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5월31일 월요일 오전 10시20분 제헌의회가 개원했다. 첫 회의였다. 그해 5월10일 총선거를 통해 뽑힌 의원 198명이 모두 참석했다. 애국가, 국기에 대한 경례, 순국선열을 위한 묵념이 이어졌다. 국회선거위원장 노진설이 최고 연장자인 이승만 박사를 국회 임시의장으로 추천했고, 박수로 가결됐다.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날을 당해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먼저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우리가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세속의 법 아닌, 성경 말씀 더 따른 판사
의장석에 올라선 이승만 임시의장의 첫마디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였다. 모든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선 가운데 평안북도 영변 출신 목사로, 서울 종로 갑구에서 당선된 이윤영 의원이 기도를 시작했다.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선림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날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원치 아니한 민생의 도탄은 길면 길수록 이 땅의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은 이 땅에 오지 않을 수밖에 없을 줄 저희들은 생각하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 제1회 제1차)
개신교 신자들 가운데는 대한민국 국회가 기도로 첫발을 떼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가 있다. ‘악마의 권세’를 경계했던 제헌의회는 개원 두 달여 뒤 헌법 조문 심사를 한다. 헌법 제12조 “모든 국민은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존재하지 아니하며 종교는 정치로부터 분리된다”는 조문을 두고 의원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국교는 존재하지 아니하며 종교는 정치로부터 분리된다”라는 문구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여러 수정안이 표결에 부쳐진 끝에 원안이 그대로 가결됐다. 그렇게, 기도로 시작한 제헌의회는 국교를 인정하지 않고, 종교와 정치를 떼어놓았다. 1962년 12월 개정된 헌법부터는 종교 관련 내용이 양심의 자유 항목과 분리돼 독자적 기본권으로 대접받게 된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김신(55·울산지법원장) 대법관 후보자의 종교 편향적 판결과 언행이 도마에 올랐다. 부산·울산 지역에서 법관 경력을 쌓은 ‘향판’인 김 후보자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다. ‘장로 법관’이다. 그는 2002년 출간한 에세이집 에서 2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인도 지진을 두고 “하나님의 경고이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썼다. 조용기·김홍도 목사 등 개신교에서도 가장 보수적이고 꽉 막힌 이들이 일삼던 발언이다. 2010년 부산기독인기관장회 회장을 맡아 “부산 성시화(聖市化)를 위해 기도하자”고 했다. 지난 2월 울산지법원장이 된 뒤에는 “울산에도 성시화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했다. 교인들이 모인 사적 자리에서 나온 지극한 신앙심의 표현일 수도 있다. 성시화 발언은 개신교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익숙하다. 인사와 정책 등에서 두루 ‘종교 편향’을 보여온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발언(“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과 빼닮았다. 2011년 1월 교회 분열을 둘러싼 민사사건을 다루는 법정에서 교인인 원고와 피고 양쪽에 ‘화해를 위한 기도’를 요구하고, 기도 뒤 ‘아멘’으로 답했다. 부산고법 부장판사로 있던 2009년 12월에는 대법원 판례를 부정하며 교회가 소유한 부목사 사택이 과세 대상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민사사건에서 화해나 조정을 시도하거나, 하급심에서 대법원 판례에 맞서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김 후보자의 평소 언행과 맞물리며 종교적 편향이 법정에서도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다양한 갈등 상황을 정리하고 사법적 판단을 내려야 할 고위 법관이, 세속의 법이 아닌 자신이 믿는 성경 속 말씀을 더 따른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교분리’라는 헌법과 민주정치의 대전제를 어겼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황우여 “대법관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이들이길”
김 후보자는 7월12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지만 제 판결이 종교 편향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다만 어려운 삶의 과정에서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됐고, 그런 면이 개인 생활에서 드러나 공적인 부분에 영향을 끼쳤던 부분이 있었던 듯하다”고 했다. 그는 소아마비 장애를 이유로 사법연수원 동기들보다 여섯 달 늦게 판사로 임관됐었다.
우리 헌법 나이가 환갑을 넘겼다. 21세기 한국의 일부 공직자는 자신의 내면적 신앙과 자신이 맡은 공적 업무를 관계짓는 방식을 잘 모르는 듯하다. 좋게 말해 서툴다. 나쁘게 말하면 의도적이거나 노골적일 때가 많다.
2011년 1월 황우여 당시 한나라당 의원(현 새누리당 대표)은 개신교를 믿는 법조인들의 단체인 애중회(愛重會) 창립 50돌 축사에서 “가능하면 모든 대법관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이들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행사에는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 대법관 출신인 김황식 국무총리 등이 참석했다. 김 총리는 애중회 회장이기도 하다. 대규모 대법관 인사를 앞둔 터여서 ‘종교 편향’ 논란을 불렀다. 기도가 통했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법정에서도 기도하는 대법관 후보자가 나오기는 했다.
한국은 어느 종교도 완벽한 우세를 보이지 않는 다종교 사회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개신교는 불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신자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인구의 절반 정도는 종교가 없다. 김신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개인으로서 가지는 종교의 자유’와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정교분리 원칙’을 어떻게 조율할지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김 후보자가 대법관직에 오른다면, 과연 종교 관련 사건을 편하게 맡을 수 있을까. 소송 당사자들이 김 후보자가 속한 대법원 소부나 전원합의체 판결에 승복할 수 있을까. 김 후보자 스스로 사건을 기피하거나, 제척당할 가능성이 크다.
2008년 5월, ‘학내 종교 자유’를 주장하다 퇴학당한 강의석씨가 개신교계 학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강씨에게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이 뒤집혔다. 해당 재판장은 법원 안에서도 독실하기로 유명한 개신교 신자였다. 그 역시 ‘장로 법관’이다. 판결 뒤 강씨와 그를 지원하는 종교자유정책연구원 회원들은 “재판장이 학교 쪽과 같은 계열의 교단 소속 장로이기 때문에 1심과 항소심 결론이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2010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항소심 결론을 깨고 학교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전원합의체에서도 대법관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었던 만큼 ‘종교적 영향’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외부에까지 알려진 재판장의 신앙심이 뜻하지 않은 사법 불신을 불러왔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입법부는 어떨까. 자신에게 사건이 떨어져야만 힘을 쓸 수 있는 법관과 달리, 국회의원은 ‘입법’이라는 능동적 채널이 있다. 이러다 보니 개신교·불교계 등은 국회의원과 주요 상임위원장들의 종교가 무엇인지에 민감하다. 국회에는 개신교 의원 모임인 국회조찬기도회, 불교 모임인 국회정각회, 가톨릭 모임인 국회가톨릭의원신도회 등이 있다. 새로 구성된 19대 국회의원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111명(37%)이 개신교 신자다. 가장 많다. 국내 개신교 신자 비율(19%)을 크게 웃돈다. 가톨릭을 믿는 의원은 73명, 불교는 42명이다. 18대 국회에서는 개신교 120명, 가톨릭 72명, 불교 55명이었다.
대통령의 ‘무릎기도’
2010년 4월, 당시 한나라당 허천·황우여 의원 등은 ‘종교문화시설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도시개발정책·택지개발사업 등 난개발로 인한 수용·이전으로부터 종교시설을 보호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개신교·불교·천주교·원불교 시설 등을 두루 나열했지만 방점은 개신교에 찍혔다.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 이후, 개신교계 일부에서 재개발지역 영세 개척교회 문제가 떠올랐다. 이 법안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함께 추진됐다고 한다. 개신교계의 한 인사는 “난개발을 막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오래되고 전통 있는 교회 건물도 아닌 일반 교회까지 보존하거나 지원해야 할 문화시설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해당 법안은 18대 국회가 끝나며 자동 폐기됐다.
국내외 학설은 신앙의 자유는 절대적 기본권에 속하지만, 이를 외부로 드러내 다른 이들의 기본권과 충돌할 경우에는 적정한 제한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와 불교계의 갈등이 커지자, 문화체육관광부는 2009년 12월 다양한 유형의 종교차별 행위와 공직자들이 지켜야 할 ‘선’을 담은 를 내놓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대통령이나 고위 공직자가 특정 종교행사 등에 참석하고, 종교적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지침도, 사회·정치적 합의도 없다. 개신교계가 1966년부터 주최하는 국가조찬기도회에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이 계속 참석하는 것을 두고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국가조찬기도회는 지난해 3월 이명박 대통령에게 ‘무릎기도’를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목사의 요구에 무릎 꿇은 이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쓴 입맛을 다신 이들의 수는 한국 사회 종교 분포와 대략 비슷했을 것이다.
유독 개신교만 걸고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개신교계 공직자·정치인들이 자주 논란이 된다. 내면의 신앙을 바깥으로, 그것도 자신의 공적인 권한을 통해 강요하고 투사하려는 거친 욕망을 자주 접하게 된다. 여러 진단이 나오지만, 1990년대 들어 개신교계 안에서도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세력이 대형 교회를 통해 힘을 키우고 정치세력화한 데서 이유를 찾는 분석이 많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한국 교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는 (타 종교 등에 대한) 배타성이 교세 확장에 도움이 됐다. 그러나 신자 수가 늘고 국회의원의 40% 가까이가 개신교 신자이자 장로 대통령까지 나온 상황에서는 신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다”고 했다. 여러 종교가 어우러지고, 종교 없는 사람도 많은 한국 사회에서 다른 이들을 ‘적’으로 돌리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회복하기 어려운 갈등을 키운다는 것이다. 김진호 연구실장은 “한국은 대통령이 성서에 선서를 하는 미국과는 다르다”며 “몇천 명씩 모여 세를 과시하는 듯한 국가조찬기도회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도 적절한 행동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성시화 운동은 폭력”
어느 기독교계 언론은 한 변호사가 법원장 시절, 부임하는 도시마다 ‘성시화’를 위해 노력한 일화를 전한다. 이 법원장은 성시화를 위한 ‘파송 선교사 자격’으로 전도했다고 한다. 특정 도시 법원장으로 있을 때는 임기 동안 무려 100여 개의 교회·기관·단체를 다녔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김 실장은 “성시화 운동은 실현하기도 어렵지만 그 자체로 매우 폭력적이다. 구체적 정책으로 나타날 경우 ‘종교전쟁’이 벌어질 사안”이라며 부정적으로 봤다.
‘기독법률가회’ 사회위원회에서 일하는 박종운 변호사(법무법인 소명)는 약간 결이 다르다. “공과 사를 구분해야겠지만 공적인 위치에 있는 ‘나’가 종교적 세계관과 완전히 유리될 수는 없다. 신앙적 가치와 신념이 일상과 업무 등 여러 영역에 끼치는 영향을 인정해야 한다”며 “다만, 이를 관철시키는 방법이나 용어 등이 다른 종교나 비종교인들을 얼마나 존중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행해지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보수적 관점에서는 지진 등 자연재해도 당연히 ‘하나님의 역사’에 해당한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징벌’이나 ‘경고’와 연결시키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봉헌’ 역시 교인들 사이에서 쓰였다면 자연스러운 용어지만, 어떤 상황과 장소, 대상인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개신교’가 자꾸 돌출되는 상황에 대해 “그들만이 전체 기독교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정치적 문제를 신앙적 가치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배워왔던 보수적 가치관으로 판단하고 나중에 성경으로 덧씌우는 이들의 문제”라고 했다.
비종교인은 잘 모르거나 별다른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종교적인 어떤 것’들은 많다. 군에서 개신교·가톨릭·불교·원불교 성직자만을 받아들이는 군종장교 제도와 성탄절·석가탄신일·개천절만 휴일로 정한 것은 다른 종교를 차별한다는 논란이 따라붙는다. 예배에 가야 하는 일요일에 공무원시험을 치르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군·경찰서·교도소에서의 종교행사 강요·불허도 시빗거리다. 도로명에 절 등 종교시설이 포함되거나 지폐 도안에 태극무늬 등이 사용된 것도 괴로워하는 이가 있다. 광장에 서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나 불교 장식물, 학교에서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고, 특정 종교시설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것도 말썽이 생기고, 법원이나 헌법재판소를 향한다.
‘장로 대통령’ 이후를 생각해야
한국 사람들은 자기 종교가 무엇이 됐든 어쩔 수 없이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 혹은 종교가 없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악마의 권세’를 떨쳐버리라는 얘기다. 김진호 실장은 하나 더 주문한다. “장로 대통령이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 기독교계에 얼마나 상처가 됐는지 반성적으로 성찰해보자는 흐름이 있다. 장로 대통령 이후를 생각해보자.”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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