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을 말하자 따라나오는 이름들이 있었다.
누구는 낸시랭, 변희재 뒤에 놓았다. “악명도 자본이 되는 시대다.”(이택광 경희대 교수)
그리고 안철수, 조국을 앞에 놓았다. “‘엄친아’로 불리는 파워엘리트가 낮은 자세를 보이며 성공했다.”(이택광)
미안하지만, 정봉주 뒤에 세운 이들도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모르는 그들만의 고급 정보를 제공한다.”(이명석 문화평론가)
아, 물론 차이도 있다. “나꼼수 방식을 케이블(종합편성채널)로 끌어들여 정치성을 제거하고 엔터테인먼트로 만들었다.” “낸시랭과 같이 똑똑하지 않은 척하면서 똑똑하다. 다만 낸시랭은 ‘나는 이런 사람이야’로 호소한다면, 그는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야’로 어필한다.”(이명석)
악명도 자본이 되는 시대, 케이블을 타고 돌아온 사나이, 강용석 전 한나라당(18대) 국회의원 이야기다.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 파문, 개그맨 최효종 고소로 ‘국민 비호감’이던 그는 지금 누구 뒤에도 오지 않는 ‘갱생의 길’을 개척하는 중이다.·
‘고소·고발 집착남’은 어떻게 귀여운 아저씨가 되었나. 방송에서 뻔뻔하게 ‘정치 방학’이라서 예능한다고 하고, 신문에서 ‘대통령이 꿈’이라는 인터뷰를 해도 그러려니 하는 인물이 되었다. 어느새 말이다. 태초에 그를 먼저 알아본 매체는, 우리 시대 ‘예능 군주’ CJ E&M의 방송사 tvN, Mnet이었다. 아니, 그가 먼저 접근했다고 해야 옳겠다.
빼어난 노래 실력도 아닌데, Mnet (이하 ) 예선에 나와서 가족에 대한 미안함 운운할 때는, 저분 왜 저기에 나오나, 그런데 너무 뻔하다, 싶었다. 오명을 마다하지 않고 tvN )에 고소·고발 집착남으로 출연했을 때도, 저렇게라도 대중 앞에 서고 싶을까, 애쓴다 애써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오디션 기회가 되었다. tvN ‘고소한 19’는 가 되어 2011년 10월에 나타났다. 문태주 PD는 “ 을 보면서 말 참 잘하고, 몰라도 되는 정보까지 아는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의 특권’ ‘대한민국 0.1%, 그들만이 사는 세상’ 등을 놓고 1위에서 19위까지 순위를 매기는 이 프로그램은 시작하자마자 화제를 모았다.
여기서 그는 강명석 문화평론가의 표현처럼 “상류층 1%의 내부고발자 역할”을 한다. 국회 본회의 얘기가 나오면 “의원들 취미가 뭐냐면 검색창에 ‘내 이름 쳐보기’예요”라고 전하고, 상위 0.1%가 가는 피트니스 클럽 얘기에 “예전에 호텔 회원권이 있었는데 거기에 목욕하면서 앉아 있으면 내가 성공했구나, 생각이 든다”는 소회도 전한다. 그가 던지는 ‘디테일’이 있는 ‘고급 소스’는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웃음까지 던져줬다. 게다가 그는 평범한 환경에서 성공한 ‘개천표 용’을 자처하니, 우리가 욕망하는 세계에 들어갔다 떨어진 자로서도 공감을 얻는다.
동물적 감각 “정치인과 연예인은 비슷”일단, 여기까지. 이상은 그의 전략에 의한 것일까. 이전에 어떤 정치인도 이런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성희롱, 고소남 같은 자극적인 이미지는 케이블 채널과 만나며 오히려 예능 자본이 되었다. 강명석 평론가는 “종편과 케이블은 자극이 오히려 이슈가 되는 매체”라고 지적한다. 지상파라면 차마 구원하지 못했을 이들도 이제 ‘이슈’만 된다면 케이블은 환영한다. 케이블 연예오락 분야에서 최고가 된 tvN은 ‘죽은’ 정치인도 되살리는 권력을 가지게 됐다. ‘정치권 읽어주는 남자’로 캐릭터가 구축된 강용석 전 의원은 저렇게 비하되면 누구라도 언짢을 텐데 싶은 풍자도 기꺼이 감내한다. 그와 함께 JTBC 에 출연하는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본인이 희화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바닥까지 가본 사람의 정서가 있다”고 전한다.
여기에 스스로 말하는 “얇고 넓은 지식”이 방송인으로서 그의 효용을 넓힌다. 에는 순위 발표 중간에 제작진과 진행자 강용석의 대화가 끼어든다. 우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국회의원 정도는 돼야 아는 깨알 같은 ‘이면’이 여기서 나온다. 문태주 PD는 “원래는 없었는데, 녹화하다 물어보니 나오는 대답이 살아 있어 넣게 됐다”고 전한다. 이렇게 오기까지 그는 꽤나 능동적이었던 셈이다. 이명석 평론가는 “정치인이 연예인과 비슷하다”며 “전략을 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동물적 감각이 있다”고 평가한다. 방송에서 밝힌 것처럼, 그에게는 아나운서 성희롱 파문 이후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에게도 외면당하는 ‘무존재’의 시간이 있었다. 의원 임기 후반 2년을 그렇게 보냈다. 존재 증명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혹은 갱생 전략을 세울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누구도 이토록 뻔뻔하거나 솔직하지는 않았다. 그는 특권의 시절을 진정 그리워한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 미국 하버드대학 로스쿨. 지금껏 쌓아온 자신의 스펙을 ‘깔때기’로 애용한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그의 연상 작용 안에서 “고등학교 선배”로 가장 먼저 호출되고, 배우 김태희씨는 “같은 학교를 나온” 서울대 선후배로 기억된다. 국회의원 특권 얘기가 나오면 “아, 그립다” 대놓고 말하는데, 그 표정을 보지 않으면 그 진심을 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끝장의 속물 근성은 자녀를 보내고 싶은 연예기획사 하나를 택해도 “가수 안 되면 배우라도 밀어넣어주고” 하면서 SM엔터테인먼트를 꼽는 것에서도 깨알같이 드러난다. 그러나 자신을 무한 풍자의 소재로 삼는 쿨함과 더해지면 속물 근성은 귀여운 아저씨 캐릭터로 거듭난다. 강명석 평론가는 “마치 게임 같다”고 말한다. “나 비호감인 거 압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호감으로 돌아설걸요? 자, 보세요.” 강용석이 이렇게 말하고 게임을 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대학교 선배… 끝장의 속물 근성자, 캐릭터 분석이 너무 길었다. 결국 이렇게 된다는 거다. “알고 보니 꼴보수는 아니네, 똑똑하네, 나쁜 놈은 아니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방송을 통해 정치적 야망을 드러내고 심지어 보수 진영에 러브콜을 보내도 그것이 예능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안철수·박원순의 저격수를 자처하고 드러내길 원한다. ‘여러분, 저의 고소남 캐릭터를 마음껏 즐기세요. 이렇게 인지도 쌓아서 저는 저의 길을 가렵니다.’ 그는 이런 메시지를 보내지만, 세상은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예능인으로의 변신은 무죄이되, 정치인으로의 복귀는 괜찮을까. 변희재씨는 트위터에 강용석의 인터뷰를 링크하며 “본인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정계 복귀해야 될 겁니다”라는 멘션을 남겼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연예인에게는 연예인의 논리가, 공직자에게는 공직자의 기준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는 회원 수 5790명(4월19일 현재)을 거느린 팬카페를 가지게 되었다. 설마 그를 에서 보는 날이 오진 않겠지. 설마 아니겠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