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으로 말하자면, 여름은 젊음의 계절?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냄새의 계절!
서울 지하철 4호선은 이주노동자의 ‘서울’ 안산과 이슬람교 서울 중앙성원이 있는 이태원을 잇는다. 안산에서 쭉 올라오다 삼각지역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고 두 정거장 지나면 이태원에 이른다. 가끔은 시험에 드는 순간이 닥친다. 어느 주말 오후 한산한 지하철, 4호선 사당역쯤에서 지하철을 타면 적잖은 이주민들이 앉아 있다.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과 한국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의 옆자리가 동시에 비었다. 아니, 한두 자리가 비었다면 그건 이주민 옆자리일 가능성이 크다. 자, 어디에 앉을까? ‘저는 차별하지 않아요’ 몸으로 말하듯 이주민 옆자리에 앉는다. 되도록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애쓴다. 한참이 지나면, 깨닫는다. 다르긴 다르다. 냄새가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 그날의 기억이 나서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에게 “냄새가 다르긴 한 거죠?” 물었다. “체취를 구성하는 것은 굉장히 다양해요. 땀샘의 분비물 같은 생물학적 요소도 있고,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세제를 쓰느냐 같은 문화적 요소도 있지요. 사람마다 냄새가 있지만, 문화적으로 보편적인 냄새도 있어요.”
“어디서 왔어, 이 냄새나는 ××야”다르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가, 지하철 4호선이 한강을 지날 무렵, 다른 생각에 이른다. 역지사지, 저 사람도 나의 냄새를 ‘견디고’ 있겠지. 그렇게 우리는 다르다. 다만 냄새를 과장하고 차별의 근거로 삼으니 문제다. 여기서 ‘보노짓의 추억’이 떠오른다. “후세인은 버스를 좋아한다.” 2009년 보노짓 후세인 성공회대 연구교수가 당한 인종차별을 전한 기사의 내용이다. 그리고 이어진 이유는 “버스에선 혼자 앉을 수 있다. 여럿이 끼어 앉는 지하철보다 낫다”였다. 그러나 버스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2009년 어느 날 버스를 탔다가 후세인 교수는 느닷없이 “너 어디서 왔어. 이 냄새나는 ××야” 소리를 들었다. 역시나 냄새다. 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 몰라도 막말을 하기 시작하면 일단 “냄새난다”고 지르고 본다. 정재승 교수는 “응축된 거부감”이라고 해석했다. 덧붙이면 이렇다.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느낌이 전달이 되는데, 보이는 것도 아니고 들리는 것도 아니니까 냄새라는 말로 뭉뚱그려 전달하는 것 아닐까요?” 후세인 교수를 모욕한 한국인 회사원은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인종차별을 모욕죄로 해석한 최초의 판례다.
도대체 냄새의 출처는 어디냐? 8월6일 서울 대한문 앞,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마련한 ‘평등예감_ ‘을’들의 이어말하기’ 행사가 열렸다. 마침 주제는 ‘냄새의 출처’. 이날 이야기꾼으로 나선 이주민 알 마문(Al Mamun)은 16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로 가구공장에서 일하다가 이주노동운동을 했고, 지금은 이주민문화예술센터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amc factory)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얼굴 색깔이 냄새”라고 말했다. 정말로 냄새가 나서 냄새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피부색이 다르면 냄새난다고 ‘우기는’ 경우를 겪어본 것이다. 이날 그의 주제는 ‘반말해도 괜찮은 사람?’. 한국에서 처음 일할 때, 다들 서로 반말하는 문화인 줄 알았다는 그는 “한국 사람끼리 서로 형이라고 부르는 걸 보고 저도 그냥 형이라고 했다가 ‘형님’이라고 해야지라고 야단을 맞았다”고 돌이켰다. 젊은 한국 사람도 50~60대 이주노동자에게는 “야” “어이” 부르면서 말이다. 한국에서 오래 일해 공장장이 되었지만, ‘반말해도 괜찮은 사람’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작업복을 입고 뒤돌아 있으면 아시아 이주민은 한국인 선주민과 구별이 안 됩니다. 제가 뒤돌아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공장장을 만나러 온 외부 손님이 처음엔 멀리서 ‘공장장님’이라고 불렀다가 제가 뒤돌아보니 바로 ‘어이, 공장장’이라고 말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면서 “반말의 세계에서 존칭의 세계로 들어왔다”고 전했다. 한국 국적을 가지자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고, 누구는 “어이, 성공했네”라고 말했다. 그는 “도대체 뭐가 성공했다는 걸까요?”라고 물었다.
냄새에는 계급이 있다결혼에는 국적이 없지만, 냄새에는 국적이 있고 계급도 있다. 쪽방촌 주민공동체인 동자동사랑방 조승화 사무국장은 “가난은 분명 냄새가 있다”로 시작했다. 이것은 은유적 의미가 아니다. 50년 넘은 건물에서 50만원의 소득에 기대 사는 서울역 맞은편 동자동 쪽방촌 사람들, 그는 “이런 형편의 쪽방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서 전혀 냄새가 안 난다면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길 구석에 쌓인 소주병에서 동네에 알코올릭 주민이 많다는 것을 단박에 알게 된다”며 “가족·사회와 단절을 경험한 주민들이 많아 오래된 고독의 냄새인지, 안 아픈 사람이 없는 동네라 약냄새인지, 뭔가 외로움 짙은 냄새를 동네에서 맡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흔히 쪽방촌 주민들이 옷과 물건을 산처럼 쌓아두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유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쪽방촌 주민은 노숙의 경험이 많고, 언제 다시 노숙으로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 쌓아두면 산이 된다.” 그는 이것이 선택한 냄새가 아니라고 말했다. “냄새를 가지지 않은 이들이 이 냄새를 마냥 싫은 눈빛으로 본다면, 쪽방 주민은 노숙인처럼 혐오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냄새가 좋아서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다. 가난이 좋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듯.”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나는 냄새도 있다. 조승화 사무국장은 “아주 가끔 쪽방에서 썩은 비린내 같은 냄새가 나서 방문을 열면 사람이 죽어 있다”고 전했다. 고독사로 숨진 이들의 냄새다. 그는 “그 비슷한 냄새를 맡은 적이 있다”며 “술병이 뒹굴고 배설물과 이물질이 가득한 방에는 장애가 있는 주민이 쓰러져 있었다”며 “죽음 직전의 냄새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쪽방촌 주민들도 이런 냄새에 무덤덤할 만큼 길들여지지만, 그는 “이것이 사람 냄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냄새를 가난한 이들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단지 혐오스럽게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의 가난은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로 남을 것”이라며 이야기를 마쳤다.
“게이 냄새가 난다”는 말이날 ‘기록노동의 존재와 의미를 알리고 싶어 하는’ 희정씨는 음식물 수거 노동자들을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과 냄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냄새만으로 코 안이 헌다는 노동자들의 말을 온전히 믿지 않았는데 여름이 돼서야 이들의 말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야기 마당이 열린 대한문 앞에서 농성하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더해졌다. 노숙 농성을 하다 쌍용차 노조 조끼를 입고 집으로 가는 날이면,
지하철 안에서 이들이 걱정해야 하는 ‘땀냄 새’는 하얀 셔츠를 입은 이들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이란 것이다.
‘분홍 매니큐어를 하는’ 준우씨는 ‘빤히 쳐 다보는’ 이들의 차별적 시선에 대해 말했다. 그의 매니큐어 칠한 손과 얼굴을 번갈아 쳐 다보던 50대 남성은 “남자가 그렇게 손톱 칠 하고 다니면 안 되는 거 아뇨?”라고 하더니 끝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는 “남의 일에 신 경 끄세요”라고 말했지만 기억은 쉽게 지워 지지 않는다.
냄새의 출처는 타인의 몸에만 있지 않다이날 준우씨의 주제는 ‘차림새와 냄새’. 성 별 규범에서 벗어난 차림새는 “게이 냄새가 난다” 같은 차별적 말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차림새에서 어떤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사 회여서 ‘냄새와 차림새’는 따로가 아니다. 그 는 끝없이 시선의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이 들의 상황을 패싱(Passing)이라는 개념으 로 설명했다. 성소수자들, 특히 트랜스젠더 는 자신의 ‘보여지는’ 성별을 남성·여성 중 무 언가로 선택해야 한다. 준우씨는 “트랜스젠 더가 특별한 성별로 인지되는 것을 남자로· 여자로 ‘패싱된다’고 표현한다”고 전했다. 동 성애자가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동성애자임 을 굳이 드러내지 않고 사는 것도 일종의 패 싱이다. 그는 “0.1초도 안 되는 찰나에 직관 적으로 전해지는 차림새라는 것, 그 자체로 차별적 시선의 대상이 되고, 자타 모두를 대 상으로 인정투쟁을 벌여야 하는 전쟁터 같 은 삶”을 전했다. 특히 공중화장실같이 성별 로 구획된 공간에서 남성·여성 중 하나로 패 싱해야 하는 트랜스젠더들 중에는 아예 밖 에 있는 화장실에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 는 “엄격한 배제를 하지는 않지만, 저기에 속 해 있지 않은 느낌을 어떻게 차별로 말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다시, 정재승 교수에게 질문이 던져진다. “시각과 후각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시 각이 빨리 오고 후각은 느리게 오죠. 근데 우리가 화장실 냄새에 금방 익숙해지듯 후 각은 빨리 적응해요.” 적응의 가능성은 극복 의 가능성이 아닐까. ‘을’의 이어말하기를 준 비한 이들은 서문에 이렇게 썼다. “누군가에 대한 혐오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냄새의 자리 에는 ‘진짜’ 냄새가 아닌 차별적인 시선이 있 음을, 그 시선이 변화할 때 누군가들의 삶에 도 향기가 깃들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 니다.” 냄새의 출처는 타인의 몸에만 있는 것 이 아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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