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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 누명 좀 벗겨주세요”

957호 기획 연재에서 소개된 2000년 전북 익산 택시기사 강도 살인사건 강압수사로 ‘자백’ 뒤 10년간 옥살이, 어머니 인권위 앞에서 재심 의견 표명 촉구
등록 2013-05-05 18:38 수정 2020-05-03 04:27

4월24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 서 있던 마흔여덟 김아무개씨가 덜덜 떨리는 오른손으로 마이크를 쥐었다. ‘사회적 약자 변론권을 보장하라’는 구호가 쓰인 종이를 들고 20분 내내 숨죽여 울던 그였다.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1분간의 침묵이 흘렀을까. “제발… 우리 아들 누명 좀 벗겨주세요. 너무 억울하고도 억울합니다.”

2000년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강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던 15살 소년 최근호(가명)씨 가족과 인권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4월24일 서울 중구 을지로1가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사건 재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2000년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강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던 15살 소년 최근호(가명)씨 가족과 인권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4월24일 서울 중구 을지로1가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사건 재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15살 소년, 보호자가 경찰서로 달려오기 전

김씨는 전북의 한 소도시에서 상경한 최근호(28·가명)씨의 어머니다. 근호씨는 2000년 전북 익산시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강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10년 가까이 옥살이를 하다 3년 전 가석방됐다. 지난 3월 그는 ‘누명’을 벗겨달라며 재심을 청구했다(957호 기획 연재 ‘다시 재판받게 해달라는 절규’ 참조). 다산인권센터와 박준영 변호사 등은 이날 인권위에 최씨 사건을 검토해 재심에 대한 의견을 재판부에 표명해달라는 요지의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수원역 노숙소녀 살인 혐의로 복역 중이던 노숙인의 재심 청구 기각에 대한 재항고 건에 대해 “사회적 약자이자 재판 과정에서 권리 주장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해달라”는 의견을 대법원에 제출했다.

최씨가 유죄 선고를 받게 된 결정적이고 유일한 증거는 ‘자백’이다. 그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해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한다. 사건 당시 청년은 만 15살 소년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장조차 받지 못할 만큼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경찰은 보호자가 경찰서로 달려오기 전에 소년에게서 자백을 받았다. 어머니는 경찰서에서 아들을 만났을 때를 이렇게 기억한다. “얼굴이 벌겋게 부어 있었고, 눈이 충혈돼 있었으며, 상의가 많이 흐트러져 있었다.” 같은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던 김아무개씨 등 2명은 1심 법정에 출석해 경찰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증언을 했다.

13년 전 경찰의 가혹행위 의혹을 최씨가 스스로 밝혀내기란 쉽지 않다. 2011년, 사건 발생 39년 만에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은 정원섭 목사의 경우, 국가기관이 스스로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규명해주지 않았더라면 ‘누명’을 벗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 목사는 1999년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그러나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재심을 권고하고서야 2008년 두 번째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졌다. 박준영 변호사는 “15살 소년이 잠도 자지 못하고 대걸레와 경찰봉에 맞아가면서 허위 자백을 했다고 하는데 강압수사 의혹을 받은 경찰에 대해 한 번이라도 조사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인권위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변론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로 법정에 의견을 제출해주길 요청한다”고 밝혔다.

2003년 구제 신청 때는 ‘시간 경과’ 이유로 각하

전북 지역 인권단체는 2003년 6월 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소년에 대해 인권위에 긴급구제 조치 신청을 냈다. 전북 군산에서 익산 택시강도 살인사건의 새 용의자가 나타나면서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가해자로 지목된 경찰에 대한 조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이듬해 3월 인권위는 ‘진정원인 사실이 1년을 경과했다’는 이유로 진정을 각하했다. 담당 조사관이 조사를 계속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 사회는 모자의 애끊는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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