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층에서 팽이·구슬 치는 소리까지 저녁 에는 다 들려요. 처음에는 위층에서 뛰면 집 이 무너지는 줄 알고 무척 겁이 났어요.”
“처음에는 다듬이 소리가 많았는데 이제 많이 없어졌어요. 남의 것을 들어보고 반성 한 거죠.”
‘층간소음’이라는 단어가 없었을 뿐이다. 1976년 9월21일치 에 실린 ‘아파 트 생활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찾는 주부 좌담’에서 참석자들은 아파트에서 겪는 소 음을 소개했다. 그러나 아파트 생활 자체는 기삿거리가 될 정도로 서민들에게는 호기심 의 대상이었다. 1958년 서울 안암동에 종암 아파트가 들어선 뒤,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시작하면서 서울시내에 아파트가 서서히 늘 어가던 시기였다. 이날 좌담 기사의 제목은 ‘공중도덕만 잘 지켜진다면 주부에겐 가장 살기 좋은 곳’이었다.
당시 아파트 관련 기사를 보면, 일본에서 벌어진 이른바 ‘피아노 살인사건’을 소개하 는 글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1974년 일본 가 나가와현에서 아파트에 살던 한 중년 남성이 아랫집의 피아노 연주 소리가 시끄럽다며 내 려가 홧김에 쇠망치로 일가족 3명을 살인한 사건이다. 먼 나라 소식처럼 전해지던 ‘피아 노 살인사건’은 4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도 현실이 됐다. 지난 2월 서울 면목동에서 층 간소음 문제로 아래층 주민의 내연남이 위 층에 사는 노부부의 아들 2명을 살해한 사 건을 보면 그렇다. 층간소음이 원인이 된 범죄는 들불처럼 번졌다. 지난 3월 부산에서는 아래층 주민이 위층에 항의하러 가서 가족을 칼로 찌른 사건이 일어났고, 지난 5월13일에는 인천 부평구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다투던 집주인이 세입자의 집에 불을 질러 2명을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2010년 기준 아파트에 사는 가구 수만 816만9천 가구다. 대한민국 전체 가구의 47.1%로, 4인 가구 기준으로는 전체의 65.1%를 차지한다. 소규모 공동주택까지 합치면 대한민국에 사는 10명 가운데 7명은 누군가와 천장(바닥)을 맞대고 있어 층간소음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밤만 되면 잠을 못 잔다니까요. 심할 때는 지하주차장에 가서 차 안에서 잔 적도 있어요.” 지난 5월22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고양동의 한 아파트 거실에서 김아무개(59)씨가 층간소음의 괴로움을 하소연하고 있었다. 이날 김씨의 집인 1104호에는 환경부 환경관리공단 산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담당자인 이찬명 계장과 류보라 직원이 찾아왔다. 이웃사이센터는 환경부가 지난해 3월 층간소음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든 기관으로, 매일 서울·경기 지역에서 층간소음을 호소하는 가정 2곳을 방문해 문제 해결을 돕는 작업을 하고 있다.
1104호가 시달리는 가장 큰 층간소음은 위층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였다. “다다다다다, 거실에서 부엌까지 가는 발걸음 소리가 그대로 들려요. 드르륵 베란다 문 여는 소리까지요. 새벽 1시까지 그러니 딸아이가 잠을 못 자요.” 그는 2년 전 1204호에 새 이웃이 이사 오면서 소음이 심해졌다고 했다. 운수업을 하던 김씨가 지난 1월 교통사고를 당해서 평일에도 집에 있게 되면서 층간소음의 고통은 더 커졌다. “한번은 어린애들이 쿵쾅 뛰다보니 우리 집 부엌 천장에 달린 전등의 나사가 빠졌어요.” 현재 그는 부동산중개소에 집을 내놓았다. 전세라도 좋으니 층간소음이 없는 집에 가고 싶기 때문이다. “(층간소음이) 심할 때는 시골에 계신 어머님댁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font size="3">보름 뒤 갈등 상황 모니터링</font>1시간 가까이 면담이 이어졌다. 이웃사이센터 담당자들은 김씨의 이야기를 받아적을 뿐, 소음 측정 등의 작업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 계장은 “소음 형태가 어떠냐” “항의성 방문을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한 번 너무 심해서 올라가 항의한 적이 있어요. 올라갔더니 젊은 여자가 나와서 ‘우리 애는 안 뛰는데요’라고 하대요, 참….” 그 뒤 그는 종종 인터폰으로 경비실에 층간소음을 호소했다. “경비실에서 위층에 인터폰을 하는 소리까지 다 들려요. 그럴 때마다 위층에서는 (기분이 나빠서인지) 더 쿵쿵거리는 것 같더라고요.” 그는 집 현관에 세워둔 나무를 깎아 만든 지팡이를 가리켰다. “(위층이) 너무 시끄러울 때는 베란다에 나가서 이 지팡이로 두들겨요. 그래도 별 반응이 없어요.” 이른바 ‘보복성 소음’이다.
면담을 마친 이웃사이센터 담당자들은 “윗집에 민원 사항을 전달하겠다”며 위층으로 향했지만 위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문하기 전 미리 관리사무소를 통해 1204호 면담 신청을 요청했지만, 관리사무소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리사무소로 향한 이 계장은 어렵사리 1204호 주민과 전화 통화를 했다. “예, 아래층에서는 밤 9시 넘어서는 (소음을) 좀 자제하도록 해주십사 하는 겁니다. 서로 조금씩 이해하면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이 계장은 아랫집의 고충을 전달했다. “저희도 집 안에서 애한테 슬리퍼 신고 다니라고 하고 주의를 시키고 있다니까요.” 1204호도 나름의 고충을 얘기했지만, 아래층이 민원을 제기했다는 사실에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이 계장은 “소음을 제공하는 쪽에서는 (민원 상담 자체를) 불쾌해 회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며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지 않고 전화 통화를 하면 대부분 자기 입장만 얘기하고 끊는다”고 말했다. 층간소음 문제를 두고 평행선을 달리던 1104호와 1204호는 이날 이웃사이센터 담당자를 통해 자세한 서로의 사정은 전해들을 수 있었다. 이 계장은 보름 뒤 이들과 다시 통화해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확인하기로 했다.
층간소음 문제가 불거진 건 아파트가 늘어나면서부터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주거문화개선연구소에 제기된 층간소음 민원을 보면 모두 2437건으로, 이 가운데 72%가 공동주택이 밀집해 있는 서울·경기도 지역에서 발생했다. 주거문화개선연구소가 지난해 전국 공동주택단지 입주자 86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9%가 아이들 뛰는 소리와 실내 발소리를 심각한 소음의 원인으로 꼽았다. 층간소음의 주요 원인이 바닥재에 충격을 줘서 생기는 소음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법 등에서 층간소음을 따질 때는 ‘경량충격음’과 ‘중량충격음’을 구별한다. 작은 물건이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나 가구를 끄는 소리 등 가볍고 딱딱한 소리를 경량충격음, 어린이가 뛰거나 달릴 때의 무거운 바닥충격음을 중량충격음이라고 한다. 층간소음은 대부분 바닥·천장 등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주택건설 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주택(아파트 등)을 지을 때는 경량충격음 58dB(데시벨) 이하, 중량충격음 50dB 이하가 되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또 ‘주택법 시행령’에서 공동주택 관리규약에 층간소음에 대한 내용을 넣도록 하고 있다.
<font size="3">“기대하는 바가 무너지면서 생겨나는 갈등”</font>층간소음 문제가 불거지는 원인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가장 흔한 해석이 경량·중량충격음에 대한 기준 적용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일본 등 해외보다 낮은 기준으로 소음 규정을 정하고 있으며, 건설사 등이 기준보다 부실한 방음재를 바닥에 깔아도 쉽게 적발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층간소음이 고체물을 통해 전달되는 탓에,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우리나라의 문화 특성상 소음이 더 두드러진다는 분석도 있다. 서구에서는 신발 자체가 방음재 역할을 하고 일정 수준의 층간소음에 대해 이해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소음이 더 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공동주택 문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단독주택 수준의 조용함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을 찾기 힘든 층간소음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이웃사이센터의 이 계장은 “위층·아래층이 해결 방식을 잘못 선택해 문제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소음 발생→아래층의 항의→아래층·위층의 갈등→아래층의 보복성 소음→아래층·위층의 극단적 대립’으로 이어지는 층간소음 갈등의 틀도 결국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앞으로 층간소음으로 불편을 겪을 가능성이 높은 경우와 이미 큰 불편을 겪는 경우 등 갈등 기간에 따라 적절한 해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층간소음 피해 기간이 6개월을 넘는 경우와 6개월 미만인 경우로 나눠 해결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층간소음 피해가 6개월이 채 안 될 때는 전문기관을 통해 전화 상담을 받아 공동주택관리소장이나 위층에 층간소음 피해를 말하는 요령을 조언받는 게 필요하다. 또 위층을 찾아갈 때도 항의성 방문이 되지 않도록 미리 ‘내가 올라간다’고 밝혀야 한다.” 아래층에서는 참다 못해 위층을 방문하는 것이지만 위층 입장에서는 갑작스런 방문이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미리 충분히 대비할 여지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층간소음 피해가 6개월을 넘겨 지속적으로 이어졌다면 자칫 감정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당사자끼리 부딪치는 상황을 피하고 전문기관이 개입해 중재해야 안전하다고 한다. 차 소장은 “공동주택마다 이런 상황을 조정할 수 있는 위원회와 같은 조직을 운영하는 게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덧붙였다.
[%%IMAGE3%%]<font size="3">법률 개정, 어쩌면 가해와 피해를 나누는 일</font>층간소음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의 배경’을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심리학자인 문용갑 한국갈등관리조정연구소장은 “층간소음 갈등은 무의식중에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바가 무너지면서 갈등이 표출되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무의식중에 남이 나를 이해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상대방이 기대한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래층 사는 장년층은 나중에 이사 온 위층의 젊은 부부가 먼저 인사해주길 바라고, 위층 사는 젊은 부부에게는 어린아이가 뛰어노는 걸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무의식중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를 표현할 기회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서로 부딪치면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는 층간소음 갈등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법률 개정안을 쏟아내고 있다. 공동주택을 지은 뒤 시공사가 소음 수준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김태원 새누리당 의원), 아파트 등에서 정한 소음 관련 기준을 어기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안(김상희 민주당 의원) 등이 그것이다. 강력한 층간소음 규제안은 어쩌면 층간소음이라는 평행선 위에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굵은 경계선을 더 그리는 일이 될지 모를 일이다.
고양=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DFE5CE"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EBF1D9"><tr><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10px"><font size="4">창조경제가 해결할까 </font><font size="3"><font color="#1153A4">층간소음 산업</font></font>
층간소음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관련 산업도 몸집을 키우고 있다. 단순히 차음재 등 건설자재의 판매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층간소음관리사’의 등장이다. 층간소음관리사는 공동주택생활소음관리협회가 정부의 허가를 얻어 지난 5월11일부터 국내에서 진행하고 있는 민간 자격시험 제도다. 이웃 간의 층간소음 갈등을 중재할 전문인력이 필요해 신설된 자격증 제도다. 층간소음에 대한 이론과 상담실무 능력, 층간소음 측정기를 다루는 법 등을 평가하는 필기·실기 시험을 통과하면, 현재 환경부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직원 6명이 맡고 있는 층간소음 민원 해결 등의 업무를 할 수 있게 된다. 자격증이 늘어나면 아파트 관리사무소, 지방자치단체 등에서도 층간소음 관련 업무를 할 수 있게 된다.
서울시가 6월21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광장에서 여는 ‘2013 층간소음 공감 엑스포’도 세태를 반영한 행사다. 층간소음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해를 돕기 위해 여는 이 행사에서는 체험관·힐링관·이벤트홀·층간소음 관련 업체 전시관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 1·2층으로 구분한 체험관에서는 2층에서 층간소음 ‘가해’를 하고 1층으로 이동해 ‘피해’를 경험해볼 수 있고, 층간소음 문제를 겪고 있는 시민들이 법률상담도 받을 수 있다. 앞서 서울시는 엑스포를 열기 전 층간소음 해결 사례와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해 관련 내용을 행사장에서 소개하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도 ‘창조경제’를 내세워 층간소음 해결에 팔을 걷어붙였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4월18일 2013년도 업무계획을 보고하고 핵심 추진과제 중 하나로 진행하는 ‘사회이슈 해결형 범부처 프로젝트’에서 층간소음 문제 해결을 다루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는 특정 주제를 정해 전 부처가 기술 개발과 법·제도 개선 작업을 함께 진행하는 시범사업이다. 그러나 미래창조과학부가 층간소음 해결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지난 4월4일 박 대통령이 “층간소음을 줄일 방법을 찾는 것도 창조경제의 길”이라고 말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 어렵다는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면, ‘창조경제’가 무슨 상관이고 ‘녹색성장’이라 한들 어떠하리.</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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