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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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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 대처하는 12계명

등록 2013-01-05 02:16 수정 2020-05-03 04:27
정부가 최근 2013년 나라 살림 전망을 내놨습니다. 꼭 딴 나라 이야기 같습니다. 경제는 지난해만큼 더디게 성장하고 수출도 크게 줄어들 것 같다는 겁니다. 새로운 일자리는 덜 생겨나고 물가는 더 오를 것 같다는 우려도 덧붙입니다. 정부가 전망치를 발표할 때 정책 의지를 반영해 실제 계산보다 다소 긍정적으로 이야기해온 관행을 생각하면 흙빛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살림은 계속돼야 하기에, 고난의 시기를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살림 전략’ 12가지를 뽑아봤습니다. 그중엔 합리적인 소비 상식과 어긋나는 방법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좀 천천히 이득을 보더라도 이웃과 우리 동네에 더 나은 방법이기에 과감하게 소개합니다. _편집자
가계부는 알뜰한 돈 관리의 첫걸음이다. 가족 구성원이 함께 예산안을 짜고 지출일기를 쓰면 성공 확률도 높아진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가계부는 알뜰한 돈 관리의 첫걸음이다. 가족 구성원이 함께 예산안을 짜고 지출일기를 쓰면 성공 확률도 높아진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1. 돈이 돌아야 우리가 산다

초등학생 수학교실을 운영하는 김희진(32·가명)씨는 요즘 1천~2천원을 쓸 때도 죄책감을 느낀다. ‘빚을 갚아야 한다’ ‘돈을 모아야 한다’는 불안과 초조함에 오래 시달려온 탓이다. 원인은 빚이다. 회사원인 남편과 맞벌이를 하는 덕분에 한 달 수입은 500만원 정도로 적지 않다. 그러나 집과 학원 대출금 이자로 그 절반이 빠져나간다. 생활비 150만원과 아들 교육비 60만원까지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나를 위해선 한 달 10만원도 안 쓴다. 경기가 나빠 학원이 곧 적자로 돌아설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푼돈 쓰기도 무섭다.” 김씨의 하소연이다.

경기 불황엔 자연스레 소비에 대한 공포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무조건 지갑을 닫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정은 이미 충분히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2년 3분기 가계 동향’을 보면, 2012년 3분기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소비지출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 늘어나는 데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식비·공과금 등을 제외하면 거의 다 줄였다는 뜻이다. 이렇게 소비심리가 위축됐을 때는 오히려 적절히 소비하는 것이 내 가정과 이웃에 도움이 된다. 가계가 소비를 더 줄이면 생산활동이 위축돼 일자리는 줄어들고 가계소득은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탓이다.

2. 비상한 시기엔 비상금

2013년 가계 살림의 지상 과제는 빚 줄이기다. 가구당 평균 빚은 2012년 5300만원으로 늘었다. 빚을 진 가구라면 저축을 하는 것보다 빚을 먼저 갚는 게 낫다. 대출금리가 예금금리보다 적어도 1~2%포인트는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과급이나 추가 사업소득과 같은 가욋돈까지 빚을 갚는 데 털어넣을 필요는 없다. 이런 돈은 비상금으로 따로 챙겨두면 유용하다. 가계 수입과 지출이 꽉 맞물려 돌아가는 살림일수록 최소한의 유동성은 일종의 안전장치가 돼주기 때문이다. 100만원도 좋고 200만원도 좋다. 불경기에 갑자기 소득이 줄었거나 지인 경조사비 등으로 급전이 필요할 때 쓰면 된다. 경제교육 사회적 기업인 에듀머니의 김미선 공공사업본부장의 말이다. “빚 갚는 데 올인해 비상금을 한 푼도 남겨놓지 않았다면,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신용카드나 마이너스통장에 의존해야 한다.” 빚 갚으려다 더 비싼 빚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3. 저축이 재테크를 이긴다

재테크의 유혹은 강하다. 내 손안의 월급은 한없이 초라하지만, 남의 재테크 성공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든다. 특히 요즘처럼 저금리 시대엔 금융회사들이 적금 같은 안전자산에 자주 붙이는 ‘실질 마이너스 수익률’이란 말에는 공포감마저 든다. 그러나 그들은 투자에 따르는 손실 가능성을 숨긴다. 2012년(12월24일까지) 개인이 주식시장에서 순매수한 상위 10개 종목의 산술평균 수익률을 계산해보면 30% 넘는 손실을 낸 것으로 나온다. 기관투자가와 외국인만 역시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대표적 재테크 상품인 국내 주식형 펀드도 평균 6%대 수익에 그쳤다. 연 2.8~4%인 1년짜리 정기적금 이자율보다는 높지만 투자 리스크를 모두 상쇄할 정도의 높은 수익률은 아니다. 무엇보다 지나친 재테크는 자산가치를 과도하게 끌어올려 경제 곳곳에 거품을 만든다. 물론 그 대가는 재테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나눠 치러야 한다. 현재 수많은 하우스푸어와 전세난민을 양산한 2000년대 중반 부동산 거품이 ‘재테크 광풍’이 만들어낸 대표적 악몽이다.

4. 통장 쪼개고, 또 쪼개기

‘분산 저축’은 돈을 모으는 데 효과가 있다. 그냥 여러 개의 저축 통장을 만들면 된다. 저축 목적에 따라 생활비 통장, 저축 통장, 비상금 통장, 비정기 통장 등 4개로 나누는 건 기본이다. 여기에 해외여행용 통장, 부모님 환갑잔치 통장, 중고차 구매 통장 등으로 얼마든지 세분화가 가능하다. 저축 기간은 목표 금액에 따라 6개월~3년 정도로 정하면 된다. 통장이 여럿이면 관리가 복잡할 것 같지만, 오히려 매달 지출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돼 돈 관리에 유리하다. 또 각각의 통장은 자신의 소망과 연관돼 목적의식이 분명한 만큼 중도에 저축을 포기할 위험이 낮다. 몰빵 저축을 하면 목돈이 필요할 때 적금을 통째로 깨는 수밖에 없지만, 분산 저축을 하면 가장 덜 필요한 통장부터 차례로 헐면 되는 것도 장점이다.

5. 대출금리 깎아달라고 왜 말을 못해!

금리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서민 가계에 금리가 주는 효능감은 기대보다 크지 않다. 한 달에 100만원씩 1년간 1200만원을 정기예금에 넣더라도 이자의 차이는 은행 간 최대 연 1%포인트 안팎이다. 한 달 1만원꼴이다. 그러나 대출이 꽤 있는 가구라면 좀더 유리한 금리 조건을 찾아 발품을 파는 게 유리하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한 은행과 집중적으로 거래하는 것이다. 대출을 해주는 주거래은행을 정해 월급 통장을 트고, 예금·적금·보험 같은 금융상품에 가입하는 방식이다. 주거래은행은 고객에게 예금금리를 더 얹어주고, 금융거래를 하거나 환전을 할 때도 우대해준다. 무엇보다 고객이 먼저 대출금리를 깎아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주거래은행에 기여를 해주면 금리를 연 0.1~0.2% 정도는 깎아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대출금리가 6개월마다 변동되는 상품이면 때마다 금리를 체크하며 은행과 조정해야 한다.”(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

6. 가계부를 쓰면 여윳돈이 생긴다

오은주(46)씨는 10년 넘게 가계부를 써왔다. 사소한 지출도 빠짐없이 정리하니 살림에 도움이 됐다. 그러나 두 딸이 중학생과 초등학생이 돼 교육비가 들어가자 지출을 통제해도 남편의 월급 300만원으로는 늘 빠듯했다. 그는 고민 끝에 2012년 10월 가계부 쓰는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매달 가족이 한데 모여 다음달 예산안을 짜기 시작했다. 난방비부터 동물 사료 값까지 예외는 없었다. 충동구매를 부추기는 신용카드는 한 개만 남기고 모두 없앴다. 한 달에 두어 번 가족이 다시 모여 예산안에 맞게 지출이 되고 있는지 중간 평가도 빼놓지 않았다. 오씨의 말이다. “가계부 방식을 바꿨을 뿐인데도 매달 50만원 정도의 여윳돈이 생겼다. 가족이 함께 예산에 맞게 지출하려고 노력한 덕분이다.”

가계부는 용돈기입장처럼 단순히 수입과 지출 내역만을 적어선 별 효과가 없다. 가계부의 마법은 미리 지출 목표를 정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2013년 나라 살림 예산을 미리 꼼꼼히 짠 뒤 집행하는 것처럼, 가계도 매달 미리 지출안을 짜서 그에 맞게 소비하면 ‘적자 살림’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다.

7. 현금 부자 되는 법

일하고, 돈 받고, 지출하고. 살림의 기본 구조다. 그러나 이런 정상 시스템이 가동하는 가계는 손에 꼽힌다. 대부분은 일단 지출한 뒤 일을 해서 돈을 갚는다. 한마디로 일상적으로 빚을 지는 것이다. 모든 게 신용카드로 인해 비롯된 일이다. 이렇게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깨뜨리고 노동의 보람을 쉽게 앗아가는 신용카드는 가급적 잘라버리는 게 좋다. 만약 주유비나 교육비 등 특정 혜택 때문에 신용카드가 꼭 필요하다면 그에 딱 맞는 한도를 두고 직불카드처럼 사용해야 한다. “초기 빚은 대부분 신용카드에서 비롯된다. 신용카드는 과소비를 부른다. 소득이 있을 때는 감당이 되다가, 여차하면 결제를 못해서 카드론을 받고 리볼빙을 받다가 큰 부채로 이어진다.”(송주홍 희망살림 부채상담사)

통장 잔액 한도 안에서 쓸 수 있는 체크카드는 물론 신용카드보다 낫다. 그러나 현금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체크카드도 한도 안에선 신용카드처럼 소비 감각을 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 손에서 빳빳한 5만원권 지폐를 빼는 느낌과 체크카드 명세서에 가볍게 서명하는 느낌은 엄연히 다르다. 게다가 우리가 체크카드를 쓰면 누군가의 수입은 그에 비례해서 줄어들게 된다. 카드사들은 우리가 김밥집에서, 택시에서, 동네 슈퍼 등에서 지불한 돈에서 꼬박꼬박 수수료를 떼간다.

8. 명품 가방은 지르지 않고, 준비하는 것

소비욕은 인간의 중요한 욕구 중 하나다. 캐나다 컨커디어대학 경영대학원의 마케팅 교수인 개드 사드는 에서 “우리의 무거운 생태적 족적의 중심에는 무절제한 소비 욕구가 있다”며 소비욕을 본능으로까지 격상시키기도 한다. 어쨌든 소비욕이 적당히 충족시켜나가야 할 욕구란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중요한 건 소비의 방식이다. 경기가 불투명하면 푼돈으로도 감당할 수 있는 값싼 물건을 소비하는 데 열중한다. 그러나 값싼 물건은 종종 쉽게 버려지고, 소비자는 또 다른 대체품을 찾아헤맨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의 욕구불만은 쌓이고, 환경은 오염된다. 결국 대안은 ‘목돈 소비’에 있다. 정말 갖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목돈이 들더라도 제대로 된 물건을 사는 ‘품위 있는 소비’를 하는 방식이다. 명품 가방도 좋고 명품 시계도 좋다. 다만 이런 소비에는 인내심이 따른다. 어떤 물건을 살지 지출 계획을 세우고, ‘지름신 통장’을 만들어 목돈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런 과정에 익숙해지면 현란한 광고나 다른 사람의 소비에서 자극받은 ‘가짜 욕구’에 시달리지 않을 수도 있다.

9. 마트 고객 대신 조합원으로 살기

대형마트는 편리하다. 딱 거기까지다. 가격이 싸다는 건 소비자의 착각이다. 소비자단체가 설·추석 명절 때마다 제수용품 가격을 비교해봐도 전통시장 물건이 늘 대형마트보다 20~30% 저렴한 것으로 조사된다. 대형묶음 판매, 1+1 판매, 미끼상품 판매 등과 같은 대형마트의 상술은 가계의 과소비와 충동구매를 부추긴다. 게다가 내가 대형마트에서 쓴 돈은 우리 동네로 흘러들지 않고 대기업으로 남김없이 빨려 들어간다. 즉 내가 대형마트의 이용 횟수만 조금 줄여도 생활비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동네 전통시장과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웃들의 삶이 좀더 나아질 수 있는 것이다. 생협을 이용하는 것도 대안이다. 대형마트가 유통업계를 평정해 소비자와 생산자의 고리는 완전히 끊어졌다. 그 결과 2011년 기준으로 농산물 소매가격 중 유통비용은 40%를 넘어섰다. 소비자는 물가가 높다고 아우성치고 생산자는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주로 직거래를 하는 생협은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를 복원해 대형마트의 마진을 나눠갖게 해준다.

10. 보험 구조조정은 단칼에!

가계 살림에 숨통을 틔우려면 매달 들어가는 고정 지출을 줄여야 한다. 구조조정 최우선 순위는 보험이다. 노후·질병·죽음 따위 무시무시한 말을 동원한 보험회사의 공포 마케팅을 버텨내지 못하고 소득수준 이상으로 보험에 가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 금융감독원이 2012년 11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2년 9월 말 기준으로 보험에 가입한 뒤 1년 안에 해약하는 비율이 20%, 2년을 넘기지 못하는 비율이 37%나 됐다. 이때 소비자는 큰 손실을 떠안기도 한다. 예컨대 종신보험에 가입했다가 2년 뒤 해약하면 납입금의 30~40%밖에 돌려받지 못한다.

이런 뼈아픈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애초 보험에 가입할 때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간에라도 아차 하는 생각이 든다면 더 많은 비용을 치르기 전에 해지하는 게 낫다. 종신보험은 그 1순위다. 가입자의 사망 뒤 가족에게 보험금이 지급되는 종신보험은 사망보장 기간이 종신일 필요는 없다. 자녀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인 60살 정도면 적당하다. 의료 관련 보험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중심으로 가입하되 실비보험이 낫다. 보험금은 물가 상승이 반영되지 않는 만큼 보장 기간이 15~20년이면 충분하다.

11. 세테크를 잊어라

금융회사들은 재테크의 필수항목으로 절세를 꼽는다. 논리는 이렇다. 예를 들어 5% 금리의 1년 만기 정기예금에 1천만원을 넣으면 만기시 50만원의 이자가 발생하지만 이자소득세 15.4%를 공제한 42만3천원을 돌려받게 된다. 실질금리가 5%가 아니라 4.23%로 줄어드는 셈이다. 그러나 비과세 상품에 가입하면 세금을 한 푼도 안 내도 되니 그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효과가 과장돼 있다. 비과세 혜택을 주는 즉시연금이나 장기주택마련저축 등은 5~10년 이상 가입해야 한다. 장기로 돈이 묶이게 돼 해지할 확률이 높다. 그렇게 되면 세금을 고스란히 내야 한다. 또 세금을 덜 내게 해주는 세금우대저축 상품과 소득공제를 해주는 연금저축 상품은 한도가 낮게 정해져 있어 절세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 그나마도 정부가 2013년부터 금융상품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줄여나가기로 한 만큼 세테크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과도한 세테크는 세금에 대한 반감과 공포심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것도 단점이다.

12. 돈 벌어서 남 주자

우여곡절이 따르더라도 대부분의 가계는 2013년 불황의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터널이 유독 어둡고 길게 느껴질 가계도 적지 않다. 누구도 뒤처지지 않고 터널을 빠져나가는 힘은 연대에서 나온다. 김미선 공공사업본부장이 소개하는 나눔의 기술은 이렇다. “주거비·공과금·이자 등 고정 지출에 매달 일정액의 기부를 합쳐도 70% 정도를 넘지 않는 수준이라면 기부가 가계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 만약 연간 50만~100만원씩 목돈으로 기부를 하고 싶다면 별도로 ‘기부 통장’을 만드는 게 좋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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