳐야 했다. 2011~2012년 ㅅ요양병원에서 간병을 한 강규진(가명)씨는 “HIV 감염인을 이용해 착취하는 것 같았다. 문제를 제기하면 ‘뒷말을 하다가 쫓겨난 간병인들이 있다’고 겁주곤 했다”고 분을 터뜨렸다.
소문 확산 막으려 제보자 색출
억압과 폭력은 더 약한 이들에게 쉽게 전이됐다. 간병인들의 상습적인 막말과 구타가 환자들의 일상을 짓눌렀다. 환자에게 급히 밥을 먹이기 위해 간병인들은 국물을 만 밥을 먹게 강요했다. “밥을 국물에 말지 말라”고 말했다가 욕을 듣거나, 배뇨 조절이 안 돼 침대보를 적시면 “또 오줌을 눴냐”고 면박을 듣는 일은 보통이었다. 간병인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바지가 소변으로 젖은 채 하룻밤을 꼬박 보낸 환자도 있었다. “요양이 아니라 사육이었다.” 2012년 9~12월 해당 병원에서 환자들을 간병한 이철웅(가명)씨의 고백이다. 이씨는 “환자가 잘못돼도 문제를 제기할 가족이 없으니까 (병원과 간병인이) 환자에게 함부로 했다”고 토로했다.
묵인에 가까운 병원의 방조 속에 더욱 끔찍한 폭력이 자행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간병인이 환자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11년 10월, 질병관리본부의 의뢰를 받아 국가에이즈사업모니터단으로 활동하던 이훈재 인하대 의대 교수는 복수의 ㅅ요양병원 간병인들로부터 “동료 간병인이 실명 상태의 60대 환자를 사실상 성폭행했다”는 취지의 제보를 들었다. 또 다른 구타와 폭언의 정황들도 비로소 물 위로 드러났다. 마침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일어난 성폭력과 학대를 다룬 영화 가 공분을 불러일으키던 때였다. 이 교수를 비롯한 모니터단은 질병관리본부와 병원 쪽에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돌아온 것은 ‘함구령’이었다.
그해 11월22일 서울 용산역 회의실에서 관계자들의 대책회의가 열렸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성폭력인지 성관계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제대로 된 실태 조사조차 없이 “(성폭행) 피해자에게 피해 여부를 확인했는데 피해 사실을 명확히 이야기하길 꺼린다”고 말을 잘랐다. ㅅ요양병원장 또한 이 자리에서 “성폭행은 불가능한 상황이고 말이 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좋아서 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질병관리본부 관계자가 당시 왜곡된 문제 제기를 하려는 사람들을 찾아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뉘앙스로 추궁했다. 회의에 참석한 전문가들과 간호사들은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건에 대해 함구할 것을 강요받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그사이 ㅅ요양병원은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간병인을 해고했다. 소문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제보자 색출에도 나섰다. 피해자가 요양병원에 오기 전 머물렀던 종합병원의 상담간호사 ㄱ씨가 물망에 올랐다. ㅅ요양병원장은 해당 간호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내 “사실과 다른 바를 알림으로써 발생할 경과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궁금하다. 향후 지속적으로 본원과 본인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면 허위 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에 의거해 형사처벌될 수 있음을 통고한다”고 압박했다. ‘에이즈’라는 낙인 때문에 감염인 본인과 가족들은 폭력 앞에서도 피해를 주장하기 어려웠다. 당시 피해자의 아들은 간호사 ㄱ씨에게 “(병원을) 고소하고 싶지만 일이 더 커지게 되면 아버지의 감염 사실을 모르는 형제들에게 에이즈 감염 사실이 노출되지 않을까 두렵다”고 털어놨다.
인권위 “민간기관은 직권조사 대상이 아니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위탁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질병관리본부뿐이었다. 귀 막은 정부에 전문가들의 호소는 의미 없었다. 2011년 12월 이훈재 교수 등은 질병관리본부장에게 “책임 있는 조처를 취해달라”고 촉구하는 민원서를 보냈지만 회신은 오지 않았다. 이어 국가인권위원회에 “ㅅ요양병원에서 다양한 유형의 환자 인권침해(폭행, 폭언, 진료·간호·간병 소홀, 성추행 내지 성폭행 등) 사례가 반복적으로 발생돼왔다”는 취지의 진정을 냈지만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기관은 직권조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답을 들었다.
폭력을 시정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낙인찍기’로 귀결됐다. 사건이 벌어진 뒤 질병관리본부는 HIV 감염인인 간병인들에 대해 “인성 교육이 필요하다”며 다면적 인성 검사, 기질 및 성격 검사 등 정신감정을 하기로 했다. 당사자들의 동의도 받지 않았다. 검사 결과에 따라 상담에 참여해야 했다. 검사에 참여한 한 간병인은 “죄인처럼 느껴져 자존감이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권미란 활동가는 “사건의 원인을 간병인의 인성과 정신과적 문제로 환원하려 한 것은 질병관리본부 스스로 감염인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자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용자는 근로자가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근로관계에서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 대우를 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3조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이후 일상적인 감시와 통제는 더욱 악화됐다. 병원 쪽은 간병인들에게 자주 “환자끼리 성적 접촉이 있는지 항상 잘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에이즈 감염인이 아닌 다른 환자를 만나거나 (에이즈 병동인) 7·8층을 벗어날 때 비밀을 준수해라. 쫓겨날 수 있다”는 협박도 있었다. “밖에서 (불만을) 이야기하지 마라. 당신들 여기 아니면 어디서 일하겠느냐.” 간병인들이 월례회의 때마다 병원 쪽에서 듣는 핀잔이었다. 환자와 간병인들은 ‘인성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종교 활동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새벽 4시에도 “기도하게 일어나라”고 했다. 강규진씨는 “병실에 모여 예배를 했다. 움직일 수 없는 와상 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예배하는 것을 들어야 했다. 참석하지 않은 환자가 있으면 사회복지사가 이름을 지목하며 ‘간식을 줄 테니 데리고 오라’고 권했다”고 돌이켰다.
“영성의 치유, 마음의 치유, 육신의 치유를 모두 포함하는 전인 치유”를 표방한 ㅅ요양병원의 운영 취지와 달리, 일부 환자들은 그곳에서 ‘육신의 치유’조차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ㅅ요양병원과 연계해 에이즈 감염인들을 간병해온 병원의 한 간병인은 “다리를 절단한 뒤 경직이 온 환자를 간병인들이 열심히 보살펴 혼자 휠체어를 타고 오갈 수 있을 정도로 호전시켰는데, ㅅ요양병원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심각한 욕창으로 다시 본원에 돌아왔다”고 전했다. 지난 8월에는 복막염 수술 뒤 ㅅ요양병원에 입원한 에이즈 감염인(35)이 적절한 의료 조처를 받지 못해 숨졌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2012년까지 국가에이즈관리사업 모니터단으로 활동한 김종훈 사회복지사는 “환자가 건강에 이상을 느끼고 의료진에게 본원인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ㅅ요양병원은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는다’며 환자의 의견을 묵살해 안타깝게 사망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묵살한 사안이다”고 지적했다.
영성의 치유는커녕 육신 치유도 안 돼질병관리본부는 해당 병원의 위탁을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고운영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관리과장은 “주 고객인 에이즈 감염인 사이에서 (인권 문제가) 공론화됐기 때문에 연간 사업 평가에서 문제 제기를 당할 수밖에 없다. 최종 결정은 아직 나지 않았지만 시민단체의 의견을 중요하게 반영해 적극 대응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독점’의 폐해가 드러난 만큼 시설을 늘리는 방안도 고려된다. 고 과장은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에이즈 감염인들이 고령화되고 있다. 장기요양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 곳 이상의 시설을 확보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나누리플러스 등 에이즈 감염인 지원단체들은 지난 10월10일 ㅅ요양병원을 다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상태다. ㅅ요양병원 관계자는 “2011년 간병사들에 의한 환자 인권침해 사건이 있었고 그 처리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정보 보호를 위한 법의 규제 때문에 밝힐 수 없는 점이 안타깝다. 우리 선교회에 오시는 분들은 돈도 없고 의지할 데도 없는 분들이다. 이분들의 가정인 우리 시설을 없애려고 노력한다면 그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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