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후계자로 낙점을 받은 지 25년을 맞은 지난 11월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민원실에는 그의 이름이 새겨진 고소장이 제출됐다. 노조 설립을 방해하려고 노동자들을 도청·미행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이 회장과 김순택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 등 9명을 삼성 일반노동조합(이하 노조)이 통신비밀보호법 등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기 때문이다. 고소장 제출 전 기자회견에서 김성환 노조위원장은 “삼성SDI 울산공장을 퇴직한 최아무개 전 인사차장의 말을 종합해보면, 삼성은 지난 2009년까지 노조 설립을 시도한 직원들에게 도·감청을 해왔으며 이는 이 회장이 무노조 경영 유지를 위해 불법적인 노동자 탄압을 사주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그 근거로 김 위원장 등이 지난 4월 부산의 한 찻집에서 최아무개 차장과 나눈 대화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에는 최 전 차장이 인사·노무 담당자로 근무할 당시 맡았던 업무와 지역대책위원회(이하 지대위·현 지역협의회) 활동이 자세히 담겨 있다. 최씨는 녹취록에서 “1997년부터 노무팀에 근무하면서 삼성SDI 울산공장의 전 노사협의회 부위원장이었던 송수근씨 미행을 담당했다”고 말했다. 송씨는 1998년 구조조정을 저지하려다 해고된 뒤, 복직 투쟁을 벌이며 민주노동당 울주지역위원회 노동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등 삼성 노조 설립 운동을 도왔다. 그는 2003년 삼성SDI 수원·울산 공장 노동자 등 20여 명을 대상으로 벌어진 휴대전화 불법복제·위치추적 사건의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당시 김 위원장과 피해자들은 이건희 회장과 김순택 당시 삼성SDI 대표이사 등을 고소했지만, 명확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은 채 2009년 3월21일 공소시효 만료로 수사가 끝났다.
그러나 노조가 공개한 녹취록을 보면, 당시 노조 설립을 시도한 직원들을 상대로 휴대전화 불법복제·위치추적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도청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추가적으로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최씨는 “2001년부터 울산 지역 지대위 활동을 하면서 송씨의 감시를 위해 그와 친한 ㅈ씨를 섭외해 일본에서 사온 도청기기를 들고 송씨 옆에 항상 붙어다니도록 지시했으며, 그 대가로 ㅈ씨에게 돈을 줬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또 “지대위가 관공서·검찰·경찰·지역 언론인 등을 대상으로 한 로비 활동도 담당했다”고 말했다. 지대위는 수원·천안·울산·부산 등 삼성 계열사 사업장이 모여 있는 지역의 인사·노무 담당자를 파견해놓은 조직으로, 노조 설립 동향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는 의혹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지대위는 단순한 친목 단체”라고 밝혀왔다. 실제 지대위 활동을 한 직원이 자세한 업무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씨 “산업재해 인정 않는 회사에 화나서”
노조는 “최씨가 수차례 대동소이한 진술을 하며 공론화에 나서려는 듯 보였는데 지금은 만날 수 없다”며 “이는 삼성을 압박해 돈을 요구하려는 목적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씨는 11월22일 과의 통화에서 “삼성에서 일하다 지병을 얻고 퇴사했는데, 산업재해를 인정해주지 않는 회사에 화가 나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녹취록에 담긴 이야기 가운데 일부는 내가 실제로 경험한 내용이지만 과장된 부분도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홍보실은 “(고소 건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밝힐 만한 입장이 없다”고 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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