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동안 이어진 한국 원전업계의 유착 관계에 관한 폭로로, 국무총리가 전력업체와 부품 검사업체 등을 마피아에 비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8월4일치 ‘한국 원자력 폭로 스캔들’)
원전 부품 납품업체의 시험성적서 위조로 불거진 원전 비리의 규모가 나라 안팎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 5월 ‘원전비리수사단’을 꾸린 검찰이 관련 수사를 진행한 지도 100일이 다 돼가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비리가 계속 드러나는 탓에, 이번 원전 비리 국면은 ‘마피아’라는 표현보다는 쉽사리 식지 않는 ‘원자로’에 비유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애초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납품업체에서 출발한 수사가 꼬리를 물고 한수원과 한국전력의 고위직, 그리고 장차관급 인사가 연루된 ‘뇌물 수수 비리’로 확대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NYT도 보도한 한국 원전업계 비리대검찰청이 최근 밝힌 중간 수사 상황을 살펴보면, 최근까지 부산지검 동부지청 원전비리수사단은 김종신(67) 전 한수원 사장과 이종찬(57) 한전 부사장 등 24명을 구속하고 전면적인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이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함께 진행한 원전 납품업체에 대한 집중 점검 결과, 현재 원전 부품 납품업체 49곳에 대한 추가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5월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에 연루된 JS전선 등 중소 업체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이름도 검찰 수사 대상에 언급됐다. 국내의 대표적 플랜트 업체인 현대중공업에서는 전직 고위급 간부가 뇌물 수수 혐의를 받아 구속됐고, LS전선은 제어 케이블 등의 납품과 관련해 담합한 혐의로 최근 압수수색을 받았다. 전력 공기업 관계자도 무더기로 기소됐다. 한국전력기술 직원 13명은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를 승인하는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 밖에 대검찰청은 원전비리수사단이 조사한 사건을 전국 검찰청 7곳에 배당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원전 부품 납품업체 직원 등 10명이 구속됐으며 3명은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
가장 경악스러운 건 한수원 관계자들이 납품업체 등에서 챙긴 금품의 규모다. 2008년 이후 정부 차원의 원전 확대 정책과 맞물려 수억원의 돈이 납품 로비 등을 위해 한수원 관계자들에게 흘러들어 갔다. 이 가운데 이명박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아랍에미리트(UAE) 수출 원전을 둘러싼 금품 로비의 액수가 두드러졌다. 한수원에서 해외사업을 담당한 송아무개(48) 부장은 지난해 현대중공업이 UAE 원전에 1천억원 규모의 전력용 변압기를 납품하는 데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10억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 체포 과정에서 그의 집에서 5만원권 지폐로 묶인 6억원 규모의 현금 다발이 발견됐다. 검찰 조사 결과, 그는 집 근처 커피숍, 서울 삼성동 한전 건물 1층 로비, 한전 건물 앞길 등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현대중공업 관계자에게 수억원의 현금을 나눠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당시 직속 상관이던 이종찬 한전 부사장에게도 돈을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 8월15일 이 부사장을 한전 사무실에서 체포했다.
한수원 부장 집에서 발견된 6억원 현금 다발고위급이 직접 금품을 챙기기도 했다.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은 원전 용수 처리업체인 한국정수공업의 이아무개(75) 대표로부터 각종 계약과 관련한 편의를 제공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현직 사장으로 있던 2009년 7월부터 반년 가까이 모두 5차례에 걸쳐 500만~5천만원씩 1억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식당에서 5만원권 지폐를 담은 생수나 와인 상자를 직접 건네받는 식으로 금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 전 사장과 함께 근무했던 박아무개(61) 한수원 전 전무도 같은 업체에서 입찰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한국정수공업은 2002년부터 10년 넘게 한수원의 원전 용수 처리시설 사업을 맡아온 업체로, UAE 바라카 원전 1∼4호기 건설에도 참여했다.
원전비리수사단의 남은 과제는 한수원·한전 고위급까지 받은 원전 납품업체의 돈다발이 어디까지 흘러들어 갔는지를 밝히는 것이 됐다. 실제로 수사의 방향은 이명박 정부 시절 권력 실세로 꼽혔던 이른바 ‘영포라인’(영일·포항 출신)으로 옮겨붙는 양상이다. 현재 그 중심에는 한국정수공업에서 부회장으로 근무했던 오희택(55·구속)씨가 있다. 그는 영포라인 출신으로 한국정수공업의 이 대표에게 “UAE 공사 계약을 하려면 박영준(53)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게 돈을 줘야 한다”는 명목으로 모두 13억원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돈의 일부는 박 전 차관의 측근으로 한나라당 부대변인과 서울시 의원을 지낸 이윤영(51·구속)씨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씨는 또 이 대표에게 “경쟁 업체인 한전KPS 임원을 교체하려면 최중경(57) 전 지식경제부 장관에게 로비를 해야 한다”면서 5천만원을 받아 김만복(67) 전 국정원장의 비서실장(2급)을 지낸 윤영(57·구속) 한국정수공업 고문에게 건넨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당사자들은 금품 로비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이 파악한 한국정수공업의 로비 액수는 80억원에 이르고 있다.
현재 원전비리수사단은 추가 수사 의뢰를 받은 내용을 합해 8월 말까지 수사를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수사를 마무리 지으려면 민간인 불법사찰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박영준 전 차관을 소환해 조사하는 과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몸통’이 나타난다면, ‘원전 게이트’급으로 수사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새누리당 “원전비리 과징금 50억원으로 확대”이처럼 검찰의 원전 비리 수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새누리당 에너지특별위원회는 지난 8월2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당정 협의를 열어, 정부의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대한 의견을 조율했다. 에너지특위는 이날 연료비 연동제와 주택용 누진제 축소 등을 언급한 전기요금 체제 개편과 함께 원전 비리 방지를 위한 후속 대책도 언급했다. 새누리당이 내놓은 방안은 “원전 비리와 관련한 형사처벌을 강화하고, 과징금을 현행 최고 5천만원에서 50억원으로 올리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앞으로 원전업계에서 수십억원이 오고가고 수십억원을 과징금으로 물렸다는 소식을 듣지 않으려면 검찰이 풀어야 할 과제가 막중하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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