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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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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거짓말 그리고 특검 도입론

속속 드러나는 국정원 대선 개입과 검찰 외압설의 실체
“고작 트위터글 몇 개”→“트위터는 본질 아냐” 새누리당도 우왕좌왕
등록 2013-11-26 14:36 수정 2020-05-03 04:27

빙산은 얼마나 큰 걸까. 새로 드러난 국가정보원의 대선·정치 개입 트위터 글이 121만여 건이다. 이마저도 일각에 불과하다. 그런 일각이라도 감추려는 외압과 수사 방해가 재연됐고, 드러난 일각에 대한 폄훼와 거짓말도 계속됐다. 그러나 빙산이 있다는 사실을 덮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외압·수사방해 드러난 것만 세 번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에 대한 외압, 수사 방해는 드러난 것만 세 번째다. 수사팀은 지난 11월20일 저녁 8시30분 서울중앙지법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2차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제출했다. 재판부가 공소장 변경 시한으로 요청한 날이다. 일과 시간 이후로 늦춰진 것은 법무부와 검찰 지휘부가 일부 문제점을 지적하며 자료 보완을 요구하는 등 허가를 미뤘기 때문이다. 수사팀은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SBS 는 수사팀이 새로운 트위터 글 110만 건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공소장 변경 신청이 그제야 ‘허가’됐다. 이진한 2차장이 공소장 변경 대신 ‘참고자료’로 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차장은 수사팀이 국정원 직원 4명을 추가 소환하려 하자 자신이 조율하겠다고 나선 뒤 20여 일이나 미적댔다고 한다. 윤석열 전 수사팀장이 상부에 사전 보고를 하지 않은 채 국정원 직원 3명을 체포했던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검찰은 “수사와 공소 유지에 대한 방법론상 이견일 뿐 수사를 방해한 바 없다”고 밝히고 있다.
두 번째 외압, 수사 방해는 윤 전 팀장이 지난 10월21일 국정감사장에서 공개적으로 폭로한 바 있다. 수사팀이 트위터 글 5만5689건을 발견해 1차 공소장 변경을 신청할 때다.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고 했다. 첫 번째 외압은 황교안 법무장관이 아예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황 장관이 10여 일 동안 허가를 미뤄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못했다. 황 장관의 외압대로 선거법을 적용하지 않았더라면, 빙산의 일각마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을 거란 얘기다.
‘트위터 글 121만여 건’의 의미는 명확하다. 국정원이 ‘사이버 삐라’ 121만여 장을 뿌린 것이다. 심리전단 요원들이 직접 쓰거나 인용한 글로 2만6550장의 사이버 삐라를 만든 뒤 자동으로 복사해 뿌려주는 프로그램인 ‘트위터 봇’을 이용해 121만여 개로 늘려 유포시켰다. 국정원이 직접 관리하는 트위터 계정 2600여 개를 이용했다. 조직적 개입의 증거인 셈이다.
문제는 121만여 건이라는 숫자도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이다. 121만여 건은 국정원 직원들이 트위터에 던져놓은 것일 뿐, 이렇게 뿌려진 글을 어떤 트위터 이용자가 얼마나 리트위트 했는지는 가늠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수사팀은 또 1차 공소장 변경 때 추가했던 국정원 트위터 글 5만5689건 가운데 국정원의 민간 조력자(PA)가 작성한 글 2만7천여 건을 공소장에서 제외시켰다. 국정원이 직접 올린 글에 비해 재판에서 입증 과정이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에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 뺐다고 수사팀은 설명했다. ‘국정원 알바’가 쓴 글이 유포된 것까지 분석한다면 실제 국정원 대선·정치 개입 관련 트위터 글은 수백만 건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새누리 “검찰이 부실·과장 수사”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증거’가 부담스러운 걸까? 새누리당의 대응 논리는 우왕좌왕 자체다. “고작 댓글 몇 개 가지고”라던 주장은 “트위터 글은 본질이 아니다”라는 해괴한 주장으로 이어지고, 검찰 수사가 엄정하다는 평가와 부실하다는 평가가 동시에 터져나온다.

-6월14일 검찰 중간 수사 결과 발표. 인터넷 사이트에 73건의 댓글·게시글 발견.
김태흠 원내대변인 “그동안 민주당 주장은 태산명동서일필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 가운데 검찰이 선거 개입이라고 적용한 것은 전체 댓글의 3.8%에 불과하다.”
-10월18일 검찰 1차 공소장 변경 신청. 트위터 글 5만5689건 발견.
최경환 원내대표 “국내에서 4개월간 생산되는 전체 트위터 글 2억3800만 건 가운데 약 0.02%에 불과하다. 극히 미미한 양의 온라인상 댓글로 마치 대선 판도가 바뀐 것처럼 야단법석을 떠는 것은 한마디로 야당의 대선 불복 프레임과 맞닿아 있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수사팀의 전례 없는 검찰권 남용이다.”
-11월20일 검찰 2차 공소장 변경 신청. 트위트·리트위트 글 121만228건 발견.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검찰이 수사를 엄정하게 진행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 일동 “이번 사건은 본질적으로 국정원 댓글에 대한 것이지 트위터 글에 대한 것이 아니다. 검찰이 부실·과장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거짓말은 계속된다. “직접 쓴 것은 거의 없고, 언론 기사를 인용했을 뿐”이라는 국정원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이 특정 인터넷 매체에 입맛에 맞는 기사와 사설을 청탁하고, 이를 다시 트위터로 퍼뜨린 사실이 밝혀졌다. 이진한 2차장은 11월20일 ‘거짓 브리핑’을 했다. 그는 민간 조력자가 쓴 트위터 글 2만7천여 건이 공소장에서 제외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입증이 안 됐다”고 말했다. 입증은 됐지만 재판 신속성을 위해 제외했다는 수사팀의 설명을 왜곡했다. 이 차장의 거짓말은 “검찰이 스스로 철회한 건 부실 수사를 자인한 것”(새누리당 법사위원 성명), “국정원 직원·외부 조력자가 쓰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2만7천여 건을 철회한 것도 그동안 검찰 수사가 얼마나 부실하고 무리하게 진행됐는지 자인한 것”(국정원 보도자료) 등으로 ‘무한 반복’되고 있다.

야권 “특검에 현 수사팀 참여시키자”
외압과 수사 방해가 지속되면서 특검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1월21일 성명에서 “검찰 수사에 대한 청와대·법무부의 외압과 수사 방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진상 규명을 통해 훼손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자 노력하는 수사팀 평검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에 밝혀진 선거 개입 증거들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데 있다. 지속적인 수사 방해로 공소 유지가 어려운 상황에서 더 이상 검찰에 수사를 맡겨서는 수사의 공정성과 결과의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며 특검 도입과 황교안 법무장관, 남재준 국정원장, 이진한 2차장의 경질을 촉구했다. 야권에서는 수사팀이 진상 규명에 적극적이고 전문성이 있는 만큼 이들을 특검에 포함시켜 ‘외풍’ 없는 수사를 함께 하도록 하자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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