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소득이 50만원도 채 되지 않을 주민 3명에게 1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과 재산 가압류 신청이 들어왔다. 14명의 주요 활동가에게 매일 100만원씩 납부할 것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내더니, 더 나아가 한전은 분신자결한 이치우 열사의 동생인 이상우 어르신 소유인 102번 철탑 부지에도 공사를 하겠다며 적치장 및 진입로 일시사용 신청을 냈다. 이상우 어르신은 여러 차례, 102번 철탑 부지에서 공사가 재개된다면 97살 된 노모를 업고 거기서 죽겠다고 이야기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이 저렸는데, ‘죽겠다고 하더니 진짜 죽는지 한번 보겠다’는 뜻일까? 그렇게 무참하게 해석하고 싶지 않다. 그냥, 한전 직원이 공사 앞두고 업무 처리하며 깜빡 ‘실수’한 거라 생각한다. 이게 실수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형님의 죽음으로 지옥을 헤맸던 70대 노인에게 분신 사태가 일어난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공사를 하겠다니, 이게 인간이 할 일인가.
벌목된 나무 치웠다고 70대 노인 ‘절도’로 고발한전은 ‘탈핵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송전탑 벌목 부지에 심어놓은 ‘희망나무’ 영산홍을 뽑겠다며 철거 요청을 해왔다. 희망나무 심기 행사를 하려고 철탑 부지 안에 벌목돼 방치된 나무들을 주민들이 치웠는데(그 나무들은 파쇄해서 버리도록 돼 있다), 이를 빌미로, 현재 10억원 손배소 1건,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신청 2건으로 ‘3관왕’이 돼 있는 부북면 대책위원장 이남우 어르신을 다시 ‘절도’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공기업이 70대 노인에게 이런 식이다.
74살 할아버지가 제 몸에 불을 질러 사망하는 참혹한 사건을 겪은 뒤에야 겨우 세상에 조금 알려지게 된 ‘밀양 송전탑 싸움’, 그러나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 이후에도 여전히 소수의 시민들 외에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한전은 결국 올해 말까지 경남 밀양 구간 송전선로를 완성하겠다며 주민들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며 분신자결한 사람이 나와도 한전의 태도든, 시민들의 여론이든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좌절로 인해 60~80대 노인이 대부분인 경과지 주민들은 깊이 상심하고 있다.
한전은 ‘보상’ 문제 이외에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으려 했고, 주민들은 보상이 필요 없다고 했다. 주민들은 바라는 게 없다. 지금처럼만 살 수 있게, 그냥 내버려달라는 것이다.
81살 이금자 할머니는 잔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몸을 운신조차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이곳저곳 요양지를 보러 다니다 화악산 자락 평밭마을을 알게 되었다. 수려한 산세와 맑은 시냇물, 속세와 단절된 해발 300m의 작은 마을, 한눈에 반한 할머니는 거처를 평밭마을로 옮겼고, 기적처럼 몸이 나아 행복한 여생을 즐기고 있었다. 그 마을 코앞으로 100m가 넘는 35층 건물 높이의 송전탑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76만5천V 송전탑은 현재 우리나라 고압 송전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5만4천V 송전탑보다 송전되는 전류의 양이 무려 18배나 된다. 2차선 도로가 36차선 도로로 확장된 것이다. 기존 송전탑과는 아예 ‘떡대’가 다르다. 24시간 내내 코로나 소음이라고 부르는 기괴한 기계음이 끼익끼익 울리고, 전자파의 공포 또한 떨쳐낼 수 없다. 황혼도, 안개 낀 새벽도, 구름에 실려가는 한낮의 산자락도 이제 35층 건물 높이의 송전탑을 끼고 바라보게 되었다. 어떻게 되찾은 삶의 평화인데, 다시 빼앗겨야 한다는 말인가. 지난 1년간 마을 노인들과 함께 인부들에게 말할 수 없는 모욕을 당하며 아픈 무릎을 끌고 벌목을 저지하려고 산자락을 기어다녔다. 또다시 한전이 중장비를 앞장세워 밀고 들어온다면 당신은 이제 죽을 것이라며, 품에 유서를 넣고 다닌다.
토박이·이주자 모두에게 목숨 같은 땅
상동면 대책위 김영자 총무님은 거기서 태어나 지금껏 한 번도 타지로 나가지 않은 토박이다. 사촌오빠 두 사람도 이장이고, 본인 또한 여성농민회 일에 열심이다. 그 상동면 10개 부락을 꿰뚫으며 17개의 송전탑이 세워지게 되었다. 농토와 집 말고 다른 재산이 없는 이웃 농민들이 대출 신청을 했다가 줄줄이 반려되는 것을 보고 그는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벼농사·고추농사·감농사, 풍요롭지는 않아도 제 땅 갖고 농사지어 자식들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내게 해준 농토, 그래서 목돈이 필요할 때는 그것을 담보로 돈을 융통해왔는데, 이제는 농협에서 담보로 잡아주지 않게 돼버렸다. 765kV 송전선로 주변에 이제 부동산 거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상동면의 열성 활동가가 되어 지금 온 면을 누비고 다닌다. 그사이 이 배후에 핵발전소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전국 각지의 탈핵 관련 집회는 모두 쫓아다닌다. 땅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서다.
산에서 산으로, 할 수만 있다면 민가에서 멀리 떨어져 다니는 송전탑이, 그것도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가장 초고압의 송전선로가 유독 밀양 구간 4개 면에는 면 소재지, 학교, 기차역, 논바닥 위, 마을 바로 앞, 마을과 마을을 꿰뚫으며 지나가게 되었다. 거기에 어떤 정치적 고려가 깔려 있는지는 모른다. 핵발전소를 덜컥덜컥 승인받아놓고, 송전선로 그어 포인트 콕콕 찍어 송전탑 박아놓고, 발전소 1기당 2조원 곱하기 8 해서 16조원, 송전선로 6천억원, 변전소 1조6천억원, 그러니까 신고리핵발전소 사업은 20조원 가까운 돈이 풀리는 거대한 세금 잔치다. 엎어질 염려가 없는 국책사업이고, 지주의 동의가 없어도 전원개발사업 대상 부지로 지정되면 곧장 수용할 수 있는 전원개발법을 위시한 법과 공권력의 비호가 있으므로, 저들은 별반 머뭇거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될까. 누구든 와서 보라! 이렇게 밀어붙여서 이게 될 일인지를.
흔들고 놀면서 달리는 최고령 희망 버스
지난 주말에는 경북 영덕과 강원도 삼척으로 3차 탈핵 희망버스 행사에 다녀왔다. 참가자 46명 중에는 85살·81살 노인이 각각 한 분씩 포함돼 있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까지 포함해 역대 희망버스 역사상 최고령 참가자들이 아닐까 싶다. 비 오는 거리에서 행진도 씩씩하게 하시고, 숙박지인 삼척시 근덕면 광태리 마을회관에서는 그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즐겁게 윷놀이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보내준 성금으로 동해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횟집에서 회도 드셨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마을별로 신나게 노래자랑 하면서 흔들고 놀았다. 이 어르신들의 씩씩함으로 이 꿀꿀한 상황을 버텨낸다. 이 어르신들의 가난한 삶, 지금처럼만 살고 싶어 하는 소망, 그들의 평화를 지키자!
이계삼 밀양 송전탑 분신 대책위 사무국장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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