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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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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첫 레즈비언 탤런트의 ‘프랑스식결혼’

지난 5월 프랑스 동성결혼법 맞춰 마키무라 아사코와 프랑스인 김 베덴 혼인신고… “이성애자가 얻을 수 있는 권리를 동성애자가 못 받는 것은 불평등하니까요”
등록 2013-08-27 15:41 수정 2020-05-03 04:27

지난 5월 프랑스에서는 동성결혼법(같은 성별의 커플 혼인을 가능하게 하는 법률)이 시행됐다. 몇년 동안 이해가 깊어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동성애자 차별이 심한 한국이나 일본에서 바라보면 딴 세계 얘기로 느껴져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그 먼 나라의 분위기를 조금은 느낄 만한 일이 있었다. 시청자 참가형 토크 프로그램 (아사히TV)에 처음으로 남자 동성이 결혼한 프랑스인과 일본인 커플이 출연한 것이다. 는 1971년에 시작해 약 2천 회 방송된 유서 깊은 프로그램이다. 일본 국민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TV프로그램에 동성애 커플이 처음 출연하자 뉴스 사이트 등에서도 화제가 됐다. ‘일본 첫 레즈비언 탤런트’ 마키무라 아사코(26)와 프랑스인 여성 김 베덴(30)이 혼인신고를 한 것도 그렇다. 지금 그들은 혼인 성립 통지를 기다리는 중이다.

기뻤던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커밍아웃

마키무라 아사코와 만난 것은 8월 중순. 콘크리트 건물에 둘러싸인 도쿄 신주쿠의 체감온도는 40℃ 가까이 올라 있었다. 미스 일본 파이널(베스트 12위)까지 남은 미모의 마키무라는 그 더위를 날려버릴 것 같은 상쾌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그는 한국 언론, 그것도 시민들의 힘으로 창간된 의 자매지 에 소개된다는 게 영광스럽다고 겸손하게 인사했다.
그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하기 전에 데뷔했다. 커밍아웃하게 된 계기는 한 토크 프로그램의 오디션이었다.
“오디션에서 ‘최근 가장 기뻤던 일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받았는데, 당시 지금의 와이프랑 갓 사귀기 시작한 때라 그 얘기를 했어요. 숨겨야 한다는 생각도 안 나고 왠지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왔어요.”
결국 방송사 쪽에서는 ‘일본 첫 레즈비언 탤런트’라는 명목으로 그를 합격시켰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소속사 사장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의 소속사 사장은 일본의 유명 탤런트 스기모토 아야다. 성애에 대해서도 대놓고 발언하는 섹시하고 성숙한 여성 이미지의 배우다. 마키무라는 스기모토 사장이 동성애에 대한 이해가 없을 것이라 생각해 소속사에서 잘린다는 각오로 보고를 했다. 스기모토의 생일파티였다. 파티가 열린 마당에서 기회를 살피다 용기를 내어 마키무라가 털어놓으니 사장은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다.

일본인 마키무라 아사코(오른쪽)와 프랑스인 김 베덴은 프랑스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혼인 성립 통지를 기다리고 있다. 한여름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이 커플을 만났다.

일본인 마키무라 아사코(오른쪽)와 프랑스인 김 베덴은 프랑스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혼인 성립 통지를 기다리고 있다. 한여름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이 커플을 만났다.

“넌 힘든 사춘기를 보냈겠네. 앞으로는 그런 힘든 사춘기를 보낼 청소년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마키무라 아사코란 연예인이 존재하는 의미가 되겠구나. 그냥 예쁘기만 하는 탤런트는 수없이 많지만,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정말 의미가 있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마키무라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를 회상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커밍아웃한 탓에 떨어져나간 팬도 당연히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배신당했다” “튀려고 그러냐”고 메시지를 보내온 이도 있었다. 방송에 나오면 동성애자를 왜 출연시키냐는 항의가 방송사로 쏟아지기도 했다. 일본에 동성애 탤런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여자로 분장한 남자다. 일본에서 ‘오네이카라’(언니 캐릭터)라고 부르는데 말이나 동작을 여자처럼 재밌게 하는 코미디언과 비슷하다. 시청자와 거리감을 둔 ‘특이한 존재’다. 그런데 마키무라처럼 이웃집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예쁘게 생긴 보통 여자’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위협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커밍아웃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 말 안 하면 사람들은 나를 이성애자로 보잖아요. 그건 주변 사람을 속이고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이에요. 지금 내가 있는 그대로 살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

“남자가 되면 여자랑 사귈 수 있겠구나”

그래도 그렇지 힘든 일은 없을까.

“커밍아웃하면서 레즈비언들의 고민을 듣는 기획도 시작했거든요. 인터넷 동영상 프로그램을 통해서나 전자우편으로 접수하기도 하고. 직접 얘기를 들어보니까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가혹한 거예요. 어머니가 여자친구 부모를 찾아가 ‘당신네 딸 때문에 우리 딸이 이상해졌어!’ 하고 호통을 치거나, 부모의 직장에 전화를 걸어 ‘당신네 회사 직원 딸이 동성애자라네요’ 한다든가. 심지어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람도 있었어요.”

모진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솔직히 너무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소속사 사장이 말했듯이 그의 활동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고 한다.

마키무라의 첫사랑은 10살 때였다. 같은 반의 한 여자애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었다. 아직 어려서 그 감정이 사랑인지는 몰랐다. 그냥 좋았다. 그래서 생각 없이 “그애가 너무 좋다”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며칠 뒤 학교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9살 남동생과 말다툼을 했는데 동생이 “이 레즈!” 하고 말했다. 그때 그는 누나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동생이 왕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마키무라는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억누르며 살게 되었다.

희망으로 여겨지는 일을 고등학교에 다닐 때 겪었다. 성동일성장애(생물학적 신체와 달리 인격적으로 자신이 반대의 성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증상)로 호적상 성별을 남자로 고친 선배가 있었다. 호르몬 주사를 맞고 남장을 하고 교내에서 여자친구와 당당하게 걸어다녔다.

“그래서 ‘아, 나도 남자가 되면 여자랑 사귈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마키무라는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잘랐다. 그러니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친구도 나타났다. 그래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여자를 좋아하지만 결코 그는 남자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사춘기에 자기정체성을 고민하는 법이지만, 동성애자는 자신의 성별 문제부터 고민해야 한다. 파트너인 김 베덴도 마찬가지다. 그도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남자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20대 초반 ‘세상에는 여자친구 없는 남자도 많잖아. 내가 여자라는 게 문제가 아니야. 내가 남자가 되었다 한들 키 작은 남자가 1명 늘어날 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라고 마음먹고 그때부터 ‘있는 그대로 살자, 연애만이 인생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의미 있는 청춘 시절을 보냈다.

아빠 책꽂이의 동성애 관련 책

원래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았던 김 베덴은 교환학생으로 일본 게이오대학에 왔다. 2007년 프랑스정치학원을 졸업했는데 졸업 전에 일본에서 인턴생활을 했다. 그 인연으로 출판사에 취직해 유학 기간을 합쳐 일본에서 10년 가까이 지냈다. 마키무라와 만난 것은 2011년 가을, 도쿄 시부야에서 열린 레즈비언 파티에서였다. 말을 먼저 건 것은 한눈에 반한 마키무라였다. 당시 김 베덴은 프랑스의 출판사에 취직이 내정돼 다음해 3월에 귀국할 예정이었다. 귀국을 앞두고 김은 용기를 내서 프랑스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 마키무라와 파리에서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마키무라는 바로 오케이했다. 지금 그들은 파리에서 동거하고 있다. 마키무라는 프랑스와 일본을 오가며 연예 활동을 하고 있다.

무네카타 미키의 마키무라-베덴 커플을 소재로 한 만화.

무네카타 미키의 마키무라-베덴 커플을 소재로 한 만화.

과제가 하나 남았다. 마키무라의 부모를 설득하는 일이다. 마키무라는 부모에게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다. 그런데 예의 그 커밍아웃 방송을 본 어머니로부터 “당장 헤어지라”는 메시지가 휴대전화로 날아왔다.

“얼마나 충격이 크셨을까요. ‘동일본 대지진으로 죄 없는 많은 어린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너는 얼마나 파렴치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아버지와 동생한테는 절대 비밀로 하라’고 쓰여 있었어요.”

하지만 마키무라는 이미 프랑스에 가서 결혼까지 할 결심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부모를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주일 뒤 파트너를 데려올 테니 만나달라고 했다. 그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아버지에게 결혼할 상대라며 사진을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여자같이 생긴 친구네”라고 말했다. “아빠 죄송해요. 여자예요. 난 여자밖에 사랑할 수 없어요.” 마키무라의 말에 아버지는 “무슨 얘기인지 전혀 알 수 없다”고 당황해했다.

그래도 일주일 뒤 방문을 강행했다. 가족들은 의외로 환영해주었다. 마키무라가 이전에 본 적도 없는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일주일간 정말 고민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아빠 책장을 보니 동성애 관련 책이 꽂혀 있었어요.”

한국이나 일본에서 바라보면 프랑스에서의 동성결혼 법제화가 별것 아닌 일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실제 법제화로 가는 길이 순탄치는 않았다. 프랑스 일간지 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20대는 90% 가까이 동성애 결혼에 찬성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찬성자 비율이 60%였다. 고령층의 반대자가 많았던 것이다. 몇십만명이 참가한 반대시위가 파리 시내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지방에서는 이 시위에 참가하기 위한 버스투어가 기획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 법안이 가결된 이유에 대해 김 베덴은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는 인권대국을 자칭하죠. 그런데 주변 네덜란드나 가톨릭이 많은 스페인도 동성결혼이 법제화돼 있는데 프랑스가 그렇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느껴왔거든요.”

보수 정치인들의 반대는 없었을까.

“보수파도 인권과 보수 사상은 다른 차원의 문제로 여기죠. 나는 일본이나 한국의 보수파가 인권 문제에 소극적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해요. 반대시위도 동성애자들의 결혼 자체를 반대하기보다, 결혼이 법제화됨으로써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에 반대하는 거예요. 적어도 표면상은. 아이들의 인권이 침해된다는 거죠. 동성애자는 결혼을 하고 싶으면 해라, 그러나 입양이나 PMA(인공수정)는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혼인신고하면 비자 받기 쉬우니까요

프랑스에서는 원래 법률혼이 아니라 사실혼, 즉 내연 관계 부부가 절반 정도 된다. 그래서 결혼과 단순 동거의 중간을 의미하는 ‘PACS혼’ 제도가 있다. 결혼보다 규제가 완만하면서 동거보다 법적 권리를 보장받는 제도다. 사랑한다고 꼭 공적 기관에 혼인신고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이들이 동거를 하면서 유산 상속이나 세금 문제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법적 결혼’이 한국이나 일본처럼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프랑스에서 동성결혼이 법제화된 것의 큰 뜻은 “이성애자가 얻을 수 있는 권리를 동성애자가 못 받는 것은 불평등”하다는 인식이 받아들여진 때문이다. 마키무라와 김 베덴에게도 혼인신고를 한 이유가 뭔지 일부러 물어봤다.

“한마디로 재류비자 때문이에요. 아사코가 나랑 함께 프랑스에서 살려면 재류비자가 필요한데 혼인관계를 맺으면 그게 쉬워져요. 이것 또한 이성애자는 결혼하면 재류비자를 쉽게 받는데 동성애자라 못 받는 불평등의 하나였죠.”

마키무라도 김 베덴도 재류비자 문제가 없으면 혼인신고를 안 했을 것이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그들의 사랑을 의심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에 법적인 담보가 있어야 하는 걸까요?”

글·사진 김향청 재일동포 3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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