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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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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밟았지만, 허공에 뜬 기분 여전”

쌍용차 송전탑 고공농성 한상균·복기성씨 건강 악화로 171일 만에 내려와… “사회적 외면에 실망했다” 문제 다시 원점
등록 2013-05-20 18:21 수정 2020-05-03 04:27

1분 남짓 걸렸을까. 내려오는 길은 171일이라는 시간이 허무할 만큼 짧았다.
지난 5월9일 낮 11시50분. 대형 크레인이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본사 앞 송전탑 위를 향해 뻗어가고 있었다. 송전탑 위 천막으로 조심스레 다가간 크레인은 복기성(36)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을 태웠다. 크레인 위 의자에 힘겹게 앉은 그는 눈을 감았다. 땅을 향해 서서히 내려앉는 시간은 올라갈 때보다 짧았다. 송전탑 밑에선 쌍용차 조합원들과 취재진이 그를 맞았다. 그러나 복씨는 반년 만에 내려온 땅을 밟지 못한 채, 곧장 들것에 실려나왔다. 곧이어 한상균(52) 전 쌍용차 지부장이 송전탑 위 천막을 떠났다. 쌍용차 송전탑 고공농성 마지막 날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인근 송전탑에서 농성을 벌여온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복기성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가운데)이 171일 만에 송전탑을 내려와 아내(오른쪽)와 만난 뒤 눈물을 쏟고 있다.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인근 송전탑에서 농성을 벌여온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복기성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가운데)이 171일 만에 송전탑을 내려와 아내(오른쪽)와 만난 뒤 눈물을 쏟고 있다.

추위보다 무서웠던 건 대화 없는 사 쪽

이날 송전탑 앞은 크레인을 타고 내려온 두 남성을 응원하러 나온 노조원과 가족, 그리고 취재진 등 300여 명으로 가득 찼다. 그 사이에는 앞서 지난해 11월20일 함께 송전탑을 올랐다가 농성 116일 만인 지난 3월15일 건강 악화로 쓰러져 홀로 내려온 문기주(54) 정비지회장의 모습도 보였다.

쌍용차 송전탑 고공농성이 이날 갑자기 끝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복씨의 건강 악화 때문이다. 그동안 고공농성 일정을 잘 소화하던 복씨가 최근 며칠 사이에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 것이다. 지난 5월7일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료진이 송전탑 위로 올라가 진료를 했다. 의료진은 “복씨가 혈압약을 복용하는데도 혈압이 180/115까지 올라가고, 둘 모두 우울증과 위궤양, 허리통증 등 건강 상태가 심각하다”며 더 이상 농성을 진행하는 건 무리라는 진단을 내렸다.

쌍용차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함께 찾아보자는 제안도 있었다. 김 총무 등은 천막에서 한씨 등과 면담하면서 “쌍용차 대책위를 구성해 국정조사 실시와 사 측과의 협상 테이블 마련에 힘쓰겠다” “철탑에서 내려와 교회협의회 사무실에서 농성을 이어가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득증 쌍용차노조 수석부지부장은 “한 전 지부장은 본인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농성을 하겠다고 했지만, 조합원들이 일단 내려와서 함께 싸우자고 간곡하게 설득해서 (복씨와) 함께 내려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씨 또한 지병이 있고 홀로 송전탑 위에서 오랜 시간 고립될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염려한 조치인 셈이다.

오랜만에 땅 위에 내려온 두 농성자는 실망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171일 동안 이어진 고공농성에도 쌍용차 국정조사와 정리해고 문제 모두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쌍용차 문제 해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회의 냉정함과 그로 인한 좌절감이 컸다고 토로했다. 송전탑에서 내려온 뒤 복씨는 이동식 침대에 앉아 “건강 악화로 내려오게 돼 죄송합니다”라며 결국 눈물을 보였다. 얼굴에 수염이 가득한 한씨는 “지금 생각해보니 더 무서웠던 건 혹독한 추위가 아니라 4년의 시간 동안 단 한 번 대화조차 응하지 않고 있는 쌍용차”라며 “너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 전 (국정조사를) 약속까지 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국회가 노동자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 모두 송전탑 위의 기온 차이 탓에 5월 날씨가 무색한 겨울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업무방해 등 혐의로 영장 발부된 상태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실망이 큰 이유는 앞서 절박한 상황에서 시작한 고공농성이 별다른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다. 이들이 고공농성을 시작한 계기를 보면 그렇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4년 넘게 ‘쌍용차 사태의 국정조사’와 ‘해고노동자 복직’을 요구하며 쌍용차 평택공장 앞, 평택역, 그리고 서울 대한문 앞 등으로 이어지는 천막농성을 벌여왔다. 그러나 대한문 앞 천막의 철거가 반복되고 복직이 불투명해지자 생활고와 비관에 시달리던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 등 2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한 달 넘게 천막에서 단식농성을 하던 김정우 쌍용차지부장마저 쓰러지면서, 한씨 등 3명이 쌍용차 문제를 알리기 위해 고공농성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고공농성자들이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채 내려오면서, 쌍용차 해고자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지난 3월 회사가 4년 동안 이행하지 않았던 454명의 무급휴직자 복직이 이뤄지긴 했지만, 2009년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77일 동안 벌어진 ‘옥쇄파업’에 참여했던 정리해고자 조합원 640여 명에 대한 후속 조치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한 쌍용차 구조조정의 발단이 회사 쪽의 경영위기 부풀리기와 정부의 부실 매각에 있다는 의혹에 대해 대선 전 정치권이 나서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역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쌍용차는 이번 고공농성 해제와 해고자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태도를 내비치고 있다. 이날 쌍용차 관계자는 “농성 해제를 환영하지만 현재 쌍용차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국정조사가 아니라 판매 증대를 위한 경영 정상화이며 정리해고자의 복직보다 희망퇴직자 복직이 먼저 고려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쌍용차 조합원들은 이날 송전탑 앞 천막을 모두 치웠다. 그러나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앞으로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농성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한씨 등은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경찰은 평택시의 굿모닝병원에 있는 이들의 건강진단과 입원 치료 등이 끝난 뒤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땅멀미’를 심하게 앓는 이유

한씨는 “가을에 올라가서 봄이 되어 내려왔다. 매일 아침저녁 보는 땅을 밟았는데, 허공에 떠 있는 기분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가 ‘땅멀미’를 심하게 앓는 이유는 뭘까. 그동안 고공에서 함께 싸웠던 울산 현대자동차 앞 철탑의 최병승·천의봉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그리고 서울 혜화동성당 종탑 위의 오수영·여민희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등이 눈에 밟혀서일까. 아니면 높은 곳에서 끊임없이 소리쳤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는 고립감 때문일까. 이제 이들의 땅멀미를 가시게 해주는 일은 박근혜 정부와 회사의 몫으로 남게 됐다.

평택=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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