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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생산설비가 고철덩어리라니

‘기획부도’ 밝혀낸 보고서 쓴 노동자운동연구소의 한지원 연구실장 “국정조사로 진상규명해
책임자 처벌해야”
등록 2012-10-20 14:38 수정 2020-05-03 04:27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은 “쌍용차 정리해고는 회계부정을 통해 기획된 것이었으며, 정부는 이를 알고도 묵과했다”는 연구보고서를 지난 5월에 발표했다. 지난 9월20일 국회 쌍용차 청문회에서 그의 주장에 상당한 근거가 있음이 드러났다. 
 박승화 기자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은 “쌍용차 정리해고는 회계부정을 통해 기획된 것이었으며, 정부는 이를 알고도 묵과했다”는 연구보고서를 지난 5월에 발표했다. 지난 9월20일 국회 쌍용차 청문회에서 그의 주장에 상당한 근거가 있음이 드러났다. 박승화 기자

23번째 죽음이 끝내 찾아왔다. 10월8일 새벽 4시, 2009년 5월 쌍용자동차를 희망퇴직한 한아무개(55)씨가 지병인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숨졌다.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18년간 일하던 그는 해고 대상자 명단에 올라가자 스스로 퇴직했다. 한씨의 형과 동생도 같은 길을 걸었다. 형은 2005년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한 직후에, 동생은 한씨와 함께 쌍용차를 떠났다. 2009년 쌍용차가 노동자 2646명을 공장 밖으로 쫓아낸 뒤 그 노동자와 가족들의 죽음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은 “또다시 상복 입고 살아가기가 너무나 버겁다”며 지난 10월10일부터 단식을 시작했다. “국회 쌍용차 청문회는 추악한 외투를 걸친 쌍용차 자본의 첫 단추만 벗겼을 뿐이다. 이제 국정조사는 늦출 수 없는 문제다. 노동 문제와 일자리 문제의 압축판인 쌍용차 문제야말로 지금 정치가 필요한 곳이며, 해결해야 할 정치 사안이다.”

“당기순손실 7097억원이 탁 걸렸다”

지난 9월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쌍용차 청문회’로 국정조사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대주주였던 상하이차가 기술 유출 뒤 자본을 철수할 수 있도록 쌍용차가 회계를 조작해 기획 부도를 냈다는 점을 여야 의원 가릴 것 없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목소리가 나올 수 있었던 건 노동자운동연구소가 지난 5월에 발표한 연구보고서 덕분이었다. ‘22명을 죽음으로 내몬 회계부정과 기획된 정리해고’(부제: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의 원상회복을 위한 보고서). 이 보고서를 작성한 한지원(35) 연구실장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는 회계조작을 통해 기획된 것이었으며, 정부는 이를 알고도 묵과했다”고 당시 주장했다. 쌍용차 청문회에서 한 연구실장의 주장은 상당히 근거가 있음이 밝혀졌다.

보고서는 어떻게 쓰게 됐는가.

사회진보연대 활동가로 GM대우 등 초국적 기업 문제를 다뤄왔다. 2009년 쌍용차 해고 사태 때 금속노조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하며 쌍용차 회계자료를 봤다. 언뜻 보는데 당기순손실 7097억원이 탁 걸렸다. 글로벌 금융위기라지만 너무 심하다 싶었다. 그 뒤 쌍용차 지부에서 끊임없이 회계조작 문제를 제기해왔다. 하지만 회계가 워낙 어려운 문제인데다 단발성 이슈로 끝나니까 실체를 알 수 없었다. 지난 3월 서울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에 찾아갔다가 시작부터 끝까지 파헤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맥락을 보여주는 보고서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조합원들은 투쟁하느라 바쁘고, 회계자료를 다루는 데 익숙지 않으니까. 3년간 쌓여 있던 수천 장의 자료를 2개월간 팠다.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한지원 연구실장은 사회진보연대 노동국장을 거쳐 2010년부터 노동자운동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의 뿌리는 기업의 회계·경영문제·구조조정 등을 10여 년간 다뤄온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다.

회계조작이 자주 발생하는가.

공장에서 노동자가 느끼는 게 있다. 물량이 넘쳐 야근을 많이 하면 ‘회사가 잘 돌아가는구나’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경우 회계자료에 그 이유가 나타난다. 노동자가 느끼는 것을 생산, 수입, 자본, 부채 등으로 표현했을 뿐이니까. 문제는 회사가 얼마든지 꼼수를 부릴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4대 회계법인이 시장의 90%를 차지한다. 이들은 회사와 공모해서 회계기준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회사의 입맛에 맞도록 잔꾀를 낸다. 한국 회계기준이 워낙 엉성하기 때문이다.

렉스턴 등 모두 단종한다며 사용가치 감액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가 발생하기 6개월 전인, 2008년 말 쌍용차의 부채비율은 168%에서 561%로 급등했다. 쌍용차의 의뢰를 받은 안진회계법인이 갑자기 쌍용차의 건물·기계장치 등 유형자산 평가액을 전년보다 5177억원이나 감액했기 때문이다. 유형자산 평가액은 1조3346억원에서 8678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쌍용차의 회계조작은 어떻게 이뤄졌나.

크게 두 가지 단계다. 첫째, 순매각가를 무시했다. 기업회계기준에는 유형자산을 평가할 때 그 자산을 이용해 벌어들일 수 있는 미래의 현금(사용가치)과 그 자산을 매각해 벌 수 있는 현금(순매각가) 중 큰 액수를 사용하도록 돼 있다. 통상 순매각가는 한국감정원의 감정가액을, 사용가치는 회사가 예상하는 미래 매출액과 비용을 사용한다. 그런데 안진회계법인은 쌍용차의 생산설비는 매각시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기에 굳이 계산할 필요가 없다며 0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2009년 3월 한국감정평가원 보고서를 보면, 유형자산 감정액이 6700억원에 이른다. (쌍용차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최종석 회계사는 “생산설비를 고철로 평가하는 순간 계속기업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객관적 평가가 가능한 순매각가를 0원으로 가정한 뒤 둘째 단계에 들어갔다. 회사 경영진의 재량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리고 줄일 수 있는 사용가치를 마구잡이로 감액한 것이다. 우선 액티언·카이런·렉스턴 등의 차종을 2010년 12월까지 모두 단종한다는 계획을 세워서 미래에 벌 수 있는 돈을 대폭 줄였다. 그러나 이 차종들은 현재도 생산되고 있다. 이런 회계부정이 없었다면 2009년 쌍용차의 재무구조는 우리가 알던 것과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더 큰 부정은 그다음이다.

2646명의 해고로 이어졌다.

구조조정안은 또 다른 회계법인인 삼정KPMG가 만들었는데, 그 과정이 어처구니가 없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생산 부분 ‘잉여 인력’(2185명)은 쌍용차의 생산성지수(HPV·차 1대를 생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를 동종 업체와 비교해 산정됐다. 삼정은 HPV의 출처를 세계적인 자동차 생산성 비교 보고서인 ‘하버리포트’라고 밝혔는데, 사실은 쌍용차가 건넨 지수라는 게 청문회에서 드러났다. 게다가 김경협 민주통합당 의원이 추가 확인해보니, 쌍용차는 2009년 당시에는 물론 현재도 HPV를 아예 관리하지 않고 있었다. 맨아워지수(M/Hㆍ1시간 동안 차 생산에 투입된 사람 수)를 HPV로 둔갑시켰고, 삼정이 이를 토대로 2646명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안을 완성한 것이다. 한국의 정리해고 제도가 얼마나 사용자에 의해 막무가내로 악용될 수 있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쌍용차 자료를 ‘하버리포트’라 거짓 주장

앞으로 해결 방안은.

쌍용차 사태는 2009년 공장 밖으로 내밀린 정리해고자, 무급휴직자만의 일이 아니다. 외국인 투자자의 ‘먹튀’로 인한 피해를 정부와 자본이 어떻게 노동자에게 떠넘기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일 뿐이다. 오늘도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쌍용차를 인수한 인도 마힌드라도, 상하이차처럼 인수대금 이외에는 한국에 1원도 투자하지 않은 채 쌍용차 기술만 공유하고 있다.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쌍용차 사태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나갈 수 있다. 이것이 대선 후보들이 한목소리로 말하는 경제민주화의 첫걸음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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